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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성공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제네바에 본사를 둔 ‘프론티어 미디어’라는 출판사에서는 ‘Frontiers in Psychology’라는 심리학 국제 학술지를 발간한다. 이 학술지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이성을 바라볼 때, 복장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남성들은 여성의 옷차림에 따라 이성적인 ‘매력’을 확연히 다르게 평가했다. 남성들은 정장을 입은 여성을 덜 매력적으로, 캐주얼 복장을 입은 여성을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정장은 전문적이고 능력은 있어 보이지만, 동시에 거리감을 만들고 ‘접근하기 어려운 여자’라는 이미지를 주었던 것이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볼 때, 여성들은 남성의 옷차림에서 이성적인 매력보다는 ‘사회적인 성공’ 여부를 읽었다. 여성은 남성의 옷차림에서 ‘경제적 지위’와 ‘성공’ 신호를 읽어냈던 것이다. 그래서 정장을 입은 남성에 대해 여성들은 “돈을 잘 벌 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것 같다”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성의 ‘매력’ 점수 자체를 크게 올려주지는 않았다.   이 실험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남성은 여성의 성적인 ‘매력’에 집중하고 여성은 남성의 ‘성공’이나 ‘경제적인 지위’에 집중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영국의 ‘가족연구소(Institute for Family Studies)’의 연구에 따르면 연소득이 낮은 부부의 이혼 확률이 연소득이 높은 부부의 이혼율에 비해 30% 이상 높다고 한다. 남편이 외도를 해도 남편의 소득이 높으면 이혼율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시쳇말로 남자들은 돈만 잘 벌면 웬만하면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러 연구에서 ‘아내의 소득’이 높다고 이혼율이 낮아지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신 아내가 결혼 후 장시간 고용으로 진입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이혼의 위험이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들을 볼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가 최근에 어떤 여자에게 임신을 시켰다는 이유로 협박을 받아 거액을 뜯겼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만일 이 선수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엄청난 비난을 받고 이미 매장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이 선수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최근 시카고에 와서 성공적인 경기를 마친 이 선수의 스캔들은 인간 사회가 ‘성공한 남자’에게 얼마나 너그러운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돈 잘 벌고 성공만 하면 웬만한 잘못은 용서가 되는 것이다. 하기야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무리 커다란 잘못이나 불법을 저질러도 대통령이 되거나 대통령 부인이 되면 모든 것을 잊어 주지 않던가.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용서받았던, 고국의 대통령 부부는 이제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갇혀,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단일 잣대에 과도하게 관대하다. 외모, 권력, 돈, 지위 모두 한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인간 관계의 지속성과 도덕적 평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관계와 사회적 평가의 기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 가치, 내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여전히 ‘남자 인간’들을 평가할 때,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규칙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발언대 면죄부 성공 대통령 부부 대통령 부인 경제적 지위

2025.09.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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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이민자 단속 비용 1700억 달러

트럼프 정부가 앞으로 이민자 단속에 1700억 달러를 쓴다. 과연 이 돈을 이민자를 괴롭히는데 낭비하지 않고 다른데 쓴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이민법 개혁을 위해 활동하는 아메리카스 보이스의 바네사 카드나스 사무국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1700억 달러가 있으면 학생 150만 명이 주립대에서 4년간 공부를 할 수 있다. 미국의 모든 학생에게 10년간 영양가 있는 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에 있는 노숙자 모두에게 한 번이 아니라 17차례 주거지를 지원해 노숙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1700억 달러로는 낙후된 기반 시설을 고치고, 전국의 주택난을 해소하고, 가계를 파산시키는 의료비를 해결하는 등 미국 서민들의 경제난을 단숨에 풀어줄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연방보안국(US Marshals) 세 곳의 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이민자 추방에 쓰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민단속국(ICE)은 현 예산 90억 달러가 280억 달러 이상으로 늘고, 단속 요원은 2만 명에서 3만 명으로 늘어 미국 역사상 연방법 집행 기관 가운데 가장 큰 단속 부서가 된다.   또 주와 지방 경찰에게 ICE 권한을 위임하는 287(g) 협약 프로그램 범위를 대폭 늘린다. 287(g)에는 이미 40개 주 900개 이상의 기관들이 참여해 이민자 단속과 구금, 영장 업무 등에 나서고 있다.   이에 반해 여론조사 결과 미국민들은 대대적인 이민자 체포와 구금, 추방에 점차 반대하는 의견은 늘고 있다. 7월 갤럽 조사 결과 62%가 현 정부의 이민정책에 반대했다. CNN 58%, CBS 56%, 폭스뉴스 53% 등 대다수 반대가 절반이 넘는다.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보면 결과는 더 분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정부의 서류미비자 추방이 지나친가”라는 질문에 51%가 “그렇다”, 24%가 “적당하다”, 23%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CNN의 “미국에서 수년간 살며 범죄 기록이 없는 서류미비자를 체포, 구금하는 것”에 59%가 반대했고, 23%만 지지했다.   서류미비자에게 합법 신분 취득을 길을 열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폭스뉴스가 세 가지 질문을 했다. 대답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 추방하고 서류미비자가 미국에 남아 결국에는 시민권을 받도록 해야 한다” 59%, “모든 서류미비자를 추방해야 한다” 29%, “모든 서류미비자가 미국에 남도록 해야 한다” 11% 지지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서류미비자 합법화 지지 비율이 오른다. 내비게이터 내셔널 폴링은 이렇게 물었다. “서류미비자가 범죄 경력이 없음을 확인하고 적어도 2020년부터 미국에 살았다면 영구적인 합법 신분을 제공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무려 63%가 찬성했다. 반면 현 정부의 목표인 “모든 서류미비자를 대규모 추방으로 쫓아내야 하며 해마다 100만 명 추방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27%만 동의했다.   이런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 정부는 ‘체포, 구금, 추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더구나 막대한 비용을 생각하면 미국민들은 더욱 분노할 것이다. 정부가 1700억 달러를 혼란과 파괴, 경제 파탄에 쏟아붓는 효과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발언대 이민자 단속 이민자 단속 이민자 추방 서류미비자 추방

2025.08.2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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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OBBBA<감세법안>, 절세 파티냐 지뢰밭이냐

