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가운데는 남자 또는 여자만 다니는 학교가 있다. 물론 남녀공학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만 다니는 학교에 '○○남자고등학교'처럼 '남자'나 '남'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거의 없다. 간혹 '남'이 붙은 곳이 있긴 하나 이는 남자를 뜻하는 '남(男)'이 아니라 남쪽을 뜻하는 '남(南)'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여자고등학교'는 많다.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는 대부분 이렇게 '여자'라는 이름을 붙여 여성만 다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다. 줄여 '○○여고'라 부르기도 한다. 학교 이름만 이런 것이 아니다. 여의사.여배우.여교사.여직원.여대생 등 직업을 나타내는 말 앞에도 '여'자를 넣어 여성임을 밝히는 경우가 흔하다. 여성과학자.여성산악인.여성대변인.여성운전자 등 '여성'이 들어간 말도 적지 않다.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이처럼 여자에게만 굳이 '여'나 '여자' '여성' 등을 붙이는 것은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남의사' '남배우' '남과학자' 등의 말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것이 차별적 용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과거부터 쓰이고 있는 '여류소설가' '여류화가' '여류작가' 등 '여류(女流)'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국립국어원뿐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단체들도 이들 단어가 차별적 용어라 밝히고 있다. 요즘은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에도 '여자'라는 말을 빼고 그냥 '○○고등학교'라 이름 붙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굳이 성별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여'나 '여자' '여성' 등을 붙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녀 모두 '의사' '배우' '직원' 등으로 동일하게 부르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여자 여성 학교 이름 고등학교 가운데
2025.09.23. 18:16
비가 그친 뒤 잠시 눈부신 해가 비친다면 이를 ‘햇볕’이라 해야 할까, ‘햇빛’이라 해야 할까?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을 뜻한다. 태양의 열(熱)과 관련된 것으로, 살갗을 통해 뜨거움 또는 자극의 정도를 느낄 수 있다. 피부를 햇볕에 오래 노출하면 피부가 상하거나 벗겨지기도 한다. “낮에는 햇볕이 뜨거워 아직도 외출할 때 조심해야 한다” “햇볕에 피부를 그을렸다” 등처럼 쓸 수 있다. ‘햇빛’은 해에서 나오는 빛을 뜻한다. 태양의 광(光)선과 관련된 것으로, 시신경을 자극해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전자기파다. 이로 인해 ‘밝음’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한낮의 햇빛을 가리기 위해 집 안 곳곳에 커튼을 쳐 놓았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비가 그친 뒤 잠시 눈부신 해가 비친다면 이는 태양의 광선과 관련된 것이므로 ‘햇볕’이 아니라 ‘햇빛’이 적절한 표현이다. 즉 ‘눈부신 햇볕’이 아니라 ‘눈부신 햇빛’이 더욱 어울리는 표현이다. 문제 하나 더. “○○이 강하게 내리쬐는 바닷가에서는 선크림을 바르고 긴팔 옷을 입는 등 화상에 주의해야 한다”에서 ○○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햇볕’과 ‘햇빛’ 가운데 어느 것일까? 여기에서는 명암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뜨거움으로 인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이므로 ‘햇볕’을 써야 바르다. 눈이 부신 건 ‘햇빛’, 뜨거운 건 ‘햇볕’이라고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햇빛 햇볕 문제 하나
2025.09.18. 18:28
