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최정우 배우는 LA 한인 사회와도 인연이 있다. 그가 연기 공부를 위해 LA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1997년 초, 우리는 만나면 연극 이야기로 시작해서 연극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어느 날 최정우가 33회 동아 연극상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휩쓸었던 ‘돌아서서 떠나라’(이만희 작/채윤일 연출)의 LA공연을 추천했다. 본인이 한국에서 이 작품에 출연하였기에 여자 주연인 채희주 역을 맡을 여배우만 캐스팅되면 공연이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나 또한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곧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한인 여자 연극인 중에서 극 중 의사인 채희주 역에 적합한 배우를 찾았다. 디행히 무대 경험도 많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방송인 고영주씨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동네방네 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기가 있었던 때라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해 5월 첫째 주를 공연 날짜로 정하고 공연장을 물색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한인타운에 있는 가든 스위트 호텔 2층 테라스였다. 당시 이 호텔은 한국 첫 프로 테니스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덕희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호텔 2층 야외 테라스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200석 규모의 디너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5월 8일부터 11일까지 4회 공연을 올리기로 하고 준비 단계에 있을 때 마침 서울에서 작가 이만희가 합류하게 되어 연출부는 한층 힘을 얻었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이만희 작가의 대표적인 2인 극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를 앞둔 조직폭력배 두목 공상두와 여의사 채희주의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는 “아름답고 멋지게 헤어지는 법, 슬픔의 재미, 감동적인 언어 미학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했다.
5월 초순, 다소 서늘한 바람이 불었던 주말 저녁, 저녁 식사를 끝낸 관객들은 극의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연극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공상두가 “당신께서 저한테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 여자를 만나고...사랑하고...혼자 남기고 떠나는게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라는 중요한 대사를 하는 순간, 호텔 앞에서 경찰 차량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연극이 10초가량 정지되는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두 배우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멋지게 연극을 갈무리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한인 타운에서 처음 시도된 야외 연극 무대에 4일간 8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LA 공연 후 1998년 영화 ‘약속’(주연 박신양, 전도연)으로 재탄생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