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 먼 길 시작의 끝을 보며 늘 그랬듯이 항구의 별빛은 바다의 그림을 그린다 파도의 쟁기를 한차 가득 싣고 바다의 꿈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렸다 만선의 무대는 항상 넓게 열려있다 사방에서 모여든 물길의 바람잡이 별난 세상을 만지며 스물여섯명의 낚시꾼들 물길을 따라 별을 보며 달을 끌고 꿀잠을 잤다 아침 햇살의 틈이 열리며 낚싯줄을 내렸다 배고픈 맛, 세상의 속임수에 별난 세상에 누웠다 갑판 위에서 비늘을 털며 바다의 옷을 벗는다 만선의 하루가 저물어 수평선 넘어 숨어 간 뱃머리는 고요한 밤을 깨며 별빛을 보는 선장의 외로움은 오직 바다의 노숙자들을 위한 그 까만 길 피곤한 바다의 파도를 재우며 길 없는 길을 찾아 항구에 닻을 내렸다 오광운 / 시인글마당 여행 아침 햇살
2025.06.26. 17:31
아침 햇살 피어난 오늘도 지나간 것들이 아직 내 곁에 있구나 난 끝없는 공간에서 고마움이 앞서지만 두려운 인간의 고뇌 소리도 들리고 세상 언덕에 내민 얼굴들 오고가는 절묘한 순간들도 보인다 죽음 앞에 모든 것들이 살아 있는 믿어지지 않는 기적 같은 오늘 매달린 미완성의 삶 다들 어디에 있는지 찾아간 그림들 보면 끔찍한 나 스쳐 갈 남은 것들 아직은 나에게 해법이 없는 선택으로 오늘을 떠났다는 현실 나도 누구도 모를 깜깜한 곳 그래도 밤과 낮의 순서는 영원하리 오광운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이야기 기적 고뇌 소리 아침 햇살 세상 언덕
2024.08.08. 17:44
바람 한 점 없이 하늘을 가리고 선 상수리나무들 우거진 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 의자에 앉아 상큼한 휴식에 취한 내 손등 위로 햇빛이 부드럽게 미끄러져 분주해진 벌들의 날갯짓이붕붕거리고 있다 이따금 도토리가 굵은 빗방울처럼 떨어져 나를 놀라게 해 재빠르게 나무 위를 오르는 다람쥐와 눈을 마주친다 어디선가 느릿느릿 다가서고 있는 검은 고양이 시선이 마주치자 걸음을 멈추고 흠칫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서로를 탐색하는 짧은 시간 그의 지친 모습이 안쓰러워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식탁에서 새우 한 마리를 들고 갔다 가까이 가자 경계의 눈빛을 세우는 고양이 상실된 교감의 벽 앞에 내 호의는 무너져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의 평온이 한순간의 긴장으로 흔들렸다 갈등을 불러온 고양이 덤불 숲속으로 들어가는 야윈 뒷모습에 측은한 마음자리 놓을 수 없어 연민만 깊어진 눈길 멀리 돌린다 허물어진 마음의 편린들이 상수리 나뭇잎 사이 햇살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연민 덤불 숲속 아침 햇살 나뭇잎 사이
2023.09.22. 17:37
비쳤다, 사라졌다, 숨을 쉬듯, 창문가에 부윰하게 일렁이는 빛과 어둠의 숨결 새빨간 바다는 청록색으로 갈라지고 갈매기의 하얀 깃털 끝에튀어 오르는 첫 아침 햇살 둥그런 빛 속에 떠 있는 나를 본다. 멀리서 분홍빛 가지에 우짖는 새소리 더 멀리서 잠자는 아기 깨어나는 인기척 소리 죽어가는 불씨에 모여 어둠이 움트고 자라나는 경이로운 새벽이여! 문득 밖으로 뛰쳐나가 닿아본 적 없는 우주의 빛 스며드는 이름 모를꽃나무에 엎드려 입맞춤한다. 이춘희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동트기 인기척 소리 분홍빛 가지 아침 햇살
2023.02.03. 17:25
어둠의 심술인 양 불쑥 지나가는 차 바퀴 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흔들어 깨워 흘려보낸 시간 속의 모든 것들 홀로 숨은 상념으로 꺼내 본다 순간의 현상이 존재로 남아 익숙해진 삶이 진부해진 갈등에 발목 잡혀 때론 무너져내려 두 손은 내일을 향해 보지만 그 건 언제나 오늘인 것을 속물처럼 그렇게 살아온 날들 드리웠던 커턴 뒤로 어둠이 지나면 창문을 넘어온 아침 햇살에 조금은 설렘으로 다시 하루의 의미를 생각할 것이다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바퀴 소리 아침 햇살
