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 일부를 중동 지역으로 옮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반도 방어를 위한 자산이 일부라도 이동한다면 안보 태세를 다시 점검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자주국방’을 강조해 왔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재래식 군사력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이 됐고, 방위산업 또한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현실도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대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북한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속에서도 핵무력을 체제 생존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그 야심을 결코 내려놓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래식 전력의 규모나 방산 수출 성과만으로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면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 핵무력 앞에서 필요한 것은 군사 장비의 확충만이 아니다. 어떤 각오로 나라를 지킬 것인가 하는 정신적 무장이 더욱 중요하다. 강한 무기보다 더 강한 것은 국가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의지와 지도자의 결단이기 때문이다. 3월 26일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151회 탄신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돌아볼 때 그가 남긴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건국 초기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틀을 세우고,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켜낸 그의 결단은 국가의 뿌리가 되었다. 특히 6·25전쟁 전후의 시기를 돌이켜보면 그의 지도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국가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결단을 내렸다. 예비역은 물론 친일파 논란이 있던 인물들까지 불러 모아 나라를 지키는 전선에 세웠다. 그 기준은 단 하나, 조국에 대한 충성이었다. 그는 외교 무대에서도 탁월한 전략을 보여 주었다. 자유 진영과의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국가의 정통성을 지켜낸 그의 외교력은 현대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에는 좌와 우가 있지만 국가 안보에는 하나의 기준만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성이다. 현재의 한국 안보 환경 역시 가볍지 않다. 북한은 여전히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국제 질서 또한 급변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군사력의 수치나 성과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겠다는 정신적 각오와 국민적 결속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역사는 늘 묻는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보 앞에서 우리의 대답은 분명해야 한다. 정치적 진영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서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조국에 대한 충성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충성 시기 국가 안보 대한민국 건국 자유민주주의 국가
2026.03.17. 20:00
한국에서 지속해서 제기되어 온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왜 한국의 스타트업은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만들어온 정부 정책이 과연 산업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가이다. 얼마 전 K-컬처콘텐츠산업협회의 정책 토론회 참석 초청과 샌디에이고의 액셀러레이터 Aquillus 피칭 이벤트 합격 연락을 함께 받았다. 낮에는 토론회, 밤에는 피칭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디지털 갈라파고스 구조와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앞의 두 질문이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은 나쁘지 않다. 정부 지원도, 정책 자금도 있으며 시장의 반응도 빠르다. 문제는 이 환경이 지나치게 ‘한국 안에서 잘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국내에서는 성과를 내지만,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설계되지는 않는다. 인증, 결제, 데이터 같은 기본 구조부터 국내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에서 성공하고, 글로벌로 가자”는 전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삼성 갤럭시나 K-뷰티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제품이 아닌 디지털 서비스 영역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가 없다. 온실 밖의 환경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왜 그런 조건이 만들어지지 못했는지를 묻는 편이 생산적이다. 한국 휴대전화 번호가 없으면 가입이 어렵고, 한국 크레딧카드가 없으면 결제가 어려운 구조라면 그 서비스는 처음부터 글로벌을 상정하기 어렵다. 국내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성장한 서비스는 글로벌 확장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낯선 환경과 마주하게 된다. 중국 역시 강한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조건이 다르다. 중국은 압도적인 내수 시장과 자본이 존재하고, 글로벌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대규모 실험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특히 오픈소스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 세계에서 개발된 기술을 신속히 조합하고 상용화하는 속도는 주목할 만하다. 내부 시장 자체가 거대한 시험장이 되기 때문에 외부 기술을 흡수한 뒤 곧바로 스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은 시장이 작고 투자 여력도 제한적이다. 보호는 가능하지만 충분한 스케일의 실험은 어렵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더라도 대규모 실험과 빠른 확장으로 연결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논의되는 ‘소버린 AI(인공지능)’ 역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데이터 주권과 공공 인프라 차원에서 의미 있는 논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내 최적화 전략으로만 작동한다면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의 한국과 G3를 목표로 뛰는 지금의 한국은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단거리용 신발을 신고 달리던 시점에서 이제는 장거리용 신발로 갈아 신어야 할 때인지 모른다. 보호를 위해 만든 온실이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G3라는 목표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면, 지금의 설계가 그 목표에 맞는지 다시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허수정 Ohhh 대표발언대 갈라파고스 디지털 디지털 갈라파고스 디지털 서비스 한국 크레딧카드
2026.03.16. 19:58
‘페르시아 시장에서’를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으면 낙타들의 발소리가 다가오는 듯, 공주와 마술사들을 보는 듯 신나고 경쾌하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어떠한가? 신드바드의 희한한 모험과 알라딘 램프, 알리바바와 40인 도둑 등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인도, 페르시아, 아랍 등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를 18세기 프랑스인 앙투안 갈랑이 모은 설화집이다. 내용은 페르시아 사산 왕조 때 왕비 세헤라자드가 살아남기 위해 1000일 동안 왕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먼 나라 페르시아는 기원전 550년 아케메네스 왕조를 시작으로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로 이어 오다가 1935년에는 국호가 이란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란은 어떤가? 경제 제재와 인플레 등 경제 위기로 지난해 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이란 정부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다. 이슬람 시아파 중심의 신정 체제는 반미의 근거지가 되어 왔고, 비밀리에 핵개발까지 추진했다. 이런 이유는 지금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맹폭을 당하고 있다. 10여년 전 ‘테헤란의 지붕’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란에서 성장한 마보드 세라지라는 미국 작가가 쓴 것으로 친미 팔레비 왕조가 1979년 반정부 시위로 무너지기 전인 1973년의 이란이 배경이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와 여성 권리 확대, 그리고 산업화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종교계의 반발과 빈부 격차의 심화를 초래했다. 국민의 반발이 커지자 팔레비 왕조는 권력 유지를 위해 사바크라는 비밀 경찰 조직을 강화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대학생들은 감시당하고 죽거나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설의 주인공도 그렇게 희생이 되고 만다. ‘박사’라고 불린 대학생을 멘토로 여기며 따르던 파샤는 그가 사바크에 끌려가자 그 자리에 장미 나무를 심는다. 민중들의 절망과 희망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고 보존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도 귀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약혼녀인 ‘자리’가 국왕(샤)의 생일 축하 퍼레이드가 있는 날 광장에서 분신한다. 약혼자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밝힌다는 의미였다. 그들의 항거는 동시대에 민주화를 염원하던 한국의 사회 상황과도 비슷했다. 소년들은 밤이 되면 지붕 위에 모여 꿈을 키우고 부모들은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자녀들에게 들려준다.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튼튼한 내면세계가 정감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슬람이 전래 되기 전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유구한 역사의 페르시아 땅, 이제는 이란 사람들이 왕조나 신정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잘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권정순 / 전직 교사발언대 페르시아 하늘 페르시아 시장 페르시아 사산 인도 페르시아
