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영사관, 대사관, 검찰청 사칭 사기’ 실제상황 살펴보니 ‘마약거래 범죄 연루됐다’ 협박하며 각종 문서 등 요구 발신번호 조작, 한국 정부 웹사이트와 체포영장까지 조작 전화 걸려와도 재다이얼 버튼 누르지 말고 확인해야
왼쪽부터 위조한 인터폴 협조 레터, 위조한 수사내용 공개금지 요청문, 위조한 구속영장.
"뉴욕총영사관입니다."(646-674-6000)
지난 1일, 뉴저지의 한 한인에게 걸려온 전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한 통의 전화는 결국 7만 달러 피해로 이어졌다.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 전말을 다시 따라가 봤다.
최근 뉴욕총영사관과 검찰청,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한 전화 사기가 잇따르고 있다. 발신번호를 조작해 정부기관처럼 꾸민 뒤, 범죄 연루를 이유로 돈을 송금하게 하는 수법이다.
한인 박모 씨의 휴대전화에는 뉴욕총영사관(646-674-6000) 번호가 찍혀 있었다. "외교부에서 보낸 우편물이 있으니 찾아가라"는 안내였다. 피싱 전화를 의심한 박 씨는 통화를 끊었지만, 구글에서 총영사관 번호를 검색하자 방금 전화 온 번호와 같았다. 안심한 그는 전화를 다시 걸었고, 같은 인물이 응대했다.
상대는 "외교부 문서에 박 씨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내용이 있다"며 "곧 검찰청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뒤, 한국 검찰청(+82-2-3480-2212)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윤기형 검사’라고 밝힌 사기범은 “한국에서 범죄 행위가 발생했고,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며 강하게 압박했다.
공교롭게도 박씨는 지난 10~11월 한국을 방문했었고, 당시 임시로 한국 전화번호를 사용했던 터라 이 과정에서 본인 정보가 범죄에 이용됐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검찰 사칭범의 압박에 무조건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기꾼은 시그널(Signal) 앱에서 연락을 이어가자고 했다. 약식조사가 필요하다며 링크를 줬고, 이 링크는 검찰청 웹사이트와 유사한 곳으로 연결됐다. 박씨의 이름을 넣으니 가짜 인터폴 협조문, 구속영장 등의 내용이 나왔다. 약 3000억원이 마약 거래와 자금세탁에 사용됐고, 그 중 수억원이 박씨의 이름으로 된 우리은행 베트남 계좌에서 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겁에 질린 박씨는 지시를 따랐다. 진술서, 기밀유지 서약서,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모두 전달했고 이후엔 본인을 금융감독원 김선호라고 소개한 사람(+82-2-3145-5596)이 영상통화를 걸어 왔다. 상대방은 박씨에게 "모든 금융자산을 한 쪽으로 모아 확인해야 자금세탁에 이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다그쳤다. 박씨는 투자형 금융상품은 처분하면 손실이 발생한다며 버텼지만, "혐의가 무죄로 밝혀지면 원금의 18%를 보상해주고, 수사 협조비 하루 570달러도 지급하겠다"며 박씨를 안심시켰다.
결국 지시에 따라 박씨는 지난 9일 로빈후드 투자 계좌(2613.24달러 상당), 지난 12일에는 뱅가드 투자 계좌(6만9757.33달러 상당)를 매도했다. 거래는 지난 15일 완료됐으며, 모든 투자 자금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계좌로 모은 뒤 '금감원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시대로 홍콩상하이은행(HSBC) 계좌로 송금했다.
송금을 완료하자 갑자기 금감원 사칭 직원은 연락을 끊었다. 그제야 박씨는 구글에서 윤기형, 김선호씨 이름을 검색했고 외교부에서 공지한 '미국 내 보이스피싱 범죄 사례'를 발견했다. 박씨는 "BoA에 금융사기 신고를 하러 가니 저 말고도 많은 한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한인 동포들이 더는 이와 같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한국어 말투가 이상하다거나 하는 전형적인 피싱 사기와는 전혀 다른 수법이었다"며 "미국 은행 시스템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는 매우 조직적인 범죄"라며 수사가 진전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연방수사국(FBI)과 연방거래위원회(FTC), 인근 경찰서에도 신고를 마친 상황이다.
외교부에서는 "대사관이나 총영사관 등 대한민국 정부기관은 전화나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 개인정보나 금전 송금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이와 같은 연락을 받은 경우 대응하지 말고 즉시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총영사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경우, 총영사관 민원실로 전화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