분명 화낼 사람은 따로 있는데 오히려 잘못한 당사자가 펄쩍 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닥친다면 “잘못은 네가 해 놓고 되레 나한테 화를 내면 어떡해!” “잘못한 놈이 외려 큰소리야!” 등과 같이 말하게 된다. 이처럼 예상·기대와는 다르게 되는 경우 ‘되레’나 ‘외려’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도와주려고 한 일이 되려 폐만 끼쳤다” “자기가 잘못하고선 외레 큰소리친다” 등처럼 ‘되레’ 대신 ‘되려’, ‘외려’ 대신 ‘외레’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각각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우선 ‘되레’는 ‘도리어’의 준말이다. ‘도리어’가 줄어들면 ‘되려’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되레’가 맞는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되려’보다 ‘되레’가 많이 쓰인다는 판단 아래 ‘되레’가 표준어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려’도 ‘외레’가 맞는 말일까? 이 경우에는 반대다. ‘오히려’의 준말로 ‘외레’가 쓰이기도 하지만 ‘외려’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비슷한 경우이지만 모양이 다른 ‘되레’와 ‘외려’가 각각 표준어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선 같은 구조의 ‘되레’와 ‘외레’, ‘되려’와 ‘외려’로 짝을 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헷갈릴 수밖에 없다. 즉 ‘되레’가 바른 표현이기 때문에 ‘외려’ 역시 ‘외레’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또 ‘외려’가 바른 표현이란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되려’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기 십상이다. ‘도리어’의 ‘어’와 ‘오히려’의 ‘려’가 준말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기억하면 ‘되레’와 ‘외려’로 바르게 쓰는 데 도움이 된다.우리말 바루기
2025.09.16. 18:24
축제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맨 끝에 나와서 행사의 ‘대미’를 꾸민다. 그러면 축제는 더 알차게 마무리된 모습을 보인다. 관객들은 괜찮은 축제로 기억하게 된다. 맨 마지막, ‘대미’를 꾸미는 일은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대미’ 뒤엔 ‘장식하다’란 말이 터줏대감처럼 나타난다. “송가인이 전국노래자랑의 대미를 장식했다.” ‘대미’와 같은 말인 ‘대단원’ 뒤에도 ‘장식하다’가 자연스레 온다. “대단원을 장식하는 데 손색이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대단원’ 뒤엔 ‘막’이 올 때도 많다.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를 가리는 천을 가리키는 그 ‘막’이다. ‘막’은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막을 ‘올렸다’고 하면 행사를 시작했다는 말이 되고, ‘내렸다’고 하면 마쳤다는 말이 된다. ‘막’은 이렇게 ‘올렸다’ ‘내렸다’ 한다. 그래서인지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는 표현도 나온다. ‘대단원’은 마지막 단계다. “대단원의 막을(이) 내렸다”는 표현만 말이 된다. ‘올랐다’는 ‘상승했다’라고도 한다. ‘오르다’는 명사가 없다. 명사를 써야 할 때는 한자어 ‘상승’을 사용하게 된다. 물가 상승, 주가 상승…. 그런데 ‘상승’으로 넘어오면서 뜻도 흐릿해지는지 ‘인구 상승, 관심도 상승’이라고 표현한다. 양이 많아지는 것이니 ‘증가’가 어울린다. ‘월등하다’는 “다른 것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강아지는 사람보다 월등하게 냄새를 잘 맡는다” “안세영은 월등한 경기력을 보였다”에서처럼 수준이 앞선다는 걸 뜻할 때 자연스럽다. “안정성이 월등하게 낮다” “월등하게 나쁜 조건”은 어울리지 않는다.우리말 바루기 인구 상승 물가 상승 객석 사이
2025.09.14. 18:33
가장 인기 있는 태명은 무엇일까? 4년째 ‘튼튼이’가 첫손가락에 꼽혔다. 코로나 등 환경적 요인으로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이름 짓기가 유행이다. 태명과 관련해 반드시 띄어야 하는 말이 있다.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라는 의미에서 뱃속 아이를 ‘열무’라고 부른다”처럼 쓰면 안 된다. ‘배 속’으로 띄고 [배 속ː]으로 읽어야 한다. ‘배 속’과 ‘뱃속’은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 신체 내부를 관찰하는 내시경으로는 ‘뱃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뱃속은 ‘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만 올라 있다. 신체 부위인 배 안을 가리킬 때는 ‘배 속’과 같이 띄어 쓴다. 사전에서 ‘태아’를 검색하면 ‘어머니 배 속에 있는 아이’라고 나온다. “그들의 검은 뱃속을 미처 몰랐다”의 경우에는 육체적인 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음흉한 속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므로 ‘뱃속’으로 붙여 적고 [배쏙/밷쏙]으로 발음한다. 띄어쓰기 하나로 뜻이 달라지는 단어로는 ‘가슴 속’과 ‘가슴속’도 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거칠게 울려 나오는 기침 소리”와 같이 가슴 안쪽 부분을 이르면 ‘가슴 속’으로 띄어야 한다.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추억”처럼 ‘마음속’의 의미라면 ‘가슴속’으로 붙인다. 문제는 ‘속’이 붙는 단어들의 의미와 띄어쓰기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콧속’은 코의 안쪽, ‘귓속’은 귀의 안쪽을 나타내지만 붙인다. ‘뱃속’과 ‘배 속’이 다른 뜻임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효율성 측면에서 ‘뱃속’의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우리말 바루기 뱃속 뱃속 아이 가슴 안쪽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2025.09.11. 18:58