2026.03.12. 20:21
식물은 구걸하지도 싸우지도 않는다. 남의 것을 탐하지도 빼앗지도 않는다. 제자리에서 열심히 혼자 물 길어 올리고 햇빛과 입맞춤하여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자신이 피운 잎을 떨어뜨려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고 거기서 자양분을 얻는다. 동토에서도 새봄이 기지개를 켜면 싹을 틔워 부활을 현시한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살아남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고, 이를 위해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킨다. 물질문명이라는 도구가 인간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반면, 정신문명을 노래하던 문학은 이제 난해한 문자언어의 조합 정도로 취급받는다. 돈을 사랑하는 인간들에게 문학은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시와 소설은 서점 구석의 선반 위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다.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나? 하루가 멀다고 AI(인공지능)의 놀라운 발달 소식이 전해진다. 어느새 로봇의 배달 서비스, 무인 택시, 무인 상점이 등장했다.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은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철학, 종교, 윤리, 예술 등 정신문명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제 과학의 산물들은 인간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부속품처럼 됐다. 이로 인해 환경 파괴, 자원고갈, 기후위기, 핵무기 경쟁 등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점점 세력이 커지고 있다. 현대인의 정신적 공허와 소외, 우울증도 심해진다. 그렇다면 정신문명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인가? 답은 있다. 너무도 평범한 진리이지만, 철학과 종교를 통해 인류의 궁극적 목적을 탐구하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과 감성을 일깨워야 한다. 또,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 ‘생태철학’의 실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화한다면 물질문명 속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중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 물질문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잘못된 정신이 문제다.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을 이끌어야지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에 윤리를, 과학에 인간성을, 경제에는 정의를, 힘에는 사랑을 입힐 때 인류의 미래는 밝아지며 파멸을 넘어서 보다 나은 진보 (Progress for humanity) 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애리조나와 유타 주의 황량한 사막과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가 생명이 없는 ‘죽음의 땅’이든가? 겨울비 내린 뒤 그 사막을 가보라.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사막의 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곳은 ‘죽음의 땅’ 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의 땅’ 인 것이다. 봄이 싹을 틔우면 여름은 이를 받아 구슬땀 흘리며 녹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가을을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옷을 준비하고 풍성한 수확물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동면의 쉼을 통하여 푸른 생명을 또 준비한다. 자연의 법칙은 물질(과학)문명을 능가하는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우리 곁에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상훈 / 시인·수필가발언대 자연 반면 정신문명 물질문명 자체 철학과 종교
2026.03.08. 17:14
지난 주말 LA 할리우드 지역에 있는 반스달 갤러리 극장에서 제107주년 3·1절 기념 전야제 ‘한마음 예술 대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1919년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107년의 역사 위에, 한미무용연합·진발레스쿨 창립 23년의 세월이 겹겹이 포개진 무대였다. 관객들로 가득 찬 공연장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었다. 3·1절은 날짜로만 기억되는 날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어져야 할 정신이다. 나는 발레스쿨 단장으로서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지 오래 고민해 왔다. 답은 결국 춤이었다. 차세대들에 설명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으로, 말이 아니라 무대 위의 호흡으로 역사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어린아이의 태극기, 청소년들의 창작무용, 시니어의 단단한 걸음이 한 장면 안에서 어우러졌다. 무대에는 발레, 재즈, 아크로바틱, 워십댄스 등 다양한 장르가 올랐고, 시와 사진, 발레가 만나는 콜라보 작품도 있었다. 단원 가운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단원도 있었는데 그녀는 음악 대신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과 호흡으로 리듬을 읽으며 자신의 춤을 완성했다. 그렇게 30여 개의 작품은 ‘Everybody Dance’라는 슬로건 아래 하나로 모였다. 서로 다른 장르와 세대가 결국 ‘춤’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 감동적이었다는 관람객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여러 세대가 한자리에서 3·1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모습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했다. “진정한 애국자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춤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관객들의 마음에 닿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이지만, 어디에서 왔는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조국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나는 잠들기 전 스스로 묻는다. 오늘 하루는 백점 만점에 몇 점이었는지….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23년이 되었고, 그 시간이 이번 무대 위에 놓였다. 이번 무대는 결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한미무용연합·진발레스쿨이라는 문화예술 단체의 이름 아래, 학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지역사회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107년의 정신과 23년의 발자취는 그렇게 여러 사람의 힘으로 이어졌다. 공연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남길 것인가? 나는 그 답을 앞으로도 춤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발언대 기념 공연 기념 공연 기념 전야제 한마음 예술
2026.03.02. 18:44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존재라고 말한다.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 지휘관의 한마디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계엄 사태 이후 국군의 최고 지휘관인 7명의 4성 장군이 물러나고, 적지 않은 장성들이 옷을 벗거나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현실은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명령에 충실했던 군인의 삶과 헌법적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한 개의 별을 달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해 온 이들이다. 혹독한 훈련과 끝없는 긴장 속에서 부하의 생명을 책임지며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경력은 단순한 직업 이력이 아니라 피와 땀, 그리고 가족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역사다. 그렇기에 오늘의 상황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모두의 숙고를 요구한다. 군 조직의 근간은 상명하복이다. 명령 체계가 흔들리는 순간 작전은 실패하고 더 큰 희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전시나 긴급 상황에서는 지휘관의 결단을 신속히 따르는 것이 군의 생명선이다. 우리 군은 6·25전쟁이라는 혹독한 역사 속에서 명령과 복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 경험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안보를 지탱하는 교훈이다. 그러나 또 다른 진실도 존재한다. 군은 국가와 헌법에 충성하는 조직이다. 명령이 법과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때, 지휘관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다. 명령 불복종은 범법이지만, 위헌적 행위에 가담하는 것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군인의 직업윤리와 시민으로서의 양심이 충돌한다. 우리는 흔히 훌륭한 지휘관의 덕목을 이렇게 말한다. “책임은 나에게, 공로는 부하에게.” 이 짧은 문장은 군 리더십의 본질을 압축한다. 진정한 지휘관은 성공의 영광을 나누고 실패의 무게를 홀로 감당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라는 것도 어쩌면 같은 모습일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아니라, 국가와 조직을 위해 묵묵히 책임을 지는 자세 말이다. 군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있다. 명령 체계를 불신하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는 그 사명이 온전히 수행될 수 없다. 법치와 안보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두 축이다. 우리는 법의 엄정함을 유지하면서도 군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별은 계급장을 떠나지만, 군인의 명예와 책임은 역사 속에 남는다. 전장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총성이 멎은 지 오래지만 질문은 남아 있다. 위기의 순간, 우리 군은 흔들림 없이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가. 군의 명령 체계는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나라를 지켜 온 마지막 보루다. 진정한 충성 앞에 명령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지키는 지혜,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군인 명령 명령 체계 명령 불복종 최고 지휘관인
