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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저울] 미국에는 왜 왕이 없는가

Los Angeles

2025.10.2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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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신 변호사·한미정치경제연구소 이사장

김한신 변호사·한미정치경제연구소 이사장

지난 18일, 미국 50개 주에서 동시에 ‘No Kings’ 시위가 열렸다. 그 범위와 규모는 실로 거대했다. 50개 주 전체에서 2500여 곳에서 약 700만 명이 참여했다. 워싱턴 DC, LA, 뉴욕, 보스턴, 시카고 등 대도시 뿐만 아니라 소도시와 농촌 지역까지 집회가 열렸다. 예를 들어 일리노이주 알튼에서도 수백 명이 마을 광장에 모였다.
 
이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시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대한 대중적 우려가 광범위하게 확산됐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 절대 권력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LA, 시카고, 포틀랜드 등 주요 도시에 군 병력을 배치한 조치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반민주적 행위로 여겨졌다.  
 
“미국에 왕은 필요 없다(No Kings)”라는 구호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국에는 왜 왕이 없을까?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에는 왕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18세기 독립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었다. 세계 어디에도 ‘왕 없는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왕의 부재는 곧 혼란과 무정부를 의미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건국은 단순한 독립전쟁이 아니라 왕정에 대한 근본적 저항이자, 인류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공화정 실험이었다.
 
독립 직후에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왕 없는 나라’에 대한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 아닌 ‘조지 1세’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만큼 사람들은 왕이 없는 국가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다. 그는 세 번째 임기를 제안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하며, “자유국가의 지도자는 종신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남겼다. 그의 자진 퇴임은 미국 정치문화에서 ‘왕 없는 권력’, 즉 제한된 권력의 전통을 확립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 후 미국 헌법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삼권분립을 명문화했고, 대통령의 임기도 4년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4차례 연임에 성공하자, 1951년 제22차 수정헌법이 통과되어 대통령은 2번 이상 선출되지 못하도록 제한되었다. 이 조항은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연속이 아닌) 한 차례 휴지기를 둔 뒤 다시 출마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싼 법적 해석 논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No Kings’ 시위가 시사하는 것은 단지 3선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시위대는 대통령의 군사적 조치와 권력 집중이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 원리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를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를 위한 정당한 조치로 본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한 시각 차이가 미국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미국에 왕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왕을 몰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헌법과 법치, 그리고 균형의 정신이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은혜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세대를 거듭하며 시민들의 피와 희생으로 지켜낸 제도다.
 
오늘의 “No Kings” 함성을 단지 반트럼프 시위로만 보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지지와 반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왕 없는 나라’를 건국 이념으로 삼았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김한신 / 변호사·한미정치경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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