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곧 무기가 되는 시대다. 총성과 포연이 전장을 뒤덮던 과거와 달리, 오늘의 전장은 보이지 않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승패가 갈린다. 위성 사진 한 장, 감청된 신호 한 줄, 그리고 그 정보를 언제, 어떻게, 누구와 공유하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래서 현대전은 ‘정보전쟁’이라 불린다. 이처럼 엄중한 현실에서 최근 불거진 대북 핵 관련 정보 공개 논란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국가안보의 핵심 정보는 동맹 간 신뢰의 토대 위에 존재한다. 특히 한미 간 정보 공유는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신의의 산물이다. 이 신뢰가 흔들린다면, 그 파장은 단순한 외교적 불편을 넘어 실질적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는 혼자 서 있을 수 없다. 특히 분단 상황 속에서 북핵이라는 현실적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한미동맹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축이다. 그런데 동맹은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신뢰를 쌓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신뢰는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금 세계는 다시 거칠게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 관계도 여전하다. 국제 정세가 이처럼 불안정할수록, 각국은 더욱 신중하고 절제된 외교·안보 행보를 요구받는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내부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히 정치권의 언행은 그 자체로 국가의 메시지가 된다. 한마디 발언이 외교적 파장을 낳고, 군사적 긴장까지 유발할 수 있다. 그런데도 즉흥적이거나 과도한 공개 발언이 이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신호다. 국민이 느끼는 당혹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라 안팎이 이렇게 엄중한 상황에서, 왜 더 조심하지 못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해서는 안 될 소리, 안 해도 괜찮은 소리, 왜 가려서 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안보는 과장된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절제된 판단과 책임 있는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 ‘말의 무게’를 아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화평’과 ‘평화’라는 말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그것이 남용되거나 현실을 외면한 채 반복될 때는 오히려 안보 인식을 흐릴 수 있다. 평화는 선언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철저한 대비와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만 유지된다. 무장한 상대 앞에서 말의 무게를 잃는 순간, 그 공백은 곧 위협으로 되돌아온다. 강한 국가는 단지 무기를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다. 정보를 다루는 데 신중하고, 동맹을 존중하며, 위기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나라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가를 생각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침묵과 신중함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총이 아니라 동맹 간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는 바로 지금,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시작된다. 슬쩍 흘린 한마디가 적에게는 유리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정보는 수집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괜한 발언으로 인해 정보 공유가 축소되고 우리의 감시·대응 능력이 약화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 틈을 타 주적 북한이 군사적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책을 넘어 국가안보에 대한 중대한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정보 무기 정보 공유 핵심 정보 관련 정보
2026.04.26. 20:00
한인 사회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비프(Beef, 한국명 성난 사람들)’의 시즌 2가 최근 공개됐다. 시즌 1은 LA 한인 사회를 소재로 한국계와 중국계 주인공들이 미국 사회와 한인 사회를 무대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블랙 코미디 였다. 시즌 1은 2023년 발표돼 큰 인기를 끌었고 에미상에서 8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시즌1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벌이가 시원찮은 한인 1.5세 컨트랙터 대니(스티븐 연)와 돈은 많지만 가정은 파탄 난 에이미(앨리 왕)가 사소한 주차 시비를 계기로 싸운다. 처음엔 자동차에 낙서하거나 상대방 집에 오물을 뿌리는 유치한 장난을 하다가, 나중에는 서로를 파멸시키는 소동까지 일으킨다. 열 받은 대니가 “한국인은 지구 위에서 가장 스트레스 많이 받는 민족이야. 그게 한국인들이 성공하는 이유지”라고 자조하거나, “미국식으로 위로해봤자 아시안에게 통하지 않아”라고 한탄하는 모습은 쓴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죄책감에 쌓인 대니가 LA 한인 교회에 가서 “교회는 나처럼 갈곳이 없는 사람이 가는 장소야”라고 말하거나, “난 하느님을 찬양해. 하느님이야말로 날 야단치지 않는 유일한 존재거든”라고 말하는 장면은, 한인 교회를 겪어본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비프’는 풍자를 통해 한인 사회와 미국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작가 에밀 아목 기예르모는 “풍자는 사회의 모순과 진실을 드러내는 수단”이라 표현한다. 주류 미디어가 재현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무대에 올리거나 드라마로 만든다는 뜻이다. 코미디언 삼슨 코에틀커는 코미디의 본질을 ‘공감’이라 정의한다. 웃음은 동의의 표현이다. “코미디언이 무대에서 던지는 농담은 관객 개개인이 속으로 생각했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라고 그는 지적한다. 분열된 사회에서 웃음은 공통의 경험을 확인하는 의식이며, 정치적 입장이 다른 백인 시청자들도 ‘비프’와 같은 한국식 농담을 보고 웃으며 한인과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니처럼 하루하루 살기 힘든 한인 이민자들에게는 풍자와 웃음이 더욱 필요하다. 코미디언들은 자신들의 일을 “슬픔의 해독제”라 부른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웃음은 일종의 감정적 배출구다. 분노를 소화 가능한 형태로 변환시킨다.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웃음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특히 요즘처럼 정치 상황이 암울할수록 풍자, 특히 정치 풍자는 빛을 발한다. “뉴스가 절망을 안겨줄 때 유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기예르모의 말이다. 웃음은 도피가 아니라 재정비의 시간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마주할 힘을 얻는 과정이다. 유명 정치인들과 정책, 사회적 모순을 유머와 과장을 통해 비틀어 표현하는 풍자는 권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대중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기능을 한다. 혼란의 시대에 코미디언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들은 풍자를 통해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웃음을 선물한다. 그 웃음은 카타르시스이자 저항이며, 치유이자 연대다. 블랙 코미디 ‘비프’의 시즌 2를 기대하며, 이 드라마가 미국 사회의 모순과 한인 사회의 갈등을 웃음으로 드러내길 기대한다. 이종원 / 변호사발언대 한인사회 비프 한인사회 풍자 한인 사회 정치 풍자
2026.04.21. 20:52
수년 전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에서 한 명의 병사를 구해내려는 집념을 통해, 국가가 병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장에 전우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원칙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강군의 힘이다. 이 철학은 현실에서도 살아 움직인다. 격추된 전투기 조종사를 구출하고, 또 다른 요원이 적진 한복판에 고립되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단순한 작전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 그 자체였다. 이란 전쟁에서 36시간 만에 이뤄진 미군 조종사 구조 작전은 한 군인의 생명이 국가에 의해 어떻게 끝까지 지켜지는지를 보여줬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힘’, 국가의 위대한 존칭이다. 강한 군대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신념 위에 세워진다. 총칼을 든 적 앞에서 방망이로 맞서는 군대는 존재할 수 없다. 적이 총칼로 무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강한 힘과 의지로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억지력이며,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최근 우리 무인기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북한에 ‘유감’을 표명하는 모습을 보며 적지 않은 국민이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상대는 무수한 도발을 반복해 왔다. 