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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앤소니 김과 최가온

Chicago

2026.02.18 11:50 2026.02.1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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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호

박춘호

한때 그는 라이언 김이라고 불렸다. 타이거 우즈에 대적할 수 있는 젊은 골프 선수라는 의미에서 라이온과 타이거로 부르기를 좋아했던 골프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985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앤소니 김은 김하진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2006년 프로로 데뷔했다. 당시 21세였고 오클라호마대 3학년을 마치고 프로로 전향한 케이스였다. 2007년 시즌을 앞두고 퀄러파잉 스쿨을 통해 시즌권을 획득한 앤소니 김은 탑10에 네 차례 들어가면서 순조로운 투어 시즌을 보냈다.  
 
첫 우승은 2008년 와코비아 챔피언십. 브리티시 오픈 챔피언 벤 커티스를 5타차로 따돌리고 투어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우승 상금은 115만달러. 투어 신인급 선수로 화려하게 데뷔한 순간이었다. 이후 같은해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AT&T 내셔널에서 우승했는데 이 대회 우승으로 타이거 우즈 이후 최초로 25세 이하 선수가 PGA 투어 대회에서 2승 이상을 한 선수가 됐다. 덩달아 앤소니 김의 세계 랭킹 역시 6위까지 치솟았다.  
 
2008년 9월에는 미국 대표팀으로 선발돼 라이더 컵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는 유럽팀의 최강자 서지오 가르시아를 상대로 싱글 매치에서 승리했다. 2009년 마스터스에서는 11개의 버디를 기록, 이전 기록이었던 닉 프라이스의 10개를 넘어섰다. 프레지던트컵에서도 3승을 따내 그의 전성기를 써내려갔다. 이후 2010년 쉘 휴스턴 오픈에서도 우승, 30년만에 25세 이전에 PGA 투어 3승을 기록한 다섯번째 선수가 됐다. 다른 선수들로는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 서지오 가르시아, 아담 스콧 등이 있다. 이런 쟁쟁한 선수들과 나란히 선 선수가 앤소니 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불행도 시작됐다. 엄지 손가락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7개월 이상 투어에 돌아오지 못했다. 더 큰 시련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2년 왼쪽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일년 가량을 재활로 보내야 했다. 이후 어떤 대회에서도 앤소니 김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2014년에는 앤소니 김이 더 이상 프로 골프 선수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또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경우 보험을 통해 최대 2000만달러를 받을 것이라는 뉴스도 이어졌다.  
 
앤소니 김은 2016년 자선골프대회에 나서기도 했지만 프로 선수로 뛰는 모습은 없었다. 그러다 2024년 시즌을 앞두고 리브 골프 리그(LIV)에서 앤소니 김이 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종의 와일드 카드 자격으로 출전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시즌 랭킹 55위에 머물러 탑 48명만 받을 수 있는 시즌 자격 유지권에서 멀어졌다. 이후 시즌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2026년 1월 프로모션 대회에서 최종 3위에 입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앤소니 김의 부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 15일 끝난 아델라이드 대회에서 16년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최종 라운드는 1위를 달리던 존 람과 브라이슨 디샘보와 같은 스타 플레이어와 맞대결을 펼쳤다. 5타차 뒤진 채 시작했지만 최종 스코어는 2위와 3타차를 기록한 완벽한 승리였는데 보기는 하나도 없이 무려 9언더파를 쳤다.  
 
그의 화려한 복귀에는 부상과 약물 중독에서 허덕이다 가족을 꾸리고 딸을 갖게된 안정된 삶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2년 이상 술을 입에 데지도 않고 음료수는 아이스티를 마신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특히 그의 딸 벨라를 향해 “그린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에게 아빠가 루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스포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담대한 서사였다. 또 그와 같이 약물에 중독되거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면 한다며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Don’t fXXXing quit. That’s it. Don’t fxxxing quit.”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신을 믿고 가족을 가졌으며 약물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됐다. 나는 원하는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예전의 앤소니 김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 올림픽에서도 시련을 겪고 정상에 오른 고교생이 나왔다. 세화여고에 재학 중인 올해 17살의 최가온 선수 얘기다. 최가온은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 출전해 1, 2차 시기에 모두 실패한 뒤 마지막 3차 시기에 모든 걸 쏟아부어 기어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1차 시기에서는 딱딱한 얼음 바닥에 착지하면서 머리와 무릎에 큰 부상을 입은 뒤 출전 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적같은 투혼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모습은 오랫동안 스포츠팬들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이었다. 부상 직후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대로 들것에 실려 내려오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발가락부터 서서히 힘을 주자 일어나고 걸을 수 있었다는 최가온의 투지는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남았다.  
 
아울러 최가온의 멘토이자 우상이었던 클로이 김이 최가온의 우승을 칭찬하며 누구보다 기뻐한 모습은 스포츠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각본없는 드라마로 손색이 없었다. 이런 서사가 스포츠가 갖고 있는 온전한 매력이 아닐까. 멋진 기량과 플레이로 기억이 되지만 그 장면을 위해서 선수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과 역경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안을 주고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이 스포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제2의 앤소니 김과 최가온, 클로이 김에게 최근 나타난 명장면은 영원히 기억될 순간일 것이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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