2026.02.26. 19:57
한국 정치는 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서 있다. 정권 교체는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이번 국면은 단순한 권력 이동을 넘어선다.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와 권력분립의 긴장이 동시에 부각된 상황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도 이례적이다. 이는 한 정치인의 운명을 넘어, 민주주의 제도의 내구성을 묻는 역사적 질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유지해왔다. 대통령이라도 법과 제도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은 민주화의 핵심 성과였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구조적으로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강력한 행정권, 단임제의 시간적 제약, 국회 권력 구도의 변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는 충돌을 암시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대통령과 사법부의 갈등은 반복되어온 정치적 패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그 긴장은 더욱 직접적이다. 대선 이전부터 진행 중이던 형사 사건들이 존재했고, 일부는 상급심 판단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재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는 곧 헌법 해석과 권력분립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형사소추를 제한한다. 그러나 ‘소추’의 범위와 이미 기소된 사건의 재판 지속 가능 여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이는 단순한 법리 논쟁이 아니다. 헌법이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지,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시험하는 중대 상황이다. 사법적 판단이 정치적 해석과 충돌할 때 사회적 분열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도 경험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사법부는 두 요구 사이에 놓여 있다. 하나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 안정이라는 현실적 고려다. 후자를 의식한다는 인상이 형성되면 독립성은 의심받는다. 반대로 원칙을 강조할수록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이 균형을 지켜내는 일이 사법부의 책무다.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일방적 입법이나 극단적 대치는 협치의 정신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논쟁은 양분되어 있다. 지지층은 정치적 수사라고 주장하고, 반대 측은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한다. 이 대립은 단순한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 절차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문제다. 재판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다면 결과와 무관하게 제도에 대한 신뢰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확산하면 판결 이후에도 갈등은 이어질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한인 사회는 한국 정치의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고국과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미국 사회가 강조하는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의 가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현재 상황은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해외 동포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의 정치적 성패가 아니다. 대통령이 누구든 법의 적용이 일관되고 권력분립이 유지된다면 민주주의는 지속된다. 반대로 제도가 흔들리면 그 파장은 국가 신뢰도 문제로 확산하는 것이 자명하다. 이번 사법 리스크가 헌정 질서 안에서 안정적으로 정리된다면 1987년 체제의 회복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신뢰가 크게 훼손된다면 또 하나의 깊은 상처로 기록될 수 있다. 정치는 갈등을 수반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갈등을 제도 안에서 해결하는 체제다. 대통령의 사법 문제 역시 헌법과 제도의 작동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이다. 권력이 법 위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 그리고 법이 정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키는 균형이 지금 요구된다. 한국 현대사는 여러 위기를 넘어왔다. 감정이 아닌 원칙, 진영이 아닌 제도에 대한 신뢰가 중심이 될 때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이재명 정부와 사법부, 국회의 긴장은 그 시험의 한 장면이다. 역사는 이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훗날 이 시기가 제도의 성숙을 증명한 시기로 남을지, 신뢰를 흔든 사례로 남을지는 지금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동포사회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어떤 정권 아래에서도 대한민국의 법치와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뼈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동포사회가 고국에 바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발언대 이재명 정부 이재명 대통령 민주주의 제도 국회 대통령
2026.02.22. 19:09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은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다. 그 참혹한 전장의 이면에는 북한 병력이 러시아 측에 파병되어 용병처럼 싸우고 있으며, 적지 않은 희생이 발생하고 있어 우리 가슴을 무겁게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포로가 되느니 자결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졌고, 일부 병사들은 이에 순응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 중의 비극이다. 젊은 청춘들이 무엇을 위해 타국의 전쟁터로 보내지고 있는가. 조국 방위도 아닌, 민족의 생존과도 무관한 전쟁에서 그들은 ‘용병’이라는 이름으로 총을 들고 있다. 그들의 선택이었는가. 아니면 체제의 명령이었는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실전 경험을 쌓고 군사기술이나 과학 장비 지원을 받기 위한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까지 나오니, 소중한 인간의 생명이 전략적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한 듯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북한 정권은 오래전부터 인권 경시로 국제사회의 우려와 지탄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쟁터에서의 강압적 지시와 희생 강요, 군인들의 참전수당 착복 의혹까지 더해진다면 이는 단순한 체제 문제를 넘어 인간 존엄성의 파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체제의 유지나 정치적 흥정의 대가로도 대신 될 수 없다. 한 청년의 목숨은 체제보다 무겁다. 이 단순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어떤 나라도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총알받이로 내몰린 청년들의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면, 같은 한민족으로서 참담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의 안보 현실을 돌아보는 일도 절대 가볍지 않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 경계 태세 완화 논란, 접경 지역 조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등은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한다. 물론 평화를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대화와 긴장 완화는 지향해야 할 가치다. 그러나 평화는 힘의 공백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굳건한 대비 태세가 있을 때 비로소 평화도 설득력을 갖는다. 안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나친 강경론도, 무조건적 낙관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 병사들이 타국 전장에서 희생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체제의 비정함을 비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대비 태세를 냉철히 점검해야 한다.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다. 6·25전쟁의 총성이 멎었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청년의 생명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북한체제의 그림자를 보며 우리는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경계선의 긴장을 완화하거나, 경계심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총 대신 삼단봉을 들 수 있다는 건, 국가를 지킬 의지가 가벼워졌다는 얘기다. 강한 안보 위에 인권과 평화를 세우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총알받이로 내몰린 북한 청춘들의 비극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흔들림 없는 안보 의지와 분명한 가치관으로 자유와 인간 존엄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자 책무일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북한 강요 희생 강요 체제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2026.02.15. 18:20
