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기자의 눈] 배달 로봇은 되고, 웨이모는 안 되는 이유

Los Angeles

2026.02.24 17:39 2026.02.24 18:3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우훈식 경제부 기자

우훈식 경제부 기자

LA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 끝까지 배달을 하겠다며 물에 잠긴 길을 낑낑대며 건너던 작은 배달 로봇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돌았다. 기계인데도 왠지 월급 받는 근로자가 비 맞으며 출근하는 모습 같아 웃기면서도 짠했다. 댓글에서도 “퇴근시켜줘라”, “오늘도 실적 채운다”, “너무한 거 아니냐” 같이 안쓰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장면이 더 재밌는 이유는 그 로봇들이 그냥 바퀴 달린 배달 상자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는 데 있다. 앞쪽에는 눈처럼 보이는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고, 로봇마다 각자의 이름이 있다. 살짝 기울어지면 고개를 갸웃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한 길에서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다 힘겹게 통과하면 지켜보던 이들의 박수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자율주행인 웨이모는 정반대다. 차가 도로에 멈춰 서거나 비보호 좌회전 타이밍을 못 잡으면 다른 운전자들은 그 옆을 쌩하게 지나가고, 온라인 커뮤니티엔 “멍청한 웨이모 때문에 또 길이 막혔다”는 불만이 올라온다. 시위 현장에서는 분노의 분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웨이모가 오늘 힘들어 보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둘 다 테크 기업이 만든 자동화 시스템이고, 둘 다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건 똑같은데 감정의 결은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배달 로봇은 보도에서 만난다. 잠깐 길을 막아도 그냥 옆으로 비켜 가면 끝이다. 주말 산책 중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바쁜 하루 속에서 소소한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반면 웨이모는 운전 중 도로 위에서 만난다. 도로는 이미 모든 사람이 예민해져 있는 공간이다. 신호 하나, 차선 하나에도 흐름이 끊기면 바로 체감된다. 출근길 1분은 체감상 10분이다. 그 상황에서 귀여움을 느낄 여유는 없다.
 
속도도 다르다. 배달 로봇은 느리다. 느리기 때문에 표정이 보인다. 눈처럼 보이는 화면이 멈칫하면 “어?”하는 느낌이 들고, 방향을 틀면 “길 찾는 중인가 보다”라는 해석이 붙는다. 반대로 자동차는 원래 매끄럽게 흘러야 하는 존재다. 조금만 어색해도 작동 오류가 된다.  
 
사람은 얼굴처럼 보이는 것에 자동으로 감정을 이입하고, 이름이 붙는 순간 그것을 하나의 자의식 개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평가 기준도 달라진다. 성능이 조금 부족해도 “아직 배우는 중”이 되고, 길을 헤매도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가 된다. 같은 오류라도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캐릭터의 실수로 번역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꽤 큰 이점이다. 낯선 기술이 도시 안으로 들어올 때 가장 큰 장벽은 기능보다 거부감인데, 캐릭터화는 그 심리적 마찰을 낮춘다. 사람들은 차가운 기계보다 성격이 있는 존재에 훨씬 관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임의 무게를 낮추는 효과다. 완벽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보일 때는 작은 문제도 크게 느껴지지만, 캐릭터로 보이면 기대치 자체가 인간적인 수준으로 낮아진다. 기업은 기술을 도시에 안착시키는 시간을 벌 수 있고, 이용자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정서적으로 적응한다. 귀여움은 기능은 아니지만 일종의 완충 장치인 셈이다.
 
여기에 요즘 사회 분위기도 겹쳐 있다. 사람들은 점점 거대한 시스템에는 피로감을 느끼고, 작은 캐릭터에는 마음을 준다. 얼굴 없는 자동응답, 이유를 알 수 없는 알고리즘, 설명 없는 정책 변경 같은 것들에 이미 지쳐 있다. 그래서 도로 위의 자율주행 차를 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자동화 시스템처럼 보인다. 반면 눈 달린 작은 배달 로봇은 현장에서 뛰는 직원처럼 보인다. 분노의 화살 대신 연민이 느껴진다. 캐릭터는 응원의 대상이 되고, 시스템은 평가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기술과 불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마주할 때 느껴지는 감정에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