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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Los Angeles

2025.10.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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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한글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도 크고 높아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K-팝, K-컬쳐의 폭발적 인기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외워서 따라 부르고,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제2 외국어로도 우리 한글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글날 무렵이라서 이런 소식이 한결 더 고맙고 자랑스럽다. 세종대왕님께서 기뻐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OED)’에도 한국어들이 등재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사전이다. 1884년부터 부분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인쇄 제본형 표준판은 1928년 총 12권 분량의 책에 41만 여개의 어휘, 180만 여개의 인용문이 실린 초판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온라인 사전 초판이 처음 나왔으며, 3개월마다 어휘를 새롭게 등재하고 있다.
 
한국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된 것은 1976년, 등재된 한국어는 ‘김치(kimchi)’, ‘한글(Hangul)’ 등이었다. 이후 꾸준히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었고, K-컬처의 세계적 인기에 따라 2021년에는 총 26개의 한국어가 등재되었고, 2024년 12월에는 7개의 한국어가 새롭게 등재되었다. 올해는 어떤 낱말이 새롭게 등재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참고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국어를 살펴보면 분야별로 다양하다. 음식 관계는 갈비, 김밥, 김치, 달고나, 떡볶이, 동치미, 먹방, 반찬, 불고기, 삼겹살, 잡채, 찌개, 치맥 등이 있다. 또 호칭은 누나, 막내, 언니, 오빠, 형도 올라있다. 한류 관계는 K-복합명사, K-드라마, K-팝, 한글, 한류, 한복이다. 한국식 영어도 등재되어 있다. 스킨십, 콩글리시, 파이팅, 피시방 등이다. 생활문화 단어로는 노래방, 당수도, 대박, 만화, 애교, 온돌, 태권도, 트로트, 판소리 등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이 세계적인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이 올라가는 일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우리말이 등재될 것으로 전망된다니 기대가 크다.
 
그런데 잠깐! 덮어놓고 기뻐하며 우쭐대기 전에 살펴볼 일이 있다.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한국어는 대부분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관한 낱말들, 그러니까 K-팝이나 K-드라마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감각적 향락적 낱말들이다. 한국의 얼과 넋이 담긴 곱고 아름다운 한글이 많이 실렸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무리 세계적 권위의 사전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이 그렇게 감격할 일인가도 싶다. 오늘날 한국사람들의 삶은 영어로 범벅이 되어 있다. 아주 당연한 듯 영어를 쓰며 살고 있다. 정치인, 방송인, 지식인, 언론인, 문인 등 가릴 것 없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나 아이들까지도 거침없이 영어를 쓴다.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한다.
 
국제도시 서울의 번화가 거리에 서면 여기가 한국 맞나 싶을 정도로 주위가 온통 영어 간판투성이다. 아파트 이름도, 상품 이름도 요상한 외래어 범벅이다. 그래야 품위가 있고, 잘 팔린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영어가 한국의 공영어가 될 판이라는 염려가 나올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니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에 흥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집안 정리와 청소가 먼저 급하다.
 
세종대왕님께서 밖을 보고 웃으시다가, 안을 보고는 피눈물을 흘리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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