자신에 관해 얘기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바로 ‘제 자신’과 ‘내 자신’이다.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내 자신을 믿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등과 같은 경우다. ‘제’는 자신을 낮추어 가리키는 대명사 ‘저’에 관형격 조사 ‘의’가 결합한 ‘저의’가 줄어든 말이다. 따라서 “제 자신”을 풀어 쓰면 ‘저의 자신’이 된다. 그러나 ‘저의 자신’은 어색한 표현이다. 관형격 조사 ‘의’가 불필요하게 붙은 것으로 ‘제 자신’이 아니라 ‘저 자신’이 바른말이다. “더 이상 저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내 자신’도 마찬가지다. ‘내 자신’을 풀어 쓰면 ‘나의 자신’이 된다. 따라서 ‘의’를 빼고 ‘나 자신’이라고 해야 한다.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달려 있다” 등처럼 쓰인다. 서두의 예문은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나 자신을 믿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로 각각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네 자신을 알라”는 어떻게 될까. 이를 풀어 보면 “너의 자신을 알라”가 된다. 이 역시 관형격 조사 ‘의’가 불필요하게 들어간 것으로 “너 자신을 알라”가 바른 표현이다. 그럼 마지막 문제. “제 몸은 이제 제 혼자만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에 나오는 ‘제 몸은’과 ‘제 혼자만의’ 가운데 잘못된 표현은 어느 것일까? ‘제 몸은’은 ‘저의 몸은’이 되므로 문제가 없다. ‘제 혼자만의’는 ‘저의 혼자만의’가 되므로 어색하다. ‘제 혼자만의’를 ‘저 혼자만의’로 바꾸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관형격 조사 마지막 문제
2025.09.09. 18:18
독자분께서 질문해 오셨다. 신문 제목에 나온 ‘~작품 선봬’라는 표현에서 ‘선봬’가 잘못된 말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선뵈’가 맞는 것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선뵈’가 맞는 말이라면 질문이 아니라 지적이 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언뜻 봐서는 ‘선뵈’가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선봬’는 어딘지 모양이 아닌 듯싶다. ‘선뵈다’가 ‘선뵈고, 선뵈니, 선뵈면’ 등으로 활용되는 것을 생각하면 ‘선봬’도 ‘선뵈’가 아닌가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선뵈다’는 어간 ‘선뵈’로만 말이 끝날 수가 없다. ‘먹다→먹어, 예쁘다→예뻐, 우습다→우스워’에서 보듯 종결어미인 ‘-어’를 추가해야 한다. ‘선뵈다’ 역시 어간인 ‘선뵈’에 ‘-어’를 덧붙이면 ‘선뵈어’가 되고 이것이 줄면 ‘선봬’가 된다. 따라서 ‘~작품 선봬’에서 ‘선봬’는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영어로 한 말을 한번 옮겨 보자. 그는 재치 있으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소감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브래드 피트, 드디어 (만나 뵈/만나 봬) 반갑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에 계셨나요”였다. 여기에서도 정답은 ‘만나 봬’다. 이때도 ‘뵈다’의 어간인 ‘뵈’가 홀로 쓰이지 못하고 연결어미인 ‘-어’를 추가해야 한다. ‘뵈+어 → 뵈어 → 봬’가 되는 것이다. 문제 하나 더. 헤어질 때 많이 쓰는 “내일 (뵈요/봬요)”는 어느 것이 맞을까? 이 역시 ‘뵈다’의 어간 ‘뵈’에 ‘-요’가 바로 붙지 못하고 ‘어’를 추가해야 한다. 우리말 바루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배우 윤여정 신문 제목
2025.09.04. 18:29