LA 한인회에는 오랜 기간 쉬지 않고 이어져 온 문화예술 강좌가 있다. 바로 ‘문화의 샘터’다. 9년 전 로라 전 회장 당시, 정치와 경제, 민원 봉사만으로는 공동체가 완성될 수 없으며 그 중심에는 반드시 문화와 예술이 있어야 한다는 의지에 따라 강좌가 시작됐다. 매달 무용가와 음악가, 화가, 문학가, 국악인과 전통예술인, 그리고 체육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초청해 삶과 예술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그 시간은 LA 한인 사회 속 작은 문화 르네상스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 약속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춘 듯했던 시기에도 강좌는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이어졌고,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끝에 마침내 2026년 2월 뜻깊은 100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KAFLA TV를 클릭하면 그동안 함께해 온 강연자들의 다양한 강좌와 소중한 기록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샘터’란 목마른 이들에게 물을 내어주는 곳이다. 치열한 이민 생활 속에서 마음이 메마르기 쉬운 우리에게 ‘문화의 샘터’는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가는 쉼표 같은 강좌였다. 음악 한 곡이 마음을 풀어주고, 시 한 줄이 생각을 정돈해 주며, 춤 한 동작이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이 예술을 후원하며 도시의 번영을 이끌었다면, 오늘의 한인회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한인 공동체의 정신과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을 품은 공동체는 절대 메마르지 않는다. 문화와 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숨결이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깊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샘터’는 시작과 현재를 잇는 ‘이음’이다. 로라 전 전 회장과 한인 2세인 로버트 안 회장의 예술과 문화를 공동체의 정신으로 바라보는 깊은 시선이 이어지며, 이 강좌는 한인 사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는 LA 한인회 문화예술분과 위원장을 맡은 사람으로서 ‘문화의 샘터’가 지닌 의미와 소명의 무게를 누구보다 깊이 느끼며 함께 걸어왔다. 예술이 있어야 공동체가 숨을 쉬고, 문화가 있어야 우리의 마음이 메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0회는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다. 예술이 흐르는 공동체는 늙지 않는다. LA 한인회 ‘문화의 샘터’는 앞으로도 한인 사회 속에서 문화와 예술의 뿌리를 지키며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오래도록 흐를 것이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 진 발레스쿨 원장발언대 한인회 문화 문화예술 강좌 예술과 문화 문화 르네상스
2026.02.09. 19:20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를 찾는 일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 독립유공자를 찾으면 그 공로를 인정하는 훈장을 수여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를 찾아내 유해를 한국의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절차도 진행한다. 낯선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찾아내 그들의 희생과 공을 기리고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후세에 전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게도 감사의 표시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국가와 해외동포의 개념도 많이 달라졌고, 해외 동포사회의 모습도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지금의 해외 동포들은 일제 강점기처럼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택한 타향살이도 아니고 유랑자의 삶도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 동포들의 행사에 참석해 보면 으레 시작하는 인사말이 “조국을 등지고 이역만리 타국에서”라는 내용이었다. 이 말은 모든 참석자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줬던 것을 기억한다. “이민자는 조국을 등진 것도 아니고, 조국을 배신해서 나온 것은 더욱 아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모두 애국자다.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자요, 조국에 남은 분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조력자다.” 이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75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도 인구에 맞먹는 규모다. 특히 미국의 한인 인구는 250만 명에 육박한다. 한국의 웬만한 광역시 인구와 비슷한 숫자다. 이런 규모는 국가적 입장에서 볼 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미국의 한인 사회는 경제적 성장은 물론 정치력 신장도 괄목할만하다. 한인 사회는 연방 상·하원 의원을 배출했고, 다양한 분야의 공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도 많다. 미국의 한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울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정착하고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차제에 미주독립유공자 유해 봉환도 재고 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에게 조국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절대적 귀환지였다. 나라를 잃고 부득이 떠나온 타향살이였기에 죽어서라도 조국에 묻히고 싶은 것은 그 시대의 당연한 정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주 독립유공자의 발자취는 한인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자산이 되고 역사의 장이 되어야 한다. 설사 독립유공자 자신이 조국에 묻히고 싶다고 했어도 한인 사회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그 의사를 철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유해의 정리는 본인이 할 수 없고, 그것은 후손의 몫으로 후손을 위한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는 대신 현지 실정에 맞게 잘 보존하면 된다는 의미다. 이곳이 독립유공자의 묘이며 역사의 현장임을 알릴 수 있는 장치(묘비 등)를 설치하고, 필요하다면 한국의 국립묘지나 독립기념관에는 이분들을 기리는 적절한 장치를 하면 된다. 또한 이런 독립유공자들의 묘지를 표시한 세계지도를 만들어 후세들이 순례하며 찾아보고 그 뜻을 기릴 수 있게 한다면 독립정신과 애국심 고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조국과 해외의 모든 동포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역사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송정섭 / 독자발언대 독립유공자 유해 미주독립유공자 유해 미주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 자신
2026.01.29. 18:40
한국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요즘 보이는 행보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장관인지 묻게 한다. 북한에서 “남측이 보낸 드론이 우리 영토에 떨어졌다”고 억지 주장을 내놓자, 대한민국 장관이 먼저 나서 “북한에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외치고 있으니, 이게 제정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근거도 불분명한 주장을 하면, 한국 정부는 사실관계를 따지고 우리 영토와 주권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정작 장관은 북한의 어조에 보조를 맞추며 마치 ‘남북의 두 국가가 서로 대등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북한의 이른바 ‘두 개 국가론’을 그대로 읊조리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종북좌파적 시각을 정부 당국자가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 황당한 것은 지난달 드러난 남북 경계선 문제다. 휴전 이후 수십 년이 지나며 자연 지형 변화로 일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는 것은 군사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고 분명히 할 책임은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선을 남쪽으로 끌어내려 “양보하자”고 말하는 장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남의 나라 장관이 한국 땅을 북측에 떼어 주려 한다면 모를까, 대한민국 장관이 왜 스스로 영토를 깎아내리려 하는가. 이쯤 되면 ‘정말 대한민국 장관이 맞는가’라는 의심이 드는 것이 국민의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장관이 앞장서서 북한의 논리를 대신 말하고, 국가의 기본적 주권 사안을 흥정거리로 내놓는다면 이는 결코 ‘평화 제스처’가 될 수 없다. 