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가족의 시네마 천국 (1) 유일 단관 극장 ‘가디나 시네마’ 부모 이어 딸이 50년 간 운영 올 수퍼보울 광고에 나와 화제
가디나 시네마 주디 김씨가 상영작이 바뀔 때마다 간판 글자를 하나씩 손으로 교체하고 있다. 80년 전통의 이 극장은 지금도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월 전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 ‘수퍼보울’ 중간 광고(사진)에서 낡은 동네 영화관 한 곳이 등장했다. 〈본지 2월 18일자 A-4면〉 넷플릭스 영화 예고편의 배경으로 사용된 이곳은 가디나 지역의 유일한 단관 극장 ‘가디나 시네마’다. 이 극장은 1946년에 개관했다. 이후 한인 이민자 가족이 인수해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켜왔다. 80년 동안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해 온 ‘동네 극장’이다. 멀티플렉스 체인과 OTT 플랫폼 확산 속에 동네 극장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가운데 이곳 역시 한때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폐쇄 위기의 극장을 지켜낸 것은 한인 가족과 지역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단관 극장의 불을 밝히고 있다. 지역 사회의 역사와 주민들의 추억이 배어 있는 가디나 시네마. 미주중앙일보는 사라질 뻔했던 동네 극장을 지킨 한인 이민자 가족의 삶을 영화 필름을 돌리듯 기록했다.
가디나 시네마에는 자동문도, 화려한 로비도 없다. 유리문 옆으로는 작은 매표소가 튀어나와 있다. 관객이 두꺼운 유리창 앞에서 “한 장 주세요”라고 말하면 안쪽에서 종이 티켓 한 장이 쓰윽 밀려 나온다. 얇은 종이 위엔 검은 잉크로 극장 이름과 날짜가 찍혀 있다. 유리문 너머로는 오래된 팝콘 기계와 손때 묻은 매점 카운터가 보인다.
극장에 와서 맨 처음 문을 열고, 마지막에 불을 끈뒤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주디 김씨는 이 극장의 주인 겸 매니저, 상영 프로그램 관리자, 동시에 매점 직원이기도 하다.
주디는 상영 일정이 빡빡한 주말이면 아침 일찍부터 극장에 나온다. 포스터를 정리하고 매점 재고를 확인한다. 오래된 카펫의 먼지를 한 번 더 쓸어내고, 객석을 돌며 작은 쓰레기 하나까지 직접 줍는다. 관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매표창구에 앉아 티켓을 끊어주고 매점에서 팝콘을 튀긴다. 상영이 끝나면 다시 극장을 돌며 객석에 남아 있는 쓰레기를 치운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문을 잠그는 사람도 김씨다. 극장의 불은 그렇게 한 사람의 손을 통해 켜지고 꺼진다.
가디나 시네마는 사우스베이 지역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단일 스크린 독립극장이다. 80년간 이 동네에서 변함없이 스크린을 밝혀왔다. 그 시간 속에는 한인 가족의 이민사와 주민들 사이의 추억이 있다.
금요일 밤이 되면 이 작은 극장으로 지금도 주민들이 다시 모인다. 낡은 카펫 위로 발걸음이 이어지고 오래된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 불이 켜진다. 영사기를 통해 돌아가는 필름에는 1세대 한인 이민자 가족의 삶이 함께 녹아 있다.
영화 상영이 없는 날에도 주디는 극장에 나온다. 그의 하루는 상영관이 아닌 극장 밖에서 시작된다. 간판을 다는 작업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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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으며 공들인 스크린, 이젠 커뮤니티 보물
글자 끼우는 간판, 아날로그 유산 주민 추억 담긴 동네 문화 공간 이웃과 힘 모아 폐쇄 위기 넘겨
주디는 작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플라스틱으로 된 알파벳 글자를 하나씩 빼낸 뒤 다시 끼운다. 주말 상영작 제목을 맞추는 작업이다. 바람이 불면 글자가 흔들리기도 하고 오래된 글자는 종종 금이 가 있다. 깨진 글자는 빼고 창고에서 새 글자를 찾아 끼워 넣는다. 전광판처럼 버튼 하나로 바뀌는 간판이 아니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글자를 일일이 맞춰야 하는 방식이다.
글자를 끼우는 작업이 끝나면 주디는 도로 건너편으로 걸어가 간판을 다시 올려다본다. 글자를 제대로 붙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상영작 제목이 정확히 맞춰졌는지 확인하는 일은 주민들에게 이 극장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손짓이기도 하다.