다음 중 ‘갱의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실 ㉡탈의실 아마도 ‘㉠강의실’을 고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원래 ‘강의실’인데 ‘강’에 ‘ㅣ’ 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나면서 ‘갱의실’로 발음하게 된 것이라는 풀이와 함께 흐뭇하게 ㉠을 골랐을 수도 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법적 설명임은 분명하나 정답은 ‘㉡탈의실’이다. ‘갱의실(更衣室·경의실)’은 한자어로, 한글세대에게는 어려운 용어다. 같은 한자어이긴 하지만 ‘탈의실’이 훨씬 쉬운 말이다. 문제 하나 더. 다음 중 ‘부전지’가 뜻하는 것은? ㉠건전지 ㉡쪽지 ‘전지’ 때문에 ‘㉠건전지’를 고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답은 ‘㉡쪽지’다. 부전지(附箋紙)는 간단한 의견을 적어 덧붙이는 쪽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 단어가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법률·행정용어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법률·행정용어에는 예찰검사(→현장검사), 제연경계벽(→연기차단벽), 장방형(→직사각형), 등 지극히 어려운 한자어가 수두룩하다. 익일(→다음날), 금일(→오늘), 익월(→다음달), 시말서(→경위서), 가도(→임시도로), 견출지(→찾음표) 등과 같은 일본식 용어도 적지 않다. 이처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법률·행정용어는 국민의 이해력을 떨어뜨리고 접근권을 제약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탈의실 모음 역행동화 이들 단어 문제 하나
2025.09.03. 18:35
기부천사들의 조용한 선행은 큰 울림을 준다.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을 두고 “온정을 선사한 3인방”과 같이 표현해도 될까? 3인방에 쓰인 ‘방’이 어디서 온 말인지 알아야 한다. 사전엔 4인방이 올라 있다. ‘4인방’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 권력을 휘둘렀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과 그 무리 4명을 이르는 말이다. ‘상하이방’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장쩌민의 후원에 힘입어 1980년대 권력의 실세로 군림했던 상하이 출신들을 가리킨다. 2000년 이후 등장한 국무원 석유부·석유학원 출신의 인맥을 일컫는 ‘석유방’도 빼놓을 수 없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청방’과 ‘홍방’이 있다. 이들 조직은 상호 부조를 위해 만들었던 비밀결사대였으나 훗날 범죄단체로 변질돼 중국 암흑가의 대명사가 됐다. 중국에서 ‘방(幇)’은 이익을 위해 이룬 무리, 파벌, 패거리 등 부정적 색채가 강한 의미로 사용돼 왔다. 이런 쓰임에 비추어 보면 ‘기부천사 3인방’ ‘의인 4인방’ ‘신인상 후보 5인방’처럼 사용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있다. ‘문고리 3인방’ ‘비리 핵심 인물 5인방’ 등의 쓰임새가 더 자연스럽다. 중국에서 넘어온 이 말을 우리나라에선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독립된 형태로 올라 있지 않지만 몇 인방과 같은 형태로 많이 쓰인다. ‘무리’의 뜻을 더하는 접사로 세를 넓혀 가는 모양새다. 그게 언중의 선택이라면 사전에도 가치 평가를 담지 않은 말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우리말 바루기 고찰 석유학원 출신 상하이 출신들 부정적 색채
2025.09.02. 20:11
한국의 중앙은행 이름은 한국은행. 화폐를 발행하고 은행의 은행 역할을 하며 통화량을 조절한다. 일본 중앙은행은 일본은행, 캐나다는 캐나다은행, 호주는 호주준비은행으로 번역된다. 그렇지만 미국의 중앙은행을 가리킬 때는 ‘은행’을 붙이지 않는다. 주로 ‘연방준비제도’로 번역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달 금리를 동결했다.” 이처럼 표현하는 뉴스를 흔히 볼 수 있다. 이전의 번역어는 ‘연방준비은행’ ‘연방준비제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방준비이사회’ ‘연방준비은행이사회’ 등 다양했다. 그러다 2000년께부터 ‘연방준비제도’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이원화돼 있다. 워싱턴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으로 이뤄져 있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의 타협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지역 연방준비은행에는 ‘뉴욕연방준비은행’처럼 지역명이 붙는다. 이런 구조여서 하나의 단일한 은행으로 보지 않는다. 원어(Federal Reserve System)에도 ‘은행(Bank)’이 들어 있지 않다. 그렇더라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라는 표현에서처럼 하나의 기관으로 여긴다. ‘기관’과 ‘제도’는 쓰임이 다르다. ‘기관’은 조직이나 기구로 실체가 있고, ‘제도’는 사회적 규범이나 체계로 실체가 없다.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자연합회, 한글학회는 2년 전 ‘연방준비은행’으로 쓰자고 제안했다.우리말 바루기 미국 중앙은행 중앙은행 이름 지역 연방준비은행 캐나다은행 호주
2025.09.01. 19:00