무장공비 침투, 요인 암살 시도, 항공기 폭파, 납치, 그리고 무인기가 수도권 상공을 유유히 넘나드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이러한 행위들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이며 지속적인 도발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먼저 유감을 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눈에는 이것이 상황 관리가 아니라 먼저 고개를 숙이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강한 국가는 필요할 때 절제할 줄 알지만, 지켜야 할 선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준은 명확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의 주권과 명예다. 낙오된 전우를 끝까지 구해내는 나라, 자국민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는 결코 가볍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 힘은 무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태도와 지도자의 결단에서 비롯된다. 군 통수권자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의 명예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책임자로서, 그 판단과 태도는 단호하고도 권위가 있어야 한다. 상대가 도발과 위협으로 일관할 때, 지도자의 언어는 분명하고 흔들림 없어야 한다. ‘자주국방’은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의지이고, 행동이다. 그것이 우리 군의 존재 이유이며, 국가가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국가의 품격은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품격은 단호함에서 시작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그 권위는 스스로 지켜낼 때 비로소 인정받는 것이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자존심의 상처는 결코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본능적인 경고다.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전우 나라 나라 자국민 나라 강군 용기 국가
2026.04.20. 19:55
최근 뉴욕이나 파리의 중심가에서 한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외국인 고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언어의 혼란’이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수많은 전략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 음식을 알리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인 이름이 제각각인 점은 뼈아픈 실책이다. 매일 식당 현장에서 타민족 고객들을 마주하며 느끼는 가장 큰 장벽은 통일되지 않은 메뉴판이다. 대표적인 K-푸드인 떡볶이만 하더라도 식당마다 Tteokbokki, Topokki, Dukboki 등 표기가 천차만별이다. 일본 스시(Sushi)나 멕시코 타코(Taco)가 세계인의 머릿속에 하나의 고유명사로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고 직관적인 단일 표기 덕분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직관적이고 발음하기 쉬운 통일된 영문 표기법은 한식이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이름이 통일되지 않은 브랜드는 결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명칭 통일을 미루는 사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 세계 검색 엔진과 SNS, 배달 플랫폼에서 한식 메뉴명이 제각각으로 분산되면서, K-푸드에 대한 빅데이터 집계와 마케팅 효율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명칭 불일치로 인해 발생하는 해외 마케팅 비용의 누수와 브랜드 인지도 손실은 엄청나다. 이는 마치 하나의 브랜드를 수십 개의 가짜 이름으로 광고하며 스스로 브랜드 파워를 갉아먹는 꼴이다. 국가 차원의 디지털 표준화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홍보 예산 투입이 반복될 뿐이다. 한국 정부는 이제 학술적인 한국 음식 명칭 사전을 만드는 안방 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실제 영업 현장에서 일어나야 한다. 해외 한식당들이 통일된 명칭을 일제히 도입할 수 있도록 ▶표준 명칭이 적용된 다국어 표준 메뉴판과 키오스크 같은 디지털 인프라 무상 지원 ▶표준안에 맞춰 메뉴판을 교체하는 영세 한식당에 대해 교체 비용 일부 실비 지원 등의 강력한 지원책과 인센티브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필자가 해외에서 오랜 세월 외식업 컨설팅과 식자재·장비 사업을 하며 깨달은 진리는 명확하다. 이름표가 제대로 붙지 않은 상품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한식은 이미 맛과 건강 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증명했다. 이제는 그 훌륭한 콘텐트에 걸맞은 ‘이름표’를 제대로 붙여줄 때다. 그것이 바로 한식 세계화의 정점을 찍는 마지막 퍼즐이자, 국가 브랜드 자산을 지키는 길이다. 김종훈 외식업 컨설턴트·전 미 동남부 한인외식업협회 회장발언대 시급 이름 명칭 통일 한식 세계화 가짜 이름
2026.04.12. 8:00
며칠 전 한국의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평화가 곧 안보다”라는 말은 듣기에 온화하지만, 국가 안보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하는 선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 앞서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구호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 속에서 검증되어야 할 과제다. 말로는 자주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안보 태세를 흔들거나 피로 맺은 한미동맹의 기반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자주가 아니라 공백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 자리에 있던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의 절규는 이 논쟁의 핵심을 꿰뚫는다. “앞으로 누가 이 나라를 지키려 하겠나.” 이 한마디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이 정책의 방향에 따라 가볍게 취급된다면, 그 어떤 젊은이도 기꺼이 나라를 위해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대북 방송 중단, 9·19 군사합의 복원 등 유화적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북한은 여전히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한미 간 연합훈련을 둘러싼 균열까지 노출되고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은 선의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힘의 균형과 분명한 억제력이 있을 때 비로소 대화도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오늘의 서해는 복합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뿐 아니라 중국의 불법 구조물 설치와 같은 새로운 도전까지 겹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 기반을 약화할 수 있는 메시지는 오판을 부를 위험이 크다. “평화가 안보다”보다 “안보가 평화다”가 맞다. 평화라는 목적의 조건은 안보다. 스스로 지킬 힘이 있을 때만 평화는 유지되고, 그 힘이 흔들릴 때 평화는 무너진다. 역사는 이를 수없이 증명했다. 그런데도 종종 듣기 좋은 말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자주국방’은 주권 국가로서 당연한 지향점이다. 그러나 한반도처럼 지정학적 긴장이 높은 지역에서 ‘완전한 자주’라는 개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첨단 무기 체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맹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국방을 ‘동맹의 배제’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다. 오히려 자주국방은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의 선택권과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국가의 안보 정책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원칙과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전장에서 산화한 장병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국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피로 지켜낸 바다는 결코 말로 지킬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 희생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 단단한 안보로 답해야 한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피로 국가 안보 안보 기반 안보 정책
2026.04.07. 20:06
‘이란 전쟁’은 지역 분쟁을 넘어, 국제질서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대한민국 역시 신중하면서도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할 때라 여겨진다. 나는 6·25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은 노병이다. 포연 속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 시절, 우리가 끝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낯선 땅에 와서 함께 싸워준 우방,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래서 한미동맹은 단순한 외교적 약속이 아니라, 피로 맺어진 혈맹이란 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충돌하면서 세계는 불안정한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세계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이 흔들리면서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우방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대한민국 역시 쉽지 않은 선택 앞에 서 있다.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은 절실하지만, 군사적 개입은 또 다른 위험을 수반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이익을 생각할 때 신중한 접근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고 본다. 