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구조주의 사회에 사는 인간 공자의 '예'도 구조주의와 상통 프로이트의 성적 욕구보다는 사회 질서가 무의식 차지 주장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자기가 속한 사회집단이 수용한 것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집단의 문화나 사색 속에 동화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구조주의의 개념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므로 그 세상이 만들어 놓은 문화나 질서에 부응하면서 실존이라는 본질로 살아가는 '현존재'라고 했다. 이 또한 구조주의이다. 공자가 주장한 예로 승화된 사회도 결국 구조주의다. 우리가 현대를 살고 있지만,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파묻혀 살고 있다. 그 질서를 파괴하면 범법자가 되는 구조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구조주의를 고려하면, 우리의 힘과 에너지는 프로이트가 말한 성적 욕구인 리비도가 아니라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삶의 관습이 인간 무의식에 자리하여 우리의 창조적인 에너지 원천이 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프로이트를 의심하게 된다.
구조주의는 1900년~1930년 사이에 소쉬르의 언어 구조학에서 처음으로 발전된 분석 양식이다. 1960년대 후반에 특히 프랑스에서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에 영향을 주었다.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 문화분석가였던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에게 영향을 끼친다. 당시에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사회의 구조주의에 반대하여 자유를 달라고 외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소쉬르가 언어는 구조화되었다고 하는 것처럼 구조주의자들은 사회현상이 구조화되었다는 신념을 공유한다.
소쉬르는 언어가 기초의 체계라고 주장한다. 각 기호는 기표(signifier, 단어의 소리)와 기의(signified, 단어가 지적하는 의미)라는 두 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고 한다. 가령, 사과라고 부르는 것은 기표고 먹는 사과라는 과일 모습이 기의가 되는 것이다. 즉, 기표가 생기고 기의는 그 후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는 언어 일반의 성질에 관하여 깊이 연구하면서 랑그(langue, 언어)와 파롤(parol, 말)이 존재해야 일상에서 대화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말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랑그라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고, 이것이 언어의 구조주의이며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 규칙이 응용되고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그 사람의 계급이라고 했다. 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사고방식이 다르고, 생활하는 모습, 인간관, 세계관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개별성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가가 결정한다고 한다. 즉, 존재 그 자체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말하는 관점으로 헤겔이 말한 인간은 노동함으로써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한다고 말한 것과 맥락이 같다. 이러한 행동 중심주의 사상이 구조주의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개념이고, 구조주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라고 타츠루는 주장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인간의 가장 안쪽에 있는 무의식의 영역에 주목했다. 인간이 직접적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활동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무의식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자기 자신이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기억을 자아라는 문지기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보낸다고 한다. 또한 사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욕 같은 비도덕적인 관념도 무의식으로 보낸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억압이라고 했다. 의식은 이러한 무의식의 작동 메커니즘을 모르기 때문에 정신질환이나 신경증에 걸린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