2017년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 도입됐던 ‘100% 보너스 감가상각’ 제도가 아예 영구화되었다. 원래는 2025년 말이면 사라질 예정이었는데, 이번에 아예 기한 없이 연장을 받아 기업 자산 투자에 날개를 달게 됐다. 연구개발비(R&D)도 이제 즉시 전액 비용처리가 가능하다. 미국 내 제조업체와 스타트업들에는 희소식이다.   반전도 있다. 이자 비용의 세금 공제는 다시 줄어든다. 법인세법 163(j)조항에 따라 기업의 순이자 비용이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의 30%를 넘으면 다시 예전처럼 공제가 불가능하다. 코로나 시국 때 잠시 느슨하게 풀어줬던 이자비용공제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고, 게다가 자본화 이자에 대한 해석까지 새롭게 까다로워지면서, 부채가 많은 기업들은 바짝 긴장해야만 한다.   자영업자들이나 S-corporation처럼 pass-through 구조를 활용하던 이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있다. Qualified Business Income(QBI)에 대한 20% 공제 혜택이 아예 영구화되었다. 이것 역시 2025년 말에 사라질 운명이었으나,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전문직 서비스업종(회계, 법률, 의료 등)도 소득 제한선이 7만5000달러(개인)/15만 달러(부부 공동신고)까지 올라가면서, 혜택의 문이 조금 더 넓어졌다.   세금 보고서류 중에서도 가장 번거롭고 귀찮은 1099, 특히 1099-NEC와 1099-MISC도 기분 좋은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한곳에 연간 600만 달러 넘게 지급하면 무조건 신고해야 했지만, 이제는 연간 2000달러 이상부터 발급대상이 된다. 연말마다 독립 사업자에게 보냈던 작은 금액 내역들까지 하나하나 뒤지던 중소기업의 회계직원들이 살짝 숨 좀 돌리게 된 셈이다.   국제조세 쪽에서는 용어부터 판도가 바뀌었다. 예전의 GILTI(GLOBAL Intangible Low-Taxed Income)는 이제 ‘NCTI(Net CFC Tested Income)’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고, FDII, Foreign Tax Credit 계산법도 재정비됐다. 미국 국적의 다국적 기업들은 앞으로 각국 법인세율만큼이나 워싱턴 D.C.의 기류도 민감하게 읽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제조업과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장려하겠다는 의지도 여전하다. ‘45X 세액공제’는 살아있지만, 바람개비(풍력) 관련 장비엔 유통기한이 생겼다. 2027년까지만 공제가 가능하다. 다만 태양광이나 저장장치 관련 기술은 여전히 혜택 가능하며, 이전처럼 세액공제를 다른 기업에게 양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 미국산 부품 사용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로 붙었다.   결론은 이렇다. 감가상각이나 패스스루 공제는 더 강력해져서 기업의 투자를 고무하고 이익이 나는 기업의 세금부담은 가볍게 해주면서, 동시에 이자비용 공제를 줄임으로써 무분별한 부채에 대한 경각심을 준다. 국제조세는 더 복잡해졌고, 보고 의무는 일부 가벼워졌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OBBBA(감세 법안)는 누군가에게는 파티 초대장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금 지뢰밭이다. 2025년 세금보고는 연말 정산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세무 리스크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기업의 운명은 결국 숫자와 준비에서 결정나기 때문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발언대 감세법안 지뢰밭 이자비용 공제 세금 공제 공제 혜택

2025.08.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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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김태흥씨와 에밀리 워넥

김태흥(40)씨는 5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에 왔다. 에밀리 워넥(61)은 생후 3개월 때 미국에 입양됐다. 두 한인은 지금 미국에서 쫓겨날 처지다. 둘 다 영주권자이고, 오래전 경범으로 대가를 치렀다. 김씨는 14년 전인 2011년, 에밀리는 29년 전인 1996년 일어난 일로 지금도 추방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와 입양인정의연맹(A4J)은 이 두 사람이 구명돼 평생을 자신들의 나라로 생각하고 살아온 미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도록 애쓰고 있다.   김씨는 최근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2주 방문하고 돌아오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체포됐다.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생명과학 박사 과정 중인 그의 구금은 14년 전 경미한 마리화나 소지 전과를 근거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법원은 사회 봉사 판결만 내릴 정도로 경미한 처벌을 내렸는데 이를 빌미로 지금에 와서 추방 절차를 밟는 것은 극도로 가혹한 조치다.     그는 구금된 첫 일주일 동안 변호사 접견이 거부됐다. 세관국경보호국(CBP)은 “헌법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충격적 발언을 하고 비인도적인 처우를 했다. 24시간 전등이 켜진 채로 침대도 없어 의자에서 자야 했다. 적절한 의약품이나 음식도 제공받지 못했다.     CBP는 72시간으로 제한된 구금 기간도 어기며 그를 일주일 이상 억류했다. 워싱턴포스트가 그의 이야기를 보도한 데 이어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지만 그가 추방을 피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에밀리는 현재 정기적으로 이민단속국(ICE)과 만나고 있다. 인종차별과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그는 정신건강 문제를 겪으며 약물 복용 문제로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재활에 성공해 성실히 살아가던 중 48세때 퇴행성 척추질환 진단을 받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시민권이 없어 장애인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이어왔다. 오는 18일 다시 ICE에 출두해야 하는데 체포, 구금될 우려가 크다. A4J는 18일 회견을 열고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그의 사면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촉구한다.   과연 이 두 사람이 미국에 얼마나 큰 위협이 돼서 꼭 추방을 해야 하는 것일까. 두 사람 모두 과거의 실수를 뉘우치고 법적 의무를 다했으며 사회에 대한 빚도 갚았다. 그런데 시민권이 없는 까닭 하나로 고초를 겪고 있다. 더구나 에밀리는 부모가 입양 뒤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받은 잘못된 정보에 따라 자동으로 시민이 됐다고 믿은 탓에 오늘까지 고통받고 있다. A4J는 에밀리와 함께 비슷한 처지의 대만계 입양인 출신 주디 반 아스데일(68)도 돕고 있다.   미교협과 A4J는 김씨의 석방, 에밀리와 주디의 사면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의 처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교협 베키 벨코어 공동 사무국장은 김씨에 대한 석방 촉구 성명에서 “김씨에 대한 이번 구금은 현 정권의 이민자·아시안 커뮤니티 탄압, 그리고 헌법 권리 침해가 얼마나 위험하게 확대돼 왔는지 보여준다”며 “한 명, 한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모두의 권리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갑송 / 민권센터·미주한인평화재단 국장발언대 김태흥 에밀리 석방 에밀리 헌법 권리 이번 구금은

2025.08.0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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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힘내자! 이민자 커뮤니티

크게 외치고, 자랑스럽게 말하자. 이민자들은 환영받는다. 현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폭력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국 곳곳에서 이민자들을 위한 용기, 연대, 그리고 공동체의 지지가 나타나고 있다.   뉴욕 롱아일랜드 커뮤니티는 조직적인 행동을 통해 사랑받는 지역 주민의 추방을 중단시켰다. 포트워싱턴에 있는 베이글 가게 매니저인 페르난도 메히아의 추방이 법원의 결정으로 일시 중단됐다. 메히아는 지난달 이민단속국(ICE) 요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이 사건은 커뮤니티의 강한 분노를 일으켰으며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법원은 현재 그의 사건을 심의하는 동안 임시 추방 중단 조치를 승인했다. 그의 법정 싸움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펼쳐지고 있으며 지역 정치인들도 그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LA에서는 주민들이 자원봉사 네트워크를 만들어 ICE 출동 정보를 알리고, 현장에서 영상을 촬영하고, 법률 참관인으로 활동하며 맥아더 공원 등 노동자와 노점상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이민자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지역 단체들은 수백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수상한 차량 정보를 공유하고, ICE 급습 정보가 확인되면 메가폰 등으로 현장 노동자들에게 신속히 알리고 있다. 자원봉사 순찰 차량들은 ‘ICE와 경찰의 테러로부터 커뮤니티를 지킨다’는 구호를 붙이고 다닌다.   필라델피아 러브파크에서는 지난 5~6월 공공 예술을 통해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며 특히 아시안들이 도시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널리 알렸다. 모두 10편의 단편 영화가 원형 환영센터에서 상영됐다. 작가들은 “이민자들의 이야기와 가족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일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늘날 필라델피아인이 누구인지를 비추며, 우리가 공동체와 시민사회, 정부 속에서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의 뿌리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전시는 예술을 통해 이민자들의 삶과 목소리, 그리고 필라델피아의 정체성을 함께 드러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법원에서도 양심적인 판사들이 망명 금지 조치를 차단하고, 출생 시민권 제도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의 효력을 막았다.  또 이민자 단속 권한을 지방 경찰에 부여하고 모든 이민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려던 텍사스의 법 시행을 중단시켰다. 법정에서, 거리에서, 정책에서 그리고 예술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지키며 미국의 서사를 바꾸고 있다. 이것이 운동이다. 이것이 힘이다. 함께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불법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불법의 낙인은 언제나 아시안, 흑인, 라틴계에 집중된다. 서류미비자 가운데 40%가 비자 기한을 넘긴 합법 입국자들이다. 이 가운데 백인 서류미비 이민자도 많다. 유럽과 캐나다, 오세아니아에서 온 서류미비자는 7%로 아시아 6%, 아프리카 3% 보다 많다. 하지만 이들 백인이 모여 있는 곳을 ICE가 급습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 백인이 미국을 침공한다는 말도 쓰지 않는다.     ‘불법체류자(illegal alien)’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유색인, 비백인들에게만 쓰인다. 불법체류는 법적 용어가 아니다. 인종에 대한 모욕이며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낙인이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발언대 커뮤니티 이민자 지역 정치인들 중단 조치 필라델피아 러브파크

