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국 가요계는 많은 음악 그룹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가운데 음반 2장으로 가요시장을 석권한 혼성 댄스그룹 (이상민·김지현·고영욱·채리나)이 등장하는데 바로 ‘룰라’다. 1집의 ‘백일째 만남’과 2집 수록곡 ‘날개 잃은 천사’로 단숨에 정상에 올라섰다. “천사를 찾아 ~사바 ~ 사바사바~ ”라는 재미있는 가사에 엉덩이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려주는 가벼운 춤은 당시 누구나 따라 했을 정도로 인기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인기 절정의 룰라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고 1996년 1월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내용인즉슨 3집 수록곡 ‘천상유애’가 1992년에 결성된 일본 남성 그룹 ‘닌자(Ninja)’의 ‘오마츠리 닌자’를 표절하였다는 의혹이었다. 멜로디, 후렴구, 리듬 등이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가 내려졌고, 방송 출연 및 앨범 판매 중단, 이어 활동 중단으로 이어졌다. 결국 리더 이상민과 멤버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버뱅크에 거주하면서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이때 룰라의 소속사와 교분이 있었던 필자는 미국에서 명예 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KBS ‘일요스페셜’에 소개된 백혈병 입양인 브라이언 성덕 바우만(당시 공사 4학년)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던 시절이라 ‘성덕 바우만과 백혈병 환자 돕기 자선 행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룰라 멤버들은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다. 먼저 멤버들은 공군사관학교를 찾아 병상의 성덕 바우만에게 6월 자선 콘서트 취지를 설명하고 사관학교 교회에서 바우만의 쾌유를 비는 기도도 드렸다.
공연 일자는 1996년 6월 4일, 장소는 슈라인 오디토리엄(6300석)을 예약했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스타디움이 최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LA 공항 인근 ‘할리우드 팍’(2만석)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룰라와 함께 헌혈 동참 캠페인을 겸한 대대적인 팬 사인회를 여는 등 홍보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좀 더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룰라 멤버들이 LA 공항에서 헬기를 타고 공연장으로 내려오면 하얀색 리무진이 그들과 함께 공연장을 한 바퀴 돌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퍼포먼스 후 무대로 이어지는 연출을 선보였다.
공연은 예상대로 대성공이었다. 팬 1만5000여명이 공연장을 찾았으며, 수백 명이 헌혈에 동참했다. 공연 수익금 중 2만 달러를 룰라 이름으로 아시안골수기증협회 (AMMM)에 기부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자선 공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룰라는 재기에 성공했다. ‘3!4!’라는 히트곡이 담긴 4집을 발표하며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 공연은 관객, 아티스트, 수혜자, 스폰서, 기획사 등 모두에게 큰 보람을 선사했다. 그날 1부를 진행하며 공연 취지를 널리 알렸던 방송인 동문자, 정재윤, 김병규씨 등 세 분의 수고도 잊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두 분(정재윤, 김병규)은 이미 고인이 됐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공연장을 찾았던 청소년들은 지금 40~50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룰라와 함께했던 그 날의 아름다운 콘서트를 기억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