과연 우리는 지금 동맹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묻고 싶다. 전쟁의 기억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그 불구덩이에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맹의 정신이 아니다. 동맹은 평시의 이익만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함께 고민하고 책임을 나누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군사 지원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언제나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것은 외교적 해법과 다자적 협력을 통한 긴장 완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국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최소한 함께 고민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책임을 나누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혈맹의 도리다. 또한 현실적인 대비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중동 정세의 불안은 곧 대한민국의 경제와 안보에 직결된다. 에너지 수급의 다변화,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 그리고 한반도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한 철저한 대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가능성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전우를 떠올린다. 이름도, 고향도 다르지만 같은 참호에서 서로의 등을 맡겼던 그들. 그때 우리는 혼자 싸우지 않았다. 오늘의 한미동맹도 마찬가지다. 피로 맺은 약속은 시간이 흘러도 가벼워질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없는 회피가 아니라, 신중함 속의 책임감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되, 동맹의 요청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 자세,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품격이며,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피로 동맹 동맹 책임 에너지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
2026.03.23. 19:32
최근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 일부를 중동 지역으로 옮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반도 방어를 위한 자산이 일부라도 이동한다면 안보 태세를 다시 점검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자주국방’을 강조해 왔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재래식 군사력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이 됐고, 방위산업 또한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현실도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대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북한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속에서도 핵무력을 체제 생존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그 야심을 결코 내려놓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래식 전력의 규모나 방산 수출 성과만으로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면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 핵무력 앞에서 필요한 것은 군사 장비의 확충만이 아니다. 어떤 각오로 나라를 지킬 것인가 하는 정신적 무장이 더욱 중요하다. 강한 무기보다 더 강한 것은 국가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의지와 지도자의 결단이기 때문이다. 3월 26일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151회 탄신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돌아볼 때 그가 남긴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건국 초기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틀을 세우고,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켜낸 그의 결단은 국가의 뿌리가 되었다. 특히 6·25전쟁 전후의 시기를 돌이켜보면 그의 지도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국가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결단을 내렸다. 예비역은 물론 친일파 논란이 있던 인물들까지 불러 모아 나라를 지키는 전선에 세웠다. 그 기준은 단 하나, 조국에 대한 충성이었다. 그는 외교 무대에서도 탁월한 전략을 보여 주었다. 자유 진영과의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국가의 정통성을 지켜낸 그의 외교력은 현대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에는 좌와 우가 있지만 국가 안보에는 하나의 기준만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성이다. 현재의 한국 안보 환경 역시 가볍지 않다. 북한은 여전히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국제 질서 또한 급변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군사력의 수치나 성과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겠다는 정신적 각오와 국민적 결속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역사는 늘 묻는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보 앞에서 우리의 대답은 분명해야 한다. 정치적 진영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서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조국에 대한 충성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충성 시기 국가 안보 대한민국 건국 자유민주주의 국가
2026.03.17. 20:00
한국에서 지속해서 제기되어 온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왜 한국의 스타트업은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만들어온 정부 정책이 과연 산업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가이다. 얼마 전 K-컬처콘텐츠산업협회의 정책 토론회 참석 초청과 샌디에이고의 액셀러레이터 Aquillus 피칭 이벤트 합격 연락을 함께 받았다. 낮에는 토론회, 밤에는 피칭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디지털 갈라파고스 구조와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앞의 두 질문이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은 나쁘지 않다. 정부 지원도, 정책 자금도 있으며 시장의 반응도 빠르다. 문제는 이 환경이 지나치게 ‘한국 안에서 잘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국내에서는 성과를 내지만,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설계되지는 않는다. 인증, 결제, 데이터 같은 기본 구조부터 국내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에서 성공하고, 글로벌로 가자”는 전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삼성 갤럭시나 K-뷰티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제품이 아닌 디지털 서비스 영역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가 없다. 온실 밖의 환경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왜 그런 조건이 만들어지지 못했는지를 묻는 편이 생산적이다. 한국 휴대전화 번호가 없으면 가입이 어렵고, 한국 크레딧카드가 없으면 결제가 어려운 구조라면 그 서비스는 처음부터 글로벌을 상정하기 어렵다. 국내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성장한 서비스는 글로벌 확장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낯선 환경과 마주하게 된다. 중국 역시 강한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조건이 다르다. 중국은 압도적인 내수 시장과 자본이 존재하고, 글로벌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대규모 실험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특히 오픈소스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 세계에서 개발된 기술을 신속히 조합하고 상용화하는 속도는 주목할 만하다. 내부 시장 자체가 거대한 시험장이 되기 때문에 외부 기술을 흡수한 뒤 곧바로 스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은 시장이 작고 투자 여력도 제한적이다. 보호는 가능하지만 충분한 스케일의 실험은 어렵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더라도 대규모 실험과 빠른 확장으로 연결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논의되는 ‘소버린 AI(인공지능)’ 역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데이터 주권과 공공 인프라 차원에서 의미 있는 논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내 최적화 전략으로만 작동한다면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의 한국과 G3를 목표로 뛰는 지금의 한국은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단거리용 신발을 신고 달리던 시점에서 이제는 장거리용 신발로 갈아 신어야 할 때인지 모른다. 보호를 위해 만든 온실이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G3라는 목표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면, 지금의 설계가 그 목표에 맞는지 다시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허수정 Ohhh 대표발언대 갈라파고스 디지털 디지털 갈라파고스 디지털 서비스 한국 크레딧카드
2026.03.16. 19:58