2025.07.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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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노병들의 마지막 염원 ‘충혼비’

한인 밀집 거주 지역인 풀러턴의 한 공원에서 한국전쟁 75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LA총영사관 주최로 진행되었으며, 참전 미군 용사 수 명과 해외 거주 한국군 참전 노병 10여 명이 참석하여 의미를 더했다.   행사가 열린 공원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용사 3만 6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 속에서 고귀한 희생과 자유를 위한 연대를 상기시키는 영원한 표상이자 증거가 되고 있다. 특히 이 기념비는 미주 한인 사회가 정성을 모아 건립한 자랑스러운 한국전쟁 기념물로, 많은 이들이 찾아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이 기념비를 볼때마다 우리 참전 노병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아있다. 조국의 위기에 목숨을 바친 13만 8000여 명의 한국군 전사자들의 넋,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그 어디에도 새겨져 있다. 그들의 영혼을 기리는 작은 비석 하나조차 아직 세워지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송구스러움이 노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   90대에 이른 참전 노병들은 살아남은 자로서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죽은 전우들의 이름이 땅에 남은 마지막 참전용사들의 눈빛 속에, 감사와 평화를 비추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이름이 아닌 숫자로만 기억되는 이들의 희생을, 이제는 이름과 사연이 있는 영혼들로 되돌려야 한다는 바람이다.   그 처절했던 전투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이들은 전사한 전우들에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 김일성 고지, 스탈린 고지, 백마고지, 수도고지, 피의 능선, 철의 삼각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투에서 아침에 고지에 올라간 신임 소대장이 저녁에 시체로 내려오는 광경을 목격하거나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한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는 노래처럼 죽음으로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은 점차 시들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잘사는 대한민국의 과거에는 절대 공짜가 아닌 피와 땀이 스며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름들을 지역사회가 세대를 이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영혼이 담긴 ‘충혼비’, 이 작은 비석은 단지 돌덩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이고, 정체성이며,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다. 미주 한인 사회가 다시 한번 뜻을 모은다면, 이 소망은 현실이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의 희생에 감사하며, 자유를 위해 싸운 우방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미군 용사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매년 추모식을 거행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우리 형제와 전우의 희생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뜻을 함께하여 동참하는 손길은 결코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는다.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참전용사들의 가슴속에, 감사와 평화를 심는 그날까지 우리 동포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하고 싶다.   이제 기약 없는 여생을 보내는 참전 노병들은 간절히 말한다. “전우들의 이름 앞에서 경례 드리고 싶다”고. 젊음의 꽃은 지고 부흥의 꽃을 피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전쟁 영웅들의 얼을 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작고 소박한 소망, 한국군 전사자 충혼비 하나를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돌비석이 아닌 우리 민족의 기억과 존엄,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충혼비 노병 참전 노병들 미군 용사들 마지막 참전용사들

2025.07.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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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대한민국 새 정부에 바란다

대한민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민생과 전쟁, 기후 3대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를 짊어질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짐은 나누어 들 수 있다. 정권이 고집을 부리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한다면 말이다.   최근 뉴욕총영사관 영사 몇 분이 뉴욕의 한인들과 힘을 모으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권 시위 참여로 추방 위기에 놓인 컬럼비아대 한인 정윤서 학생 법원 심리에 영사들이 왔다. 억울하게 쫓기는 영주권자 한국인 청년을 위해 도울 일이 없는지 찾는다고 했다. 법원 밖에서는 한인 1세와 2세, 타민족 2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며 정윤서 구명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국 정부기관과 미주 동포가 함께 땀 흘린 아름다운 날이었다.   한국의 새 정부가 미주 동포들을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앞으로 신경 써 주기 바란다. 그동안 여러 차례 입장을 전했고, 관심은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인 움직임은 부족했다. 복수국적, 재외선거, 이중국적 등 많이 언급되는 사안들 말고도 당장 고통받고 있는 서류미비 한인과 입양인들을 돕는 길에 나서기 바란다.   10만여 명이 넘는 한인 서류미비자들은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앞날이 캄캄하다. 이 가운데 1만여 명은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1.5세 청년들이다. 5000여 명은 서류미비 청년 추방유예(DACA) 신분으로 학업과 취업을 하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의 계속되는 추방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여러 한인 입양인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1940년대 이후 미국에 온 한인 입양인 가운데 1만여 명 이상이 시민권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추방 위험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방의회에 상정된 입양인 시민권법 제정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수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류미비자와 입양인들이 겪는 문제는 사실 하나로 묶여 있다. 잘못된 이민 정책과 법 때문에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류미비 한인과 입양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두 가지 인권 침해 문제를 풀기 위해 하나로 뭉쳐 활동하고 있다.   한인 서류미비자, 입양인은 모두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다. 이들이 미국에서 기를 펴고 살아갈 수 있으면 한국의 앞날에도 큰 힘이 된다. 한국 정부에서 이들에 대해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미국 법 제정은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지만 한국 정부도 관련 한인 단체들과의 교류와 정보 교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로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한미동맹’을 앞세워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권익을 미 정부에 요구해 볼 수도 있다. 이를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피하는 경향이 그동안 계속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피로 맺어진 혈맹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고통받는 수십만 미주 한인들을 모른 체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최근 트럼프 정부는 유학생, 영주권자 심지어 시민권자까지 무차별적으로 이민자를 공격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 내 이민자들만 싸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한국을 비롯 외국 정부들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 동포들을 탄압하지 말라고 말이다.   대한민국 새 정부에 바란다. 미국을 대할 때 지혜롭고 당당한 정부를 바란다. 그래서 미주동포 권익도 지켜주는 새 정부가 되기 바란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발언대 대한민국 정부 한국 정부기관 한인 서류미비자들 트럼프 정부

2025.06.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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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표현의 자유 탄압, 맞서 싸워야

