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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응급실 풍경

Los Angeles

2025.10.0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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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수필가

이정아 수필가

응급실에 꽃 단장하고 가는 사람은 없다. 쓰러져서 남이 911을 불러줘 가거나, 제 발로 가더라도 매우 아파서 가는 것이므로 제정신이 아닐 경우가 많겠다.
 
나도 아픔을 참다가 아무래도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아서 살살 준비를 했다. 가면 여러 검사를 할 테니 샤워를 하고 속옷은 최소한으로 입고 아들아이를 불렀다. 나중에 대기실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책받침으로 정전기 일으킨 머리칼처럼 흰머리가 공중에 다 뻗쳐 부스스하더라만 알았어도 손을 못 쓸 상황이 펼쳐지는 곳이 응급실이다.
 
연휴에 놀러 가려고 여행 짐을 싼 아이는, 엄마의 호출에 병원에 데려와 등록하고 입원실 방배정까지 4시간을 기다렸다. 제 아빠와 바통 터치하고 여행지로 늦게 출발했다. 아들과 며늘아기에게 미안했다.
 
입원하면서부터는 인간이라기 보단 생체실험용에 가깝다. 어디 어디가 아프다는 하소연은 혼잣말일 뿐이고 침대에 실려 MRI를 찍고 CT를 찍으러 방사능 벙커로 간다. 서늘한 지하방에 기계음만 찰칵거리면 외계의 한구석에 와 있는 듯 낯설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
 
“Deep breath!” “Hold”를 반복하다가 “Breath out” 그때야 심호흡 쉬고 비로소 살아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몸을 스캔함과 동시에 지나온 지난한 세월이 찍힌다. 이번에 살아나간다면 잘 살아야지 하나마나한 결심도 한다. 방의 서늘한 온도가 냉동고 같아 기분이 나쁘다.
 
입원실로 무사히 돌아오면 링거와 바늘들이 기다리고 있다. 따끔! 은 살아있다는 표시이므로 참아본다.
 
응급실 첫날은 피검사, 소변검사, 링거 맞고, MRI를 찍고 둘째 날은 더 길고 긴 링거 맞고, 피검사, 수도 없는 당뇨검사, 무시로 혈압체크, 복부 초음파, 산소보충기 착용. 셋째 날에 또 피검사, 당뇨검사, 혈압체크, 가슴 엑스레이. 넷째 날 피검사, CT 두 차례, 항생제 링거. 온몸 구석구석 진단했으니 일 년 내 두고두고 받을 검사를 한꺼번에 받은 셈이 되었다. 복더위에 피서한 것으로 치니 차라리 잘 되었다.
 
새벽이면 어둠 속에서 쓱 나타나는 피검사 간호사는 마치 저승사자 같다. 그 이후 약을 주러, 혈압체크하러 간호사들이 들락거리면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이 더 말똥 해진다. 그 와중에 “코드 블루 웨스트 윙 607!”하는 방송이 연속으로 들리면 가슴이 철렁하다. 오늘 새벽 레테의 강을 건널 누군가가 또 있단 신호이다.
 
병원에 오면 공연히 겁도 나고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 병원 가기를 미루고 미루게 된다. 평소에 남편에겐 미안하다는 말 안 하고 뻗대는 자존심이 기계 앞에선 손 번쩍 들고 항복도 척척하는 이런 이율배반은 또 무어란 말인가?
 
남편이 간병한다며 곁에 있어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아드님은 벌써 가셨네요?” 한다. “나 원 참! 아들이 아니라 남편이라니까 요 옷!”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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