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버지니아주 대법원이 주민투표로 승인된 연방하원 선거구 재획정안(redistricting)을 무효화했다. 입법 절차가 헌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법정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선거구 획정 경쟁에서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유는 공화당이 28개 주의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 우세주들은 주민투표로 독립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도입한 탓에, 재획정 방식을 바꾸려면 다시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제도의 공정함이 오히려 불균형을 고착시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각 주의 재획정안이 마무리될 경우, 공화당이 구조적으로 최대 14~17석의 우위를 확보한 채 선거에 임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뉴욕타임스 정치 분석가 네이트 콘도 민주당이 전국 득표에서 앞서더라도 실제 하원 다수당이 되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선거구 재획정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에 공화당 우위의 새로운 선거구 지도를 그릴 것을 요구하며 전방위적 동참을 압박했다. 이에 발맞춰 앨라배마,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미주리, 오하이오 등 공화당 우세 12개 주가 재획정을 추진하거나 확정 지었다. 반면 당 지도부의 이 같은 요구에 맞섰던 인디애나주의 일부 공화당 주상원의원들은 조직적인 낙선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예비선거에서 대거 탈락했다.
지난달 연방대법원이 내린 투표권법 판결은 이러한 흐름에 강력한 동력이 됐다. 대법원은 2019년 ‘루초 대 커먼코즈(Rucho v. Common Cause)’ 판결로 당파적 게리맨더링을 ‘정치적 문제’로 선을 그었고, 이번 루이지애나 판결로는 ‘소수계 보호를 위한 인종 고려 선거구 획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소수계 유권자를 보호할 법적 수단이 크게 축소된 셈이다.
판결의 배경은 1965년에 제정된 투표권법이다. 1982년 개정된 투표권법은 선거구 구획에 있어 ‘차별 의도’가 없더라도 ‘차별 결과’가 나타나면 위법이라는 기준을 도입했다. 이어 1986년, 연방대법원은 ‘손버그 대 징글스(Thornburg v. Gingles)’ 판결을 통해 소수인종 유권자에게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핵심 원칙을 확립했다.
이 원칙은 1990년대 초 미국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인구조사 이후 흑인과 라탄계가 다수인 선거구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역풍도 뒤따랐다. 민주당 성향의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특정 선거구에 집중되면서 주변 선거구들은 백인 위주로, 보수적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공화당 전략가들이 기대했던 결과였다. 남부의 온건파 백인 민주당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고, 공화당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하원 다수당이 되는 쾌거를 거뒀다.
2010년 공화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REDMAP(선거구 재획정 다수당 프로젝트)’을 통해 선거구 재획정을 장기 전략으로 발전시켰다. 경합 주의 주 의회 선거에 자금과 조직을 대거 투입해 먼저 주 의회를 장악한 뒤, 인구조사 이후 선거구 재획정을 공화당에 유리하게 설계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는 공화당이 연방하원의 주도권을 쥐는 확고한 발판이 됐다.
이제 공화당은 과거 자신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했던 소수인종 다수(majority-minority) 선거구를 없애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신 남부와 교외 지역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 연방하원 다수당 지위를 굳히려고 한다. 이를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1965년 3월, 앨라배마 셀마에서 투표권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시위대가 경찰 곤봉에 쓰러지는 장면은 미국 사회를 움직였고, 마침내 투표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은 백악관이 아닌 의사당을 직접 찾아 법안에 서명했다. 투표권 확대를 민주주의의 위대한 전진으로 봤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정치는 다시 지도를 둘러싼 권력 경쟁을 하고 있다. 물론 게리맨더링은 공화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주 의회 권력이 한쪽에 집중된 구조에서는 선거구 재획정의 효과가 비대칭적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 정치의 승패는 후보보다도, 누가 지도를 그리느냐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