지난 3월5일 컬럼비아대 21살 정윤서 학생이 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미국에서 시위를 벌이다 체포가 되는 일은 흔하다. 경찰과 미리 약속하고 이른바 ‘시민불복종’ 행동을 하며 자리를 지키다 체포된다. 그리고 경찰서로 가면 바로 풀려난다. 체포 기록은 남지만 전과는 아니다. 시민 의사 표현의 한 방법으로 간주해 검찰 기소도 없고 법원에 가서 판결을 받지도 않는다. 그리고 유학생, 영주권자, 시민권자 등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다. 그런데 미국 역사상 없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9일과 13일 이민단속국 요원들이 정윤서 학생의 컬럼비아대 기숙사와 버지니아주 부모의 집에 들이닥쳐 수색하며 체포에 나섰다. 정 씨가 시민권자가 아니라 영주권자인 까닭이다. 다행히 정 씨는 잡히지 않았다. 이민단속국은 그의 영주권을 박탈하고 추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 씨의 변호를 맡은 법률팀은 3월24일 이민단속국의 불법 구금 시도를 막기 위해 법원에 인신보호영장 청구를 제기했다. 인신보호영장은 불법 구금에 대한 법적 안전장치인데 현 트럼프 행정부는 특정 국가 출신 이민자 추방과 관련해서는 이 제도를 없애려고 시도하다가 최근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민자를 추방할 때는 반드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결론이다.   3월 25일 뉴욕 남부 연방지법은 더이상 이민단속국이 정 씨를 추적하지 말고, 체포도 하지 말라고 임시 억류 금지 명령을 내렸다.     4월4일 정 씨의 법률팀은 이민단속국의 수색 영장에 허위 사실이 적혔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9일, 정오 맨해튼 법원에서 2차 심리가 열렸다. 법원은 이날 소송 심리에서 추가 결정이 있을 때까지 정씨에 대한 구금금지 임시 명령을 연장했다.   정 씨는 팔레스타인 인권을 지지하는 정치적 표현과 자유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의 추방 대상이 됐다. 정 씨는 7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며, 영주권을 가진 합법 거주자다.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인권, 외교 정책에 대한 의견은 갈라진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나 이민자, 영주권자의 권리에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법으로 정해진 권리이기 때문이며 법을 차별적으로 어이없게 바꾸지 않는 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단속은 서류미비자를 넘어 합법 신분자에게도 위협이다.   정부는 지난 4월 9일 영주권 신청자와 유학생의 소셜미디어 기록을 뒤져 기준이 모호한 이른바 ‘테러 활동’을 조장한다고 판단하면 이민 신청과 입국을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인권 활동은 이미 테러 조장 활동으로 낙인 찍었다.   많은 한인 2세들이 심리 당일인 지난 29일 정오 법정을 채우고, 법원 앞 공원 ‘포일리 스퀘어(Foley Square)’에서 정 씨 구명 집회에 참여했다. 일부는 팔레스타인 인권을, 또 이민자 권리를, 또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서로 조금은 다른 뜻을 가졌지만 정 씨 구명을 위해서만은 한목소리로 뭉쳤다.     요즘 어떻게 미국이 갑자기 이런 나라가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나라가 되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 김갑송 / 민권센터·미주한인평화재단 국장발언대 표현 자유 유학생 영주권자 이민자 추방과 이민단속국 요원들

2025.06.0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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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재외선거 문제, 동포청은 뭐하나

매번 한국의 선거철이 다가오면 미국 동포사회에 으레 감돌던 긴장이 올해도 현실이 되었다. 지난 5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LA 지역 한 명의 동포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2023년 6월 재외동포청이 출범하며 전 세계 700만 재외동포의 권익 신장과 모국과의 유대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터라, 이러한 소식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과연 재외동포청 설립으로 동포사회의 위상이 달라졌는지,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안타깝게도 출범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기우(杞憂)’에 그친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든다.   재외동포청의 설립 취지는 명확했다. 재외동포와 모국 간의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고, 무엇보다 700만 동포의 권익을 보호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출범 이후 재외동포청이 동포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강화된 이민 단속으로 불법 체류자는 물론 유학생들까지 불안에 떠는 현재 상황에서, 재외동포청이 현지 실태를 파악하고 법적·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며 동포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하지 않나.   재외국민선거 제도 역시 동포사회의 오랜 불만 사항 중 하나다. 자격 있는 재외국민에게 모국의 선거 참여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여러모로 현실과 괴리되고 동포들의 참정권 행사를 제약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일부 조항들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 나아가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인권규약(ICCPR)의 정신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ICCPR 제25조는 모든 국민의 공직 선출 참여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유엔 자유권위원회 또한 합리적 이유 없는 해외 장기 체류자의 투표 배제를 금지하고 있다. 제19조의 정보 접근권 및 표현의 자유 보장 또한 선거 참여의 필수 전제 조건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인권법의 기본 원칙에 비춰볼 때,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LA 지역 동포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한 사례는 재외선거법의 경직성과 현실 인식 부재를 다시 한번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모국의 선거법이 재외동포의 참정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행정 편의’를 앞세워 권리 보장보다는 관리와 보안에 치중한 측면이 크다. 국내와 달리 한국 선거 관련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재외동포들에게 오히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명백한 이중 잣대다.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위해 재외동포청이 마땅히 동포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관련 부처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개선을 촉구해야 하지만, 아쉽게도 그 역할이 미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권자 등록 간소화, 재외선거구 신설, 온라인·우편 투표 도입 등 동포사회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현실적인 제도 개선안들은 여전히 묵묵부답 속에 잠들어 있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재외동포의 현실을 외면한 채 ‘구시대적인’ 투표 방식을 고수하면서 재외선거 투표율 제고를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재외동포청이 동포사회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묻건대, 재외동포청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700만 재외동포의 권익 신장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은 기관이라면, 재외선거제도 개선은 마땅히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최우선 순위에 놓여야 한다.     동포들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통해 모국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은 재외동포청의 설립 목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행정 편의와 구시대적 법 조항 뒤에 숨어 동포사회의 정당한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재외동포청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재외선거제도 개선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다시는 모국의 선거 참여를 준비하는 동포들이 불합리한 법 조항에 발목 잡히거나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재외동포청이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700만 동포의 기대에 부응하는 유일한 길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발언대 재외선거 동포청 재외동포청 설립 재외국민선거 제도 공직선거법 위반

2025.05.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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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제조업은 왜 미국을 떠났는가