서울은 산(山) 부자다. 주말엔 등산객으로 붐빈다. 북한산·수락산·도봉산 등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 산을 적을 때 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국의 산 이름은 어떨까? ‘에베레스트 산’ ‘킬리만자로 산’과 같이 습관적으로 띄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전엔 띄는 게 올바른 표기법이었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 제4장 3절 1항의 ‘해, 섬, 강, 산 등이 외래어에 붙을 때에는 띄어 쓰고, 우리말에 붙을 때에는 붙여 쓴다’는 규정에 따라서다. 이 항목이 2017년 6월 삭제됐다. 띄어쓰기 규정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외래어 표기법이 일부 개정돼 ‘에베레스트산’ ‘킬리만자로산’처럼 붙인다. 바다 이름도 마찬가지다. 개정 전에는 ‘해’가 외래어 뒤에 오면 ‘카리브 해’ ‘발트 해’와 같이 띄고, 고유어나 한자어 뒤에선 ‘홍해’ ‘지중해’와 같이 붙였다. 개정 후에는 일관되게 띄어쓰기를 적용해 ‘카리브해’ ‘발트해’로 붙인다. 강 이름도 ‘나일 강’으로 띄지 않고 ‘나일강’처럼 붙여야 한다. 섬은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모두 ‘섬’으로 통일해 적는다. 제주도로 부르는 우리와 달리 외국 지명의 경우 ‘해남도(海南島)’로 안 쓰고 ‘하이난섬’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이때 ‘하이난 섬’으로 띄지 않는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해(海), 섬, 강(江), 산(山)처럼 띄어쓰기가 변경된 말은 가(街), 고원(高原), 곶(串), 관(關), 궁(宮), 만(灣), 반도(半島), 부(府), 사(寺), 산맥(山脈), 성(城), 성(省), 어(語), 왕(王), 요(窯), 인(人), 족(族), 주(州), 주(洲), 평야(平野), 현(縣), 호(湖) 등이다.우리말 바루기 북한 에베레스트산 외래어 표기법 외국 지명
2025.08.28. 19:43
‘녹색의 땅(Greenland)’이란 이름과 달리 얼음으로 뒤덮인 그린란드. 빠르게 빙하가 녹아내리며 우려를 낳고 있다. 온난화의 바로미터가 된 이곳은 왜 ‘그린란드’로 불릴까? 섬의 이름을 ‘그린랜드’로 잘못 부르는 경우도 많다. 스코틀랜드(Scotland)와 아일랜드(Ireland)를 떠올려 보면 ‘그린랜드’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핀란드(Finland)와 아이슬란드(Iceland)를 떠올리면 다시 궁금증이 인다. 나라나 지역 이름에 ‘land’를 포함하는 곳이 많은데 헷갈릴 수밖에 없다. 답은 외래어 표기법에서 찾을 수 있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현지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되 국명·수도명 등 이미 굳어진 것은 관용에 따른다. ‘land’형으로 끝나는 국명 또는 지명을 우리말로 표기할 때 음가에 관계없이 영어권 지명은 ‘랜드’로 통일한다. 영어권 국가인 뉴질랜드, 미국의 메릴랜드·클리블랜드, 영국의 하일랜드, 호주의 퀸즐랜드 등이 해당된다. 북유럽이나 동유럽권은 ‘란드’ 또는 ‘란트’로 구별해 적는다. 독일어는 도이칠란트·라인란트 등 ‘-란트’로 표기한다. 네덜란드어 지명도 ‘-란트’로 쓰되 국명은 관용을 인정했다. 프리슬란트·제일란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밖의 지명은 대체로 ‘-란드’로 표기한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을 발간할 때 세칙 형태로 덧붙여진 이들 표기법은 현재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선 찾을 수 없다. 표기 용례에는 적용되고 있으나 예외도 있어 보충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우리말 바루기 그린란드 외래어 표기법 네덜란드어 지명도 이들 표기법
2025.08.26. 20:09
폭염으로 월평균 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폭력 범죄가 3%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더위와 범죄율은 상관관계가 높다. 그래서인지 “더위가 심해질수록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나고 주변 사람과 자꾸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날이 더워지니 주변에서 사소한 일로도 승강이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자기 말이 맞는다고 다투는 모습을 나타낼 때 이처럼 ‘실랑이’ 또는 ‘승강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둘 중 하나는 틀린 표현 같지만 모두 바른 표현이다. 그런데 “접촉 사고로 운전자들 사이에 실강이가 벌어졌다”에서와 같이 ‘실강이’라고 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실강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실랑이’의 잘못이라 풀이돼 있다. 많은 이가 ‘실랑이’와 ‘승강이’를 뒤섞어 쓰며 굳어진 잘못으로 보인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실갱이를 하다 보니 몹시 피곤하다”에서처럼 ‘실갱이’라고 쓰는 이도 많다. 그러나 ‘실갱이’ 역시 바르지 못한 표현으로, ‘실랑이’나 ‘승강이’로 고쳐 써야 바르다. ‘서로 옥신각신하는 일’을 가리킬 땐 ‘실랑이’와 ‘승강이’를 모두 쓸 수 있지만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을 나타낼 땐 ‘실랑이’만 쓸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빚쟁이들한테 실랑이를 당하는 모습이 무척 괴로워 보였다”와 같은 예문에서는 ‘승강이’가 아닌 ‘실랑이’만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실갱이 더위 더위 때문 폭력 범죄 운전자들 사이
