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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온전함’에 이르는 길

내가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영성 지도자인 캔 윌버의 최신 책을 소개한다. 우리말로 ‘빅 홀니스(Finding Radical Wholeness)’로 번역본도 이미 나왔다. 이 책에서 캔 윌버는 ‘온전함’에 이르는 다섯 가지 길을 소개한다. 이 다섯 가지 길로 모든 것이 다 조화롭게 될 때 그야말로 빅 홀니스에 이를 수 있단다.   정신건강의 가장 상위에서는 ‘평화’로운정서상태가 될 것이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명저 ‘레팅 고(Letting Go)’ 에서는 인간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고 에너지로 설명한다.     가장 부정적이고 에너지가 낮은 ‘수치심’에서 시작, 여러 단계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지나 긍정적인 감정 상태로 올라가면, 상당히 높은 에너지를 가진 ‘사랑’보다도 더 상위에 ‘평화’를 언급한다. ‘온전함’에 상응하는 정서적 상태는 ‘평화’의 상태가 아닐까 대응해 본다.     온전함에 이르는 다섯 가지 길에서 ‘영적 수련’으로만 가능한 특별한 길은 ‘깨어남’의 길이다. 명상 수련을 통해 합일의식을 체험하여 분리된 자아라는 환상을 넘어 의식 상태의 무게 중심이 합일의식으로 간다면 온전함에 이르는 한 길이다.     그중 중요한 한 가지 길은 ‘성장의 길’이다. 발달 단계마다 다른 세계관, 가치관이 다르다. 발달이 오래 한 단계에 머물러 고착된 경우가 많기에 사회적으로 가치관의 대립, 문화전쟁의 바탕이 된다. 발달 수준이 ‘통합적인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대립과 분열이 해소될 가능성이 열린다. 평화의 가능성이다.     지금 같은 대립과 미움, 분열의 사회상은 대다수가 ‘전통적, 신화적 단계’, ‘합리적 단계’, ‘다원적, 포스트 모던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고, 이 단계에서는 특징적으로 내가 가진 견해만이 옳다는 태도를 보이기에 분쟁은 필연적이다.     세 번째 길은 ‘정화의 길’이다. 인간은 발달 과정 중에 어느 단계의 과제에 고착·중독되거나  회피·알레르기 반응을 하면서 심리적 그림자가 형성된다. 심리적 청소 작업에 해당한다. 정신건강, 심리치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각자의 정서적 치유가 충분하기 전에는 진정한 ‘온전함’, 평화가 없음은 당연하다.     네 번째 길은 드러냄의 길, 사분면적인 삶이다. 내면적 인식과 외면적 물질·에너지 차원이 상응하고 단수와 복수로 나뉘어 개인, 우리, 사회의 차원에서 전부를 고려하는 태도다.   마지막으로 ‘열림의 길’은 다중 지능, 우리가 가진 여러 다른 재능과 능력들의 계발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실로 전인적인 삶의 추구로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늘 어딘가에 지나치게 편중·고착되기 쉽다. 발달도 어딘가에 머물러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삶이다. 또 명상실천을 통해 합일의식 상태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 등도 지극히 엘리트적으로 여겨진다.     삶에서 전체적인 방향감각을 갖기 위해, 이런 책을 공부하는 것은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공부일 것이다. 조만간 시작하는 줌으로 하는 공부 그룹에서 이 탁월한 책을 공부할 기회를 제공한다.     ▶문의:(213)797-5953 김자성 / 정신과전문의건강 칼럼 온전함 감정 상태 정서적 상태 정신건강 심리치료