가디나 시네마 건물은 1946년에 세워졌다. 당시 이름은 ‘파크 시어터(Park Theatre)’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교외 지역에는 이런 식의 동네 단관 극장이 빠르게 늘어났다. 주민들이 집에서부터 걸어와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네이버후드 시어터(neighborhood theater)’ 시대였다.
아이들은 토요일 아침마다 영화를 보러 줄을 섰고 젊은 연인들은 이곳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당시만 해도 동네마다 영화관이 하나씩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한때 전역에는 수천 개의 단일 스크린 극장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쇼핑몰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춘 극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관객들은 점차 그곳으로 이동했다. 대형 체인 극장이 확산되면서 동네 단관 극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김수웅씨가 관객석에서 아내의 영정 사진을 안고 딸 주디와 함께 가디나 시네마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디나 시네마 역시 그런 변화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1976년부터 이 극장은 새 주인을 맞았다. 주디의 아버지 김수웅(영어 이름 존)씨와 어머니 고 김주명(영어 이름 낸시)씨 부부였다.
김씨 부부는 1971년 미국으로 이민 왔다. 아버지 김씨가 처음 시작한 일은 가발 상점이었다. 이후 다운타운 LA의 한 극장 영사실에서 보조 일을 맡게 됐다. 일과는 화장실 청소로 시작됐다. 객석과 화장실을 치운 뒤에야 영사실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영사기를 가까이에서 보며 극장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영사기가 돌며 스크린에 빛이 쏟아지는 장면을 매일 지켜보면서 언젠가 자신의 극장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1976년 김수웅(오른쪽)씨와 아내 고 김주명(왼쪽)씨가 직원과 함께 한 모습. 오른쪽 사진은 인수 당시 가디나 시네마 외관.
이후 작은 마켓을 인수해 장사를 시작했고 돈을 모아 결국 극장을 사게 됐다. 당시 이 극장(당시 파크 시어터)을 운영하던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은퇴를 준비하며 매각에 나섰고 김씨 부부는 힘들게 모은 계약금 5만 달러를 마련해 극장을 인수했다.
그러나 극장을 맡았을 때는 이미 동네 영화관의 전성기가 지나가던 시점이었다. 관객은 서서히 줄었고 시설은 낡아 갔다. 영화 상영이 끝나면 객석에는 종이컵과 팝콘 부스러기가 남았다. 끈적한 탄산음료 자국이 카펫에 남기도 했다.
아버지 김씨는 밤마다 화장실과 객석을 청소했다. 마지막 관객이 떠난 뒤에도 극장의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밤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면서 ‘이게 내가 꿈꾸던 미국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극장 사장이 됐지만 여전히 청소와 잡일을 직접 해야 하는 현실, 그럼에도 이곳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교차했다.
극장은 그렇게 한 이민자 가족의 삶과 함께 굴러가기 시작했다.
주디 역시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을 대부분 극장에서 보냈다. 방과 후에는 매점 뒤에서 숙제를 했고 밤에는 영사실 계단에 앉아 영화를 봤다.
2층 객석 뒤쪽에는 작은 유리창이 달린 방이 하나 있다. ‘크라잉 룸(crying room)’이다. 주디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기도 하다. 크라잉 룸은 1940~50년대 영화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공간이다. 어린아이가 울면 부모가 잠시 들어가 아이를 달래며 계속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만든 방이다. 유리창 너머로 스크린이 보이고 스피커로 소리가 들리도록 설계됐다.
가디나 시네마에도 그 시절의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객석 뒤편의 작은 방과 낡은 유리창, 오래된 스피커까지 모든게 그때 모습 그대로다. 당시 사용하던 필름 영사기도 아직 그대로 놓여 있다. 지금은 대부분 디지털 상영으로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금속 필름 릴을 돌려 영화를 틀었다. 영화 한 편이 끝나면 필름을 다시 감아 다음 상영을 준비해야 했다.
주디는 “극장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사우스베이에는 한때 이런 동네 극장이 여럿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가디나 시네마는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흔적 중 하나다.
그럼에도 금요일 밤이 되면 여전히 스크린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붉은 간판 아래로 사람들이 모이고 낡은 카펫 위로 관객들이 들어온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순간 이곳은 다시 활기를 띤 동네 극장이 된다. 스크린의 불빛은 수십년 간 꺼지지 않고 이 동네를 여전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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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미주중앙일보의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2025년 12월 25일 게재된 기사를 한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