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은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안전망이다. 이 사실을 나는 지난 4월, 한국에 계신 엄마의 뇌출혈로 절감했다. 당시 한국은 의료대란으로 대부분의 병원이 새 환자를 받지 않았다. 엄마는 세 곳의 종합병원에서 연달아 거절당한 끝에, 다음날에서야 분당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실 수 있었다.
급히 달려온 나와 한국의 동생들은 사전 연명치료 의향서가 없는 상황에서 치료 방향을 정해야 했다. 의사인 동생과 나는 엄마와 함께 사는 막내 동생의 “아직 이별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 엄마는 기관절개로 호흡을 하시고, 위루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며 재활병원에 계신다. 나는 하루 12차례 진행되는 여섯 가지 재활치료를 받으시는 엄마의 보조 간병인을 자청해, 한 달 동안 주 3일씩 함께하고 있다. 넓은 재활실에는 각자의 일정표에 따라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보조기를 타는 사람, 목발을 짚고 걷는 사람, 고개가 한쪽으로 기운 사람, 그리고 그들 사이를 오가는 치료사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미국의 의료 시스템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단일한 국가 시스템이다. 직업, 소득, 재산에 따라 보험료가 책정되고 국가는 이를 관리 감독한다. 국가보험은 보편성, 형평성, 효율성을 중시하며,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에도 초점을 두고 2년마다 건강검진을 권장한다.
이 기본틀 위에 개인의 필요에 따라 민간 실손보험이 더해진다. 실손보험은 기본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며, 암보험, 뇌혈관 및 심혈관 보험, 치매보험, 소득보장보험, 간병보험 등으로 세분화되어 개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한다.
한국 의료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진료비와 뛰어난 접근성이다. 의사가 처방한 MRI나 내시경 검사를 같은 병원에서 곧바로 받을 수 있고, 결과를 신속히 진단에 반영한다. 이러한 효율성은 미국에서는 입원 환자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반면 미국은 의무가입이 아닌 민간 중심 구조로, 비용 부담이 매우 높다. 저소득층은 메디케이드, 노년층과 장애인은 메디케어를 통해 지원받고, 직장인은 직장보험을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보험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 오바마케어(ACA)가 도입되었다.
오바마케어는 표준화된 혜택을 제공하며, 이 전과 달리 보험사가 기저질환을 이유로 가입을 거부할 수 없게 했다. 불합리한 개인보험 구조를 개선하고, 개인 의무가입제를 도입해 젊고 건강한 가입자 층을 유입시켜 위험을 분산시켰다. 그 결과, 개인보험 시장은 고용주 제공 보험과 유사한 안정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자, 기저질환자, 65세 미만의 중장년층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최근 연방정부 셧다운 협상에서 ‘추가 보조금 연장’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다. 연장이 종료되면 저소득층은 유지되지만 중산층의 보험료는 크게 오를 전망이다. 추가 보조금은 연소득이 연방빈곤선의 4배를 넘어도 보험료가 소득의 8.5%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을 보조해 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질병이 찾아올 수 있기에 ‘감당 가능한 수준의 건강보험’은 필수다. 오바마케어의 공식 명칭이 ‘부담 적절 보험법(Affordable Care Act)’인 이유이기도 하다.
재활실에서 아주 조금씩 회복 중인 엄마와 묵묵히 훈련에 임하는 환자들을 보며, 건강보험은 단순한 제도를 넘어 삶을 지탱하는 희망의 끈이라고 생각했다. 그 끈이 모든 사람에게 감당 가능한 형태로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