2025.10.21. 18:49

손원임의 마주보기- 화를 푸는 명상, 정서, 행동의 사이클

‘화(火)’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화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일단 아기들은 누운 자세가 불편하거나 배고프고, 또 기저귀가 젖어서 짜증이 나면 그냥 울어버린다.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엄마 아빠, 즉 보호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아기는 다소 소극적인 ‘울음’이 유일한 표현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성장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자유롭게 사지를 쓰는 등 다양한 표현 수단을 갖게 된다. 이에 자신의 화나는 감정을 자유자재로, 때론 보다 적극적이다 못해 아주 공격적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 자란 사람이 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은데, 제대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고서, 혹은 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신체적인 폭력을 구사하여 타인에게 해를 입히면, 그때는 가정과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정신병의 근원이 자신에게 무척이나 화가 나서 생긴다. 그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겠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해서, 코로나 때 강제 은퇴를 당해서,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서, 명문대를 졸업하지 못해서,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아서, 공들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성적 불만이 쌓여서, 다이어트가 실패해서, 나이가 들어서, 얼굴의 코가 너무 낮아 맘에 들지 않아서, 변비가 심해서, 돈이 풍족하지 않아서, 그저 우울해서 등등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 특히 성난 ‘화’를 잘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에 이 불만들이 쌓이고 쌓여 제대로 풀지 못하면 결국 정신병과 화병, 갖은 병마에 시달리게 되기 쉽다. 다행인 것은 요즈음은 예전과 달리 어른과 아이, 청소년 할 것 없이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이들은 불안증과 불면증, 학교 문제, 애정 문제, 가정 문제, 더 나아가 심각한 정신병까지 마음껏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항정신병제 등 각종 약물의 처방도 받는다. 이렇게 상담을 받는 사람 중에는 남을 치료하는 각 분야의 의대 전공의는 물론 결혼 정년기에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도 다수 포함된다.     우리는 결국 이 모든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특히 불안, 분노와 화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전략과 기술들–자가 제어 방법, 분노 관리 수업, 마음 수련 명상법 등을 개발해서 추천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들 방법들의 요지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세 가지의 중요한 원리를 말하고 싶다. 그것은 ‘명상’과 ‘정서’와 ‘행동’의 순환적 원리다.     첫째는 ‘명상(mediation)’이다. 이는 한마디로 자신의 화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도가 치는 바다의 물결이 잠잠해지는 광경을 상상해보자. 이에 ‘4-7-8’ 호흡법처럼 각자에게 맞는 호흡법을 곁들이면 훨씬 효과가 좋다. 둘째는 ‘정서(emotion)’다. 나 자신에게 일어난 감정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희로애락의 원인을 찬찬히 감정해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난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 내가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나서 회사에 또 지각한 거야.” 셋째는 ‘행동(action)’이다. 이제 내적 동기 또는 외적 동기를 동원해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즉, 다음에는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시계를 맞추고 잔다. 이렇게 먼저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회복탄력성을 발휘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순서를 따른다.     사실상 어렵지만 다이어트를 비싼 약과 주사, 식이 보조제에만 의존할 수 없듯이, 우리의 고민과 고충, 공격성, 특히 ‘화’의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비싼 상담과 수업, 다양한 종류의 테라피에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 때, 아주 크고 깊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 ‘명상’과 ‘정서’와 ‘행동’의 사이클을 통해서 스스로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사이클 손원 감정 상태 애정 문제 표현 수단

2025.09.0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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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말에 대해 깊은 통찰로 교훈을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말하기 전에, 그것이 진실인지, 친절한지,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라”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은 사람을 설득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무기다”라고 했다. 에픽테토스도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들은 말을 하기 전에 진실과 선의를 따져보아야 함을 강조했다.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상처나 혼란을 줄 수 있어 먼저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이다. 말이 생각과 감정을 움직일 수 있기에 단순히 소통을 위한 도구를 넘어 사람을 설득하거나 상처를 주는 강력한 무기도 될 수 있다. 인격을 반영하고, 성격과 가치관 그리고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일본 작가이자 대체의학 연구가인 에모토 마사루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The Hidden Messages in Water)’는 자신의 저서에서 컵에 담긴 맑은 물에 아름다운 말과 부정적인 말을 했을 때, 물의 분자가 변화한다는 이론을 주장한다.     에모토는 맑은 물이 담긴 컵 앞에서 여러 가지로 대화한 후에 물을 얼려서 그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찍어 8년간 연구한 결과를 사진과 함께 책으로 집필했다. 그는 물에 긍정적인 말을 하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 물 분자가 아름다운 결정체를 형성하고, 반대로 부정적인 말이나 소리를 들려주면 일그러진 결정체를 형성한다고 사진으로 보여준다.   물이 인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기에 인간의 몸은 70%가 물이다. 인간이 형성되는 최초의 시기인 수정란 때는 물이 99%, 막 태어났을 때는 90%, 완전히 성장하면 70%, 죽을 때는 약 50%가 된다고 한다. 물은 다른 생물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성분이다. 그런데 이런 물이 어떤 기나 혹은 파장을 받아서 좋은 결정체를 만들기도 하고, 일그러진 결정체를 만든다는 것이 에모토의 주장이다. 그는 물로 구성된 우리 몸이 좋은 말에 좋게 반응한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아름다운 결정체로 증명하고 있다. 결국, 나쁜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몸속에 있는 물이 나쁜 결정체를 이루어 몸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컵에 담긴 맑은 물에 ‘사랑한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아름다운 결정체로 변한다는 것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물은 소리도 듣고, 사진도 인식한다고 한다. 베토벤의 ‘전원’을 들려주었을 때 한결같이 로맨틱한 결정체로 보여주고, 모차르트나 바흐의 음악을 들려줬을 때도 아름다운 결정체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는 일상에서 수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 있다. 사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위로와 힘이 되고, 형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던진 부정적인 말이 오히려 마음을 닫게 할 때가 있다. 앞서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말이다.   서로의 신뢰에서 오는 진심이 담긴 말은 변화와 감동을 가져다주는 긍정의 힘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잘 선택된 말 한마디가 때로는 그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따뜻하고 정이 담긴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살맛이 나는 세상, 바른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각자의 속내를 컵에 담긴 맑은 물 앞에서 드러내면 과연 어떤 결정체로 변할까.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고 하는데.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감정 상태 통찰로 교훈 고대 철학자들