2025.08.24. 17:07
무더위가 이어지다 보니 몸이 처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움직이기가 싫다는 사람이 많다. 움직이면 땀이 흐르고 숨이 차니 가급적 움직임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럴 때 쓰이는 ‘귀찮다’는 단어는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귀차니즘’이나 ‘귀차니스트’라는 말이 생겼다. 귀찮은 일을 몹시 싫어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을 ‘귀차니즘’이라 한다. ‘귀차니스트’는 귀찮은 일을 싫어하고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귀차니스트에게 소구하는 제품 광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귀찮다’는 언어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단어다. 본래 뜻은 지금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귀찮다’는 원래 ‘귀(貴)하다’와 ‘아니하다’가 합쳐져 ‘귀하지 않다’는 의미로 쓰였다. ‘귀하지 아니하다’가 ‘귀치 않다’로 줄어들고, 이어 ‘귀찮다’로 축약된 것이다. 그러니까 귀하지 않고 평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을 의미할 때 ‘귀찮다’를 사용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귀찮다’를 찾아보면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로 풀이돼 있다. 원래의 ‘귀하지 아니하다’는 의미는 포함돼 있지 않다. 귀하지 않아 평범하다 보니 흔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이르렀고, 결국에는 괴롭고 성가시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이렇게 의미가 ‘귀(貴)하다’에서 멀어지다 보니 이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귀찮다’를 순우리말처럼 취급하고 있다. 즉 ‘귀(貴)찮다’와 같이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우리말 바루기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제품 광고 가급적 움직임
2025.08.21. 18:24
올해 한국의 장마는 상대적으로 짧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폭우가 쏟아졌다. 지난달 20일 전후, 전국 10여 곳에 ‘200년 만의 물폭탄’이 떨어졌고, 일부 지역은 닷새간의 강수량이 800mm에 달했다. 언론마다 ‘호우’와 ‘집중호우’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심각성을 보도했다. 호우(豪雨)는 줄기차게 내리는 크고 많은 비를 뜻한다. 12시간 80㎜ 이상일 때 호우주의보가, 150㎜ 이상일 때 호우경보가 내려진다. 집중호우(集中豪雨)는 시간당 30㎜ 이상 되는 비를 말한다. 생명과 재산을 앗아갈 수도 있는 비의 양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용어임에도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호우’에는 좋은 벗을 뜻하는 ‘호우(好友)’, 때를 맞추어 알맞게 오는 비를 뜻하는 ‘호우(好雨)’ 등 한글로는 발음이 같은 한자어 단어가 꽤 많이 있기도 하다. 이들 용어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일본에서 쓰는 낱말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호우’ ‘집중호우’는 우리가 원래 사용하지 않던 일본식 한자어다. 그러다 보니 단어 자체로는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는다. 이전부터 우리가 사용해 오던 말은 ‘큰비’(호우), ‘장대비’ 또는 ‘작달비’(집중호우)다. 꼭 일본식 한자어라서가 아니라 더욱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쓴다는 차원에서 이들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국립국어원도 ‘호우’나 ‘집중호우’ 대신 ‘큰비’와 ‘장대비(작달비)’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우리말 바루기 장대비 큰비 한자어 단어 이들 용어 단어 자체
2025.08.10. 16:51
