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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고려인 동포…한국의 저력 빛내고 싶다” 올랜도 다문화 축제서 고려인들 태극기 들었다

Atlanta

2025.12.16 14:13 2025.12.1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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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태생 손하나씨 "한국인 정체성 투쟁으로 지켜"
'고려사람' 단체를 설립한 손하나씨. 장채원 기자

'고려사람' 단체를 설립한 손하나씨. 장채원 기자

“한국을 아시나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재밌게 보셨다면 한국 역사에 대해 듣고 가실래요? 이 나라는 대단한 회복력을 갖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는 매년 추수감사절이 끝난 주말 이틀간 센트럴 플로리다 최대 다문화 축제 ‘퓨전 페스트’가 개최된다. 110개국 대표가 자국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소개하는 이 자리에 올해 처음 ‘한국팀’이 참가했다.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한복을 차려입은 이들은 고려인이다.
 
지난 11일 퓨전 페스트에 참가한 ‘고려사람 인 아메리카’ 설립자 손하나(39)씨를 만났다. 그는 러시아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에서 태어나 1990년대 체첸사태가 터진 후 다섯살 때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 3세다. 주카자흐스탄 미 대사관에 일하던 중 미국인 남편을 만나 플로리다로 이민했다. 축제에 참가한 까닭을 묻자 그는 “한국인이라서”라고 답했다. “우리(고려인) 역사에서 한국인 정체성이 거저 주어진 적은 없었다. 우린 그것을 얻기 위해 가난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싸워야 했다. 불모지에서 그곳 사람들은 먹지 않는 콩을 기르고, 한국어를 배우려 분투했다. 나는 운이 좋게 기회의 땅 미국에 정착하게 됐지만, 우리가 투쟁해 얻어낸 한국인 정체성이 자랑스럽다.” 그는 한미 친선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올랜도 퓨전 페스트에 참여한 손하나 씨. [본인 제공]

올랜도 퓨전 페스트에 참여한 손하나 씨. [본인 제공]

 
‘하나’라는 이름은 미국 속 고려인의 유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옛 이름은 올가. 손 씨는 “법적으론 미국 시민이고, 출신지는 카자흐스탄이고, 이름은 러시아어이다보니 왜 당신이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매번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미러 갈등 속에서 고려인임을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는 고려인 존재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함께 일한 외교관들조차 우리들 존재를 몰랐다. 어렸을 때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쓰리잡을 하며 홀로 자식들을 키운 아버지가 한국어까지 가르쳐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된 책도 구할 수 없어 혼자 공부해야 했지만 이젠 이민자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 내가 미국에서 당당한 시민으로 설 수 있다면 당신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9월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 주최 코리안 페스티벌에 처음 참가하면서 고려인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고려인 단체가 미주 한인 축제에 참가한 건 처음이었다. 미국 전역엔 추첨영주권(DV) 또는 난민 입국으로 정착한 다양한 출신국의 고려인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주로 같은 언어를 쓰는 러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에 더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손 씨는 “고려어가 옛 한국어와 유사하기 때문에 초창기 이민 1세대는 고려어에 능통한 경우도 있다”며 “한인사회가 고려인을 같은 동포로 포용하길 바란다”고 했다. “고려인은 단지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동포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에는 한국의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는 힘이 담겨 있다. 우리는 한반도 밖에 사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 디아스포라 중 하나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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