‘페르시아 시장에서’를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으면 낙타들의 발소리가 다가오는 듯, 공주와 마술사들을 보는 듯 신나고 경쾌하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어떠한가? 신드바드의 희한한 모험과 알라딘 램프, 알리바바와 40인 도둑 등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인도, 페르시아, 아랍 등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를 18세기 프랑스인 앙투안 갈랑이 모은 설화집이다. 내용은 페르시아 사산 왕조 때 왕비 세헤라자드가 살아남기 위해 1000일 동안 왕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먼 나라 페르시아는 기원전 550년 아케메네스 왕조를 시작으로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로 이어 오다가 1935년에는 국호가 이란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란은 어떤가? 경제 제재와 인플레 등 경제 위기로 지난해 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이란 정부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다. 이슬람 시아파 중심의 신정 체제는 반미의 근거지가 되어 왔고, 비밀리에 핵개발까지 추진했다. 이런 이유는 지금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맹폭을 당하고 있다. 10여년 전 ‘테헤란의 지붕’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란에서 성장한 마보드 세라지라는 미국 작가가 쓴 것으로 친미 팔레비 왕조가 1979년 반정부 시위로 무너지기 전인 1973년의 이란이 배경이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와 여성 권리 확대, 그리고 산업화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종교계의 반발과 빈부 격차의 심화를 초래했다. 국민의 반발이 커지자 팔레비 왕조는 권력 유지를 위해 사바크라는 비밀 경찰 조직을 강화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대학생들은 감시당하고 죽거나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설의 주인공도 그렇게 희생이 되고 만다. ‘박사’라고 불린 대학생을 멘토로 여기며 따르던 파샤는 그가 사바크에 끌려가자 그 자리에 장미 나무를 심는다. 민중들의 절망과 희망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고 보존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도 귀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약혼녀인 ‘자리’가 국왕(샤)의 생일 축하 퍼레이드가 있는 날 광장에서 분신한다. 약혼자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밝힌다는 의미였다. 그들의 항거는 동시대에 민주화를 염원하던 한국의 사회 상황과도 비슷했다. 소년들은 밤이 되면 지붕 위에 모여 꿈을 키우고 부모들은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자녀들에게 들려준다.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튼튼한 내면세계가 정감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슬람이 전래 되기 전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유구한 역사의 페르시아 땅, 이제는 이란 사람들이 왕조나 신정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잘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권정순 / 전직 교사발언대 페르시아 하늘 페르시아 시장 페르시아 사산 인도 페르시아
2026.03.12. 20:21
식물은 구걸하지도 싸우지도 않는다. 남의 것을 탐하지도 빼앗지도 않는다. 제자리에서 열심히 혼자 물 길어 올리고 햇빛과 입맞춤하여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자신이 피운 잎을 떨어뜨려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고 거기서 자양분을 얻는다. 동토에서도 새봄이 기지개를 켜면 싹을 틔워 부활을 현시한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살아남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고, 이를 위해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킨다. 물질문명이라는 도구가 인간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반면, 정신문명을 노래하던 문학은 이제 난해한 문자언어의 조합 정도로 취급받는다. 돈을 사랑하는 인간들에게 문학은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시와 소설은 서점 구석의 선반 위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다.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나? 하루가 멀다고 AI(인공지능)의 놀라운 발달 소식이 전해진다. 어느새 로봇의 배달 서비스, 무인 택시, 무인 상점이 등장했다.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은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철학, 종교, 윤리, 예술 등 정신문명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제 과학의 산물들은 인간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부속품처럼 됐다. 이로 인해 환경 파괴, 자원고갈, 기후위기, 핵무기 경쟁 등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점점 세력이 커지고 있다. 현대인의 정신적 공허와 소외, 우울증도 심해진다. 그렇다면 정신문명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인가? 답은 있다. 너무도 평범한 진리이지만, 철학과 종교를 통해 인류의 궁극적 목적을 탐구하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과 감성을 일깨워야 한다. 또,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 ‘생태철학’의 실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화한다면 물질문명 속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중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 물질문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잘못된 정신이 문제다.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을 이끌어야지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에 윤리를, 과학에 인간성을, 경제에는 정의를, 힘에는 사랑을 입힐 때 인류의 미래는 밝아지며 파멸을 넘어서 보다 나은 진보 (Progress for humanity) 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애리조나와 유타 주의 황량한 사막과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가 생명이 없는 ‘죽음의 땅’이든가? 겨울비 내린 뒤 그 사막을 가보라.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사막의 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곳은 ‘죽음의 땅’ 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의 땅’ 인 것이다. 봄이 싹을 틔우면 여름은 이를 받아 구슬땀 흘리며 녹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가을을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옷을 준비하고 풍성한 수확물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동면의 쉼을 통하여 푸른 생명을 또 준비한다. 자연의 법칙은 물질(과학)문명을 능가하는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우리 곁에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상훈 / 시인·수필가발언대 자연 반면 정신문명 물질문명 자체 철학과 종교
2026.03.08. 17:14
지난 주말 LA 할리우드 지역에 있는 반스달 갤러리 극장에서 제107주년 3·1절 기념 전야제 ‘한마음 예술 대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1919년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107년의 역사 위에, 한미무용연합·진발레스쿨 창립 23년의 세월이 겹겹이 포개진 무대였다. 관객들로 가득 찬 공연장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었다. 3·1절은 날짜로만 기억되는 날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어져야 할 정신이다. 나는 발레스쿨 단장으로서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지 오래 고민해 왔다. 답은 결국 춤이었다. 차세대들에 설명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으로, 말이 아니라 무대 위의 호흡으로 역사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어린아이의 태극기, 청소년들의 창작무용, 시니어의 단단한 걸음이 한 장면 안에서 어우러졌다. 무대에는 발레, 재즈, 아크로바틱, 워십댄스 등 다양한 장르가 올랐고, 시와 사진, 발레가 만나는 콜라보 작품도 있었다. 단원 가운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단원도 있었는데 그녀는 음악 대신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과 호흡으로 리듬을 읽으며 자신의 춤을 완성했다. 그렇게 30여 개의 작품은 ‘Everybody Dance’라는 슬로건 아래 하나로 모였다. 서로 다른 장르와 세대가 결국 ‘춤’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 감동적이었다는 관람객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여러 세대가 한자리에서 3·1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모습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했다. “진정한 애국자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춤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관객들의 마음에 닿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이지만, 어디에서 왔는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조국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나는 잠들기 전 스스로 묻는다. 오늘 하루는 백점 만점에 몇 점이었는지….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23년이 되었고, 그 시간이 이번 무대 위에 놓였다. 이번 무대는 결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한미무용연합·진발레스쿨이라는 문화예술 단체의 이름 아래, 학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지역사회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107년의 정신과 23년의 발자취는 그렇게 여러 사람의 힘으로 이어졌다. 공연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남길 것인가? 나는 그 답을 앞으로도 춤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발언대 기념 공연 기념 공연 기념 전야제 한마음 예술