‘초승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는 속담이 있다. 초승달은 떴다가 금방 지기 때문에 부지런한 며느리만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슬기롭고 민첩한 사람만이 미세한 것을 살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초승달’은 음력으로 매월 초하루부터 며칠 동안 뜨는 달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그런데 ‘초승달’을 ‘초생달’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어찌 보면 그달의 시작 지점에서 생기는 달이므로 ‘초생(初生)+달(月)’의 구조로 ‘초생달’ 표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초승달’이 맞는 말이다. 여기에서 ‘초승’은 음력으로 그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을 뜻하는 말이다. ‘초승’은 ‘초생(初生)’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이처럼 ‘생(生)’이 다른 글자와 결합하는 경우 음이 ‘승’으로 바뀌고 바뀐 형태인 ‘승’으로 적을 때가 있다. 사극을 보면 “내 그대와 금생엔 인연이 아니었지만 저승에선 꼭 부부의 인연을 맺겠소” 등과 같은 대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등장하는 ‘금생’과 ‘저승’이 이런 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뜻하는 ‘금생(今生)’에선 ‘생’으로 쓰이지만,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사는 세상을 의미하는 ‘저승’의 경우 바뀐 음인 ‘승’으로 사용된다. ‘금생’과 같은 뜻인 ‘이승’ 또한 ‘승’으로 바뀐 형태가 표준어가 됐다. ‘초승달’ 역시 ‘초생’으로부터 온 말이지만 ‘생’이 ‘승’으로 변한 ‘초승달’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우리말 바루기 초승달 초생달 그달 초하루 시작 지점 지기 때문
2025.08.07. 18:30
“짜장면과 짬뽕 중 뭘 먹을래요?” 늘 고민에 빠지게 하는 질문이다. 짜장면을 더 좋아한다는 설문 결과도 있지만 성별·연령에 따라 뒤바뀌기도 한다. “오늘은 짜장면요!” “얼큰한 짬뽕이요!” 같은 사람이라도 대답이 한결같지 않다. 답변 형식도 다르다. “짜장면요”라고 할 때도 있고 “짜장면이요”라고 할 때도 있다. 어떻게 말해야 바를까? 먼저 ‘요’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가령 “뭘 주문할래?” “나는 짜장면”이라는 대화에 ‘요’를 붙이면 “뭘 주문할래요?” “나는 짜장면요”처럼 존대 어투로 바뀐다. 이때의 ‘요’는 체언이나 부사어, 연결어미 따위의 뒤에 붙어서 청자에게 존대의 의미를 나타내는 보조사다. 원래는 보조사 ‘요’ 앞에 ‘이’를 덧붙일 수 없었다. 앞말에 받침이 있든 없든 “짜장면요”라고 해야 맞춤법에 맞는 표현이었다. “짜장면이요”는 잘못된 표현으로 취급받아 왔지만 2020년 4분기 표준국어대사전의 정보를 수정했다. 주로 발화 끝에 쓰여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로 ‘이요’가 추가됐다. 받침 있는 체언이나 부사어 따위 뒤에 주로 붙는다. 보조사 ‘요’가 와야 할 자리에 ‘이요’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언어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어디 가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구내식당이요”라고 답하는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구내식당요”라고 하면 낯설어한다. 사람들이 ‘요’와 ‘이요’를 섞어 쓰고 앞말에 받침이 있으면 ‘이요’를 선호한다. 우리말 바루기 보조사 짜장면과 짬뽕 부사어 연결어미 존대 어투로
2025.07.31. 18:04
한국식 인사법으로 가장 많이 오가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밥 먹었어”다. 특히 가족끼리는 더욱 그렇다. 나 역시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밥은 먹었냐?”는 식으로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돌아오는 답은 “머거써” 아니면 “안 머거써”다. 그러고 무엇을 더 물어보니 이번에는 “어떠케 아라쩌”라고 한다. “아라써” 대신 “아라쩌”라고 하는 것을 보니 기분은 괜찮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떻게 대답에 받침이 하나도 없네. 이래도 괜찮나 싶어 이번에도 ‘머거써’처럼 먹는 것과 관련해선 탁월한 전문가이자 언어에도 영향력이 큰 백○○씨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뭔 걱정이 그러케 마너유. 그냥 내비 둬유. 다 알아들으면 됐지 뭘 그래유!” 그런다. 그래도 나는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받침 없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은 ‘추카추카’에서 시작해 머거써, 아라써, 어떠케, 그러케(그렇게), 마너(많어)뿐 아니라 시러(싫어), 조아(좋아), 조타(좋다), 마니(많이), 아라요(알아요), 부지러니(부지런히), 가튼데(같은데), 일거써(읽었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 역시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생기는 일로, 소통엔 별 문제가 없다. 그만큼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인터넷 시대, 디지털 시대까지 미리 알고 대비하셨는지 선견지명이 놀랍다. 다만 세종대왕도 이러다 올바른 표기를 아주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조금은 걱정하시지 않을까 싶다.우리말 바루기 한국식 인사법 인터넷 시대
