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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살아남은 이민자, 추방될 위기 ‘한숨’

Los Angeles

2026.01.07 18:12 2026.01.0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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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는 가까스로 피했는데, 구금은 피하지 못해
정기 점검 위해 이민국 방문했다가 ICE에 체포
신부전증 딸 치료 위해 체류한 미국서 쫓겨날 판
"28년 살아온 여기가 내 집, 떠날 수 없다" 절규

원문은 LA타임스 1월6일자 “Immigrant who survived faces deportation” 기사입니다.

이튼(Eaton) 산불 생존자인 마수마 칸(64)은 정기적인 이민 출석 점검을 위해 방문했다가 지난해 10월 6일 연방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석방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지나 페라지 / LA타임스]

이튼(Eaton) 산불 생존자인 마수마 칸(64)은 정기적인 이민 출석 점검을 위해 방문했다가 지난해 10월 6일 연방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석방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지나 페라지 / LA타임스]

 
10월의 밤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었다. 64세의 마수마 칸이 캘리포니아시티 이민자 구금시설의 좁은 창문을 통해 바라본 하늘이었다. “비행기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는 수감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베이커즈필드에서 동쪽으로 67마일 떨어진 이 시설은 과거 교도소였던 곳으로, 지난 4월 추방 절차를 밟는 이민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칸도 그중 한 명이었다.
 
미국에서 28년을 살았고, 딸을 돌보며 가정을 지켜왔으며,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산불 중 하나인 이튼(Eaton) 산불을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가 이런 곳에 오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칸은 지난해 1월 7일 발생한 산불로 서부 알타데나의 집을 잃지는 않았다. 이 화재는 9000채가 넘는 건물을 태우고 1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화재 이후 몇 달 동안, 칸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 다가왔다. 바로 추방이었다.
 
LA에서 화재 복구가 한창이던 시기, 트럼프 행정부는 대대적인 이민 단속을 시작했다. 이는 복구 작업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산불로 큰 충격을 받은 이민자 사회에 또 다른 공포를 안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단속이라고 밝혔지만, 언론 보도와 법원 기록에 따르면 범죄 이력이 없는 이민자들, 영주권 신청자, 심지어 미국 시민들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칸은 불안했다. 그는 이민 신분 조정 절차를 진행 중이었고, 매년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출석해 확인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민 변호사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켰다. 남편과 딸은 시민권자였고, 범죄 전력도 없었으며, 사건은 심사 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6일, 정기 점검을 위해 칸은 LA 다운타운 이민국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악몽이 시작됐다.
 
ICE 요원들에게 체포된 칸은 거의 하루 종일 차가운 방에 갇혔다. 그는 변호사나 전화 접근이 거부된 채, 추방 서류에 서명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거부했지만 결국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밴에 실려 북쪽으로 세 시간가량 이동해 캘리포니아시티 이민자 구금시설로 옮겨졌다. 에어컨도 없는 밴 안에서 그는 메스꺼움을 느끼고 혈압 이상 증상을 겪었다고 한다.
 
시설에 도착한 뒤에는 고혈압, 천식, 말초동맥질환, 불안장애, 갑상선 기능저하증에 필요한 약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뇨 전 단계인 그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혈압이 급격히 오르며 뇌졸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났고, 다리는 붓고 몸은 점점 약해졌다.
 
시설은 지나치게 추웠다. 수감자들과 직원들까지 병에 걸릴 정도였다. 여성들은 양말을 목도리나 장갑처럼 사용했지만, 규정 위반이라며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처방받은 안약을 쓰지 못해 시야가 흐려졌고, 무슬림인 그는 할랄 식단 대신 돼지고기가 포함된 의료 식단을 제공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8일, 알타데나 레이크 애비뉴 일대에서 이튼 산불이 한 상가건물과 차량을 불태우고 있다. [지나 페라지 / LA타임스]

지난해 1월 8일, 알타데나 레이크 애비뉴 일대에서 이튼 산불이 한 상가건물과 차량을 불태우고 있다. [지나 페라지 / LA타임스]

이 같은 경험은 국토안보부(DHS)와 ICE를 상대로 제기된 연방 집단소송에 참여한 다른 수감자들의 주장과도 유사하다. 소송에서는 부실한 식사와 물, 의료 부족, 극도로 추운 수감실, 약과 변호사 접근 제한 등 비인도적 환경이 문제로 제기됐다.
 
국토안보부 대변인 트리샤 맥러플린은 이메일을 통해 “ICE 구금시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모든 수감자는 영양사가 인증한 식사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고 변호사 및 가족과 연락할 기회를 가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칸은 “대부분의 시간을 울면서 보냈다”고 말했다. 가족과 집, 작은 정원과 매일 먹이를 주던 새들이 그리웠다. 다시 가족을 만나고 산과 자연의 소리를 듣기까지는 몇 주가 더 걸렸다.
 
지난해 1월 7일 새벽 3시 30분, 칸과 그의 남편은 휴대전화로 대피 경보를 받고서 잠에서 깼다. 이튼 산불은 이미 몇 시간째 알타데나를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침실 창밖으로 보인 산등성이에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허리케인급 강풍은 불씨를 마을 깊숙이 날려 보내며 주택과 학교를 집어삼켰다.  
 
칸의 남편 이스티악 칸(66)은 “완전 불바다였어요. 불덩이들이 사방으로 날라다니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냥 혼돈 그 자체였어요.”라고 그날을 회상했다.
 
부부는 최소한의 짐만 챙겨 차를 몰고 파사데나의 마트로 피신했고, 한 달간 호텔 생활을 해야 했다.
 
칸은 자신이 미국에서 이런 재난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원래 자신의 삶을 위해 미국에 온 것이 아니었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1997년 방글라데시에 살던 칸의 9살 딸 리야는 미국 방문 중 신부전증을 진단받았다. 항암 치료와 복막 투석이 필요했다. 칸은 방문 비자로 미국에 와 딸을 돌봤고, 결국 귀국하지 못했다. 남편은 1999년 비자를 받아 합류했고, 남편과 딸은 시민권자가 됐다.
 
칸은 신분 조정을 시도하던 중, 동포 사회에서 신뢰받던 한 남성에게 속아 허위 망명 신청이 접수됐고, 그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추방 명령이 내려졌다. 이 사실을 안 것은 2015년이었다.
 
2020년 ICE에 한 차례 구금됐다가 풀려난 그는 정기 출석 의무를 지키며 합법 체류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그 절차가 진행 중이던 올해 10월, 다시 체포됐다.
 
맥러플린 대변인은 “칸은 1999년부터 최종 추방 명령을 받은 상태로, 모든 항소 절차를 소진했다”며 “미국에 체류할 법적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11월 초, 연방법원 판사는 정부가 청문회 없이 칸을 무기한 구금할 수 없다며 석방을 명령했다. 이는 그의 법률팀?남아시아 네트워크, 퍼블릭 카운슬, 혹 로펌?의 성과였다.
 
칸의 사건은 주디 추 연방 하원의원, 애덤 시프 연방 상원의원 등 남가주 정치권의 관심도 끌었다. 딸 리야가 직접 의원들에게 연락하고 SNS를 통해 사연을 알린 덕분이었다.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칸은 정기적으로 ICE에 출석해야 하며,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지역 행사 참여를 두려워할 만큼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알타데나의 집에서 가족이 함께 앉아 있던 어느 저녁, 칸은 말했다.
 
“나는 이 나라를 떠날 수 없어요. 여기가 제 집입니다.”

글=루벤 비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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