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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저울] 미국에는 왜 왕이 없는가

지난 18일, 미국 50개 주에서 동시에 ‘No Kings’ 시위가 열렸다. 그 범위와 규모는 실로 거대했다. 50개 주 전체에서 2500여 곳에서 약 700만 명이 참여했다. 워싱턴 DC, LA, 뉴욕, 보스턴, 시카고 등 대도시 뿐만 아니라 소도시와 농촌 지역까지 집회가 열렸다. 예를 들어 일리노이주 알튼에서도 수백 명이 마을 광장에 모였다.   이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시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대한 대중적 우려가 광범위하게 확산됐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 절대 권력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LA, 시카고, 포틀랜드 등 주요 도시에 군 병력을 배치한 조치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반민주적 행위로 여겨졌다.     “미국에 왕은 필요 없다(No Kings)”라는 구호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국에는 왜 왕이 없을까?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에는 왕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18세기 독립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었다. 세계 어디에도 ‘왕 없는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왕의 부재는 곧 혼란과 무정부를 의미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건국은 단순한 독립전쟁이 아니라 왕정에 대한 근본적 저항이자, 인류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공화정 실험이었다.   독립 직후에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왕 없는 나라’에 대한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 아닌 ‘조지 1세’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만큼 사람들은 왕이 없는 국가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다. 그는 세 번째 임기를 제안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하며, “자유국가의 지도자는 종신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남겼다. 그의 자진 퇴임은 미국 정치문화에서 ‘왕 없는 권력’, 즉 제한된 권력의 전통을 확립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 후 미국 헌법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삼권분립을 명문화했고, 대통령의 임기도 4년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4차례 연임에 성공하자, 1951년 제22차 수정헌법이 통과되어 대통령은 2번 이상 선출되지 못하도록 제한되었다. 이 조항은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연속이 아닌) 한 차례 휴지기를 둔 뒤 다시 출마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싼 법적 해석 논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No Kings’ 시위가 시사하는 것은 단지 3선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시위대는 대통령의 군사적 조치와 권력 집중이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 원리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를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를 위한 정당한 조치로 본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한 시각 차이가 미국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미국에 왕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왕을 몰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헌법과 법치, 그리고 균형의 정신이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은혜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세대를 거듭하며 시민들의 피와 희생으로 지켜낸 제도다.   오늘의 “No Kings” 함성을 단지 반트럼프 시위로만 보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지지와 반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왕 없는 나라’를 건국 이념으로 삼았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김한신 / 변호사·한미정치경제연구소 이사장디케의 저울 미국 트럼프 대통령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2025.10.2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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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워싱턴 DC 가을 여행

