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한 달 넘게 매일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코발트 빛 하늘에 목화 꽃처럼 흰구름이 떠다니고 햇살이 실타래를 풀 듯 마당으로 쏟아져 내린다.
드디어 찬란한 그대와 우리들의 봄, 기다림에 가슴 졸이던 사랑의 봄이 왔다.
줄지어 서있는 우람한 나무들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녹색의 잎들을 매달고 하늘 향해 손을 펼친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거나 껴안고 버틴다. 나무는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오리들은 짝을 지어 한가로이 연못을 오락가락한다. 혹한으로 연못의 갈대가 죽어 Breakfast 식탁 앞 데크(Deck)에서 오리가 잘 보인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물오리의 사랑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리운 것들은 잘 보인다.
청춘은 흘러가도 추억은 남는 것, 생명 있는 것들은 살아 남아 사랑을 속삭인다.
봄이면 담장 따라 여린 목 내밀던 코스모스가 폭설로 사라졌다. 이웃에게 나눠 주려고 받은 씨앗을 초봄에 뿌렸는데 폭우에 밀려 생명이 묘연하다. 하는 수 없이 씨앗을 구입해 양지바른 텃밭에 뿌렸더니 손바닥 두 뼘만큼 키가 자란다.
봄 햇살이 아늑하게 대지를 껴안으면 연분홍색 흰색 핑크색 꽃들이 가냘픈 가지에 연녹색 잎을 달고 뜨거운 여름 햇살을 견디며 가을을 수놓을 것이다.
‘기다리는 마음 같이 초조하여라 (중략)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 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네.’ 옛 가락을 홀로 흥얼거린다. 그리스어 Cosmos는 질서, 조화라는 뜻이다. 꽃들은 엉겨 붙지 않는다. 다투며 얼굴 내 밀려 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킨다.
화창한 날씨에 온 동네가 축제 기분이다. 잔디 깎는 기계 소리와 쾌속으로 달리는 세발자전거 탄 아이들의 질주는 오페라 돈키호테의 라만차처럼 재기 발랄하고 흥겹다.
사람 사는 곳에는 사람 소리가 들려야 즐겁다. 봄은 웅크린 날들을 웃음으로 채운다.
옆집 사는 Bryn이 예쁘게 차려 입고 찍은 졸업 축하 파티 초청장을 보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파티는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다. 미국이 개인주의란 말은 잘 모르는 소리다. 미국 문화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둔다. 미국 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연휴 때는 대부분 가족과 함께 보낸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막내 아들 졸업 파티가 생각난다. 친구들과 기획하고 준비한 졸업파티는 백명이 넘는 청춘들이 춤추며 비빈 탓에 뒷마당 잔디 완전 파괴로 다시 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장작나무에 구운 주문한, 통돼지 바비큐는 기괴하고 맛있었다.
고등 학생 졸업 선물은 고르기가 난색이다. 파티 손님이 북적일 것 같아 축하노래 나오는 예쁜 카드에 깔깔이 현금 넣고 축하 메시지 적어 미리 선물했다. ‘네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 파티 때 입을 멋진 옷 사세요’라 적었다. ‘PS: 돈이 모자라면 카드번호 줄게. 진짜 맘에 드는 옷 살 것’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사랑은 꽃들처럼 어깨를 기댄다. 텃밭의 채소처럼 정성을 들인 만큼 풍성하게 자란다. 토마토와 딸기는 탐스럽고 빨갛게 익어 건강을 챙겨주고, 깻잎과 부추는 여름 반찬 제1호로 사랑받는다. 마음 속에 사랑이 움트면 어둔 밤에도 별이 반짝인다.
작은 것이 모여 큰 행복을 만든다. 풀잎 같은 꽃들도 사랑을 듬뿍 주면 예쁘게 자란다. 삶이란 사랑에서 받은 영감을 서로 나누는 것. ‘귀찮다’고 대강 살면 대충 살다 죽는다.
인생의 답안지는 없다. 잘 산다는 것은 절망과 작별하고, 축제의 날들을 기다리는
청춘처럼, 살아있음을 견디는, 꽃들이 보내는 사랑의 독백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