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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2800달러 폭탄 수도료

Los Angeles

2025.11.25 18:55 2025.11.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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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련 수필가

김규련 수필가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던 지난달 15일 수요일, 일상적인 우편물 속에서 LA수도전력국(DWP)의 청구서가 도착했습니다. 8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딱 두 달 치 사용료였습니다. 우편물을 열어본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평소와 달리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가갔을 때, 그는 충격적인 숫자가 찍힌 용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800.
 
두 달 동안 텅 비어있던 전셋집에 청구된 수도료였습니다. 나와 남편은 얼굴을 맞대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 한 방울 제대로 쓰지 않은 빈집에서 어떻게 이토록 엄청난 금액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매니저 시오는 우리를 달랬습니다. “얼마 전에도 다른 집 미터기를 잘못 읽은 적이 있어요. 아마 컴퓨터 오류일 겁니다.”  
 
우리는 그 말에 희망을 걸고 즉시 수도국에 연락했습니다. 수도국은 당장 계량기 수치를 읽어 보내라고 했고, 시오가 사람을 보내 미터를 확인하는 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계량기 수치는 정확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누수’였습니다. 미터 근처에서 물이 새었다면 수도국 책임, 집 안에서 새었다면 우리 책임이라는 냉정한 통보. 시오는 배관공(플러머)을 보냈지만, 주말 내내 어떤 결과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면 여행을 떠나야 했기에 이 막대한 수도료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우리를 짓눌렀습니다.
 
올해는 유독 나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해였습니다. 6월에는 도난당한 차가 전셋집 앞 철문을 부수고 달아났고, 일식집에서 물린 벌레 독 때문에 일주일 간 온몸이 가려웠고 결국 푸르뎅뎅한 상처가 남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집 화장실 벽 누수는 아래층 방의 크라운 몰딩을 뜯어내야 할 만큼 심각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잘못이 아닌 불운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 큰 무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한편, 중앙일보 기사는 우리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다른 동네에서도 우리와 같은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매번 80달러만 나오던 80세 노인 집에서 수도료 8383.50달러가 청구되었고, 수도국은 미터가 맞으니 전액 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노인의 딸이 방송국에 연락해 미디어의 힘을 빌리자, 그제야 환급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사례는 수도국이 자신들의 미터기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대항할 방법이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다음주로 다가오는데 이 모든 불운 속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교훈은 때로는 공허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감사는 ‘더 이상의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2800달러라는 절망적인 숫자 앞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의지가 남아있음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이 미스터리한 누수의 원인을 밝혀내고 DWP와 협상해야 합니다. 불운의 잔재를 털어내고, 여행을 떠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규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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