지난 4월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정책 구상이 또다시 전 세계 무역 질서에 파문을 일으켰다. 180개국에 달하는 거의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적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최대 49%의 ‘상호 관세’를 추가로 적용하겠다는 그의 제안은 사실상의 ‘관세 전쟁’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파격적인 관세 정책이 미국 제조업의 회귀, 불공정한 무역 관행 시정, 정부 수입 증대, 그리고 불법 이민 및 마약 거래 차단까지 실현하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 ‘미국 해방의 날’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은 사뭇 다르다. 트럼프식 관세 정책은 무역 상대국의 즉각적인 보복 관세를 유발하고, 이는 결국 미국 내 기업들의 생산 비용 증가와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의 왜곡과 그로 인한 물류 지연 및 비용 상승 등 예상치 못 한 부작용들이 속출하며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하는 ‘제조업의 복귀’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미국의 제조업은 어쩌다 국경 밖으로 떠나게 되었을까.   제조업이란 자연 상태의 원자재를 인간의 노동력과 기술을 활용해 삶에 필요한 재화로 만들어내는 산업이다. 의식주를 넘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이 제조업의 산물이다.   제조업이 특정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나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제조업은 단순 생산을 넘어 고용 창출, 수출 증대, 기술 발전, 고부가가치 창출, 연관 산업 육성 등 국가 경제 발전에 다방면으로 기여하며 선진국 진입의 핵심 동력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제조업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제조업이 국제 경쟁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제조 비용의 효율성’이다. 제조업체는 당연히 생산 원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공장을 이전한다.     각국은 이러한 제조업체들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 감면, 현금 지원, 저금리 대출, 규제 완화, 공장 부지 제공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경쟁적으로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지원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중요한 유인책은 해당 국가의 ‘인건비 및 생활 물가’ 수준이다.   미국 역시 제조업 국내 유턴을 장려하기 위해 주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약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건비와 생활비다. 시간당 인건비가 최상위권인 부유한 나라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닌,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며, 국경을 넘어선 세계 경제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다. 제조업자들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제조 비용이 저렴한 지역과 국가를 찾아 공장을 이동시키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다.   제조업의 국내 복귀는 모든 업종에 걸쳐 획일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선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은 여전히 경제 발전의 동력이 필요한 개발도상국의 몫으로 남겨두고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신 미국은 서비스업이나 AI, 우주 산업 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기술 산업에 집중함으로써 선진국으로서의 경쟁 우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각국이 자신의 강점을 살려 역할을 분담할 때, 비로소 전 세계가 진정한 의미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세계 경제 전체의 순조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발언대 미국 제조업 트럼프식 관세 국가 경제 관세 정책

2025.05.0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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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납세자 신뢰 흔드는 국세청

2025년 4월, 미국 국세청(IRS)과 이민세관단속국(ICE) 사이에 납세자 정보 공유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번 협정은 오직 ‘추방 명령을 받은 이민자의 이름, 주소, 그리고 세금 정보 일부를 ICE가 요청하면, IRS가 해당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IRS는 미국 연방법 안에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납세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이 협정의 근거로 삼고 있다. 또한 연방 법무부는 “세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정보공유가 이루어질 것이며, 이를 보장하기 위한 명확한 제약규정이 협정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주장한다.   겉으로 보기엔 정부 부처간 단순한 업무협조와 정보공유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협정은 그동안 미국이라는 나라를 지탱해 온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납세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어 왔다. 자발적인 세금 신고는 미국납세 제도의 근간이고, 그 신뢰의 핵심은 정보의 기밀 보장이라는 원칙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IRS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에게도 “세금 신고는 당신의 권리이며, 신고한 세금관련 정보는 이민 신분과 무관하게 보호된다”고 안내해왔다. 하지만 이번 협정은 IRS 스스로 그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협정이 발표되자마자 IRS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멜라니 크라우제 IRS 청장 대행은 협정 체결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혔고, 전임 청장 대행과 법무 고문도 이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협정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대한 침해 가능성이다. 미국 헌법 제4수정안은 시민을 무분별한 수색과 압수로부터 보호하며, 연방법은 납세 정보의 엄격한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이러한 보호장치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또한 이번 조치는 이민자 사회 전반에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낳을 수 있다. 수백만 명의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ITIN(개인 납세자 번호)을 통해 성실히 세금을 신고해왔고, 그것이 미국 사회의 숨은 노동력을 제도권으로 끌고 나온 중요한 통로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성실히 신고한 납세정보가 본인의 체포나 추방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세금 신고조차 기피하게 될 수 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미국정부의 세수 감소와 세금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이번 정책은 불가피하게 이민법은 어겼어도 성실히 세법을 따랐던 정직한 사람들이, 오히려 이민법과 세법을 모두 어겨왔던 사람들에 비해 더 큰 불안과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불공정한 조치다.   정책은 아무리 그 목적이 타당하더라도,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면 제도 전체의 정당성을 해칠 수 있다. 국세청은 이민 단속의 도구부서가 아니다. IRS는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으로 남아야한다.   이번 협정은 행정부가 세금 제도와 국세청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이며, 이민자뿐만 아니라 모든 납세자에게 심각한 도전을 한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법과 질서를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납세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물론 정부는 아직까지 이 협정에 따라 정보공유가 이루어진 실제 사례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협정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하며, 의회와 사법부는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발언대 납세자 국세청 납세자 정보 개인 납세자 세금관련 정보

2025.04.3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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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베네수엘라의 경고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한때 석유 수출이 국가 수입의 90%를 차지하며 막대한 부를 누렸다. 그러나 그 풍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9년 ‘카라카소’ 봉기로 분출된 대중의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분노와 불신은 1998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차베스는 이러한 대중의 불만을 파고들어 정치 개혁, 반미주의,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웠고, 특히 석유 자원의 국유화와 그 수익을 통한 빈곤층 지원을 약속하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차베스 정부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대중의 환영을 받았지만, 이는 곧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석유 의존적인 베네수엘라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차베스 및 그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의 반미, 사회주의 노선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 강화로 이어져 석유 수출이 제한되고 외화 부족 사태가 심화되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24년에도 베네수엘라는 깊은 경제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마두로 정권의 부정선거 의혹과 권위주의적 통치, 반미 기조를 이유로 그의 재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제재를 이어가고 있다. 지속된 과도한 복지 정책과 정부의 시장 개입은 에너지, 식료품 등 필수재 가격의 급등과 시장 비효율성을 초래했다. 석유 의존 경제 구조의 취약성, 정부의 정책 실패, 국제 제재, 그리고 경직된 경제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2024년 연간 물가 상승률은 85%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막대한 지하자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는 현대사에 기록될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특정 정책 방향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 특히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시한 주요 정책 공약들이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후보의 주요 공약들을 살펴보면, 무주택자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거주 가능한 기본주택 100만 호 공급, 전 국민 대상 연 100만원 지급 및 청년층 추가 지급을 통한 기본소득 도입, 금융 취약 계층 대상 저금리 소액 대출, 그리고 만 19세~29세 청년 대상 연간 100만원 지급을 통한 경제적 자립 지원 등 대규모 복지 및 지원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이 후보는 대기업, 고소득자, 자산가 중심의 세제 혜택 축소와 과세 형평성 강화를 통한 세입 확보를 제시했다. 또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 및 탄소 배출 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한 추가 세수 확보 등 여러 방안을 언급했으나, 핵심은 결국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 부담 증대로 귀결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국 경제의 활력 유지를 위해 대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 환경 개선이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세금 부담을 늘리는 정책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 경제가 오늘날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전자, 석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세계 시장 선도 역할이 있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기업들의 노력으로 수출 시장이 다변화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촉진되면서 경제 구조의 질적 개선과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기업 중심의 성장 모델은 한국 경제의 강력한 동력원이 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입법 환경을 보면 이러한 대기업을 옥죄고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법안들이 적지 않게 통과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산업 현장 사망 사고 발생 시 기업 최고경영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활동에 대한 과도한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 역시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제약하고 불법 파업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되었다. 반도체 산업과 같이 연구개발이 시간과의 싸움인 분야에서까지 경직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것 또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야기한다.   베네수엘라는 비록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막대한 지하자원이라도 보유하고 있어 최소한의 버팀목이라도 있는 상황이다. 반면 자원 빈국인 한국은 기업들의 경쟁력과 이를 통한 수출 시장 다변화가 지금의 경제적 지위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특성을 간과하고 베네수엘라식의 포퓰리즘적 정책이나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한다면, 자원 없는 한국은 베네수엘라보다 더 빠르고 혹독한 경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을 타산지석 삼아,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미래를 위한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발언대 베네수엘라 경고 베네수엘라 경제 경제 제재 복지 정책