2022.12.23. 17:25
남으로 가득 창이 난 은밀하게 나를 데우는 따사로운 햇살에 세포는 속속들이 익어가고 나는 가슴 깊이 햇빛을 들이마시며 투명해진다 미켈란젤로도 항복한 눈부신 아침 햇살 찰랑찰랑 수런대는 나뭇잎들의 대화 맑은 바람 소리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연주되기를 기다린다 갓 태어난 모음과 자음이 수줍게 속삭일 때 말러의 심포니 5번의 아다지오가 살짝 고개를 들면 지하에서 백 년째 숙성되고 있던 와인 마지막 남은 기포 한 방울 혼 심으로 밀어 올리고 불립문자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는 제로 존 (zero zone)에서 와인 맛은 그윽해진다 꿈이 고이는 밤이 되면 옷을 벗고 가면을 내려놓고 화장을 지운다 낮에 걸쳤던 나를 벗어던지고 봄의 잔상에 젖은 불 속으로 찬란하게 타들어 간다 삶을 퇴고하고 사랑을 번복하며 나는 길들이고 길들여진다 아픈 짐승처럼 울음을 토하며 나를 태우는 나의 방! 정명숙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zero zone 아침 햇살 심포니 5번
2022.12.09. 17:33
엄마는 아들을 키우고 그 아들은 또 아들을 키우고 인생의 속살을 화석처럼 품고 함께 여행을 한다 수십억년대 전 지구가 태어날 때를 그리며 그 기억의 한 세포까지 간직한 섬세한 협곡 말로의 표현을 거부한다 대협곡의 일출을 보려고 아들은 어린 두 아들을 둘러업고 컴컴한 협곡 끝으로 하이킹한다 수십억년 떠올랐던 아침 햇살이 붉다 어린 두 아들에게 새 환경에서 부어주는 풍성한 밑거름은 또 한 줄의 지층을 형성한다 까마득한 옛날 세상이 탄생하고 사람의 조상이 이 땅을 밟았을 때부터 아들의 아들이, 또 딸의 딸이 억겁의 세월을 수 없는 지층으로 쌓았겠구나 콜로라도 고원을 세차게 흐르던 강물이 새기고 깎아놓은 것처럼 인생의 강물도 우리의 생을 깎아 새기어놓을 때 깊고 깊은 대협곡에서 인생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최양숙 / 시인·웨스트체스터글마당 그랜드 엄마 콜로라도 고원 강물도 우리 아침 햇살
2022.11.18. 17:42
그리움의 세월 담았던 곳 하늘빛이 그리워서 아픈 추억 속에 적막이 흐르고 밤하늘 따스한 별빛 향기로 비추이던 그곳 소리 내며 몰아치던 겨울바람에 고요한 마른 갈대 떨림은 새롭게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흙 속에서자란 마음 그 속에 뜨겁게 저장하는 생명의 근원 좁고 넓은 곳, 높고 낮은 곳, 얕고 깊은 곳, 닫히고 열린 곳, 채우다 비운 곳, 긍정과 부정의 마음 공간은 녹이 슨 어머니 품속처럼 따스하기만 한데 지친 마음 쉴 수 있어 편안한 그곳이 별들이 보고 싶어 밤하늘 되어 사랑의 영혼이 깃든 그곳으로 신선한 아침 햇살과 바람이 살랑대는 언덕 실낱같이 흐르는 기쁨과 희망을 낚을 공간에서 노을을 만나고 싶다 이재숙 / 수필가·리버데일글마당 공간 마음 공간 어머니 품속 아침 햇살
2022.02.04. 17:51
침묵 속 흐르는 강물에 잠시 머문 아침 햇살의 은빛 미소는 물길 따라 떠나고 서걱이는 외로운 갈대 사이를 지나 아픈 사연들의 노을이 물 위 긴 그림자로 누우면 강가의 조약돌로 숨죽여 엎드린 턱 고인 상념은 피안의 꿈을 탐색한다 삶이 흐른 애환이 다다를 곳 먼 내일 의미 없음, 푯말처럼 세운 기억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물속 깊은 품 안으로 다시 보는 내 안의 세상을 안아본다 양기석 / 시인 퀸즈글마당 상념 고인 상념 은빛 미소 아침 햇살
2021.11.26.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