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4시26분. LA한인타운 8가 길 몇블럭에 걸쳐 불이 켜진 업소는 서넛 뿐이다. 뉴햄프셔길 인근 샤핑몰에는 한 업소만 불이 켜진채 문이 열려 있다. 불빛은 따라 한식당 다락방에 들어선 것이 4시28분. 이른 새벽시간이라 손님들이 없었다. 하지만 주방으로 들어서자 갓 삶은 콩나물의 ‘구수한’ 냄새가 가득하다. 김영순(58) 사장이 큰 냄비에서 김이 모락 모락나는 콩나물을 꺼내고 있다. 일찍 일어나 이미 새벽기도를 마치고 가게로 나온 김 사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메뉴 준비에 분주하다. 주방에는 7~8개의 냄비가 끓고 있다. 김사장은 5시에 오픈하기 위해 매일 4시~4시30분에는 가게에 나온다고 한다. 이날 아침 메뉴는 ‘얼큰한’ 콩나물 무국, 감자볶음, 삭힌 고추, 호박, 계란 프라이. 한참 국을 조리하던 그녀가 갑자기 김치 겉절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쉬지를 않는다. “여유있게 하나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어요. 틈틈히 다 만들어야지 손님들에게 아침식사를 내놓을 수 있어요.” 다락방 김 사장의 아침메뉴를 먹기위해 새벽부터 다락방을 찾는 손님수는 70~80여명. 새벽기도나 아침 산행을 마친 한인들이 대부분이고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김 사장은 “보통 출근시간 전에 손님들이 몰리지만 5시에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가 다락방은 인수한지 4년째, 그때부터 새벽 손님들을 위해 아침메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메뉴도 매일 바꾼다. 오전 5시가 채 못돼 “아줌마, 나 왔습니다”라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날 첫손님은 LA다운타운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최모씨. 김 사장은 “웬 일로 어제, 오늘 모두 일등이네?”라며 반갑게 맞는다. 그리고 주방에 들어가 아침메뉴를 준비한다. 이미 오전에 운동과 사우나를 마치고 식당을 찾은 최 사장은 “일주일에 4일은 다락방을 찾는다”며 “일터로 향하기 전 ‘든든하게’ 먹고 간다”고 한다. 최씨가 연신 ‘얼큰하다’며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김 사장은 아침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간다. 식사를 마친 최씨가 계산을 하고 “아줌마, 잘 먹고 갑니다”라며 가게문을 나선다. 김 사장에게 새벽 장사는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손님들에게 ‘든든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아침을 맛있게 먹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새벽 식당을 찾는 한인들은 누구보다도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활기가 희망의 새해를 힘차게 열고 있다. 서기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1.09. 20:54
밤과 새벽의 분간이 어려운 오전4시30분. 깜깜한 LA다운타운. 기온은 화씨 45도. LA다운타운 동쪽에 자리한 수산물 도매업체 오션 프레시(공동대표 영 김·토니 김).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는 시각, 이곳의 하루는 이미 시작됐다. 형광등이 밝혀진 내부에서는 작업이 한창이다. 건물 자체가 냉장창고인 이곳의 온도는 화씨 35도. 뽀얀 입김이 나오고 귀가 시려오지만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냉장·냉동창고에 보관하던 수산물을 꺼내고 미동부와 하와이, 한국과 일본 등 각처에서 온 생선을 나른다. 희미했던 비린내가 금세 건물 안을 채운다. 안쪽 작업장에서는 생선을 다듬는다. 연어 비늘이 우수수 떨어진다. 길이는 어른 키 만하고 몸통은 어른 2~3배 되는 참치가 도마 위에 올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새빨간 속을 드러낸다. LA다운타운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엔 새벽부터 열기가 가득하다. 오션 프레시 하루는 자정에 시작돼, 영업사원 몇명은 먼저 출근해 전날 오후부터 밤까지 들어온 전화 메시지를 확인하고 주문 요청서를 작성한다. 오전3시부터는 생기가 돈다. 그날 나갈 물건을 정리·진열하고 공항에서 픽업해온 수산물 컨테이너가 들어오면 지게차가 바쁘게 움직인다. 한무리의 직원들은 물탱크에 들어있던 제주산 광어를 처리한다. 토니 김 사장은 “요즘엔 제주 광어가 인기”라며 “한인들은 산 광어를 선호하지만 바로 회를 뜨면 살이 너무 말랑말랑하고 지금쯤(오전5시30분) 처리해야 낮에 먹을 즈음에 살이 쫄깃하게 붙는다”고 설명했다. 오전6시가 되면 출하할 물건이 준비된 중앙은 시끌벅적해진다. 30명에 가까운 직원들은 “아지(전갱이)”, “하마치(방어) 5.2(kg)” 소리치며 구분해 놓은 물건의 무게를 재고 상자에 넣는다. 상자의 생선들은 오전9시가 되면 각 지역의 식당으로 배달된다. 오션 프레시 건물 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해가 솟았다. 이제 온세상은 물탱크에서 갓 나온 생선처럼 살아 숨쉰다. 그런 생동감으로 2009년 새해의 날들이 밝아오고 있다. 이재희 기자 [email protected]
2009.01.08. 20:37
