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신분을 묻지 않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뛰놀고, 노인들이 식사를 나누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공동체의 중심이다. 특히 이민자 사회에서 교회는 종교 시설을 넘어, 법 이전에 작동하는 안전지대다.
그 교회에 총을 든 연방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지난달 샌퍼낸도밸리 노스힐스 연합감리교회에서는 방과 후 프로그램과 급식 나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과 부모, 노인들이 교회 마당에 모여 있던 그 시간, 얼굴을 가리고 총을 든 연방 요원들이 교회 부지로 진입해서 한 상인을 체포했다.
국토안보부(DHS)는 “체포 대상을 추격했을 뿐, 교회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법적으로는 설명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총을 든 요원들이 교회 마당과 예배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장면이 남긴 공포와 충격은 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전제가 있다. 이민법 집행은 정부의 정당한 행위다. 국경이 뚫리고 불법체류자가 넘치는 사회는 지속이 어렵다. 따라서 불법체류자 단속 자체를 부정하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 법 집행은 엄중하고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에도 동의한다. 이 점에서 이민 단속 강화를 무조건 비난하는 시각은 합리적이지 않다.
문제는 방식이다. 법의 목적이 공동체의 질서 유지와 안전에 있다면, 집행 방식 역시 공동체의 존엄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민자 사회에서 교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마지막 숨구멍 같은 곳이다. 그런데 공권력이 교회의 문턱을 가볍게 넘기 시작할 때, 숨구멍을 잃어버린 이민 공동체는 급격히 위축된다. 결국 교회 내 단속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겨냥한다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단속 방식은 결국 법원이 다른 언어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미네소타주에서 판사 서명이 없는 행정영장으로 5세 아동과 아버지를 함께 연행·구금한 사건을 심리한 텍사스 연방 법원은 이 사안을 이민법이 아니라 헌법적 문제로 접근했다. 해당 사건의 핵심 쟁점이 국가 권력의 행사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프레드 비어리 담당 판사는 구금된 부자의 즉각 석방을 명령했다. 그는 행정부가 발부한 행정영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여우에게 닭장을 맡기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판결문에는 수정헌법 4조 전문이 그대로 인용됐고, 공권력 남용을 경계한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경고도 함께 담겼다.
이 판결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형식에 있다. 판결문 말미에는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라는 마태복음 19장 14절 내용을 인용했다. 그리고 판결문을 마무리한 문장 역시 요한복음 11장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였다.
이는 종교적 판결이 아니다. 법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에 대한 법원의 성찰이라고 볼 수 있다.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법은 어디까지 냉정할 수 있는가, 권력 행사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비어리 판사 역시 5세 아동 부자의 추방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이 ‘질서 있고, 인도적이며 헌법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체류자 단속의 정당성과 인간의 존엄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노스힐스 교회 단속 논란도 같은 선상에 있다. 질서는 물리적인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권력이 스스로 멈춰 서야 할 경계를 알 때, 그 권위는 존중을 받는다. 교회의 문턱은 그 경계 중 하나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법은 권위를 잃게 된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필요하다. 그러나 단속 요원들이 총을 들고 아이들이 있던 교회 마당을 가로지르는 방식이 과연 최선이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법 집행은 무조건 정당하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우리가 지켜온 공동체의 가치는 서서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