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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5·16과 잊혀진 한강다리 전투

Los Angeles

2026.05.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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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규 트루스 역사문제연구회 대표

김택규 트루스 역사문제연구회 대표

한국에서 발행된 5월 달력을 보면 많은 기념일이 있다.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동학농민혁명기념일(11일), 스승의 날(15일), 18일: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18일), 부부의 날(21일), 석가탄신일(24일)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5월 16일에는 아무 표시가 없다. 하지만 65년 전의 5월16일은 대한민국의 ‘역사 수레바퀴’가 초 스피드로 돌아갔던 날이다.  
 
1961년 5월 15일 밤, 한강 하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 제1여단 예하의 증강된 제1대대 병력 1300명은 완전무장을 한 채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밤 12시쯤, 여단장과 대대장의 지휘 아래 트럭에 탑승, 서울로 향했다. 5·16 군사 정변의 시작이었다.  
 
부대는 새벽 2시쯤, 한강 인도교 앞에 도착했다. (당시 한강에는 인도교와 철교, 2개의 다리만 있었다) 한데 인도교 입구에는 육군 헌병대 소속 지프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막아섰고  현병들은 총을 겨누고 있었다. 해병대 차량 행렬 선두에 있던 2중대장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육군 헌병대 대위가 소리쳤다. “참모총장 명령으로 한강 다리는 폐쇄되었소. 즉시 돌아가시오.” 그러자 해병대 중대장은 “우리는 수도 서울 방어 훈련 중이오. 육군 참모총장이 해병대 훈련에 명령을 내릴 수는없소. 다리를 통과해야겠소!”라고 소리치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그때 지프 한 대가 달려 나왔다. 해병대 대대장이 탄 차였다. 그는 차에서 뛰어내리며 “즉시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그 헌병대 대대의 헬멧 위쪽을 향해 권총을 쐈다.  
 
어둠을 뚫고 새벽공기를 가른 그 한방의 총소리,  그것은 5·16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신호탄이었다. 그러자 육군 헌병들은 급히 다리 쪽으로 되돌아 달려갔다. 그 직후 다리 쪽에 포진해있던 헌병부대가 해병부대를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헌병부대는 이미  노량진 방향, 중지도 방향, 그리고 다리 끝 서울 진입로 등에 3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던 해병부대는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약 2시간여에 걸쳐  총격전이 벌어졌다. 헌병대의 피해는 알려진 바 없으나 해병대에서는 1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나의 소대원 중에서도 하사 한 명이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추후 정부 당국은 5·16을 ‘무혈’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날 치열했던 한강 전투와 해병들이 흘린 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현재까지도 5·16 군사 정변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5·16,  그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지금의 자랑스러운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만년 동안 지독한 가난에 쪼들리고, 외신 기자들에 의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필 수 없다'며 희망이 없는 나라로 무시당하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날 한강 다리 전투에서 흘렸던 해병들의 피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택규 / 트루스 역사문제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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