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국의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평화가 곧 안보다”라는 말은 듣기에 온화하지만, 국가 안보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하는 선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 앞서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구호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 속에서 검증되어야 할 과제다. 말로는 자주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안보 태세를 흔들거나 피로 맺은 한미동맹의 기반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자주가 아니라 공백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 자리에 있던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의 절규는 이 논쟁의 핵심을 꿰뚫는다. “앞으로 누가 이 나라를 지키려 하겠나.” 이 한마디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이 정책의 방향에 따라 가볍게 취급된다면, 그 어떤 젊은이도 기꺼이 나라를 위해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대북 방송 중단, 9·19 군사합의 복원 등 유화적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북한은 여전히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한미 간 연합훈련을 둘러싼 균열까지 노출되고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은 선의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힘의 균형과 분명한 억제력이 있을 때 비로소 대화도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오늘의 서해는 복합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뿐 아니라 중국의 불법 구조물 설치와 같은 새로운 도전까지 겹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 기반을 약화할 수 있는 메시지는 오판을 부를 위험이 크다.
“평화가 안보다”보다 “안보가 평화다”가 맞다. 평화라는 목적의 조건은 안보다. 스스로 지킬 힘이 있을 때만 평화는 유지되고, 그 힘이 흔들릴 때 평화는 무너진다. 역사는 이를 수없이 증명했다. 그런데도 종종 듣기 좋은 말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자주국방’은 주권 국가로서 당연한 지향점이다. 그러나 한반도처럼 지정학적 긴장이 높은 지역에서 ‘완전한 자주’라는 개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첨단 무기 체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맹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국방을 ‘동맹의 배제’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다. 오히려 자주국방은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의 선택권과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국가의 안보 정책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원칙과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전장에서 산화한 장병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국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피로 지켜낸 바다는 결코 말로 지킬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 희생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 단단한 안보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