2025.04.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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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한미박물관 세대교체가 답이다

LA 한미박물관 건립이 30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경직된 재단 구조와 리더십의 한계가 주요 원인들로 꼽힌다.   박물관 사업 초기에는 한인 사회의 염원이 담긴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동안 수차례의 설계 변경과 비용 증가로 인한 혼선, 부족한 자금 조달, 그리고 리더십 부재가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지금까지 2000만 달러가 모였지만, 전체 건립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모금 활동이 위축되었고, 주요 기부자의 사망도 자금 확보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시 정부와의 협의 난항까지 더해지면서 사업은 끝없이 지연되었다. 두 차례의 시민 공청회와 연방국세청(IRS) 고발 이후 박물관 홈페이지가 다시 활성화되는 변화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거의 없고, 같은 인물들만 반복해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한미박물관 건립이 실패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30년 전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그 과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세대교체를 외쳤던 1.5세들은 이제 50대, 60대가 되어 은퇴를 앞두고 있다. 다행히 다른 여러 한인 단체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한미박물관 이사진들도 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듣고 나선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말 뿐이었다. 30년 전 이 사업을 주도했던 세대는 이제 80대, 90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인들의 욕심과 함께 자리를 지키며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책임을 회피하고 남 탓만 하는 사이 사업은 정체된 시간 속에 갇혀 있다. 공청회를 열어 요구한 질문에 돌아온 답들이 그저 그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하고 허무하다.   30년 전만 해도 컴퓨터 386과 486을 사용하던 시대였다. 그 후 급속한 기술 발전을 거쳐 10여 년 전부터 온라인 도서관이 등장했고, 옛 사진들은 720p 화질로 디지털 아카이브로 보관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역시 낡은 시스템이 되어 AI 기술을 활용해 4K 화질로 복원이 가능하고, 정적인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런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요즘, 왜 기성세대들은 486 시대의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있나.   이제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대들을 내세워야 한다. 박물관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돈과 시민들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변하지 않은 낡은 구조 때문이다. 기록하는 세대보다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세대가 주도해야 이 시대에 맞는 박물관과 시민 공간이 만들어진다.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며, 우리의 역사가 다양한 세대와 다민족 사회 속에서 소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한미박물관은 반드시 건립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 개편과 적극적인 소통이 절실하다.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한인 사회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운영진은 투명한 소통을 해야 한다. 문을 열고 한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한미박물관 건립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크리스토퍼 이 / 건축가·다큐영화감독발언대 한미박물관 세대교체 한미박물관 건립 한미박물관 이사진들 la 한미박물관

2025.04.0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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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예상은 했지만 파도가 거칠고 세차다.   우리 식당 종업원 다비드가 제 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종업원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가슴이 철렁했다. 손은 빠르지 않지만 근면하고 성실한 그가 오래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틀 전, 우리 식당 가까이 있는 ‘타코 벨’에 이민세관단속반(ICE)이 나타나 쓸고 갔다 하더니 두려워 즉시 비행기표를 산 모양이다.   그가 떠난 후, 마틴이 말을 꺼낸다. 2베드룸 아파트를 렌트해 여러 명과 나누어 사는데 사람이 나가기만 할 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렌트비를 감당할 수 없단다. 주말이면 스왑밋 한 자리를 빌려 장사를 하고 주중에는 우리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그도 멕시코로 돌아갈 계획이란다.   사람들이 ICE 눈을 피해 몸을 사리느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마틴이 전한다. 스왑밋이 텅 비어 주말 장사도 벌써 접었단다. 어디 스왑밋 뿐인가. 가게 문은 열지만 파리만 날린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단속의 공포가 피부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이 시대의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테다. 새 정부가 ‘you are fired, you are out’ 정책을 외치며 ‘휴직, 업무중지, 해고’통지를 이메일로 날려 일터를 떠날 것을 명령하고, 이민자들에게 정든 땅을 떠나게 하는 거친 행보에 내일이 암울하다. 많은 사람이 살고 싶어했던 나라,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졌던 미국이 아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민자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정책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합리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새 정부는 행정부를 대통령 직속화 시키는 계획이 기반인 ‘프로젝트 2025’를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     정부의 견제와 균형을 파괴하는 행정명령들이 미국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세상만사를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을 듯이 휘젓고 있는 정세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불안하다. 예측할 수 없는 거센 파도에 곤두박질을 치다 아메리카 드림은 깨지고 모래밭에 밀려나는 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비드나 마틴처럼 미국 땅을 떠나기도 하지만 조국을 등지는 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민 40년, 가꾸고 키워온 나무가 미국 땅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커가고 있는데 땅이 변했다고 옮겨가는 일이 쉽겠는가. 그렇다고 괜찮을 거야, 지나갈 거야, 라는 안이한 위로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뒤를 이어 살아가는 아이들도 걱정이다. 남편은 잠시라도 미국을 떠났으면 하지만 나는 곤두박질로 변하는 미국 모습을 내 눈에 담고 싶다고 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미국 땅을 떠나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누가 알겠나, 피부가 황색이고 태어난 곳이 미국이 아니라는 애매한 이유로 추방 명령을 받는 날이 올지를.   뜰에 봄기운이 돈다. 언제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소망이 함께했다. 그러나 거센 파도를 바라보며 맞이할 봄을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이정숙 / 수필가발언대 주말 장사 추방 명령 대통령 직속화

2025.03.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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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관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강대국 대통령들은 전쟁을 몰고 오는 것 같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무력전쟁을 일으키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푸틴의 머릿속에는 과거 웅대했던 소련연방의 재건에 대한 꿈이 서려있는 듯 하고,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대한 환상이 맴돌고 있는 듯하다.   관세란 타국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하여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으로 관세 지불의 책임은 수입업자에게 있다. 수입업자는 사업가다. 사업의 목적은 이윤의 창출이다. 정부에 지불한 관세는 자연히 판가에 포함되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물가가 올라가고 인플레이션이 촉발된다. 이익을 보는 것은 관세를 징수하는 정부다.     관세를 부과하는 목적은 경제성장을 위해 자국산업을 보호하고, 제조업을 재건하고, 세수를 증대하고, 협상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관세란 전가의 보도가 아닌 양날의 칼이란 것이다. 자국의 유익을 위해 적용한 관세가 오히려 자국에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의 역사는 관세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순기능보다는 경제 성장을 저해한 역효과를 초래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것은 소득세 징수 23년 전인 1789년이다. 당시 유럽에 비해 산업이 뒤처져있던 미국은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해 관세정책을 강화했다. 링컨 대통령도 관세에 긍정적이어서 “보호주의 관세를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가 될 것” 이라고 할 정도였다.     일차대전 전까지 미국은 관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미국 세수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관세는 소득세가 도입된 1913년에 이르러 그 비중이 30% 이하로 감소하며 현재(2024년기준)는 1.2%에 불과하다.   1930년 6월 미국 국회가 제정한 ‘스무트-홀리’라는 관세법은 관세가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929년 10월 미국 주가의 대폭락으로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이 회복의 기미를 보이던 1930년 중반, 당시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따라 2만여 개의 품목에 대해 관세율을 평균 59%, 최고 400%까지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수입은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영국을 비릇한 20여 개 국가들이 보복 관세를 적용하며 미국의 농산물 수출도 대폭 감소한 결과 농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또 실업률도 세배로 치솟고, 전 세계 교역량이 1/3로 축소되어, 대공황의 피해가 증폭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가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자랑할 뿐만 아니라,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다음날 취소하는 등 리얼리티 쇼가 아닌 ‘관세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무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오늘 날의 국제정세에서 관세는 타국에 영향을 미치며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도구가 될 수는 있다. 또 자국으로 유입되는 불법이민이나 불법 약품을 통제하는 수단, 혹은 전쟁을 억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에 기초한 상거래에서는 상대국의 보복을 초래하여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더 많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주장하지만 미국의 관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미국이 관대해서가 아니라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미국내 소비자 물가를 낮게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이웃처럼 연결되어 있다. 어느 나라도 독불장군처럼 자기 나라만의 유익을 위해 행동할 수는 없다. 러시아가 자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무력으로 이웃나라를 침공하거나, 미국이 자국의 번영을 위해 관세정책을 무차별 사용하는 일은 지구촌 다른 나라에 공분을 일으켜 세계 평화와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이다.   19세기 발전도상에 있던 미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사용되었던 관세정책이, 미국이 세계 최고의 부강한 나라가 된 지금 21세기에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트럼프 행정부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발언대 만병통치약 관세 홀리 관세법 보호주의 관세 보복 관세