6일부터 가족들과 함께 워싱턴 DC를 방문하고 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이유는 가을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인 딸 둘을 위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방학 기간 동안 집안에만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력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은 방학 기간 동안 타주 여행을 가고 학기 중에는 하기 힘든 특별한 활동들을 할 것이 뻔했기에 참신하고 아이들의 확실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절실했다.     그 중에서도 워싱턴 DC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였다. 일단 차로 떠날 수 있는 반경 내에 위치했고 기타 다른 도시에 비해 교육적인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여행지로 꼽혔다. 아직 아이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 국립공원이나 유적지에 관심을 가질 나이라는 점도 고려 요소가 됐다. 가끔 학교 수업 시간이나 책에서 등장하는 건국 아버지들의 에피소드나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일화 등이 나오면 아이들이 관심을 나타낸다는 사실도 워싱턴 DC로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결정하는데 고려 사항이 됐다. 더군다나 워싱턴 DC의 거의 대부분의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일부 단체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박물관 특정 액티비티나 전시의 경우 입장료를 받기도 했지만 상당수의 박물관과 국립공원, 유적지에서는 별도의 입장료가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DC 여행을 약 일주일 가량 앞두고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연방 정부 셧다운이 임박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방 의회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게 되자 연방 정부가 일시 작동을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언제 셧다운이 풀리고 어느 선에서 영향을 받게 될지 예상이 힘들다는 점이었다. 워싱턴 DC에서 방문할 예정이었던 박물관과 여행지는 거의 대부분이 연방 정부 관할이어서 만약 셧다운이 이어진다면 박물관 개관 자체가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은 여행 출발 이틀 전까지 계속됐다. 첫번째 방문지로 꼽고 있었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웹사이트에서는 6일까지는 오픈한다는 메시지가 이틀전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6일 이후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안내는 없었다. 오히려 6일 이후 상황은 연방 정부 셧다운이 이어질 경우 박물관 전면 운영 중단 가능성이 있다는 문구가 불안감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다행히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야 적어도 11일까지는 대부분의 박물관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안내가 올라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만약 사태가 급속도로 악화돼 박물관 입장이 힘들 경우 여행지 2순위로 꼽았던 애틀란타로 여행지를 변경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이로 인해 마지막 순간까지 숙소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여행 비수기였고 해당 지역에 큰 이벤트가 없어 숙소 예약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여행 출발 하루 전에야 숙소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워싱턴 DC에 주방위군이 투입됐다는 소식이었다. 시카고에도 이미 주방위권이 투입돼 연방 정부의 이민 단속을 지원하고 있지만 워싱턴 DC에도 주방위군이 투입돼 치안 강화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링컨 대통령 동상 앞에 군인들이 제복을 입고 총기를 소지한 채 순찰을 도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미 얼마 전에 워싱턴 DC 주방위군에게 항의의 표시로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집어던지고 달아나는 시민의 동영상을 본 뒤에는 우리 일상에도 주방위군이 깊숙히 들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라도 우리 가족과 같은 타주 여행객들도 군인들이 검문을 하거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다면 어떤 상황이 닥칠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 워싱턴 DC에 머무는 이틀 동안 주방위군을 마주치는 일이 세번 정도 있었다. 첫번째 조우는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포드 극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번화가를 이동중인 네 명의 군인들을 접한 것이었다. 두번째는 링컨 대통령 메모리얼을 보기 위해 야간에 이동하는 중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는 군인 한 명을 지나친 일이었다. 세번째는 공원 한쪽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군인 두 명을 지나간 것이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모처럼만의 가족여행이 한껏 들떠 있다. 워싱턴 DC로 오면서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을 때에는 중서부에서는 보기 힘든 산맥과 가을 단풍을 보며 신기해 하기도 했다. 어른들 역시 계절의 변화와 눈에 익지 않은 지형의 등장에 기분 전환이 되기도 했다. 오하이오와 펜실베니아, 웨스트 버지니아와 버지니아를 거쳐 워싱턴 DC로 이동하면서 주 경계지역에 설치된 환영 문구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 역시 즐거움중 하나였다.     다만 한인 업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체감 경기는 밝지 않았다. 버지니아주 페어펙스 지역에서 20년 넘게 자영업을 해 온 한인은 연방 정부 셧다운으로 인해 오래된 단골이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며 계속되는 물가 인상 요인과 단골 손님들의 이탈을 걱정하고 있었다. 기존 한인타운 역시 외곽으로 점차 빠져나가며 예전의 활력을 잃고 있다는 걱정도 보였다. 2025년 가을의 워싱턴 DC는 이렇게 우리 가족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조지 워싱턴 워싱턴 dc 타주 여행

2025.10.0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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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외톨이 오리처럼

밤새도록 비가 왔다. 아침에 비 그치기를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우비를 입고 리버사이드 공원에 갔다. 84가까지 내려가서 강가 진입도로 들어갔다. 다리 밑에 혼자서 웅크리고 자는 사람이 있었다. 자는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놨다.     강가를 따라 콜롬비아 대학 쪽으로 올라갔다. 조지 워싱턴 브릿지가 안개에 묻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많이 사는 강 건너 뉴저지는 안개 속에 둥실 떠 있는 섬 같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루트 9A를 따라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차가 움푹 파인 도로를 지날 때 튀기는 물살을 피해 강가 쪽에 바짝 붙어 걸었다.     12마리 오리들이 조지 워싱턴 다리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가고 있다. 오리들도 나처럼 안개로 덮여 없어진 다리를 찾으려고 부지런히 가는 듯하다. 춥던 날에는 볼 수 없었던 오리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간다. 저 멀리 앞쪽에 또 한 무리의 동료들이 다리를 향해 가고 있다. 나도 강물을 보며 그들을 따랐다. 그중 한 마리가 짝없이 혼자 강 한가운데서 헤맨다. 짝을 잃었나? 아니면 고독을 즐기는 건가?     예전에 우리 부부는 아침에 함께 공원을 산책했다. 남편은 나이 들수록 더 바빠져서 나와 함께 걸을 일이 없어졌다. 그는 새벽에 7 전철을 타고 Vernon Blvd-Jackson Av에서 내린다. 퀸즈와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Pulaski bridge를 걸어 그린포인트 스튜디오로 출근한다. 함께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모를까 우리는 각자 걷는다. 혼자 떠도는 오리처럼 나 홀로 걸어도 전혀 외롭지 않다.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짝 잃은 오리를 보면서 ‘외롭겠구나!’ 생각하다가 아마 오리도 질서 정연하게 함께 물 위를 떠도는 것보다는 자유를 즐기고 싶어서 혼자 있기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으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잊기가 어렵다. 멀리 있으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어 잊힌다.’ 언젠가 헤어질 우리 부부 사이 헤어지는 연습이라도 하는 양 걷는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외톨 오리 오리도 질서 조지 워싱턴 강가 진입도로

