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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민자의 가장 큰 축복, 친구

Los Angeles

2025.11.03 18:52 2025.11.0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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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웅 일사회 회장

박철웅 일사회 회장

1세대 이민자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이곳까지 왔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적응의 전쟁터였다. 언어, 문화, 사회적 관계, 정체성 등 모든 것이 다시 배워야 할 과제이었기에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웃음으로 넘기던 대화 속에는 종종 외로움이 숨어 있었고, 익숙한 냄새와 음식은 그리움의 자극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민자의 고뇌는 외로움이나 불안이다. 이럴 때면 속 시원히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를 찾게 된다. 과연 이민자로 나에게 그런 친구가 얼마나 되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더해 가며 친구를 수치로 세곤 한다.
 
SNS의 팔로워, 단체 모임, 교회 모임에서 만나는 얼굴들. 이 중에 과연 나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인가. 생각하면 뇌에 지진이 난다. 진정한 친구란 단순한 친밀감이나 동료 의식이 아니다. 진정한 친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외로움과 결핍을 함께 견디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민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낯선 땅에서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  
 
옥스퍼드대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이 깊이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3~5명으로 제한한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 두뇌의 인지적 한계와 정서적 에너지의 한계를 통해, 친구는 양이 아니라 질로 측정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민자에게 이 수치는 더욱 제한적이다. 언어적, 문화적 장벽과 물리적 거리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확보하는 일은 어렵다. ‘나는 누구와 함께 나의 존재를 이해받고,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가’하고 자문하게 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좋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은 많지만, 실패나 외로움과 아픔을 함께 받아주는 친구는 정말 몇 명일까.
 
사실 SNS 친구, 사회단체 친구, 그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구분할 때 우리는 중요한 통찰이 필요하다. SNS 친구는 표면적 친밀감을 제공하지만,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단체 친구는 공동체적 연대 속에서 신뢰의 가능성을 지니지만, 그것도 전제 조건과 시간에 의해 제한된다.  
 
진정한 친구란 결국 외로움, 아픔, 실패,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도 나를 지지하며, 나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친구다. 진정한 친구는 단순한 친목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이민 생활 속에선 환경에서의 외로움과 불안을 견디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시한 ‘덕을 위한 우정’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빛나는 통찰을 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이익을 위한 우정, 둘째는 쾌락을 위한 우정,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고귀한 형태인 덕을 위한 우정이다.
 
이익을 위한 우정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맺어지는 관계다. 사업 관계나 이해관계로 묶인 인연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익이 사라지면 관계도 끝난다.  
 
쾌락을 위한 우정은 즐거움을 주는 관계다. 함께 있으면 편하고 즐겁지만, 즐거움이 사라지면 금세 멀어진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우정은 상황과 감정에 따라 변하기 쉬운 관계다.
 
반면, 덕을 위한 우정은 그 자체로 완전한 우정이다. 그것은 상대의 유용함이나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선함을 사랑하는 관계다. 친구가 내게 무엇을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람들 사이의 우정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들은 서로를 덕 있는 사람으로서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친구는 ‘누가 더 많이 주었는가?’ 같은 계산이 없다. 오히려 서로가 상대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처럼 여긴다. 친구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친구의 고통을 내 일처럼 아파한다. 이익이 아닌 선을 기준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이러한 친구는 변하지 않고 오래 지속한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보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친구가 인생의 큰 축복이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는 이민생활에 큰 자산이요 가장 고귀한 관계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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