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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피로 맺은 동맹, 책임으로 답해야

Los Angeles

2026.03.23 19:32 2026.03.2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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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이란 전쟁’은 지역 분쟁을 넘어, 국제질서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대한민국 역시 신중하면서도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할 때라 여겨진다.
 
나는 6·25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은 노병이다. 포연 속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 시절, 우리가 끝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낯선 땅에 와서 함께 싸워준 우방,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래서 한미동맹은 단순한 외교적 약속이 아니라, 피로 맺어진 혈맹이란 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충돌하면서 세계는 불안정한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세계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이 흔들리면서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우방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대한민국 역시 쉽지 않은 선택 앞에 서 있다.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은 절실하지만, 군사적 개입은 또 다른 위험을 수반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이익을 생각할 때 신중한 접근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고 본다. 과연 우리는 지금 동맹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묻고 싶다.
 
전쟁의 기억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그 불구덩이에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맹의 정신이 아니다. 동맹은 평시의 이익만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함께 고민하고 책임을 나누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군사 지원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언제나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것은 외교적 해법과 다자적 협력을 통한 긴장 완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국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최소한 함께 고민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책임을 나누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혈맹의 도리다.
 
또한 현실적인 대비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중동 정세의 불안은 곧 대한민국의 경제와 안보에 직결된다. 에너지 수급의 다변화,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 그리고 한반도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한 철저한 대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가능성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전우를 떠올린다. 이름도, 고향도 다르지만 같은 참호에서 서로의 등을 맡겼던 그들. 그때 우리는 혼자 싸우지 않았다. 오늘의 한미동맹도 마찬가지다. 피로 맺은 약속은 시간이 흘러도 가벼워질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없는 회피가 아니라, 신중함 속의 책임감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되, 동맹의 요청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 자세,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품격이며,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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