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 DEA 애틀랜타 지국장이 조지아주 챔블리 사무실에서 취임 기념 인터뷰에 나섰다. 장채원 기자
한 꼬집, 뾰족한 연필심 끝에 묻은 정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펜타닐 치사량(2mg)이다. 미국 정부는 작년 12월 펜타닐과 전구체(핵심 원료)를 대량살상무기(WMD)로 지정했다. 정재우(53) 마약단속국(DEA) 애틀랜타 지국장은 “마약은 미국의 국방력, 안보 역량과 직결된다”며 “국가를 위해 전장에 나가 싸워줄 18~45세 미국인이 마약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찾은 DEA 애틀랜타 지부는 은밀한 단속 작전을 펼치는 기관 성격을 보여주듯 건물 외부에 간판 하나 달려 있지 않았다. 정 국장은 이곳에서 조지아주·노스캐롤라이나주·사우스캐롤라이나주 3개 주 내 15개 사무소의 직원 900여명을 통솔하고 있다. 첫 한인 지국장인 그는 이달로 임명 5개월차를 맞았다. 연방수사국(FBI), 국토안보수사국(HSI), 국세청(IRS), 연방보안관실(USMS) 등 주요 연방기관과 주 및 지방정부 기관 인력도 파견돼 이곳에서 DEA 소속 요원과 동일하게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애틀랜타는 동남부 지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한다”며 “멕시코 슈퍼랩(대형 공장)에서 만들어진 마약이 18륜 대형트럭·항공기·선박을 통해 이곳에 들어온 뒤 북쪽으로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남쪽으로 올랜도와 탬파까지 뻗어나간다”고 전했다. 시날로아·할리스코 신세대·라 파밀리아 등 멕시코 카르텔(기업형 범죄조직)이 범죄를 지휘한다. 여기 중국도 핵심 역할을 한다. DEA는 펜타닐 유입에 있어 중국이 합성 마약 원료인 전구체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멕시코가 대량 제조를 맡는 일종의 분업구조를 이뤘다고 본다.
DEA의 존재 목적은 마약 네트워크를 와해시키고 무력화하는 데 있다. 마약 유통경로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역할 외에도 돈세탁 등 금융범죄와 마약 자금 추적을 수행한다. 정 국장은 “카르텔은 미국인들이 마약에 중독되어야만 자신들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결과 니타젠, 사이클로로핀, 카펜타닐 등 펜타닐과 비슷한 구조지만 효과가 더 강력한 유사체들이 새로 등장하고,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일반 의약품에 펜타닐이 혼입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애더럴(각성제), 자낙스(항불안제), 옥시코돈(진통제) 등으로 위장된 펜타닐이다. 과거 검찰청(DA) 연구소가 처방 약처럼 생긴 알약 10개를 압수, 분석했더니 이중 7개에서 2mg 이상의 펜타닐이 검출되기도 했다. 그는 “눈으로 분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출처가 불분명한 약을 복용하는 것은 목숨을 건 러시안 룰렛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의사 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구매한 약물이 아니라면 친구, 이웃에게서 받은 약을 함부로 복용해선 안된다.
정 국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10살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왔다. 군인 가족으로 자주 이사를 다니다 고등학교 무렵 앨라배마주에 정착, 잭슨빌 주립대학 법의학과를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앨라배마에 살 때 어머니가 둘루스에 정말 자주 방문하시곤 했다”며 “그땐 이유를 몰랐는데 이곳에 와보고 엄청나게 큰 한인 커뮤니티가 있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취미가 골프인데, 연세 지긋하신 한인 어르신들이 골프장에 많다. 그들을 볼 때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정보장교로 4년 군 복무를 마치고 1999년 텍사스주에서 DEA에 합류, 올랜도, 워싱턴 D.C.를 거쳐 2020년 애틀랜타에 배치됐다. 처음 DEA 현장 요원으로 일한 곳은 캘리포니아주 LA. “짜릿한 스릴을 좇아 일을 시작했다. 마약이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다 2015년부터 펜타닐 위기가 전염병 수준의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비로소 이 일이 생명을 구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의사가 될 만큼 머리가 좋진 못하지만 이 일이라면 나도 사회에 보탬이 될만큼 잘할 자신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약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크면 오히려 중독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음지로 숨어들어 범죄조직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는다. 마약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왜 위험한지 잘 알아야 친구나 지인이 권할 때 거부할 수 있다. 그는 “최신 정보를 습득하고 주변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경각심을 퍼뜨릴 수 있다”며 “훗날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할 때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결단은 과거 우연히 나눈 말 한 마디에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펜타닐은 해결이 요원한 심각한 문제지만 그는 동료에게서 희망을 본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위치한 DEA 본사에는 ‘펜타닐의 얼굴들'(Faces of Fentanyl)이라는 전시관이 있다. 마약 복용으로 목숨을 잃은 젊은 청년들의 얼굴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약) 비극은 엄중한 경각심을 깨워준다. DEA는 국민 목숨을 수호하겠다는 하나의 공통된 대의, 열정, 소명의식으로 굳게 뭉쳐 있다. 우리는 마약 밀수품을 압수할 때마다 또다른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세계 마약 카르텔을 미국으로 송환해 법정에 세우고,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