2026.03.02. 18:44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존재라고 말한다.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 지휘관의 한마디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계엄 사태 이후 국군의 최고 지휘관인 7명의 4성 장군이 물러나고, 적지 않은 장성들이 옷을 벗거나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현실은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명령에 충실했던 군인의 삶과 헌법적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한 개의 별을 달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해 온 이들이다. 혹독한 훈련과 끝없는 긴장 속에서 부하의 생명을 책임지며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경력은 단순한 직업 이력이 아니라 피와 땀, 그리고 가족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역사다. 그렇기에 오늘의 상황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모두의 숙고를 요구한다. 군 조직의 근간은 상명하복이다. 명령 체계가 흔들리는 순간 작전은 실패하고 더 큰 희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전시나 긴급 상황에서는 지휘관의 결단을 신속히 따르는 것이 군의 생명선이다. 우리 군은 6·25전쟁이라는 혹독한 역사 속에서 명령과 복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 경험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안보를 지탱하는 교훈이다. 그러나 또 다른 진실도 존재한다. 군은 국가와 헌법에 충성하는 조직이다. 명령이 법과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때, 지휘관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다. 명령 불복종은 범법이지만, 위헌적 행위에 가담하는 것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군인의 직업윤리와 시민으로서의 양심이 충돌한다. 우리는 흔히 훌륭한 지휘관의 덕목을 이렇게 말한다. “책임은 나에게, 공로는 부하에게.” 이 짧은 문장은 군 리더십의 본질을 압축한다. 진정한 지휘관은 성공의 영광을 나누고 실패의 무게를 홀로 감당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라는 것도 어쩌면 같은 모습일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아니라, 국가와 조직을 위해 묵묵히 책임을 지는 자세 말이다. 군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있다. 명령 체계를 불신하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는 그 사명이 온전히 수행될 수 없다. 법치와 안보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두 축이다. 우리는 법의 엄정함을 유지하면서도 군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별은 계급장을 떠나지만, 군인의 명예와 책임은 역사 속에 남는다. 전장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총성이 멎은 지 오래지만 질문은 남아 있다. 위기의 순간, 우리 군은 흔들림 없이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가. 군의 명령 체계는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나라를 지켜 온 마지막 보루다. 진정한 충성 앞에 명령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지키는 지혜,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군인 명령 명령 체계 명령 불복종 최고 지휘관인
2026.02.26. 19:57
한국 정치는 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서 있다. 정권 교체는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이번 국면은 단순한 권력 이동을 넘어선다.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와 권력분립의 긴장이 동시에 부각된 상황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도 이례적이다. 이는 한 정치인의 운명을 넘어, 민주주의 제도의 내구성을 묻는 역사적 질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유지해왔다. 대통령이라도 법과 제도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은 민주화의 핵심 성과였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구조적으로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강력한 행정권, 단임제의 시간적 제약, 국회 권력 구도의 변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는 충돌을 암시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대통령과 사법부의 갈등은 반복되어온 정치적 패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그 긴장은 더욱 직접적이다. 대선 이전부터 진행 중이던 형사 사건들이 존재했고, 일부는 상급심 판단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재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는 곧 헌법 해석과 권력분립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형사소추를 제한한다. 그러나 ‘소추’의 범위와 이미 기소된 사건의 재판 지속 가능 여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이는 단순한 법리 논쟁이 아니다. 헌법이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지,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시험하는 중대 상황이다. 사법적 판단이 정치적 해석과 충돌할 때 사회적 분열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도 경험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사법부는 두 요구 사이에 놓여 있다. 하나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 안정이라는 현실적 고려다. 후자를 의식한다는 인상이 형성되면 독립성은 의심받는다. 반대로 원칙을 강조할수록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이 균형을 지켜내는 일이 사법부의 책무다.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일방적 입법이나 극단적 대치는 협치의 정신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논쟁은 양분되어 있다. 지지층은 정치적 수사라고 주장하고, 반대 측은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한다. 이 대립은 단순한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 절차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문제다. 재판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다면 결과와 무관하게 제도에 대한 신뢰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확산하면 판결 이후에도 갈등은 이어질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한인 사회는 한국 정치의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고국과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미국 사회가 강조하는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의 가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현재 상황은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해외 동포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의 정치적 성패가 아니다. 대통령이 누구든 법의 적용이 일관되고 권력분립이 유지된다면 민주주의는 지속된다. 반대로 제도가 흔들리면 그 파장은 국가 신뢰도 문제로 확산하는 것이 자명하다. 이번 사법 리스크가 헌정 질서 안에서 안정적으로 정리된다면 1987년 체제의 회복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신뢰가 크게 훼손된다면 또 하나의 깊은 상처로 기록될 수 있다. 정치는 갈등을 수반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갈등을 제도 안에서 해결하는 체제다. 대통령의 사법 문제 역시 헌법과 제도의 작동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이다. 권력이 법 위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 그리고 법이 정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키는 균형이 지금 요구된다. 한국 현대사는 여러 위기를 넘어왔다. 감정이 아닌 원칙, 진영이 아닌 제도에 대한 신뢰가 중심이 될 때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이재명 정부와 사법부, 국회의 긴장은 그 시험의 한 장면이다. 역사는 이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훗날 이 시기가 제도의 성숙을 증명한 시기로 남을지, 신뢰를 흔든 사례로 남을지는 지금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동포사회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어떤 정권 아래에서도 대한민국의 법치와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뼈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동포사회가 고국에 바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발언대 이재명 정부 이재명 대통령 민주주의 제도 국회 대통령