국가의 존엄과 안보는 먼저 지키고 나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안보가 무너지면 어떠한 대화도, 어떠한 협력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더욱이 북한은 매년 미사일을 쏘고, 핵 개발을 중단할 뜻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대에게 우리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선을 뒤로 물리는 행위는 평화가 아니라 굴욕이며, 국격을 훼손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정부 고위 인사의 말 한마디, 결정 하나가 국경의 무게를 결정하고 국가의 자존을 세우기도, 무너뜨리기도 한다. 통일부 장관이 국가의 체면을 세우는 쪽이 아니라 스스로 깎아내리는 쪽에 서 있다는 사실은 실로 심각하다. 장관이 북한의 주장과 시각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는 듯한 태도를 반복한다면, 국민은 더 이상 그 장관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대변한다고 믿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설픈 ‘유화 제스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안보에 대한 단호한 원칙이다. 원칙 없는 대북 대응은 협상력을 잃게 만들고, 결국 북한의 전략적 계산에 놀아나는 결과만 낳는다. 통일부 장관은 더 이상 북한의 확성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관의 책무는 북한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잊는다면, 그 자리는 장관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맡아야 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통일부 장관 통일부 장관 대한민국 장관 정작 장관
2026.01.21. 19:31
미국 경제는 분명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인의 삶은 아니다.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지난 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3% 증가했다. 그럼에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경기 침체를 체감하며 살아간다고 답했다. 2025년은 인공지능(AI)이 실험실을 넘어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해였다. 실리콘밸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끌어 모았고, 이를 AI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같은 AI 기업들은 기록적인 기업 가치를 경신했다. 기술적으로는 AI 에이전트 시대가 열렸고,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올해는 AI가 기업 경영과 개인의 일상에 완전히 통합되는 해가 될 전망이다. 고용 시장의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해 약 12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 중 5만 명은 AI 도입에 따른 직무 소멸의 결과였다. 감원은 테크 업계를 넘어 공공기관, 소매, 물류, 금융 등 화이트칼라 전반으로 번졌다. 공식 실업률은 4%대 중반으로 안정적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10.5%로 치솟았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2~27세가 가장 고통을 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다. 한 세대의 미래 소득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역시 고용 시장의 추가 냉각과 구조 조정을 경고한다. 반면 자본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AI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적 인수합병(M&A) 규모는 약 2조3000억 달러에 달했다. S&P500은 16.4%, 나스닥은 20.36% 상승하며 변동성을 이겨냈고, 이는 고소득층 자산 증가의 강력한 동력이 됐다. 시장의 관심은 AI의 수익성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주요 투자기관들은 성장의 축이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의 그늘은 기업 파산 지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미국의 기업 파산 건수는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와 고물가, 소비 심리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비필수 소비재 기업과 소매업자들이 특히 취약했다.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비용 절감과 할부 판매까지 도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평균 식사 가격이 20~40 달러 수준인 중형 식당들의 폐업도 잇따랐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은 올해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지속 가능한 지불 능력(affordability)’이다. 이는 단순한 물가 수준이 아니라, 가계 소득으로 주거, 의료, 교육 등 필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말한다. 과거에는 소득의 30%를 넘지 않는 주택 상환 능력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경제적 생존의 기준이 됐다. 이미 오른 물가가 다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서민 가계의 부담은 올해도 완화되기 힘들다. 이런 괴리의 근본 원인은 분명하다. 기술 혁신의 수혜가 자본과 고급 인력에 집중되는 반면, AI가 대체하는 일자리는 중하위 소득층에서 먼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비 지형은 이미 프리미엄화(premiumization)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업들은 전체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을 겨냥한 서비스와 상품에 집중한다.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일관성 없는 관세 정책과 고물가 속에서 경계로 밀려났다. KPM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 역시 정부가 발표하는 인플레이션과 GDP 수치가 다수 가계가 체감하는 생활 경제와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2026년 미국 경제는 새 연준 의장 인선, 금리 인하 압박, 대법원의 관세 합법성 판결, 유니콘 기업들의 기업공개 재개, 오바마케어 보조금 종료로 인한 의료비 급등 등 복잡 변수를 안고 있다. AI가 창출한 부가 사회 전반에 고르게 확산되지 않는 한, 미국 경제는 거시 지표와 다수 가계가 체감하는 현실의 간극에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를 얼마나 넓게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장은 계속되는데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경제를 호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레지나 정 / LA 독자발언대 성장 경제 고소득층 자산 고용 시장 청년 실업률
2026.01.20. 18:16
2026년 새해 벽두부터 세계는 냉혹한 패권주의의 파고를 경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그 사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는 늘 약소국의 운명을 결정지어 왔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협약’도 그 하나다.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미국 전쟁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War)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의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1905년 7월 29일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이다. 실제 회담이 열린 날짜는 7월 27일이고, 회담 내용을 담은 각서(memorandum)상의 날짜는 7월 29일이다. 당시 태프트는 전쟁부 업무로 필리핀에 가는 길에 일본에 잠시 들러 이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의 목적은 일본 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라는 양국의 이해 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다. 이 협약으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을 지배를 인정하고, 대신 미국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를 묵인했다. 뿐만 아니라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 전쟁의 구실을 만들었던 사례도 있고,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하는 행태에 이르기까지 국제 사회에서 ‘힘’은 곧 ‘정의’로 둔갑해 왔다. 1989년 12월 20일, 조오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 남미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를 숙청하기 위해 단행된 군사 공격의 2판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지난주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을 포위하는 중국의 대규모 군사 훈련을 비판하기는커녕, 이 훈련은 평상시 군사 훈련이라며 애써 평가 절하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내가 크게 비판하지 않을 테니 곧 있을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관여하지 말라는 암시로, 역시 지역적 패권주의를 인정하는 이러한 힘의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곧 이어 미국 우선주의(MAGA)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주권을 흔드는 행보를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3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침공,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붙잡아 12시간 안에 뉴욕의 감옥에 수감한 사건은 남의 나라를 치는 것이 이제는 별로 대단치 않은 일처럼 여겨지는 패권 제국주의의 귀환을 상징한다. 