2025.05.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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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장미꽃이 피는 6월의 역사

‘오!  그대는 새벽녘에 최후의 황혼이 빛날 때,  무엇을 볼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겠는가? (Oh!  Say, you can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미국 국가인 ‘더 스타-스팽글드 배너(the Star-Spangled Banner)’의 첫 구절이다.  미국의 국기제정기념일이 6월 14일인데 이날 성조기를 보면서 미국 국가를 부르는 광경이 참 이채롭다.       성조기를 국기로 제정할 당시인 1777년엔 13개 주만 있어 처음에는 13개의 별과 13개의 줄무늬로 국기가 만들어졌다. 그 뒤 가입하는 주의 숫자대로 별과 줄무늬가 늘어났다. 성조기가 장미꽃을 상징하는 6월에 만들어진 것이 꽤 인상적이다.     6월에도 많은 유명인이 태어나고 일 들도 많았다. 우선 첫날, 즉 1801년 6월 1일에 모르몬교 2대 교주인 브리검 영이 출생했다.     1875년 6월 6일에는 노벨상을 받은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 1810년 6월 8일엔 유명 작곡가인 로버트 슈만, 그리고 1864년 6월 11일에는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역시 독일 출신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태어났다.        미국에서는 1811 년 6월 14일에 ‘엉클 톰 캐빈’의 저자 해리엣 비처 스토우가 출생했다. 또 조지 워싱턴이 독립군 총사령관에 임명된 것이 1775년 6얼 15일이다. 그런가 하면 1903년 6월16일에는 포드 자동차가 설립됐다.       프랑스에서는 유명한 가극 ‘파우스트’ 를 작곡한 샤를르 후랑스와즈 구노흐가 1818년 6월 17일에 파리에서, 수학자이자 과학자이며 이름난 철학자인 블래즈 피스칼이 1623년 6월 19일태어났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1세는 1815 년 6월 18일과 22일 두 차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6월은 한국에서도 잊을 수 없는 달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The Good Earth)’ 란 소설로 1932년에 퓰리처상,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가 1892년 6월 26일 태어났다. 헬렌 켈러 여사의 출생일은 1880년 6월 27일이다.     끝으로 연도는 다르지만 6월 29일에 태어난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 세 사람이 있다. 파나마 운하를 완공한 조지 고털즈가 1858년에, 메이요 재단을 설립한 윌리엄 제임스 메이요가 1861년, 태양광을 연구한 천문학자 조지 엘러리 해일이 1868년 이날 태어났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장미꽃 역사 성조기가 장미꽃 천문학자 조지 조지 워싱턴

2023.06.0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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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설이홍과(雪泥鴻瓜)