2026.02.22. 19:09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은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다. 그 참혹한 전장의 이면에는 북한 병력이 러시아 측에 파병되어 용병처럼 싸우고 있으며, 적지 않은 희생이 발생하고 있어 우리 가슴을 무겁게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포로가 되느니 자결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졌고, 일부 병사들은 이에 순응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 중의 비극이다. 젊은 청춘들이 무엇을 위해 타국의 전쟁터로 보내지고 있는가. 조국 방위도 아닌, 민족의 생존과도 무관한 전쟁에서 그들은 ‘용병’이라는 이름으로 총을 들고 있다. 그들의 선택이었는가. 아니면 체제의 명령이었는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실전 경험을 쌓고 군사기술이나 과학 장비 지원을 받기 위한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까지 나오니, 소중한 인간의 생명이 전략적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한 듯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북한 정권은 오래전부터 인권 경시로 국제사회의 우려와 지탄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쟁터에서의 강압적 지시와 희생 강요, 군인들의 참전수당 착복 의혹까지 더해진다면 이는 단순한 체제 문제를 넘어 인간 존엄성의 파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체제의 유지나 정치적 흥정의 대가로도 대신 될 수 없다. 한 청년의 목숨은 체제보다 무겁다. 이 단순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어떤 나라도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총알받이로 내몰린 청년들의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면, 같은 한민족으로서 참담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의 안보 현실을 돌아보는 일도 절대 가볍지 않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 경계 태세 완화 논란, 접경 지역 조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등은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한다. 물론 평화를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대화와 긴장 완화는 지향해야 할 가치다. 그러나 평화는 힘의 공백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굳건한 대비 태세가 있을 때 비로소 평화도 설득력을 갖는다. 안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나친 강경론도, 무조건적 낙관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 병사들이 타국 전장에서 희생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체제의 비정함을 비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대비 태세를 냉철히 점검해야 한다.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다. 6·25전쟁의 총성이 멎었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청년의 생명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북한체제의 그림자를 보며 우리는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경계선의 긴장을 완화하거나, 경계심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총 대신 삼단봉을 들 수 있다는 건, 국가를 지킬 의지가 가벼워졌다는 얘기다. 강한 안보 위에 인권과 평화를 세우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총알받이로 내몰린 북한 청춘들의 비극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흔들림 없는 안보 의지와 분명한 가치관으로 자유와 인간 존엄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자 책무일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북한 강요 희생 강요 체제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2026.02.15. 18:20
LA 한인회에는 오랜 기간 쉬지 않고 이어져 온 문화예술 강좌가 있다. 바로 ‘문화의 샘터’다. 9년 전 로라 전 회장 당시, 정치와 경제, 민원 봉사만으로는 공동체가 완성될 수 없으며 그 중심에는 반드시 문화와 예술이 있어야 한다는 의지에 따라 강좌가 시작됐다. 매달 무용가와 음악가, 화가, 문학가, 국악인과 전통예술인, 그리고 체육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초청해 삶과 예술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그 시간은 LA 한인 사회 속 작은 문화 르네상스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 약속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춘 듯했던 시기에도 강좌는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이어졌고,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끝에 마침내 2026년 2월 뜻깊은 100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KAFLA TV를 클릭하면 그동안 함께해 온 강연자들의 다양한 강좌와 소중한 기록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샘터’란 목마른 이들에게 물을 내어주는 곳이다. 치열한 이민 생활 속에서 마음이 메마르기 쉬운 우리에게 ‘문화의 샘터’는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가는 쉼표 같은 강좌였다. 음악 한 곡이 마음을 풀어주고, 시 한 줄이 생각을 정돈해 주며, 춤 한 동작이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이 예술을 후원하며 도시의 번영을 이끌었다면, 오늘의 한인회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한인 공동체의 정신과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을 품은 공동체는 절대 메마르지 않는다. 문화와 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숨결이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깊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샘터’는 시작과 현재를 잇는 ‘이음’이다. 로라 전 전 회장과 한인 2세인 로버트 안 회장의 예술과 문화를 공동체의 정신으로 바라보는 깊은 시선이 이어지며, 이 강좌는 한인 사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는 LA 한인회 문화예술분과 위원장을 맡은 사람으로서 ‘문화의 샘터’가 지닌 의미와 소명의 무게를 누구보다 깊이 느끼며 함께 걸어왔다. 예술이 있어야 공동체가 숨을 쉬고, 문화가 있어야 우리의 마음이 메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0회는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다. 예술이 흐르는 공동체는 늙지 않는다. LA 한인회 ‘문화의 샘터’는 앞으로도 한인 사회 속에서 문화와 예술의 뿌리를 지키며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오래도록 흐를 것이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 진 발레스쿨 원장발언대 한인회 문화 문화예술 강좌 예술과 문화 문화 르네상스
2026.02.09. 19:20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를 찾는 일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 독립유공자를 찾으면 그 공로를 인정하는 훈장을 수여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를 찾아내 유해를 한국의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절차도 진행한다. 낯선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찾아내 그들의 희생과 공을 기리고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후세에 전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게도 감사의 표시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국가와 해외동포의 개념도 많이 달라졌고, 해외 동포사회의 모습도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지금의 해외 동포들은 일제 강점기처럼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택한 타향살이도 아니고 유랑자의 삶도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 동포들의 행사에 참석해 보면 으레 시작하는 인사말이 “조국을 등지고 이역만리 타국에서”라는 내용이었다. 이 말은 모든 참석자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줬던 것을 기억한다. “이민자는 조국을 등진 것도 아니고, 조국을 배신해서 나온 것은 더욱 아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모두 애국자다.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자요, 조국에 남은 분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조력자다.” 이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75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도 인구에 맞먹는 규모다. 특히 미국의 한인 인구는 250만 명에 육박한다. 한국의 웬만한 광역시 인구와 비슷한 숫자다. 이런 규모는 국가적 입장에서 볼 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미국의 한인 사회는 경제적 성장은 물론 정치력 신장도 괄목할만하다. 한인 사회는 연방 상·하원 의원을 배출했고, 다양한 분야의 공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도 많다. 미국의 한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울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정착하고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차제에 미주독립유공자 유해 봉환도 재고 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에게 조국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절대적 귀환지였다. 