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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달라스 협의회, 고 이해찬 수석부의장 분향소 설치

Dallas

2026.01.29 12:42 2026.01.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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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0일과 31일, 달라스 협의회 사무실 …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세종시청 1층 로비에 설치된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분향소.

세종시청 1층 로비에 설치된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분향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달라스 협의회(회장 김원영)가 고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위한 추모 공간을 마련한다. 달라스 협의회는 1월30일(금)과 31일(토) 양일간 달라스 협의회 사무실에서 고 이해찬 수석부의장 분향소를 차린다.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한인 누구나 입장해 분향할 수 있다. 달라스 협의회 합동추모식은 금요일 오후 3시에 있을 예정이다.
김원영 제22기 민주평통 달라스 협의회장.

김원영 제22기 민주평통 달라스 협의회장.

김원영 회장은 달라스 협의회 자문위원들에게 보낸 공지를 통해 “고인께서는 평생을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 헌신하셨으며, 대한민국 제36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신 우리 민주평통의 큰 스승이셨다”며 “고 이해찬 수석부의장님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를 달라스 협의회 사무실에 마련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바쁘신 일정과 궂은 날씨 속에서도,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깊은 애도와 존경의 마음을 함께 나누자”고 당부했다.
달라스 한인문화센터 내에 위치한 달라스 협의회 사무실 주소는 11500 N. Stemmons Fwy. Dallas, TX 75229이며 분향소에 관한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하혜영 부간사(972.800.5236)에게 문의하면 된다.
한편, 이 전 국무총리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 증상을 보이며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응급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25일(현지시간) 오후 2시 48분 현지 병원에서 영면했다. 향년 74세.
고인은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직속 자문 기관인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고인은 삶 자체가 현대사의 압축과도 같았다. 1988년 평화민주당 입당 이후 40여년 동안 고인은 4명의 더불어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인간적·정치적 연을 맺었다. 고인과 그들의 관계가 곧 민주당 계열 정당 집권사의 뼈대이자 근육이었다. 그런 만큼 그는 여권 내 최고의 전략가로도 통했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는 청양면장 출신인 부친 이인용씨 아래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딱히 부모님을 졸라야 할 일도, 형제자매들과 경쟁할 일도 없었다. 특히 먹을거리는 언제나 풍성했다”고 그는 유년기를 회고했다. 이후 서울로 유학해 덕수중·용산고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던 그는 자퇴한 뒤 이듬해 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으로 다시 입학했다.  
대학 진학 이후엔 투쟁적 삶의 연속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2년 만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형집행정지로 1년 만에 출소했다. 이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1978년 고시촌으로 불리는 서울 신림동에 광장서적을 열었다. 다음해인 1979년엔 출판사 돌베개를 창업했다. 그해 ‘12·12 군사반란’이 터졌다.  
1980년 복학해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고인은 그해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처음 대화를 나눴다. “DJ는 ‘(신군부가) 5·16 세력보다 더 흉악하다.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싸울 의지가 없다고 느꼈다. 믿을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랬던 고인은 그해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엮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제서야 고인은 “유언 같은 법정 최후진술을 듣고 DJ에게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고초를 겪은 그는 처음 대학에 입학한 지 14년 만인 1985년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인 정치의 길을 걸었다. DJ는 1988년 13대 총선 때 고인을 정계에 입문시켰다.  
 
〈토니 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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