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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활주로가 된 LSD

Chicago

2025.12.10 13:57 2025.12.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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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호

박춘호

레익 쇼어 드라이브(Lake Shore Drive)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호변을 따라 난 도로다. 시카고의 북쪽과 남쪽 끝을 연결하는 자동자 전용 도로다. 얼마 전 공식 명칭이 변경돼 시카고에 거주한 첫번째 비원주민의 이름에서 딴 장 밥티스테 포인트 듀세이블 레익 쇼어 드라이브가 길고 정확한 이름이다.  
 
이 도로의 동쪽은 미시간 호수와 모래사장이고 주변에 공원과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 등의 공공시설이 즐비하다. 보통 시카고를 언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호수와 건축물, 바둑판처럼 촘촘하게 구획된 블록을 떠올리는데 이 레익 쇼어 드라이브가 호수와 도시를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레익 쇼어 드라이브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20년부터 시작돼 1930년대 크게 확장된 레익 쇼어 드라이브는 한때 S 커브로 악명을 떨친 때도 있었다. 1930년대 자동차 전용 도로가 확장되면서 다운타운 시카고 강과 만나는 곳에 큰 S자 모양의 커브가 생겼던 것이다.  
 
정확한 지점은 네이비피어 남쪽, 시카고 강과 미시간 호수가 만나는 곳 인근으로 웨커 드라이브와 레익 쇼어 드라이브 다리가 만나는 곳이 거의 90도로 두 번이나 틀어야 하는 구간이었다. 이로 인해 레익 쇼어 드라이브를 상징하는 구간으로 여겨졌지만 운전자들에게는 엄청난 고난이었다. 이 구간에 들어서기만 하면 교통 정체가 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1980년대에 들어서야 이 커브 구간이 없어지고 직선 구간으로 변경됐다. 여전히 시카고 주민들은 레익 쇼어 드라이브의 S 커브 구간을 언급하기도 한다.  
 
도로명을 약어로 줄이면 LSD가 되는데 이는 악명 높은 마약과 같은 이름이라 많은 혼동을 주는 레익 쇼어 드라이브에는 비행기가 이착륙을 한 기록도 남아 있다. 물론 지금도 종종 뉴스에 올라오곤 하는 비행기의 비상 착륙이 아니라 예정되고 계획된 항공기 이착륙이 적어도 2회 있었던 것으로 시카고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시카고 남부 잭슨 파크에 위치한 산업과학박물관과 깊은 연관이 있다.  
 
때는 1983년 7월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4대의 비행기가 레익 쇼어 드라이브에 착륙했다. 잭슨 파크 인근 59가와 63가 사이의 도로가 임시 활주로로 사용됐다. 경력이 풍부한 조종사라면 콘크리트로 매끈하게 포장된 레익 쇼어 드라이브에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것은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도 많은 차량이 운행중인 자동차 전용 도로에 4대의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것은 사전에 조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비행기 착륙은 박물관과 시카고 시청의 합의로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당시 산업과학박물관이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던 때였는데 박물관이 항공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명 전시물이 많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로 레익 쇼어 드라이브에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것을 계획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시카고에 본사를 둔 대형 항공사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으면서 고전 항공기 수집이 취미였던 조종사를 섭외했다. 당초 계획은 이 항공기들을 다운타운 필드 뮤지엄 인근의 메이그스 필드에 착륙시킨 뒤 차량을 통해 박물관까지 수송하려고 했지만 이럴 경우 양발 날개를 가진 항공기를 분해했다가 조립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를 꺼려 한 항공기 소유주가 레익 쇼어 드라이브 착륙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도로의 전면 통제와 운송 에스코트를 책임져야 하는 시카고 경찰이 난색을 표했다는 점. 경찰은 이벤트성으로 계획된 자동차 전용 도로의 비행기 착륙과 운송에 반대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난관을 직접 해결한 인물은 당시 시카고 시장이었던 해롤드 워싱턴.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이었던 워싱턴은 이 계획을 전해듣고 흥미를 가졌으며 자신이 직접 나서 경찰과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전 조율로 비행기가 레익 쇼어 드라이브에 착륙할 수 있었다. 이 4대의 비행기는 1930년대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투기와 연방 우정국이 우편물 배달에 사용했던 것으로 사전에 복원된 것이었다. 4일 후에는 레익 쇼어 드라이브를 잠시 차단한 뒤 이 4대의 비행기가 다시 이륙했다.  
 
이런 특별한 이벤트가 박물관측은 맘에 들었는지 4년 뒤인 1987년 같은 행사를 다시 마련했다. 그 때에는 박물관측에서 개봉하는 옴니맥스 극장의 새 작품 ‘Flyers’ 홍보를 위한 특별 이벤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레익 쇼어 드라이브가 비상사태가 아닌 비행기의 이착륙 활주로로 이용된 것은 적어도 두 차례 이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는 이런 용도로 같은 지점의 레익 쇼어 드라이브가 사용되기에는 힘들어졌다. 59가와 63가 사이의 도로에 ㄱ 모양의 가로등이 설치가 됐는데 이 구조물로 인해 항공기의 이착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항공기 조종사들의 견해다. 조종사들은 소형 항공기의 경우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이의 도로만 있으면 어디든 이착륙이 가능하지만 현재 레익 쇼어 드라이브에 설치된 가로등과 전화용 장대가 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레익 쇼어 드라이브에서 뜨고 내리는 항공기를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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