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과학과 관측

Chicago

2026.03.27 13:2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박종진

박종진

천문학 사상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견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요하네스 케플러를 꼽을 수 있다. 그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은 한 천체가 다른 천체를 공전할 때, 정확히 원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타원 궤적을 그린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케플러가 이런 발견을 하게 된 데는 그의 스승이 평생 관측하여 물려준 기록이 큰 역할을 했다. 바로 케플러가 조수로 일했던 튀코 브라헤가 남긴 관측 자료다. 케플러는 스승이 관측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케플러의 법칙을 유도해 냈고 결국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튀코 브라헤는 남다른 시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아주 멀리서도 물체를 선명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가 죽고 얼마 되지 않은 1546년 덴마크에서 출생한 그는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했지만, 천문학에 더 관심을 보였고 자신이 지닌 특출한 시력과 간단히 포기하지 않는 성격을 바탕으로 밤하늘의 별을 오랫동안 꼼꼼히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후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천동설을 신봉하여 지구 주위를 태양과 달이 공전한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 일부를 지지했다. 그러면서도 수성, 금성, 화성 등 행성은 그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을 접목한 좀 엉뚱한 주장을 했다. 망원경이 사용되기 전에 활동했던 그는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했는데 눈이 좋아서 그랬는지 그의 관측 결과는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관측에서는 난다 긴다 하던 그였지만 그 결과를 분석하는 일은 그의 능력으로는 벅찼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해 줄 보조를 구했는데 바로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브라헤와 케플러는 그렇게 인연을 맺긴 했지만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브라헤의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난 어느 날, 스승 브라헤가 어떤 귀족의 파티에 참석했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자주 화장실에 가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소변을 참다가 그만 방광에 이상이 생겨 죽었다. 세상에 불에 타서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고, 과로해서 죽은 사람은 봤어도 오줌 참다가 죽은 사람은 처음이다. 젊은 날 결투를 하다 아차 하는 순간 코끝을 잘린 그는 평생 가짜 코를 붙이고 살았다는데 의수나 의족은 들어봤어도 가짜 코도 금시초문이다.  
 
천체는 원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고 확신했던 케플러는 스승이 남긴 자료 중 화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기록을 여러 번 계산해 봤지만, 약간의 오차가 있었다. 사실 아주 작은 오차여서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만한 차이였지만 케플러는 스승의 관측을 신뢰한 나머지 계산을 반복한 결과 정확한 원이 아니라 아주 조금 찌그러진 원, 그러니까 타원 궤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성을 비롯하여 행성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공전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고작 1년 정도 함께 일한 스승이었지만 케플러는 자신의 확신을 포기할 정도로 스승의 관측 기록을 믿었다.  
 
학문이 세분되기 전 과학과 철학은 같은 범주에 속했다. 그러다 우리가 보고 접할 수 있는 것의 관찰이 이루어지고 관측되면서 그런 것들은 철학에서 벗어나 과학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관측하여 기록으로 남긴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튀코 브라헤이고, 그의 위대성은 바로 과학의 밑바탕인 관측에 있다.  (작가)
 

박종진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