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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연말 쇼핑, 가성비보다 ‘기억비’

Los Angeles

2025.11.25 18:51 2025.11.2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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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경제부 부장

이은영 경제부 부장

농장에서 허브 오일 만들기 워크숍, 티벳 발마사지 체험, 헌팅턴 로즈가든 티타임, 도예 스튜디오 워크숍, 그래피티 클래스, 요세미티 상공 스카이다이빙, 개인 다이닝룸에서 아프리카 요리 체험…. 다가오는 할러데이 시즌 이런 체험 활동을 감사 선물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으면 어떨까.
 
최근 LA타임스는 ‘기억에 남을 경험형 선물’을 제안했다. ‘물건이 아닌 경험을 선물하자’는 관점에서 선정된 이 목록들은 받는 사람이 직접 체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활동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할러데이 시즌을 앞두고 실제 소비의 흐름이 ‘물건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는 선물의 가치를 가격이 아닌 기억·체험·관계로 평가를 매긴다. 단순한 문화적 변화가 아니라 소비의 정체성이 물질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기업들도 이런 소비의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 1세대 가치투자가인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설립자는 인터뷰에서 기업을 보는 관점 중 하나로 소유의 소비에서 경험의 소비로 이동을 만드는 기업을 언급했다.  
 
최근 소매업체들은 소비자를 구매자가 아닌 경험의 참여자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의 조기 돌입, 자체 체험형 콘텐츠 개발, 프리미엄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층 유입에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 행동 연구에서도 경험 소비가 개인의 만족도, 충성도, 브랜드 연결성을 강화하는 데 더 유의미한 효과를 가진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소비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이유로’ 소비하는가가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가치 소비도 두드러지고 있다. 월마트의 저소득층 고객은 눈에 띄게 지출을 줄였지만 중·상위 소득층 소비자는 더 늘어나고 있다. TJ맥스, 로스 등 할인점 업체는 가치 소비 흐름과 맞물려 주가가 급등했다.
 
최근 소비의 또 다른 추세는 첨단 기술보다 실제 소비자의 지갑이 움직이는 속도가 경제의 현주소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열풍이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실제 경제 체온은 월마트·갭·TJ맥스·타깃 등 대형 소매업체 실적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웰스파고 투자연구소가 “경제를 움직이는 건 결국 ‘요가 팬츠와 치즈버거’”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용 감소로 저소득층 소비가 줄어드는 반면 부유층 소비는 유지되면서 ‘투 스피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이 스테이크 대신 햄버거를 고르는 식으로 소비 방식을 바꾸며 지출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고소득층을 겨냥한 브랜드들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마이클 코어스와 지미추 브랜드를 보유한 카프리 홀딩스는 이달 초 기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버버리·LVMH 등 유럽 럭셔리 기업들도 잇따라 판매 호조를 발표했다.
 
물가 상승, 고용 불안, 관세 부담 등 복합적 압력이 소비 심리를 약화하고 있지만 어떤 형태든 소비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대신 소비자는 더 신중해졌고 가성비 또는 의미, 가격 대비 가치와 경험의 질을 중심으로 선택을 재편하고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할러데이 시즌은 경제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과연 소비자는 다시 지갑을 열 것인가, 아니면 허리띠 졸라매기가 일상화될 것인가.
 
기업은 가격만 낮추는 전략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삶에 의미를 제공하는 경험 설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소비자는 물질보다 경험을 원하고 그 경험이 브랜드 충성도를 더욱 강화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곳에 소비가 집중될 것은 분명하다. 할러데이 시즌 우리는 무엇을 소비해야 할까.

이은영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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