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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외로움은 팔지 않습니다

Los Angeles

2025.12.11 17:13 2025.12.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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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요즘 한국에서는 혼밥을 둘러싼 갈등이 종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외로움은 팔지 않는다’며 혼밥 손님을 거부하는 식당 안내문이 온라인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한 네티즌은 어느 짜장면집 출입문에 붙어 있던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며, 안내문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사진 속 안내문에는 “혼자서 드실 땐 2인분 값을 쓴다, 2인분을 다 먹는다, 친구를 부른다, 다음에 아내와 온다”라는 문구와 함께 “외로움은 팔지 않습니다. 혼자 오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왜 혼자 먹으러 가는 사람을 외로운 사람으로 치부하는 거냐” “요즘 세상에 혼밥족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생각을 하나”등의 거센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나 역시 “외로움은 팔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 처음에는 장난스럽고 좀 생뚱맞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지난 여름에는 한 여성 유튜버가 홀로 2인분을 시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빨리 먹으라고 식당 주인이 면박을 주는 영상이 공개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유튜버는 여수의 한 유명 맛집을 방문, 2인분을 주문하고 식사 중이었으나 식당 주인은 “아가씨 하나만 오는 데가 아니거든” “얼른 먹어야 한다, 예약 손님을 앉혀야 하거든” 등 식사를 재촉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유튜버가 항의 하자 주인은 “고작 2만원 가지고” “그냥 가면 되지 왜 저러는 거야”라고 말하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며칠 전 남편과 한인타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들렸다. 아침을 늦게 먹어 1인분만 시켜서 둘이 먹어도 되는데 눈치가 보여 2인분을 시켜서 하나는 집에 가져왔다. 한국도 아니고, 식당 주인이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마도 한국에서의 논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외국에서는 업주가 손님을 거부할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손님은 왕’이라는 오래된 관념 때문에 손님을 거절하는 일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진다. 그 식당 주인은 그런 낯선 방식 때문에 온라인에서 불친절로 뭇매를 맞은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식사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혼밥은 식사라 하지 않았다. 밥상은 밥상머리 교육의 자리였고, 가족간의 대화의 자리였다. 외식은 가족의 특별한 날의 행사이거나 교제의 수단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흔한 일이고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일반인이나, 직장인, 여행자 등 너무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그저 평범한 풍경일 뿐이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우리는 그 자유로운 풍경 속에서 자주 외로움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래서 짜장면집 식당 주인도 단순히 ‘혼밥은 외로움’으로 단정 지었을 것이다. 식사는 음식보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데 그 안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나는 지금 혼자이다.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메신저 알림은 끊임없이 울린다. 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앞에 없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많은 시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1인 가구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33%를 훌쩍 넘겼다. 서울에서는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혼자 산다. 혼밥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혼밥이 아니라면, 그건 외로움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혼자 밥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외로움을 뜻하는 건 아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혼자 밥을 먹으며 느끼는 쓸쓸함도, 사람이기에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마음이 살아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외로움을 인간만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물들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연구가 있다. 그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을 견디고 표현한다고 한다.
 
긴 세월 사람과 함께 살아온 개는 주인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울과 분리불안을 겪고, 코끼리가 짝을 잃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서성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고래, 침팬지 같은 사회적 동물도 무리에서 떨어지면 식사량이 줄고 행동이 무기력해지는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외로움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감정이 아니라 사회성을 가진 생명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시대를 ‘고독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영국에서는 아예 ‘외로움 장관’이 있을 정도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이 혼자서 조용히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다루어야 할 문제로 확장되었다. 외로움은 고독사 등 다른 사회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외로움을 완전히 피하며 살 수는 없다. 강인한 사람도, 밝아보이는 사람도, 늘 곁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도 어떤 순간에는 고독을 마주하게 된다. 외로움은 개인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해소된다. 어떤 사람은 음악으로, 또 다른 사람은 독서로, 견디고 달래고 때에 따라 외면하면서 넘길 뿐이다.
 
독서광인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 1주일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무거운 책임감과 외로움을 독서로 이겨냈다. 백악관 8년을 버틴 비결은 독서였다”고 밝혔다.
 
오바마 전대통령처럼 홀로 풀 수 있는 외로움도 있지만 홀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 외로움도 있다. 그런 외로움은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영국처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혼밥은 손님과 식당 주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과도 관련이 있다. 흔히 혼밥이라면, 그냥 한끼를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에 대충 때운다. 그러나 건강을 생각해서 혼밥을 하더라도 영양을 생각해 이것저것 챙겨야 하겠다.
 
요즘 식당 주인들 중에는 손님을 사람보다 ‘돈’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영업의 현실이 그만큼 팍팍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장면집 주인에게 말한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돈으로 사고파는 감정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외로움’이라고 규정해 버릴 수 있는 감정도 아닙니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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