2025.03.2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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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시의회 발언대의 막말, 이젠 막아야 한다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길거리 주먹 싸움에서나 듣던 말이었니 그렇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LA 시의회를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400만 시민의 목소리가 모이는 정치의 중심지라고 하기엔 그 모습은 지나치게 과격하고 때로는 무기력해 보였다.   LA 시의회 본회의장은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발언 기회를 제공한다. 시의회의 결정과 발의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누구든 공개적으로 개진할 수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때로 혹독하다. 시의회 발언대에 선 일부 시민들은 온갖 욕설과 인신공격,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남루한 차림의 이른바 ‘상습 욕설자들’은 의회가 열리는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방청석을 차지한다. 그리고는 시종일관 귀에 거슬리는 표현들을 동원해 특정 정치인들과 시의회를 싸잡아 조롱하고 괴롭히는 데 여념이 없다.   그 괴롭힘의 수위는 심각하다. 만약 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길거리에서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공개적으로 듣는다면, 주먹을 쥐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다. ‘뚱뚱하다’, ‘천박하다’, 심지어 ‘성매매 여성’이라는 발언은 물론,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담은 표현까지 서슴없이 사용된다. 피부색을 이용한 인종적 멸시는 이제 놀랍지도 않은 ‘단골 메뉴’가 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원들과 주변 보좌관, 심지어 경찰관들조차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 발언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차치하더라도, 혐오 발언에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나중에 만난 보좌관과 의원들은 이러한 광경이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LA 시의회 내 발언에 대한 명확한 제재 규정은 없다. 간혹 고성을 지르거나, 논의 주제와 벗어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우 의장이나 시 검사가 발언을 제지하는 정도에 그친다. 사실상 대부분의 혐오 발언은 여과 없이 방청석을 통해 의회 내부로 전달된다.   마퀴스 해리스-도슨 LA 시의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직접 질문했다. 이처럼 과격하고 무례한 발언과 표현들이 시의회 공식 석상에서 허용되는 것이 ‘헌법적 권리’ 보호라는 명목하에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는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달리,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자유 발언 기회가 정부 기관과 소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이자 시간일 수 있다”면서 “단순히 욕설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발언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하에 인내하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때로는 ‘이유 있는 분노’가 욕설이라는 형태로 표출될 수도 있다. 시민이자 납세자로서 부당함에 항의하고 울분을 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LA 시의회의 상황은 이러한 허용이 사실상 방종을 조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는 스스로 정화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행에 맞서, 마침내 시의회 여성 의원들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는 혐오 표현을 퇴출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7명의 시의원은 지난주 흑인 비하 표현(N-word)과 여성 비하 표현(C-word)을 명시하고, 이를 포함한 성적, 인종적 멸시 및 비하 발언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조례안을 공동 발의했다.   발의안의 내용은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발언자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될 경우 해당 시의회 회기에 3일 동안 출입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물론 이 조치가 시민의 참여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법적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명백한 혐오 표현으로부터 시의회 구성원들과 정상적인 시민들의 참여를 보호하기 위한 시의적절하고도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선출된 시의원들과 수많은 보좌관들이 정당한 비판이 아닌, 길거리 싸움꾼들이 주고받는 수준의 저열한 언어로 고통받는다면, 이 또한 명백한 폭력과 다름없다. 시의원들의 가족들이 회의를 방청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고통은 더욱 극명하게 와닿을 것이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시의회 여성 의원들의 용기 있는 움직임이 LA 시의회 방청석을 조금 더 건전하고 품격 있는 공론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인성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시의회 발언대 시의회 발언대 시의회 공식 la 시의회

2025.03.2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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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자유를 위한 투쟁과 역사의 교훈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75년 3월 23일, 미국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패트릭 헨리는 버지니아 의사당에서 이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그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유를 위한 싸움을 피할 수 없음을 역설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이야기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고, 동료들은 전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헨리는 이렇게 묻는다.   “Is life so dear, or peace so sweet, as to be purchased at the price of chains and slavery?(속박과 노예의 대가로 얻은 생명과 평화가 중요한가?)”   이 연설은 미국 독립운동의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헨리의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 논란도 적지 않았다. 자유를 향한 투쟁이 반드시 무력 충돌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그 시대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도전과 대응을 기록해 왔다. 2023년 12월 3일, 한국에서는 예상치 못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이는 실행되지 못했고, 결국 공수처에 체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호수 위에 비친 달빛을 건져내려는 것과 같은 허황된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표현은 노자의 철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노자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을 언급하며,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이 실제로 실행되었는지 여부와 별개로, 이에 대한 법적·정치적 판단은 현재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계엄이란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국가적 비상사태 시 군이 행정권과 사법권을 행사하며 치안을 유지하는 조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은 기존의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그 법적 정당성과 실행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수처의 대응이 과했으며, 법적 절차와 권한의 경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이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역사는 늘 도전과 논쟁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싸움은 승리로, 어떤 싸움은 좌절로 끝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패트릭 헨리의 말처럼,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무너진다(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는 교훈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결정은 국민의 신뢰와 민주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질 때 더욱 의미를 가질 것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발언대 자유 투쟁 패트릭 헨리 윤석열 대통령 정치적 위기

2025.03.1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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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집안싸움에 갇힌 대한민국

