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을 100일도 남기지 않은 2026 월드컵이 중동의 포화 속에 휘말렸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격해지면서 적대국 영토인 미국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이란 대표팀의 참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미국은 이번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주최국이면서 이란을 상대로 군사 공격을 퍼붓는 당사국이다. 현재 대진표에 따르면 이란 대표팀은 이번 여름 로스앤젤레스와 시애틀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 조별 리그 세 경기를 치러야 한다. 메디 타지 이란 축구협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월드컵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며 본선 불참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제 스포츠계는 이번 사태를 전례 없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태평양 대학교의 줄스 보이코프 교수는 과거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FIFA가 러시아의 출전권을 박탈한 사례를 언급했다. 다만 이번에는 개최국 자체가 전쟁 당사자라는 점이 다르다. 피파가 주최국인 미국을 상대로 러시아와 같은 수준의 제재를 내놓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FIFA 지도부를 향한 비판도 거세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밀착 행보를 보이는 것을 두고 스포츠를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이용하는 스포츠 워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메트로 밴쿠버의 이란 사회도 축구 축제보다는 고국의 정세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밴쿠버에서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바바크 샤바지 씨는 최근 두 달간 고국에서 벌어진 사건들로 인해 축구는 이미 시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가 지난 1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며 7,000명 이상이 숨졌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월드컵이 정권 홍보 수단으로 변질할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난 2월 28일 노스 밴쿠버 론스데일 애비뉴에서는 이란 최고 지도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바바크 샤바지 씨는 당시 모인 사람들이 월드컵 우승보다 더 큰 환호를 보내며 고국의 변화를 갈구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아직 이란의 월드컵 참가 일정에는 공식적인 변동이 없다. 밴쿠버에서는 이번 여름 총 7번의 경기를 열지만 미국이나 이란의 경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BC주 정부는 국제 정세에 따라 추가 경기 개최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세계 최대 축구 축제가 중동의 포화 속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