나라를 잃고 부득이 떠나온 타향살이였기에 죽어서라도 조국에 묻히고 싶은 것은 그 시대의 당연한 정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주 독립유공자의 발자취는 한인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자산이 되고 역사의 장이 되어야 한다. 설사 독립유공자 자신이 조국에 묻히고 싶다고 했어도 한인 사회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그 의사를 철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유해의 정리는 본인이 할 수 없고, 그것은 후손의 몫으로 후손을 위한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는 대신 현지 실정에 맞게 잘 보존하면 된다는 의미다. 이곳이 독립유공자의 묘이며 역사의 현장임을 알릴 수 있는 장치(묘비 등)를 설치하고, 필요하다면 한국의 국립묘지나 독립기념관에는 이분들을 기리는 적절한 장치를 하면 된다. 또한 이런 독립유공자들의 묘지를 표시한 세계지도를 만들어 후세들이 순례하며 찾아보고 그 뜻을 기릴 수 있게 한다면 독립정신과 애국심 고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조국과 해외의 모든 동포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역사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송정섭 / 독자발언대 독립유공자 유해 미주독립유공자 유해 미주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 자신
2026.01.29. 18:40
한국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요즘 보이는 행보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장관인지 묻게 한다. 북한에서 “남측이 보낸 드론이 우리 영토에 떨어졌다”고 억지 주장을 내놓자, 대한민국 장관이 먼저 나서 “북한에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외치고 있으니, 이게 제정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근거도 불분명한 주장을 하면, 한국 정부는 사실관계를 따지고 우리 영토와 주권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정작 장관은 북한의 어조에 보조를 맞추며 마치 ‘남북의 두 국가가 서로 대등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북한의 이른바 ‘두 개 국가론’을 그대로 읊조리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종북좌파적 시각을 정부 당국자가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 황당한 것은 지난달 드러난 남북 경계선 문제다. 휴전 이후 수십 년이 지나며 자연 지형 변화로 일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는 것은 군사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고 분명히 할 책임은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선을 남쪽으로 끌어내려 “양보하자”고 말하는 장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남의 나라 장관이 한국 땅을 북측에 떼어 주려 한다면 모를까, 대한민국 장관이 왜 스스로 영토를 깎아내리려 하는가. 이쯤 되면 ‘정말 대한민국 장관이 맞는가’라는 의심이 드는 것이 국민의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장관이 앞장서서 북한의 논리를 대신 말하고, 국가의 기본적 주권 사안을 흥정거리로 내놓는다면 이는 결코 ‘평화 제스처’가 될 수 없다. 국가의 존엄과 안보는 먼저 지키고 나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안보가 무너지면 어떠한 대화도, 어떠한 협력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더욱이 북한은 매년 미사일을 쏘고, 핵 개발을 중단할 뜻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대에게 우리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선을 뒤로 물리는 행위는 평화가 아니라 굴욕이며, 국격을 훼손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정부 고위 인사의 말 한마디, 결정 하나가 국경의 무게를 결정하고 국가의 자존을 세우기도, 무너뜨리기도 한다. 통일부 장관이 국가의 체면을 세우는 쪽이 아니라 스스로 깎아내리는 쪽에 서 있다는 사실은 실로 심각하다. 장관이 북한의 주장과 시각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는 듯한 태도를 반복한다면, 국민은 더 이상 그 장관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대변한다고 믿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설픈 ‘유화 제스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안보에 대한 단호한 원칙이다. 원칙 없는 대북 대응은 협상력을 잃게 만들고, 결국 북한의 전략적 계산에 놀아나는 결과만 낳는다. 통일부 장관은 더 이상 북한의 확성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관의 책무는 북한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잊는다면, 그 자리는 장관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맡아야 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통일부 장관 통일부 장관 대한민국 장관 정작 장관
2026.01.21. 19:31
미국 경제는 분명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인의 삶은 아니다.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지난 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3% 증가했다. 그럼에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경기 침체를 체감하며 살아간다고 답했다. 2025년은 인공지능(AI)이 실험실을 넘어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해였다. 실리콘밸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끌어 모았고, 이를 AI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같은 AI 기업들은 기록적인 기업 가치를 경신했다. 기술적으로는 AI 에이전트 시대가 열렸고,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올해는 AI가 기업 경영과 개인의 일상에 완전히 통합되는 해가 될 전망이다. 고용 시장의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해 약 12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 중 5만 명은 AI 도입에 따른 직무 소멸의 결과였다. 감원은 테크 업계를 넘어 공공기관, 소매, 물류, 금융 등 화이트칼라 전반으로 번졌다. 공식 실업률은 4%대 중반으로 안정적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10.5%로 치솟았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2~27세가 가장 고통을 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다. 한 세대의 미래 소득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역시 고용 시장의 추가 냉각과 구조 조정을 경고한다. 반면 자본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AI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적 인수합병(M&A) 규모는 약 2조3000억 달러에 달했다. S&P500은 16.4%, 나스닥은 20.36% 상승하며 변동성을 이겨냈고, 이는 고소득층 자산 증가의 강력한 동력이 됐다. 시장의 관심은 AI의 수익성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주요 투자기관들은 성장의 축이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의 그늘은 기업 파산 지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미국의 기업 파산 건수는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와 고물가, 소비 심리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비필수 소비재 기업과 소매업자들이 특히 취약했다.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비용 절감과 할부 판매까지 도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평균 식사 가격이 20~40 달러 수준인 중형 식당들의 폐업도 잇따랐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은 올해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지속 가능한 지불 능력(affordability)’이다. 이는 단순한 물가 수준이 아니라, 가계 소득으로 주거, 의료, 교육 등 필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말한다. 과거에는 소득의 30%를 넘지 않는 주택 상환 능력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경제적 생존의 기준이 됐다. 이미 오른 물가가 다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서민 가계의 부담은 올해도 완화되기 힘들다. 이런 괴리의 근본 원인은 분명하다. 기술 혁신의 수혜가 자본과 고급 인력에 집중되는 반면, AI가 대체하는 일자리는 중하위 소득층에서 먼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비 지형은 이미 프리미엄화(premiumization)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업들은 전체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을 겨냥한 서비스와 상품에 집중한다.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일관성 없는 관세 정책과 고물가 속에서 경계로 밀려났다. KPM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 역시 정부가 발표하는 인플레이션과 GDP 수치가 다수 가계가 체감하는 생활 경제와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2026년 미국 경제는 새 연준 의장 인선, 금리 인하 압박, 대법원의 관세 합법성 판결, 유니콘 기업들의 기업공개 재개, 오바마케어 보조금 종료로 인한 의료비 급등 등 복잡 변수를 안고 있다. AI가 창출한 부가 사회 전반에 고르게 확산되지 않는 한, 미국 경제는 거시 지표와 다수 가계가 체감하는 현실의 간극에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를 얼마나 넓게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장은 계속되는데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경제를 호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레지나 정 / LA 독자발언대 성장 경제 고소득층 자산 고용 시장 청년 실업률
