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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자산, 숫자보다 중요한 것] 진짜 리스크는 변동성 아닌 '무계획'

Los Angeles

2026.02.03 23:03 2026.02.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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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48조 달러 시대, DC 플랜으로 중심 이동
많이 모아도 은퇴 안정성 자동 확보되지 않아
어떻게 관리할지 구체적인 해결책 마련해야
ICI(Investment Company Institute)의 최근 미국 은퇴자산 리포트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말 기준, 미국의 총 은퇴자산 규모는 약 48조 1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미국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약 34%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은퇴자산이 더 이상 특정 연령대나 일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가계 재무 구조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긍정적인 신호다. 자산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주식시장 회복과 함께 은퇴계좌의 평가액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한 자산 증가 이상의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분기 데이터를 통해 드러나는 핵심은 미국 은퇴 시스템이 점점 더 개인 책임 중심, 세금 민감형, 그리고 시장 의존형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변화는 장기적으로 은퇴 준비의 난이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은퇴자산의 구성
 
이번 리포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자산 구성이다. 전체 은퇴자산 중 개인은퇴계좌(IRA)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조9000억 달러로, 단일 카테고리 중 가장 크다.  
 
여기에 401(k)를 포함한 확정기여형(DC) 플랜 자산이 약 13조9000억 달러를 더한다. 두 항목을 합치면 전체 은퇴자산의 3분의 2를 훌쩍 넘는다.
 
반면, 전통적인 연금의 상징이었던 확정급여형(DB) 플랜은 정부 부문을 포함하더라도 상대적 비중이 계속 축소되고 있다. 민간 DB 플랜은 이미 은퇴 시스템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연금 형태의 확정 소득을 제공하는 구조는 일부 공공 부문을 제외하면 예외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은퇴 이후 소득이 ‘자동으로’ 발생하는 구조에서 개인이 스스로 계좌를 관리하고 인출 전략을 설계해야 하는 구조로 완전히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은퇴 준비의 핵심 과제가 자산 축적에서 자산 관리와 소득 전환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자산 증식과 은퇴 안정성
 
은퇴자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은퇴 안정성이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자산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시장 변동성과 세금 규칙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IRA 자산의 약 38%는 뮤추얼펀드에 투자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주식형 펀드 비중이 가장 크다. 이는 은퇴가 가까워졌거나 이미 은퇴에 들어선 계좌조차도 상당한 시장 리스크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시장 변동성 그 자체보다 그 변동성이 은퇴 이후 현금흐름과 결합될 때 발생하는 위험이다. 은퇴 후 일정한 소득이 필요한 시점에 시장 하락이 겹칠 경우, 자산을 회복할 시간적 여유는 줄어들고 인출 부담은 커진다. 이른바 ‘순서 리스크(sequence of return risk)’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작동하는 구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자자들은 여전히 은퇴자산을 ‘계좌 잔고’ 기준으로만 바라본다. 잔고가 늘면 안전하다고 느끼고, 줄면 불안해진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잔고의 크기보다 그 자산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세금 구조 하에서, 얼마나 오래 지속 가능한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다.
 
▶가장 큰 은퇴 리스크
 
이번 리포트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데이터가 암시하는 가장 큰 리스크는 계획 부재에서 비롯된다. 특히 세금 측면에서 그렇다. 현재 미국 은퇴자산의 상당 부분은 전통적 IRA와 401(k)와 같은 세금이 이연된 계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당장은 세금 부담이 없어 보이지만 은퇴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과세 소득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최소의무인출(RMD)이다. RMD는 단순히 계좌에서 돈을 꺼내는 규칙이 아니라 은퇴 후 세율 구조를 강제하는 장치에 가깝다.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RMD 금액도 커지고 이는 소득세 뿐만 아니라 메디케어 보험료(IRMAA), 사회보장연금 과세 비율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은퇴자들이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태도로 이 문제를 미루지만 그 시점에는 선택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미 계좌에 쌓인 자산은 세법이 정한 방식대로 인출해야 하고 조정할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자산은 충분한데도 세후 현금흐름이 비효율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규모보다 자산 관리가 중요
 
48조 달러라는 숫자는 인상적이지만 개인 투자자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내 은퇴자산은 어떤 세금 구조를 갖고 있는가, 인출 시점에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기대수명과 생활비 구조에 어떻게 맞물리는가 하는 문제다.
 
첫째, 자신의 은퇴자산을 세금 기준으로 재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 세금이 이연된 자산, 세금이 면제되는 자산, 이미 과세가 끝난 자산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은퇴 이후의 선택지는 크게 달라진다. 표면적인 자산 배분보다 세후 기준의 실질 배분을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단계다.
 
둘째, 투자 전략만큼이나 인출 전략이 중요해졌다. 언제 어떤 계좌에서 얼마를 꺼낼 것인지는 단순한 현금흐름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세금 관리 문제다. 은퇴 직후 몇 년의 선택이 이후 수십 년의 세금 부담을 결정짓는 경우도 적지 않다.
 
셋째, 은퇴 계획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다년간의 과정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시장 상황, 세법 변화, 건강 상태, 가족 구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그에 맞춰 계획도 지속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축적’에서 ‘통제’의 시대로
 
미국 은퇴 시스템은 지난 수십 년간 자산 축적에는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제 다음 단계의 과제는 그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번 분기 리포트는 은퇴자산이 충분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자산이 개인의 판단과 관리 능력에 점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은퇴자산 48조 달러 시대는 단순히 부의 시대가 아니라, 선택의 시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은퇴 직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준비되는 것이다.  

켄 최 아피스 자산관리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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