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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외교의 주역, 코리안 아메리칸이 韓-이스라엘 잇는다

Los Angeles

2025.12.12 10:26 2025.1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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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의 밤하늘 아래, 서로 다른 두 공동체가 나란히 살아간다. 코리아타운 골목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김치찌개 냄새가 퍼지고,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는 구운 차라(Challah) 빵의 고소한 향이 동네 빵집을 채운다. 이 장면들은 회복과 생존,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만들어낸 한국인과 유대인의 평행한 역사를 상징한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고, 이스라엘은 짧은 기간 안에 현대 국가를 세우고 과학·기술·농업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두 나라는 교육, 근면, 혁신이 미래를 바꾼다는 공통된 믿음을 지닌다. 기술·투자·문화 전반에서 한·이스라엘 협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에 자리한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두 역동적 사회를 잇는 새로운 ‘가교’ 역할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의 기여는 단순한 언어 번역을 넘어선다. 한국계 미국인은 양쪽 문화가 지닌 정서적 ‘맥락’을 이해한다. 한국에서는 예절과 위계가 관계 형성의 바탕이 되는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직설적 토론이 오히려 신뢰의 표시다. 이러한 차이는 비즈니스나 외교 현장에서 오해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두 문화권을 모두 편안하게 오가는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그 간극을 자연스럽게 메우는 조정자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에스더 신(Esther Shin)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에는 말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예절이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열린 도전이 신뢰의 표현일 때가 많습니다. 두 언어와 문화를 모두 아는 사람들이 그 ‘리듬’을 맞춰줄 수 있습니다.”
 
최근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두 나라를 연결하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첫째, 비즈니스와 기술 혁신 분야.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업·소비자 기술과 이스라엘의 인공지능(AI)·사이버보안·스타트업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협력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가 협력 속도를 더디게 할 때가 많다. 양문화에 능통한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기대치 조율, 협상, 공동 과제 발굴에서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둘째, 커뮤니티 외교.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두 공동체의 가치를 서로에게 설명하는 ‘신뢰받는 해석자’다. 가족 중심 문화, 교육 중시, 회복력 등 공통분모를 부각하며 오해를 줄이고, 시민 리더·기업가·커뮤니티 옹호자로서 대화를 이끌어간다. 글로벌 긴장이 높아지는 시대에 이들의 중재적 존재감은 더욱 빛난다.
 
셋째, 문화·학술 교류.
학생 프로그램, 예술 협업, 문화 축제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조율자 역할을 한다. 양국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한 이들은 서로를 소개할 때 자연스럽게 맥락과 감수성을 더해 신뢰를 형성한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협력이 심화될수록 코리안 아메리칸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LA처럼 김치 향과 차라 향이 같은 저녁 공기 속에 뒤섞이는 도시에서, 그 ‘가교 작업’은 이미 조용히 진행 중이다. 이들의 노력은 단순한 이해관계의 접점을 넘어, ‘상호 이해’라는 더 깊은 기반 위에서 새로운 협력의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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