2025.06.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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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순수한 열정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을 읽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고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혼녀인 주인공은 연하의 유부남과 폭풍보다 심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그 남자만을 생각하며 넋이 나간 상태로 보내고 그 남자만을 기다리는 일 이외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상, 몸, 정신 그리고 영혼까지도 잊게 하는 열정으로 그에게 깊게 빠져들어 간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명품이나 저택 혹은 지적인 삶이 사치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한 남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면 사랑에 끌리는 정신적 교감이나 지적인 대화가 배제된 단순한 욕망만 드러내고 나열했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겠다. 이 글을 전개해가는 형식에 있어서 그녀는 감정 상태의 미묘하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사랑을 낭만적으로 미화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평평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사실만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독자는 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한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며 긴장감을 즐기는 대중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제목을 ‘Passion Simple’이라고 붙였다. 그녀는 생생하고 강렬하게 거의 광적으로 묘사하여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충격, 당혹감까지 자아내게 한다. 날마다 애타게 그의 전화만을 기다리고 만남을 위해 준비하고 황홀한 섹스를 한다. 그 이후로는 그와의 정사를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결국 1년 2개월 후 그는 본국으로 떠난다. 1년 후 꿈속에서처럼 다시 한번 만난 후 그녀는 그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단순한 열정’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별의 괴로움과 과거에 대한 기억은 풍화되기 때문에 어쩌면 단어들로 그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 두려고 한 것이 아닐까. 오죽하면 혹시 그가 에이즈라도 남겨주지 않았는지 검사를 해보고 싶었을까. 작가에게 그는 그녀의 상대로서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재고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는 그 사람 덕분에 그녀를 남들과 구분시켜주는 어느 한계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녀는 온몸으로 인간이 어떤 일에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무분별한 신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이 책은 그녀에 관한 책도, 그에 관한 책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그녀에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열광과 악평으로 나뉘었다. 말과 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와 상처를 표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작가의 말이다. 칼날 같은 글쓰기의 작가로서 그 용기와 단호함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적으로 충만한 ‘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준 다리 역할을 해준 본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적은 개성적인 글이다. 어린 시절 가난과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학교에서 사회 계층을 알게 되면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총명한 그녀는 신분 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교수가 된다. 바흐를 듣고 책을 쓴다. 자신의 출신이 부끄럽고 그런 수치심을 느끼는 자신이 부끄럽고 그 수치심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자신을 낳아준 계층을 배반하는 일이기에 더욱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펜의 힘은 칼보다 강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순수 열정 passion simple 노벨 문학상 감정 상태