‘설이홍과’라는 말은 눈밭에 기러기가 날아가면 발자국이 남는다는 말입니다. 눈밭에 기러기의 발자국이 뭐 대단하겠습니까만 그래도 한동안 내가 왔다 갔다는 흔적이 남는다는 말이겠지요. 묘지에 가면 비석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석에는 이름과 간단한 행적이 적혀있습니다. 그것이 설이홍과입니다. 뉴올리언스에 가면 시내에 묘지가 있는데 프랑스식, 유대교식, 스페인식의 묘지들이 있고 그 앞에 가족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어느 책에 많은 위인의 묘비명을 적어 놓아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요새는 묘지로 쓸 땅이 적어져 대개는 화장하고 맙니다. 한국에서도 화장의 비율이 70%가 넘는다고 하니 죽어서 묻힐 땅이 없다고 하고 한탄을 하던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오래전 마케도니아의 박물관에서 필립 2세(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유골을 보았습니다. 유리장에 전시해 놓았는데 키가 작아 나만큼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체구였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가서는 앙바리드 사원을 지나가면서 나폴레옹의 무덤이 저 밑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양 역사의 큰 파도가 되었던 나폴레옹도 죽으니 크지도 않은 앙바리드 사원의 지하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땅이 넓어 그런지 러시아의 무덤들이 큼직하였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무덤이라는데 그 앞에 큰 동상이 있는 것을 보았고 차이콥스키, 안톤 체호프, 푸시킨의 무덤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워싱턴에서 좀 떨어진 곳의 조지 워싱턴의 묘라고 하는 곳은 별로 크지도 않고 비석도 변변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존 F. 케네디의 무덤도 자그마한 평토이고 그 앞에 영원한 불이라는 것이 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 어떤 자국을 남기면 좋을까요.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미라를 남겨두어 유리 상자에 넣은 채 주석궁 속에서 전시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Ash to ash. dust to dust 라는 성경 말씀대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이 요새 사람들이 간혹 토론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대전에 있을 때 부여의 고분을 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왕의 고분이었는데 일반에게 개방하였습니다. 물론 유해는 없고 전시물들이 몇 점 놓여 있고 앞의 전시판에는 고분의 건축년도와 구조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정작 무덤의 주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용산구 보광동에 살았습니다. 그때 보광동에는 털이 없는 작은 복숭아밭이 있고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주인이 없는 묘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희가 이사한 후 일이년이 되었을 때 도시개발을 한다고 공동묘지를 이전하라고 했습니다. 묘지 앞에 공고판이 부쳐지고 신문 한구석에 공고가 났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공고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가 한두 달 있다가 묘지를 하나하나 파지도 않고 불도저가 와서 산을 깎아버렸습니다. 거기를 지나노라면 해골과 뼈들이 불도저로 밀어붙인 흙더미 사이에 굴러다니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묻혔던 많은 사람의 영혼이 보았다면 어쨌을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주석궁의 유리 상자에서 전시된 김일성과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완전히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차이가 있을까요. 얼마 전 여행 가서 사진 찍으며 친구가 던진 말이 생각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사진을 남기는 거야. 화장해서 뿌리면 다음 날 가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거든.” 기러기가 날아간 자리가 되겠지요.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설이홍 정작 무덤 프랑스식 유대교식 조지 워싱턴

2022.04.08. 17:11

[독자 마당] 정직이 최상의 방책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강조한 것처럼 ‘정직은 최상의 방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다.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사회생활이나 국가간 외교정책에도 정직은 중요하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말과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그런 말과 행동의 기본은 정직이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독일 시인 괴테의 말처럼 최소한 완전해지려는 노력은 끊임없이해야 한다. 완벽해지려면 최소한 정직해야 한다.     취미 생활을 같이하거나, 골프 같은 운동을 하는 친구 사이, 또는 교우들 사이에서도 가끔 상대를 속이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상대가 속았다고 착각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도 하는데 천만에 말씀이다. 상대는 체면상 표현을 안 할 뿐이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신사 운동인 골프 게임에서도 스코어를 속이고 남이 안 보는데서는 볼을 건드리기도 한다. 심지어 볼을 잃어버려 두 벌타를 맞는 걸 피하려 슬쩍 알까기를 하는 비신사적인 사람도 있다.     원래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기에 가끔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솔직하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된다     누구나 말 실수를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지만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지키지도 못할 그리고 지킬 의사도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 같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자연히 그 모임에서 알게 모르게 왕따와 소외를 당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누구나 자기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받게 된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아버지가 선물한 도끼로 장난삼아 벚나무를 베었다. 하지만 나중에 정직하게 자기가 했다고 실토했다. 그런 정직함 때문에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김영훈·자유기고가독자 마당 정직 방책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비신사적인 사람

2022.02.2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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