2025.07.29. 18:28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총리직도 맡고 있는 그는 사우디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다. 우리 언론에도 거의 매일같이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름 전체를 밝히지 않을 때는 주로 ‘빈 살만’으로 통한다. 영어권의 이름에서처럼 성씨인 줄 알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빈 살만’에서 ‘살만’은 그의 아버지 이름이고, ‘빈’은 ‘아들’이라는 뜻이다. 아랍권에는 대부분 성씨가 없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사우디 왕세자 이름의 한글 표기를 확정했다. 그동안 언론에서 많이 표기해 오던 ‘무함마드 빈 살만(Muhammad bin Salm?n)’이 표준 표기가 됐다. 풀이하면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다. 따지고 보면 ‘빈 살만’을 성씨나 성에 준하는 이름으로 적는 건 어색한 일이다. 현재 사우디 국왕인 무함마드의 아버지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압둘아지즈의 아들 살만’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다. 그는 ‘빈 압둘아지즈’가 아니라 본인의 이름인 ‘살만’으로 불린다. 무함마드가 주로 ‘빈 살만’으로 불리게 된 데는 무함마드 직전 왕세자 이름과 관련이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앞의 왕세자는 무함마드 빈 나예프. 이름이 같다. 언론은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줄곧 ‘무함마드’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새로운 왕세자도 ‘무함마드’였다.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빈 살만 왕세자’라고 표현하는 언론 매체가 많아졌다. 그러는 사이 ‘빈 살만’을 성씨로 아는 사람도 늘어났다. 부자의 대명사 만수르. 그의 전체 이름은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이다. 아랍에미리트 부총리인 그를 가리킬 때도 ‘빈 자이드’라고 하지 않고 ‘만수르’라고 부른다.우리말 바루기 표현 왕세자 무함마드 아들 무함마드 무함마드 직전
2025.07.27. 18:13
유튜브를 보다 보면 많이 듣는 용어가 ‘드립’이다. ‘드립’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그래, 드립 커피가 최고지!”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드립’이 아니다. ‘개드립’이니 ‘막장드립’이니 하면서 쓰이는 ‘드립’ 얘기다. 이 ‘드립’은 ‘애드립(ad lib, 정확한 외래어표기는 ‘애드리브’)’에서 온 말이다. ‘애드립’은 원래 방송 출연자가 대본에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다. 이 ‘애드립’을 줄인 말이 ‘드립’으로, 인터넷에서 일종의 은어(隱語)로 쓰이고 있다. 주로 부정적 의미의 즉흥적 발언을 가리킨다. ‘드립’은 ‘○드립’ 형태로 수많은 말을 만들어 낸다. ‘개드립’ ‘막장드립’ ‘패드립’에서 ‘뻥드립’ ‘섹드립’ ‘지랄드립’에 이르기까지 온갖 말이 붙는다. 황당한 말 등을 지칭하는 용어로 두루 쓰인다. “개드립 치고 있네”처럼 다소 거친 어감의 ‘치다’와 어울려 쓰이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드립’이 들어간 말은 부정적이거나 거칠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드립’이란 말엔 정확성과 구체성을 담보하지 않고도 얼렁뚱땅 상대를 깎아내리는 마법과 범용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이 말에 유혹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드립’은 점잖은 사람이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드립’이란 말이 공적인 문장이나 대화에서는 사용되지 못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드립’은 ‘거시기’처럼 구체성을 담지 못함으로써 때론 어휘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소 가벼운 것을 추구하는 매체이더라도 가급적 이러한 표현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말 바루기 드립 드립 커피 즉흥적 발언 부정적 의미
2025.07.24.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