고국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 탄핵, 계엄령 같은 단어들이 공론장에서 오르내리더니, 결국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찬반으로 나뉜 국민들은 한겨울에도 거리에 나서며 얼어붙은 도심을 함성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몸은 타국에 있지만, 마음만은 늘 고국을 맴도는 것이 해외 동포들의 심정이다. 기쁜 소식에 웃고, 슬픈 소식에 가슴을 졸이며, 조국의 행보를 지켜본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 2003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뱉은 말이다. 타협보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대통령에게만 양보를 요구하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었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은 유독 가혹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평탄했던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민주주의는 숫자의 싸움이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집단 내 다수가 곧 권력이 되된다. 지난해 4월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야당 성향의 의원들이 과반을 훌쩍 넘겨 64%의 의석을 차지하며 거대 세력으로 등장했다. “회복과 성장,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 그들의 공약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국민은 이를 자유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국가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정권을 강제로 탈취하거나 국가 체제를 바꾸겠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2024년 첫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거대 야당은 대화와 타협을 뒤로하고 머릿수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국가 발전과 민생보다 행정부 공격에 집중하며, 사소한 비리를 침소봉대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결과적으로 지난 6개월 동안 18차례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여당과 협의 없이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려 했으며, 행정부가 요청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정부 정책 수행을 마비시켰다. 이는 선진 정치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4류 정치의 민낯이었다.   결국 대통령은 “대통령 못 해 먹겠다”라고 체념하는 대신 비상계엄이라는 강수를 두었고, 머릿수로 무장한 거대 야당에 의해 탄핵소추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비록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일했던 대통령이 구속되자, 국민들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거대 야당의 행태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세계 경제 10대 강국으로 성장하고, K-컬처를 전 세계에 전파하며 자부심을 느껴온 국민들은 이제 현 정국이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우려 속에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갈등에서 시작된 싸움이 이제는 사법부와 국민 간의 대립으로 번지며 한국 사회는 한층 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는 국제 정세를 뒤흔들 대통령이 등장하며 지구가 회전하듯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마치 유아독존인 듯 세상일은 외면한 채 집안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진영 논리를 떠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 대한민국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기를 바란다. 경제 10대 강국의 위상을 지키며,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이 해외 동포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발언대 집안싸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 역대 대통령들 세계 정세

2025.02.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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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바다 사자들의 독백

우리는 시 라이언이라 불리는 물개입니다.   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인간 관리인에게 우리를 잘 보호하도록 임시로 위탁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도 너무하는 관리인의 폭력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창조주 하느님께 고발하려고 합니다.   우리 동료 중의 하나가 처참히 맞아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글서글한 눈망울과 수염 난 주둥이가 피투성이 되도록 우리 물개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거든요. 왜, 무참히 살해 당했는지 우리는 영문을 모릅니다. 들리는 말로는 우리가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관리인 어부의 밥숟갈을 빼앗는다고 분풀이를 했다는군요.   하느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인간들은 우리 물개들을 잡아서 기름을 짜내어 영양제와 화장품을 만드는 것도 부족해 우리 생식기까지 탐냅니다. 멸종될 뻔 했던 우린 자연보호 운동가들 덕분에 생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바다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끼니만 채우면 물 밖으로 나와 따뜻한 햇빛에 일광욕을 즐기지만 다른 물고기들은 플라스틱인지 뭔지 하는 쓰레기 때문에 내장이 터져서 죽어 간다고 합니다.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느님, 도와주세요. 멋지게 만드신 대양의 참 모습을 파괴와 폭력으로부터 지켜주세요.   저희 물개들이 다른 물고기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인간 관리인들이 인정해 주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현실이 염려 됩니다.   지구의 속사정을 알아채는 일은 우리 물개들이 인간 관리인 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인지능력이라고 하는데, 능력으로 부르기엔 우리는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지요. 자연에 동화될 수 있었던 비결은 경외심이었습니다.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평화롭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물개들의 눈에도 물 밖의 세상이 험악하게 보입니다. 아니,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한테도 불똥이 튀어 바다 깊은 곳으로 숨어들게 합니다.   우리는 바다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인간 관리인들의 사정이 딱해보입니다. 안전한 곳이 없는 것 같아서지요.     그런데 자기들의 거주지를 보존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물고기들은 쓰레기 때문에 숨이 막힙니다만 우리가 물고기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우리 동료를 때려 죽일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청지기의 사명을 쇄신해야 하지 않나요.   지구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찌 그리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것인지 우리들은 울화가 터집니다.   우리도 지구 공동체의 일원인지라 마음 같아서는 일손을 보탰으면 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저희는 바다를 벗어날 입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구의 이변은 모든 생명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최경애 / 수필가발언대 사자 독백 인간 관리인들 창조자이신 하느님 창조주 하느님

2025.01.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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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대한민국은 지금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리더가 없는 비상 사태다. 국가 원수이자 국정 최고책임자가 수사기관에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에도 충격적인 소식이다.     외신들은 윤 대통령의 체포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한국의 리더십 위기를 재조명했다. 한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국가로 칭송받던 한국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계엄이니 탄핵이니 하다가 급기야 경찰 수천 명이 동원된 대통령 체포 작전으로 잇달아 전 세계 토픽감이 되었다는 게 부끄럽다.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계엄과 탄핵’이란 단어가 뭇 언론을 도배하고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용산 한남동 대통령관저 앞까지 늘어서 수십만명의 시민이 연일 찬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통령 체포작전’이란 용어를 써가며 마치 군대가 작전하는 것처럼 경찰 기동대의 출동까지 거론하며 일촉즉발의 유혈충돌로 이어질까 걱정되는 모습이 한참 연출됐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대통령 구금사태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마치 작전에서 적에 투항하는 패장의 모습처럼 체포에 응했다. 그는 국군 최고통수권자로서 50만 대군의 수장이다.   공수처는 헌법이란 이름으로 대통령을 체포했다. 그런가 하면 경호처는 대통령 경호의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나섰지만 맥없이 무너졌다.   대통령은 모름지기 국가원수요 국군 통수권자로서 국가 존폐에 관한 일이 아니고선 그 권위에 도전할 자가 감히 있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대통령의 참모와 휘하 군지휘관들이 체포 구속돼 대통령은 통수권자로서의 팔다리가 모조리 잘려나간 꼴이 되고 말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번도 본적 없는 넋 빠진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군은 명령을 본분으로 하고 있다. 적전에서 설사 부당한 명령이라도 항명할 수 없는 게 군대다. 그래서 군은 제복을 착용하고 계급장을 부착하며 군복에 대한 존엄과 상호존중을 명예롭게 여긴다.     물론 헌법상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뜻도 실은 국민의 권리를 선택된 대통령이 위임받아 대표해서 사용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말이다.     지역주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이 전체국민이 선택한 국가의 대표를 상대로 적대행위를 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국헌부정행위등 국사사범이 아닌 이상 결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헌법상 최우선 순위의 신변 보호막을 대통령에 적용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수년 전 한국 국회에선 도끼로 의사당 문짝을 부수고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한 현역 국회의원이 공중부양하는 꼴불견을 연출해 미국 언론들의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 “더티 팔리틱스(Dirty politics)”란 평가를 받았던 부끄러운 광경이 새롭다.     이번에도 피아간에 헌법을 입에 물고 사는 사람들이 아전인수격 헌법해석을 일삼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주립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손자의 말이 귀를 울린다. 손자는 영자신문을 들고 “그랜파 잇츠 더리 팔리틱스(Grandpa It‘s Dirty Politics)”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에 미숙한 한국 정치”라는 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할아버지 세대가 피 흘려 나라를 지켰고 아버지 세대가 땀 흘려 경제 부흥을 이룩했는데 철없는 손자세대가 태평성대를 누려야 할 즈음 픽션 드라마에서나 볼일이 연일 연출되고 있다. 하루속히 대한민국이 정상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대한민국 대통령 체포작전 대통령 구금사태 대통령 경호

2025.01.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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