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공리주의는 노예의 상태? 홉스가 말한 공리주의는 뜻이 달라도 조화 선택한 군자의 화이부동과 비슷
존 로크는 “인간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하나의 정부에 복종할 때, 그들이 서로 인정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목적은 자기들의 사유재산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에서는 사유재산의 확보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소유한 것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만약, 인간이 야생의 자연 상태에 놓이게 되면, 각각은 자기보존이라는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동할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이것을 당연히 인간이 지닌 본래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권리를 자연권이라고 했다. 모든 인간에게 자연권이 허락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빼앗아도 좋다는 말이므로 인간들은 끝없는 배틀로얄(전원이 전원을 적으로 삼는 전쟁)의 상태로 빠지게 된다.
홉스는 이 상황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다. 그는 이 무질서를 벗어나기 위해 국가가 계약을 바탕으로 성립됐다는 국가계약설을 폈다. 이것은 취소할 수 없다고 해서 절대주의적 군주제의 기초가 되게 했다.
공리주의자들은 자연권 행사의 전면적인 승인은 결국 자연권의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모순을 낳게 된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일단 자연적인 욕구를 단념하고, 사회계약에 기초해서 창설된 국가에 자연권 일부를 위임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사리사욕의 달성을 위해 확실한 방법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니체에 따르면 “대중사회란 구성원들이 무리를 이루어 오로지 이웃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가장 우선하여 배려하는 것이 바탕이 되는 사회”라 했다. 즉, 비판이나 회의 없이 전원이 눈사태를 피해 달려가듯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심리를 대중사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비주체적인 군중을 ‘짐승의 무리’라고 했다. 그곳에서, 짐승의 무리가 지닌 도덕관념은 평등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마음을 통일해서 모든 특권과 우선권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동고동락하고, 같은 종교를 신봉하고, 함께 느끼고 고민하는 무리라 했다. 이것은 대단히 공리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로크나 홉스가 생각했던 공리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그들은 이기적인 시민들이 자연권 일부를 국가에 위임한 것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가장 큰 이익을 얻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전략을 사회 구성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공리주의 도덕은 성립할 수 없다고 니체의 주장과 달리했다. 예전에 공자가 말한 ‘군자란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부화(同而不和)한다’가 생각난다. 니체가 말한 ‘짐승의 무리’는 소인의 뜻과 가깝지 않을지. 부화뇌동(附和雷同)했으나 상황이 정리되면, 소인의 근성이 발휘되어 조화되지 못하고 자기 보따리를 찾을 것 같다.
그러나 로크나 홉스가 말한 공리주의는 서로 뜻이 다르더라도 군자처럼 우선 대(大)를 위하여 소(小)를 희생하는 조화(調和)를 취할 것 같다. ‘짐승의 무리’는 타인과 같으면 선, 다르면 악이 된다. 그것이 이들이 지닌 도덕의 유일한 기준이다. 니체는 이웃 사람을 모방하고, 집단 전체가 한없이 균질화되어 가는 사태에 희열을 느끼는 인간들을 노예라고 불렀다. 니체는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인간을 초극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이제까지 모든 존재는 자기를 능가하는 무엇인가를 창조해 왔다. 너희는 그 위대한 조수의 썰물이 되길 원하며 인간을 초극하기보다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