새벽과 달리기는 잘 어울린다. 햇살이 닿지 않은 어둠을 거친 숨결이 밀고 나간다. 가슴으로 쏟아지는 찬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3일 새벽 5시30분. 조앤 김 윌셔은행장은 신발끈을 조인다. 6시까지 집결장소인 패서디나 로즈보울에 도착하려면 지금쯤 집을 나서야 한다. 이날 한인 마라톤 클럽 'KART(회장 앤드류 김)'에 처음 나온 사람은 조앤 김 행장을 포함해 모두 3명. 김 행장은 지난 연말 각종 행사와 비즈니스 모임으로 쉴틈이 없었다. 몸은 파김치가 됐고 빠듯한 일정에 운동은 엄두도 못냈다. 'CEO에게 체력은 필수'란 말을 실감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KART 회장의 권유를 계속 미뤄오다 새해부터 참석하게 된 것이다. '올해는 뛰어야 한다. 내가 뛰어야 조직도 뛰고 활력이 생긴다.' 첫 날에도 불구하고 3.8마일을 가뿐히 달린 김 행장의 모습은 다부졌다. 특히 '올해는 누가 더 잘 버티느냐'에 달렸다. 결국 건강이다. 은행도 개인도 마찬가지다. 마라톤은 새벽을 '깨우는' 운동이다. 생활에 지장없이 뛰려면 새벽만한 시간이 없다. 뛰다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하루 일정이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마라톤을 계속하면 신체적 건강은 물론 '러너스 엔돌핀(runner's endorphin)이 생겨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가 절로 나와 고객이나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죠. 저도 체력이 좋아지면서 사업 의욕이 용솟음 치는 걸 종종 경험합니다." 원단업체를 운영하는 11년 마라톤 경력의 앤드류 김 회장의 말이다. 14년 전 KART를 창립한 뒤 풀코스를 71번 완주한 피터 김 코치는 "마라톤의 최대 장점은 자신감"이라고 꼽는다. "26마일을 뛰다보면 도중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듭니다. 그 과정을 이겨내다 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되고 가정이나 사업에서도 긍정적인 자세로 생활하게 됩니다." 몇 번의 사업 실패를 딛고 재기한 한 회원도 "생각을 추스르고 법원과 빚쟁이를 상대하며 주위의 동정과 비난을 이겨내려면 뛰는 운동 만한 게 없다"라고 말한다. KART 회원들은 찬 공기를 헤치며 힘차게 외친다. "새벽을 뛴다. 2009년 희망을 달린다." 최상태 기자
2009.01.06. 20:43
2009년 새해가 시작됐다. 지난 해의 어려움을 딛고 힘찬 출발을 다짐할 때다. 하루의 시작은 새벽이고 하루가 모여 1년이 된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기찬 새벽을 여는 한인들의 모습은 경기침체의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준다. 새해를 맞아 새벽을 밝히면서 소망을 기원하고 미래를 헤쳐가는 한인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동트기 전 새벽의 어둠을 뚫고 새해의 희망을 찾아 한인들이 모여드는 곳이 있다. 바로 교회다. 2008년의 매섭고 어두웠던 겨울. 한인들은 이제 그 길고 길었던 악몽같은 겨울 잠에서 깨어나 새해의 새벽을 기도로 열고 있다. 지난 3일(토) 주님의 영광교회(담임 신승훈 목사) 새벽기도 모임. 오전 6시가 되자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로 빼곡하다. 하나둘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교인들이 차가운 새벽바람에 두터운 외투를 여미며 가슴에는 성경책을 들고 종종 걸음으로 예배당을 향한다. 새벽기도 모임이 있는 소예배당에는 이미 700여명의 교인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잡았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를 들어쓰십니다. 또 감당 못할 시련을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어려운 교인들의 사정을 생각해서일까. 신승훈 목사의 설교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다. 그런 메시지에서 희망을 보든 듯 교인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설교 후 이어지는 기도시간.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의 굳게 잡은 손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위암수술을 받은 84세 김원순 할머니의 "올해는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기도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고 올해는 배우자를 꼭 만나게 해 달라고 한 33세 청년 박영만씨의 기도에는 소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지난해 버거웠던 삶의 무게 때문일까. "삶이 힘들지만 경기가 풀리며 남을 도우며 살겠다"는 우리 이웃인 정인환(62)씨의 기도는 희망을 밝힌다. 1300여곳의 남가주내 크고 작은 한인교회들이 2009년을 맞아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로 일제히 한해를 열고 있다. 나성영락교회는 오전 5시30분부터 5일부터 2주간 신년특별새벽기도회를, LA사랑의교회 역시 5일 새벽부터 2주간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하라’는 주제로 특별새벽기도를 시작한다. 또 충현선교교회는 5일부터 40일간 ‘신년 헤브론 경건훈련’을 통해 교인들이 새벽을 함께 연다. 어둠속에 빛이 시작되는 새벽 시간, 지난해 쌓였던 답답한 마음, 상한 마음, 억눌린 마음 속에도 여전히 새해의 희망은 한줄기 빛처럼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 오수연 기자
2009.01.05. 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