2026.01.20. 18:16
2026년 새해 벽두부터 세계는 냉혹한 패권주의의 파고를 경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그 사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는 늘 약소국의 운명을 결정지어 왔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협약’도 그 하나다.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미국 전쟁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War)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의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1905년 7월 29일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이다. 실제 회담이 열린 날짜는 7월 27일이고, 회담 내용을 담은 각서(memorandum)상의 날짜는 7월 29일이다. 당시 태프트는 전쟁부 업무로 필리핀에 가는 길에 일본에 잠시 들러 이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의 목적은 일본 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라는 양국의 이해 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다. 이 협약으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을 지배를 인정하고, 대신 미국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를 묵인했다. 뿐만 아니라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 전쟁의 구실을 만들었던 사례도 있고,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하는 행태에 이르기까지 국제 사회에서 ‘힘’은 곧 ‘정의’로 둔갑해 왔다. 1989년 12월 20일, 조오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 남미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를 숙청하기 위해 단행된 군사 공격의 2판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지난주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을 포위하는 중국의 대규모 군사 훈련을 비판하기는커녕, 이 훈련은 평상시 군사 훈련이라며 애써 평가 절하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내가 크게 비판하지 않을 테니 곧 있을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관여하지 말라는 암시로, 역시 지역적 패권주의를 인정하는 이러한 힘의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곧 이어 미국 우선주의(MAGA)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주권을 흔드는 행보를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3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침공,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붙잡아 12시간 안에 뉴욕의 감옥에 수감한 사건은 남의 나라를 치는 것이 이제는 별로 대단치 않은 일처럼 여겨지는 패권 제국주의의 귀환을 상징한다. 겉으로는 마두로 대통령이 마약 카르텔과 테러리스트 들의 두목이라는 이유와 부패한 정치로 수백만의 이재민을 반출했다고 체포했지만 속으로는 반미 정책을 쓰는 그와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석유 자본이 중국과 쿠바 등으로 가는것이 마음에 안들어 결국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위해 침략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민주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문제의 속성이 그리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 우방이라 일컫는 국가들조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본, 유럽연합, 그리고 한국마저도 관세 장벽을 낮추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미국에 헌납하며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곧 ‘힘이 없으면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때 자유와 민주주의, 자유 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심각한 마약 문제,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내부적 진통 속에서 보호 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의 패권국으로 남을지, 아니면 쇠락한 제국의 길을 걸을지는 스스로 마주한 거대한 기로다.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한미동맹이라는 튼튼한 근간을 유지하되, 일본과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도모하고, 중국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실리를 챙기는 균형 잡힌 외교가 절실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익 최우선 외교 정책’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깊이 공감하는 바다.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당당한 외교만이 우리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를 시작하며, 균형 잡힌 국익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이 더 이상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나라가 아닌, 새로운 외교 위상을 확고히 하기를 염원한다. 힘의 논리를 넘어서는 지혜로운 외교로 우리 민족의 평화와 희망을 일궈나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김동수 / 희망과 평화재단 이사장·OCSD 평통 협의회 자문위원발언대 한국 외교 한국 식민 베네수엘라 침공 베네수엘라 사태
2026.01.14. 19:39
조선 중종 때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유학자 최부는 공과 사의 구분이 칼날처럼 엄격한 인물이었다. 홍문관 응교로 재직하던 시절, 그를 보좌하던 송흠과 함께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내려간 일이 있다. 송흠의 고향은 전라도 영광, 최부의 고향은 나주였다. 송흠은 고향에 들렀다가 인근 나주에 머물고 있던 최부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담소를 나누던 중 최부는 송흠이 타고 온 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말은 무슨 말인가?” 송흠이 “역마입니다”라고 답하자, 최부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마는 공무 수행을 위해 국가가 빌려주는 말이었다. 최부는 “그 말은 자네 고향까지 타고 가라고 준 공적인 말인데, 사적인 방문에 사용한 것이 옳은가”라며 엄하게 꾸짖었다. 송흠은 섭섭한 마음을 안고 상경했지만, 최부는 그 일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 휴가가 끝난 뒤 대간에 사실을 알렸고, 결국 송흠은 파면되었다. 이후 하직 인사를 하러 온 송흠의 손을 잡고 최부는 말했다. “자네 같은 젊은 인재일수록 공과 사를 더욱 엄격히 가려야 하네.” 그 순간 송흠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의 앙금이 씻겨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이 일화는 공공의 재산을 사소하게라도 사적으로 쓰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지를 일깨운다. 공금은 개인의 돈이 아니라 공동체가 맡긴 돈이다. 국가의 돈이면 국민의 것이고, 단체의 돈이면 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공금유용은 이를 잠시라도 사적으로 돌려 쓰는 행위이고, 공금횡령은 아예 불법으로 가로채는 범죄다. 형태는 달라도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와 우리 동포 사회를 돌아보면 공금 유용과 횡령, 청탁과 비자금 조성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와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부패의 뉴스는 마치 범죄 열전이 이 나라의 역사인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미주 한인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각종 재단과 비영리 단체, 동포 성금과 공적 지원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논란 속에 사라진 사례들이 적지 않다. 책임지는 사람도, 부끄러워하는 반성도 없이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국가 예산이나 동포들의 성금, 대표 단체의 기금은 명백한 공금이다. 수입과 지출은 한 푼의 오차도 없이 공개되고, 공인 회계 감사를 거쳐 투명하게 보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문제의 근원은 분명하다. 개인의 도덕 의식이 무너지고, 이를 제어할 민주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동포 개개인의 윤리 의식을 다시 세우는 일, 공공 감시에 기반한 민주적 운영 원칙을 정착시키는 일, 그리고 부정을 저지른 이들을 공동체가 단호히 배제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옛 선현들이 강조했던 상호 감시와 책임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투명한 회계와 엄정한 책임이 일상화될 때, 공동체를 위해 기부한 이들의 선의가 보호되고 신뢰가 쌓인다. 공금을 둘러싼 시비가 사라진 사회야말로 건강한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새해를 맞아 다시 자문해보자. 우리는 공금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어 왔는가. 이제는 관행이라는 이름의 방관을 멈추고, 실천으로 답해야 할 때다. 공금으로 인한 논란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는 공동체를 기대해 본다. 이상훈 / 수필가발언대 한인 단체 공금 유용 비영리 단체 동포 개개인
2026.01.07.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