겉으로는 마두로 대통령이 마약 카르텔과 테러리스트 들의 두목이라는 이유와 부패한 정치로 수백만의 이재민을 반출했다고 체포했지만 속으로는 반미 정책을 쓰는 그와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석유 자본이 중국과 쿠바 등으로 가는것이 마음에 안들어 결국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위해 침략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민주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문제의 속성이 그리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 우방이라 일컫는 국가들조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본, 유럽연합, 그리고 한국마저도 관세 장벽을 낮추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미국에 헌납하며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곧 ‘힘이 없으면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때 자유와 민주주의, 자유 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심각한 마약 문제,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내부적 진통 속에서 보호 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의 패권국으로 남을지, 아니면 쇠락한 제국의 길을 걸을지는 스스로 마주한 거대한 기로다.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한미동맹이라는 튼튼한 근간을 유지하되, 일본과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도모하고, 중국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실리를 챙기는 균형 잡힌 외교가 절실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익 최우선 외교 정책’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깊이 공감하는 바다.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당당한 외교만이 우리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를 시작하며, 균형 잡힌 국익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이 더 이상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나라가 아닌, 새로운 외교 위상을 확고히 하기를 염원한다. 힘의 논리를 넘어서는 지혜로운 외교로 우리 민족의 평화와 희망을 일궈나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김동수 / 희망과 평화재단 이사장·OCSD 평통 협의회 자문위원발언대 한국 외교 한국 식민 베네수엘라 침공 베네수엘라 사태
2026.01.14. 19:39
조선 중종 때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유학자 최부는 공과 사의 구분이 칼날처럼 엄격한 인물이었다. 홍문관 응교로 재직하던 시절, 그를 보좌하던 송흠과 함께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내려간 일이 있다. 송흠의 고향은 전라도 영광, 최부의 고향은 나주였다. 송흠은 고향에 들렀다가 인근 나주에 머물고 있던 최부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담소를 나누던 중 최부는 송흠이 타고 온 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말은 무슨 말인가?” 송흠이 “역마입니다”라고 답하자, 최부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마는 공무 수행을 위해 국가가 빌려주는 말이었다. 최부는 “그 말은 자네 고향까지 타고 가라고 준 공적인 말인데, 사적인 방문에 사용한 것이 옳은가”라며 엄하게 꾸짖었다. 송흠은 섭섭한 마음을 안고 상경했지만, 최부는 그 일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 휴가가 끝난 뒤 대간에 사실을 알렸고, 결국 송흠은 파면되었다. 이후 하직 인사를 하러 온 송흠의 손을 잡고 최부는 말했다. “자네 같은 젊은 인재일수록 공과 사를 더욱 엄격히 가려야 하네.” 그 순간 송흠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의 앙금이 씻겨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이 일화는 공공의 재산을 사소하게라도 사적으로 쓰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지를 일깨운다. 공금은 개인의 돈이 아니라 공동체가 맡긴 돈이다. 국가의 돈이면 국민의 것이고, 단체의 돈이면 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공금유용은 이를 잠시라도 사적으로 돌려 쓰는 행위이고, 공금횡령은 아예 불법으로 가로채는 범죄다. 형태는 달라도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와 우리 동포 사회를 돌아보면 공금 유용과 횡령, 청탁과 비자금 조성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와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부패의 뉴스는 마치 범죄 열전이 이 나라의 역사인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미주 한인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각종 재단과 비영리 단체, 동포 성금과 공적 지원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논란 속에 사라진 사례들이 적지 않다. 책임지는 사람도, 부끄러워하는 반성도 없이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국가 예산이나 동포들의 성금, 대표 단체의 기금은 명백한 공금이다. 수입과 지출은 한 푼의 오차도 없이 공개되고, 공인 회계 감사를 거쳐 투명하게 보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문제의 근원은 분명하다. 개인의 도덕 의식이 무너지고, 이를 제어할 민주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동포 개개인의 윤리 의식을 다시 세우는 일, 공공 감시에 기반한 민주적 운영 원칙을 정착시키는 일, 그리고 부정을 저지른 이들을 공동체가 단호히 배제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옛 선현들이 강조했던 상호 감시와 책임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투명한 회계와 엄정한 책임이 일상화될 때, 공동체를 위해 기부한 이들의 선의가 보호되고 신뢰가 쌓인다. 공금을 둘러싼 시비가 사라진 사회야말로 건강한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새해를 맞아 다시 자문해보자. 우리는 공금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어 왔는가. 이제는 관행이라는 이름의 방관을 멈추고, 실천으로 답해야 할 때다. 공금으로 인한 논란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는 공동체를 기대해 본다. 이상훈 / 수필가발언대 한인 단체 공금 유용 비영리 단체 동포 개개인
2026.01.07. 20:19
지난 12월 18일자 미주중앙일보에 실린 ‘리서치ON 한인 자동차 선호도 조사’ 기사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일본을 경계해야 할 나라로 인식해 왔고, 일본 제품을 쓰지 않으려 애써온 한국인 중 한 사람이다. 전자제품과 카메라 등 일제가 시장을 장악하던 시절에도 일본 제품은 가급적 피했고, 일본어를 쓰거나 일본 노래를 즐기는 이들마저 달갑지 않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다소 감정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뿌리 깊은 문제의식이었다. 미국 생활 45년 동안 개인용과 사업용을 합쳐 10여 대의 자동차를 구매했지만 일본 차는 단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다. 1981년 처음 구입한 차는 셰비 임팔라 스테이션 왜건이었고, 이후 포드 익스플로러, 포드 이코노라인, 뷰익 등을 차례로 탔다. 일본 차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오히려 고민이 단순해지는 장점도 있었다. 한국 차와의 인연은 1986년 현대 엑셀이 미국 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시작됐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시절이었고, 반가운 마음도 커서 한 대를 구입했다. 가격은 5000달러가 채 되지 않았고, 비슷한 가격대에 ‘유고’라는 브랜드도 있었다. 이후 선루프까지 달린 엑셀 풀옵션 모델을 한 대 더 샀던 기억이 난다. 당시 현대차가 미쓰비시에서 버린 엔진을 가져다 쓴다는 루머도 돌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무렵 한인 사회에서 벤츠나 BMW 같은 고급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 차를 선호했다. 고장이 적고, 중고차 가격이 잘 유지되며, 연비가 좋다는 이유였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늘 이렇게 반박하곤 했다. 첫째, 고장이 나지 않는 기계는 없다.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선입견이 크다. 둘째, 리세일 밸류가 높은 만큼 초기 구매 가격도 높아 결국 차이는 크지 않다. 셋째, 연비는 차량 크기와 엔진 배기량에 비례하는 문제다. 당시 LA 한인타운에는 ‘한국자동차’, ‘서울자동차’라는 이름의 딜러들이 있었지만, 정작 가보면 한국 차도, 미국 차도 거의 없고 일본 차만 권했다. 나는 “그럴 거면 간판을 일본자동차나 도쿄자동차로 바꾸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했다. 나의 자동차 구매 원칙은 단순하다. 새 차를 사서 가능한 한 오래 탄다. 가격이 부담되면 등급이나 옵션을 낮추면 된다. 10년쯤 타고 나면 리세일 밸류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아이들이 자라 운전을 시작했을 때도 기준은 같았다. 내가 타던 차로 1~2년 연습을 시킨 뒤 새 차를 사줬고, 선택지는 늘 한국 차였다. 한국 차는 내 나라 차이니 국산이고, 미국 차는 내가 사는 나라 차이니 그것 역시 국산이라고 생각했다. 큰아이는 포드 머스탱 스틱 차량을 탔고, 둘째는 기아 세피아를 골랐다. 큰아이는 한동안 일본 차를 타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기아 K5와 카니발을 탄다. 막내는 유럽 차를 탄다. 나는 에쿠스를 거쳐 현재 제네시스를 타고 있다. 차도 만족스럽고, 마음도 편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를 속이 좁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것을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써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겠는가. 일본인들은 자국 제품을 철저히 우선한다. 이는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이다. 자국산이 먼저고, 그 다음이 대만·중국산, 그래도 안 되면 한국산이다. 왜 그럴까. ‘아지매 떡도 싸야 사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아지매 떡이라면 조금 비싸도 사는 게 맞다. 그래야 아지매도 살고, 그 옆에 사는 나도 산다. 지금의 미국을 보라. 싸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하고, 공장을 외국으로 옮긴 결과 제조업은 붕괴됐고 기술자는 사라졌다. 이제 와서 억지로 되돌리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 길이 언젠가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송정섭 / 독자발언대 국산차 고집 자동차 구매 한인 자동차 포드 이코노라인