2023.04.07. 17:52

[열린광장]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그가 담당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해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   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게 옳으니 그르니, 하나님 뜻이니 아니니, 평소에 금실이 좋았느니, 본디 이상 성격이었다니 등등 그야말로 뒤늦은 평판이 난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억울한 인격모독과 세평의 심판을 다시 한번 당하는 셈이다.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지 참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처도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큰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젠 모교의 교수가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성장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외상 후 성장의 방법론으로 의도적 반추, 정서적 노출, 타인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다 중요하긴 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마음의 표현, 내가 얼마나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로 잘 설명하라는 것이다. 글로 해도 좋다. 9·11 테러 이후 조사를 해보니 마음이 잘 회복된 사람들은 감정을 잘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고통이길 멈춘다” 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슬픔과 두려움은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한국 문화에서 특히나 남성들은 속 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돌아보는 걸 해보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는 것이 체면 유지에 좋다고 배워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감추는 게 미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비극에 맞서야 한다.   가장이기를,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J전도사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아 / 수필가열린광장 비극 비극 이후 감정 상태 중고등부 학생들

2023.04.03. 21:03

[열린광장]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그가 담당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해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   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게 옳으니 그르니, 하나님 뜻이니 아니니, 평소에 금실이 좋았느니, 본디 이상 성격이었다니 등등 그야말로 뒤늦은 평판이 난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억울한 인격모독과 세평의 심판을 다시 한번 당하는 셈이다.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지 참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처도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큰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젠 모교의 교수가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성장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외상 후 성장의 방법론으로 의도적 반추, 정서적 노출, 타인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다 중요하긴 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마음의 표현, 내가 얼마나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로 잘 설명하라는 것이다. 글로 해도 좋다. 9·11 테러 이후 조사를 해보니 마음이 잘 회복된 사람들은 감정을 잘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고통이길 멈춘다” 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슬픔과 두려움은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한국 문화에서 특히나 남성들은 속 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돌아보는 걸 해보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는 것이 체면 유지에 좋다고 배워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감추는 게 미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비극에 맞서야 한다.   가장이기를,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J전도사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아 / 수필가열린광장 비극 비극 이후 감정 상태 중고등부 학생들

2023.03.27. 18:33

[아름다운 우리말] 고유명사와 보통명사

세상의 모든 말은 사실상 다의어(多義語)입니다. 하나의 의미만 표현하는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때 예외로 드는 것이 바로 고유명사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고유명사이니까 고유명사가 다양한 뜻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고유명사는 대부분 구체적입니다. 추상적인 것이 고유명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구체적이어도 하나 이상이 있다면 보통명사가 됩니다. 돌도, 나무, 새도 보통명사입니다. 단 하나여야 합니다.    고유명사는 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습니다. 그런 대상에 붙인 이름이 주로 고유명사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조현용’이라는 제 이름은 고유명사입니다. 같은 이름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사람과 제가 같은 사람이 아니기에 고유명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동명이인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리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겁니다.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든 고유명사가 관점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 ‘조현용’은 내가 보는 조현용과 남들이 보는 조현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부모님이 보는 저와 자식들이 보는 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보는 저도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어제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다릅니다. 방금 전의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감정 상태에 따라서도 나라는 고유명사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그저 아무 일 없을 때나 고유명사인 나는 변화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고유명사인 나도 다의어입니다. 고유명사인 내가 다의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물론 나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리키는 말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부모님께 나를 이야기할 때와 자식에게 나를 이야기할 때, 제자나 친구에게 나를 이야기할 때는 가리키는 말이 모두 달라집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그렇다고 저의 이름을 다의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변화하고 있지만 ‘나’라는 정체성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핵심, 중심에는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저 주변의 의미만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고유함 속에서 달라짐을 발견하는 것은 나를 제대로 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나무와 새 같은 보통명사도 사실은 모두 고유명사라는 점입니다. 나무가 여럿인 것은 맞지만 모두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가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임은 맞지만 새는 모두 다른 새입니다. 종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나름의 가치를 가진 존재입니다. 사람이라는 말도 보통명사이지만 고유명사입니다.      보통명사를 볼 때는 고유명사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로 취급하지 않고 개성을 살피는 겁니다. 다 다르다는 것은 깨달음을 줍니다. 그리고 고유명사를 볼 때는 보통명사의 관점을 갖는 겁니다.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 쓰는 용어는 때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의 연결을 만납니다.     끝으로 고유명사가 보통명사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라는 말에서 신라 의상대사의 법성게에서 이야기한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많은 것 속에 하나가 있다. 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어렵지만 묘한 이어짐을 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고유명사 보통명사 신라 의상대사 감정 상태 이때 예외

2023.01.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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