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 로보틱스 부스에 전시된 제조용 로봇에 손으로 휘갈겨 쓴 ‘일자리 구함’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로봇 시장이 빠르게 성숙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로이터]
지난 5일 미디어 행사에서 현대차 그룹이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개막 전부터 시선을 끌었다. 마치 모델처럼 어깨를 살짝 흐느적거리며 걷고, 관절을 360도 회전해 보이는 모습에 참석자들은 경탄했다. 한 글로벌 기술 전문매체는 이를 ‘베스트 로봇’으로 선정했다. 2년 뒤 미국 자동차 공장에 투입한다고 하니, 본사 강성노조가 신경을 곤두세울 법하다.
다음날엔 인공지능(AI)을 로봇 공학으로 확장시킨 엔비디아의 ‘피지컬 AI’가 온통 화제였다. 공장의 힘든 작업부터 운전에 이르기까지 사람 할 일을 죄다 해 보였다. 특히 자율주행의 정밀도가 급상승했다는 점은, 비록 데모 수준이었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현대차나 엔비디아만 휴머노이드를 앞세운 게 아니다. 서로 베꼈나 싶을 정도로 빼다 박은 로봇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일본 휴머노이드는 닌자 무술을, 중국 로봇은 소림 쿵후를 각각 시연해 보였다. 어느 게 더 앞서 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이 분야 기술이 빠르게 상향 평준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반가운 소식이다.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 중국과 제조업의 부식이 진행된 일본에 비해 첨단기술과 양산 능력을 겸비한 한국이 앞선다는 논리다. 이게 김칫국이 될지, 진짜 기회가 될지는 우리 하기 달렸다.
사실 CES엔 로봇이나 AI 외에도 기상천외의 아이디어와 경천동지의 기술이 널려 있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건 금융과의 결합이다. 그래야 제품화와 양산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이 금융에서 두각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경직화하고 있는 노동규제,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는 에너지·환경 정책 역시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기술 자체에 과도한 기대를 걸 필요도 없다. 기계는 역시 기계다. 언제 무슨 고장이 날지 모른다. 현대차의 한 간부는 “로봇 하나가 행사 전날 작동을 멈춰 밤새 고치느라 애먹었다”고 털어놨다. 이게 현대차만의 문제일까. 인간의 손길과 통제가 불필요한 완벽한 로봇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실의 좌표를 정확히 파악해야 투자 판단도 제때 할 수 있는 법이다.
또 기술 발전이 빠르다는 건 그만큼 진부화도 빠르다는 뜻이다. 오늘의 혁신이 내일엔 ‘그냥 다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CES 2026을 장식한 로봇, AI, 디지털 헬스, 모빌리티 기술이 CES 2027이나 2028에도 먹힐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외려 구식으로 보이는 아날로그의 생명력이 의외로 길어질지도 모른다.
첨단이란 것도 과거로부터 축적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삼는다. 앞세대의 성과물에 현세대의 혁신이 덧붙여진 것이다. 어떤 첨단기술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축적물로 변한다. 글로벌 기술경쟁이 끊임없는 혁신을 극한의 수준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19세기에 이미 이런 관찰을 한 마르크스가 환생해 CES를 본다면 ‘산 노동을 대체하는 죽은 노동의 대행진’으로 해석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인간이 기계에게 자리를 내준다고 비관만 할 이유는 없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건 인간이다. 기계는 만들어진 가치를 제품이나 서비스에 이전시키는 정도다. 결국 인간의 창발성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확신에 앞서 답을 찾아야 할 질문들이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혁신엔 한계가 있는지, 있다면 기계가 한계를 넘어서도록 보완해 줄 것인지,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재나 노동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CES 2026에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편 CES 2026엔 의외의 풍경도 있었다. 참가 자체에 의미를 둔 기업, 지난해와 똑같은 전시품을 들고나온 곳,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진부한 부스도 있었다. 한국에선 도포 자락 휘날리는 역술인도, 경찰 수사 선상에 오른 정치인도 찾아왔다. 기념사진 촬영에 열중하는 이들도 있었다. 첨단의 경연장인 이 거대한 무대조차 기술만큼이나 빠르게 진부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CES 2026은 그 질문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