2026.01.01. 17:00
2025년, 인공지능(AI) 붐은 미국 경제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불과 3년 만에 160명이 넘는 신흥 억만장자가 생겨났고, 이제 미국 억만장자 수는 900명을 넘겼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7조에 근접해 중세 이후 가장 극단적인 부의 집중을 보이고 있다. 이 엄청난 부가 워싱턴으로 유입되어 정치 질서를 흔들고 있다. 자커리 바수(디지털미디어 ‘엑시오스’의 뉴스, 정치국장)는 억만장자들의 기부는 세제 혜택과 권력 접근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라고 분석한다. 그들의 진짜 힘은 의회를 우회하여 때로는 대통령의 정책을 직접 구현하는 실행 도구가 되는 데 있다. 억만장자의 정치 개입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10년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판결(Citizens United v. FEC)’ 이후 수퍼팩(Super PAC)을 통한 무제한 기부가 허용되면서 정치와 자본의 경계는 흐려졌다. 하지만, AI 호황으로 급부상한 테크 억만장자들의 워싱턴 진출은 그 영향력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후원자가 아니라 정책 결정의 파트너처럼 움직인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업 규제 강화에 반발해 실리콘밸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보수 진영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공화당은 AI 규제 완화, 세금 감면, 암호화폐 친화 정책 등으로 테크 기업의 지지를 얻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24년 총선에서 미국 상위 100대 부자들이 전체 선거 비용의 7% 이상을 부담했으며, 그 중 80%가 공화당으로 향했다. 현 정부의 핵심에는 억만장자와 테크 기업 간부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인공지능과 암호화폐 정책 특별 공무원(SGE)’ 데이비드 삭스(David Sacks)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삭스는 지난해 자택에서 트럼프를 위해 1200만 달러를 모금한 인연으로 현재 테크 업계와 백악관을 잇는 핵심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기업 친화적 정책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는 캘리포니아 등 주 차원의 AI규제안을 무력화하기 위해 ‘AI 단일 규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일론 머스크가 이끌던 정부효율성부는 기존의 감시, 규제 장치를 대폭 축소했다. 또한, 국세청의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탈세 단속은 약화됐고,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핵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이처럼 공공과 사익의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정책과 기부는 점점 더 밀착하고 있다. 테크 기업과 방산 업체, 코인베이스는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군사퍼레이드를 후원했다. 정부 셧다운 시기에는 사업가 티머시 멜론이 미군 급여 보조금을 부담했다. 백악관 무도회장 건축에는 37명의 기업인과 개인이 자금을 댔다. 델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은 중간소득 15만 달러 이하 지역의 10세 이하 아동을 위해 62억 5000만 달러를 약속했다. ‘트럼프 구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한 이 기부는 ‘베이비 본드’ 정책을 연상시키며 큰 관심을 받았다. 문제는 이들 기부가 선행인지, 영향력 투자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공적 재원이 필요한 영역을 사적 기부가 메우면서 시민들은 정치 기부가 민주적 참여인지 영향력 매수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됐다. AI 시대의 부와 정치의 결합은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진행되어 워싱턴의 권력 구조는 이미 변했다. 억만장자 대통령이 다른 억만장자들과 사교클럽을 이루어 비즈니스 거래와 협상을 하는 듯한 국정 운영은 민주국가에서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명성 회복과 제도적 견제 장치다. 정치 자금 공개 강화, 수퍼팩 기부 한도 제정, AI 기업의 로비 활동 추적 등 실질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연방 대법원이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옹호하는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가슴보다 머리로 정치를 이해해야 할 시기다. 레지나 정 / LA독자발언대 억만장자 워싱턴 테크 억만장자들 신흥 억만장자가 워싱턴 진출
2025.12.21. 18:00
건강보험은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안전망이다. 이 사실을 나는 지난 4월, 한국에 계신 엄마의 뇌출혈로 절감했다. 당시 한국은 의료대란으로 대부분의 병원이 새 환자를 받지 않았다. 엄마는 세 곳의 종합병원에서 연달아 거절당한 끝에, 다음날에서야 분당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실 수 있었다. 급히 달려온 나와 한국의 동생들은 사전 연명치료 의향서가 없는 상황에서 치료 방향을 정해야 했다. 의사인 동생과 나는 엄마와 함께 사는 막내 동생의 “아직 이별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 엄마는 기관절개로 호흡을 하시고, 위루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며 재활병원에 계신다. 나는 하루 12차례 진행되는 여섯 가지 재활치료를 받으시는 엄마의 보조 간병인을 자청해, 한 달 동안 주 3일씩 함께하고 있다. 넓은 재활실에는 각자의 일정표에 따라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보조기를 타는 사람, 목발을 짚고 걷는 사람, 고개가 한쪽으로 기운 사람, 그리고 그들 사이를 오가는 치료사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미국의 의료 시스템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단일한 국가 시스템이다. 직업, 소득, 재산에 따라 보험료가 책정되고 국가는 이를 관리 감독한다. 국가보험은 보편성, 형평성, 효율성을 중시하며,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에도 초점을 두고 2년마다 건강검진을 권장한다. 이 기본틀 위에 개인의 필요에 따라 민간 실손보험이 더해진다. 실손보험은 기본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며, 암보험, 뇌혈관 및 심혈관 보험, 치매보험, 소득보장보험, 간병보험 등으로 세분화되어 개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한다. 한국 의료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진료비와 뛰어난 접근성이다. 의사가 처방한 MRI나 내시경 검사를 같은 병원에서 곧바로 받을 수 있고, 결과를 신속히 진단에 반영한다. 이러한 효율성은 미국에서는 입원 환자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반면 미국은 의무가입이 아닌 민간 중심 구조로, 비용 부담이 매우 높다. 저소득층은 메디케이드, 노년층과 장애인은 메디케어를 통해 지원받고, 직장인은 직장보험을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보험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 오바마케어(ACA)가 도입되었다. 오바마케어는 표준화된 혜택을 제공하며, 이 전과 달리 보험사가 기저질환을 이유로 가입을 거부할 수 없게 했다. 불합리한 개인보험 구조를 개선하고, 개인 의무가입제를 도입해 젊고 건강한 가입자 층을 유입시켜 위험을 분산시켰다. 그 결과, 개인보험 시장은 고용주 제공 보험과 유사한 안정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자, 기저질환자, 65세 미만의 중장년층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최근 연방정부 셧다운 협상에서 ‘추가 보조금 연장’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다. 연장이 종료되면 저소득층은 유지되지만 중산층의 보험료는 크게 오를 전망이다. 추가 보조금은 연소득이 연방빈곤선의 4배를 넘어도 보험료가 소득의 8.5%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을 보조해 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질병이 찾아올 수 있기에 ‘감당 가능한 수준의 건강보험’은 필수다. 오바마케어의 공식 명칭이 ‘부담 적절 보험법(Affordable Care Act)’인 이유이기도 하다. 재활실에서 아주 조금씩 회복 중인 엄마와 묵묵히 훈련에 임하는 환자들을 보며, 건강보험은 단순한 제도를 넘어 삶을 지탱하는 희망의 끈이라고 생각했다. 그 끈이 모든 사람에게 감당 가능한 형태로 닿기를 바란다. 레지나 정 / LA 독자발언대 건강보험 희망 개인보험 구조 개인 의무가입제 소득보장보험 간병보험
2025.11.26. 20:17
11월 4일은 캘리포니아주 특별선거일이다. 주민들은 “선거구 재조정 권한을 주 의회로 넘길 것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찬반의 결과는 내년 중간선거의 연방 하원 구도는 물론 미국 정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고, 의료, 이민, 교육, 환경 등 생활 전반과 직결된다. 선거구 조정은 원칙적으로 10년마다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올해는 이 원칙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텍사스 주지사와 의회에 공화당 의원 5석을 늘릴 수 있는 선거구 지도를 추진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실제로 텍사스는 5석을, 미주리 주는 1석을 추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스캐롤라이나, 인디애나, 캔자스 등도 뒤이어 움직이고 있으며, 공화당 지도부는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백악관 회의를 열고 공화당 우세 주들을 방문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민주당 의석 5석을 늘리는 선거구 재조정을 제안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2008년 이후 게리맨더링(선거구 조작)을 금지했고, 2010년부터는 독립 시민위원회가 초당적으로 선거구를 관리해왔다. 따라서 선거구 조정을 하려면 주민투표를 통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절차가 바로 ‘프로포지션 50’이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시민위원회가 일시적으로 해산되고, 선거구 재조정 권한이 주 의회로 이관된다. 위원회는 다음 인구조사 이후인 2031년에 임무를 재개한다. 