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회에서 모든 정치적 행위는 여론을 기반으로 그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여론이란 무엇인가. 학자들은 여론을 사회 구성원 다수가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가지는 집단적 의견, 곧 ‘공중의 의견(Public Opinion)’이라 정의한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은 사회 속의 다수를 ‘군중(群衆)’이라 불렀고, 같은 시대의 사회학자 따르드(Gabriel Tarde, 1843~1904)는 이를 ‘공중(公衆)’이라 했다. 이는 세월이 흐르며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가치와 규범, 도구의 층화된 구조로 발전했기 때문이며, 매스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의 발달이 그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보의 확산과 지적 수준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이제 여론을 ‘공론(公論)’이라 부르게 되었다.
국민은 여론을 존중하는 정치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에서는 과학적 여론조사라는 이름 아래 조사 방식을 조정하거나, 결과를 선택적으로 발표해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기보다 조작된 데이터를 통해 정당성을 포장하는 행위이며,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하는 일이다.
여론은 객관성과 정밀함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만약 이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결과는 국민의 의지와 정반대의 정치적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예일대 심리학자 칼 호블랜드(Carl Hovland, 1912~1961)는 정치적 설득이나 대국민 홍보의 방식을 ‘희망적 소구(Hope Appeal)’와 ‘위협적 소구(Threat Appeal)’로 구분했다. 희망적 소구는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의 긍정적 변화를 약속하는 접근법이다. 반면 위협적 소구는 공포와 불안을 자극해 복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주로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체제에서 사용된다.
만약 자유민주국가에서조차 위협적 소구가 사용된다면, 국민은 공포와 불안 속에서 분열될 것이며,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영국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몽고메리(Bernard L. Montgomery, 1887~1976) 장군은 “머리가 나쁘고 부지런한 자는 가장 위험하므로 가장 먼저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독일의 롬멜(Erwin Rommel, 1891~1944) 장군은 머리가 나빠도 부지런한 이들을 기용하다 패전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몽고메리의 통찰이다. 판단력 없이 부지런한 정치인은 국가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국민의 여론을 왜곡된 방식으로 이용하는 지도자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여론을 존중하고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 그것이 진짜 리더십이며 민주정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