공화당은 이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민주당의 권력 확장 시도”라고 비판하며 뉴섬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공화당의 맹목적 추종과 대통령의 무차별 권력 행사에 제동을 거는 기회”라고 주장하며, 찬성 캠페인의 전국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게리맨더링은 정당의 이익을 위해 선거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행위다. 공화당 우세 주에서는 투표권 보호를 받지 않는 민주당 선거구를 통합내지 축소하고, 민주당 우세 주에서는 투표권으로 보호받는 선거구를 그대로 두면서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구를 더 많이 그리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민주당이나 텍사스 공화당이 모든 의석을 게리맨더링 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 헌법’과 ‘1965년 투표권법’의 제약 때문이다. 이 법은 특히 남부의 짐 크로우 법에 대한 대응책으로, 인종, 언어 소수집단을 보호하고 특정 지역 분할을 방지하며, 연방 정부에 감독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현재 연방 대법원은 투표권법 제2조의 효력 축소를 검토 중이다. 만약 인종을 고려한 선거구 설정이 금지된다면,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 선거 지형 자체가 뒤집힐 수 있다. 프로포지션 50은 상대가 규칙을 어겼을 때의 대응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미셸 오바마가 제안했던 것처럼 품위 있게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같은 방식으로 맞설 것인가의 문제다. 선거구 재조정 시민위원회 위원인 이스라 아흐마드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유권자의 의견을 묻는 뉴섬의 시도는 공정하며, 상대와 같은 규칙에 따라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포지션 50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입법, 사법, 행정부를 독식하는 트라이펙타(완전 집권 체제)를 불공정한 방식으로 유지하려는 동안 민주당이 손을 놓는다면 이 또한 직무 유기다. 투표권법마저 무력화될 위기 속에서, 캘리포니아는 지금 민주주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완벽한 해법은 아니지만,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대응, 그것이 바로 프로포지션 50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레지나 정 / LA 독자발언대 프로포지션 민주주의 선거구 재조정 선거구 조정 선거구 지도
2025.10.27. 19:33
나는 91세의 노인으로, 가디나 노인아파트에서 22년째 살고 있다. 이곳은 일반적인 관리형 아파트가 아니다. 매니저가 아닌, 수십 명의 입주자가 무보수로 참여해 스스로 관리하는 ‘협동조합형 공동주택’이다. 회장(president)은 입주자 전체를 대표하는 책임자이며, 상급 협동조합 연합체에서 고용한 몇몇 유급 직원이 자원봉사자들을 도와 함께 운영한다. 내가 80대 중반에 세 번째 회장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공고문이나 연설문은 컴퓨터로 문제없이 쓸 수 있었지만, 회원명단(입주자 명단)을 엑셀로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 걸렸다. 엑셀을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아들에게 배우기로 했다. 진도가 늦다고 야단을 맞아가며 오래 연습한 끝에 마침내 스스로 명단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만약 이곳이 일반 아파트였다면 굳이 입주자 명단을 언급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협동조합 형태의 우리 아파트는 다르다. 일부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그 벽을 조금만 허물면 훨씬 더 따뜻한 공동체가 된다. 실제로 몇 해 전 담당 직원의 도움으로 모든 입주자가 같은 크기의 깔끔한 문패를 달 수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른다. 이제 ‘회원명단’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대형교회에서는 수천 명의 교인명단을 만들어 배포한다. 이름, 전화번호, 주소, 사진까지 포함된다. 교인들이 서로 연락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다. 나도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여러 인종의 이웃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나누었다. 이때 서로 연락하려면 명단이 필요했다. 노인아파트는 세대교체가 계속되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입주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인사를 나누다 보면, “이분은 다음 선거의 자원봉사자로 모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연락처가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다. 결국 그 정보를 얻을 유일한 원천은 회원명단이다. 그래서 나는 명단 1부를 요청하며 이렇게 약속했다. “맹세코, 옳은 일에만 쓰겠습니다.” 그러나 내 청원은 단칼에 부결되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개인정보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때 되물었다. “내가 언제 ‘공개(Disclosure)’하자고 했습니까? 나는 ‘공유(Sharing)’하자고 했습니다.” 사전을 펼쳐보라. ‘공개’와 ‘공유’는 전혀 다른 뜻이다. 그런데도 마치 군사기밀이나 산업비밀이라도 되는 듯, 명단 하나를 두고 과민하게 반응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더구나 우리 아파트의 자원봉사자 명단은 이미 1층, 2층, 3층의 각 모퉁이에 버젓이 게시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공개’다. 내가 하려던 것은 그런 공개가 아니다. ‘정보 공유’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경찰이 형사 사건으로 입주자 명단을 요청해 가져가는 경우, 그것이 정보의 공유다. 그럼에도 내 청원을 부결시킨 사람들은 나를 ‘비밀 누설자’로 오해한 듯하다.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혼동하는 사람들과는 언젠가 마음 터놓고 끝장토론이라도 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협동조합 공동체의 신뢰는 ‘정보의 벽’이 아니라 ‘정보의 나눔’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윤상덕 / 독자발언대 공동체 투명 협동조합 공동체 입주자 명단 자원봉사자 명단
2025.10.21. 18:44
제네바에 본사를 둔 ‘프론티어 미디어’라는 출판사에서는 ‘Frontiers in Psychology’라는 심리학 국제 학술지를 발간한다. 이 학술지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이성을 바라볼 때, 복장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남성들은 여성의 옷차림에 따라 이성적인 ‘매력’을 확연히 다르게 평가했다. 남성들은 정장을 입은 여성을 덜 매력적으로, 캐주얼 복장을 입은 여성을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정장은 전문적이고 능력은 있어 보이지만, 동시에 거리감을 만들고 ‘접근하기 어려운 여자’라는 이미지를 주었던 것이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볼 때, 여성들은 남성의 옷차림에서 이성적인 매력보다는 ‘사회적인 성공’ 여부를 읽었다. 여성은 남성의 옷차림에서 ‘경제적 지위’와 ‘성공’ 신호를 읽어냈던 것이다. 그래서 정장을 입은 남성에 대해 여성들은 “돈을 잘 벌 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것 같다”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성의 ‘매력’ 점수 자체를 크게 올려주지는 않았다. 이 실험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남성은 여성의 성적인 ‘매력’에 집중하고 여성은 남성의 ‘성공’이나 ‘경제적인 지위’에 집중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영국의 ‘가족연구소(Institute for Family Studies)’의 연구에 따르면 연소득이 낮은 부부의 이혼 확률이 연소득이 높은 부부의 이혼율에 비해 30% 이상 높다고 한다. 남편이 외도를 해도 남편의 소득이 높으면 이혼율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시쳇말로 남자들은 돈만 잘 벌면 웬만하면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러 연구에서 ‘아내의 소득’이 높다고 이혼율이 낮아지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신 아내가 결혼 후 장시간 고용으로 진입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이혼의 위험이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들을 볼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가 최근에 어떤 여자에게 임신을 시켰다는 이유로 협박을 받아 거액을 뜯겼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만일 이 선수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엄청난 비난을 받고 이미 매장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이 선수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최근 시카고에 와서 성공적인 경기를 마친 이 선수의 스캔들은 인간 사회가 ‘성공한 남자’에게 얼마나 너그러운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돈 잘 벌고 성공만 하면 웬만한 잘못은 용서가 되는 것이다. 하기야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무리 커다란 잘못이나 불법을 저질러도 대통령이 되거나 대통령 부인이 되면 모든 것을 잊어 주지 않던가.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용서받았던, 고국의 대통령 부부는 이제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갇혀,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단일 잣대에 과도하게 관대하다. 외모, 권력, 돈, 지위 모두 한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인간 관계의 지속성과 도덕적 평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관계와 사회적 평가의 기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 가치, 내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여전히 ‘남자 인간’들을 평가할 때,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규칙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발언대 면죄부 성공 대통령 부부 대통령 부인 경제적 지위
2025.09.0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