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가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 등으로 설렘이 동반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낯설음’은 나를 항상 설레게 만든다”와 같은 게시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이처럼 ‘낯설다’를 명사형으로 만들 때 ‘낯설음’이라고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우리말에서는 용언(서술어의 기능을 하는 동사, 형용사)을 명사형으로 만들 때 받침의 유무에 따라 ‘-ㅁ’이나 ‘-음’을 붙인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없을 땐 ‘-ㅁ’을 붙이고, 받침이 있을 땐 ‘-음’을 붙여 명사형을 만든다. 예를 들어 ‘설레다’는 어간 ‘설레-’가 받침 없이 끝나므로 ‘-ㅁ’을 붙여 ‘설렘’이라고 명사형을 만들면 된다. ‘귀찮다’의 경우엔 어간 ‘귀찮-’이 받침 있는 말로 끝나므로 ‘-음’이 붙어 ‘귀찮음’이 명사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용언의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날 땐 ‘-음’이 아닌 ‘-ㅁ’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 써야 한다. 한글맞춤법 제19항에는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따라서 ‘만듬(만들다)’ ‘줌(줄다)’ ‘힘듬(힘들다)’ 등과 같이 ‘ㄹ’을 생략하고 표기해선 안 된다. ‘만들다→만듦’ ‘줄다→줆’ ‘힘들다→힘듦’ 등과 같이 원형을 밝혀 적는다. ‘낯설다’는 어간이 ‘낯설-’로, ‘ㄹ’ 받침으로 끝난다. 따라서 명사형을 만들 때 ‘낯설음’이 아닌 ‘낯섦’이라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우리말 바루기 한글맞춤법 제19항 동사 형용사
2026.03.22. 19:01
“선배, ‘재룟값’ ‘원자잿값’이라고 ‘사이시옷’을 붙여야 해? 너무 이상해 보여. 또 ‘우윳값’ ‘구릿값’은 어떻고. 이거 규정을 따라야 할까?” “‘재료값’ ‘원자재값’이라 적는 게 상식적이라고 생각해. 소리를 표기에 반영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형태가 일그러지다 보니 거부감이 많이 들어.” “사이시옷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면 ‘둘레길’도 ‘둘렛길’로 적어야 하잖아. ‘둘렛길’을 누가 받아들이겠어.” 한글맞춤법 30항은 ‘사잇소리’가 날 때 ‘ㅅ’을 받쳐 적도록 하고 있다.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나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에서 ‘냇가’[내까]처럼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아랫니’[아랜니]나 ‘냇물’[낸물]처럼 ‘ㄴ’ 소리가 덧나거나 ‘나뭇잎’[나문닙]처럼 ‘ㄴㄴ’ 소리가 날 때 ‘ㅅ’을 적으라고 한다. 한자어 단어는 예외(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를 빼곤 안 적는다. 이 규정 때문에 끝없이 ‘ㅅ’을 받쳐 적는다. ‘최댓값, 채솟값, 등굣길, 막냇손자….’ 그런데 ‘갯수’나 ‘마굿간’은 한자어로만 돼 있어 ‘개수’ ‘마구간’으로 적어야 된다.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한글맞춤법에서 사이시옷 규정을 빼버리는 거다. 그렇다고 ‘냇가’나 ‘아랫니’ 등에서도 사이시옷을 뺄 건 아니다. 사이시옷이 굳어진 단어들은 그대로 두면 된다. ‘최댓값’ 같은 말들에선 빼는 게 낫다. 사이시옷 표기 여부는 국어사전에서 확인하면 된다. 우리말 바루기 사이시옷 규정 사이시옷 규정 사이시옷 표기 이거 규정
2026.03.19. 19:38
피로가 쌓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는 등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얼굴에도 티가 나는데, 안색이 파리하니 핏기가 없이 창백해 보이고 눈이 퀭해지기도 한다. 이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주위에서 “눈이 때끈해 보인다”고 걱정 어린 말을 건네곤 한다. 눈이 쑥 들어가고 생기가 없어 보일 때 이처럼 ‘눈이 때끈하다’고 쓰는 이가 많다. 그런데 이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때꾼하다’가 바른 표현이라고 하면 생경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우리말에는 ‘-끈하다’로 끝나는 단어는 많지만 ‘-꾼하다’로 끝나는 단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너끈하다’ ‘매끈하다’ ‘발끈하다’ ‘지끈하다’ ‘후끈하다’ ‘화끈하다’ 등 ‘-끈하다’로 끝나는 단어가 많다 보니 ‘때꾼하다’ 역시 ‘때끈하다’가 바른 표현이라 생각하기 쉽다. ‘-끈하다’란 형태에 비해 ‘-꾼하다’로 쓰는 형태의 단어는 별로 없다. 그래서 ‘때꾼하다’라고 하면 영 익숙지 않고 어색하지만 ‘때꾼하다’가 바른 표현이란 걸 기억하자. 특이한 점은 ‘때꾼하다’ 외에 ‘떼꾼하다’도 같은 의미의 표준어로 사전에 등재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바른 표현일지 고민하지 말고 둘 중 하나를 골라 쓰면 된다. 또한 ‘대꾼하다’와 ‘데꾼하다’도 ‘때꾼하다’와 ‘떼꾼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주는 표현이란 설명과 함께 표준어로 올라 있다. 정리하자면, ‘때꾼하다’ ‘떼꾼하다’ ‘대꾼하다’ ‘데꾼하다’가 모두 바른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건강 상태
2026.03.18. 18:49
“낮엔 무덥다.” “밤엔 선선해진다.” 이 문장들을 그대로 이으면 “낮엔 무덥고, 밤엔 선선해진다”가 된다. 그런데 뭔가 좀 어색하다. ‘무덥다’는 ‘어떻다’, ‘선선해진다’는 ‘어찌하다’ 형태여서 그렇다. 앞뒤가 ‘어떻다’로든, ‘어찌하다’로든 같아져야 문장이 부드러워진다. “낮엔 무덥고, 밤엔 선선하다”로 하거나 “낮엔 무더워지고, 밤엔 선선해진다”로 해야 자연스럽다. “몽룡이는 오고, 춘향이는 간다”는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몽룡이는 달리고, 춘향이는 아름답다”는 부자연스럽다. ‘달리다’는 ‘동작’(어찌하다)을, ‘아름답다’는 ‘상태’(어떻다)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동작은 동작끼리, 상태는 상태끼리 대비돼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음과 같은 문장도 어색함을 준다.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드립니다.” 급하다 보니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상태를 나타내는 ‘행복하다’와 동작을 나타내는 ‘감사드리다’가 이어졌다. 둘로 나눠서 말하는 게 나았다. “너무나 행복합니다. (여러분)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들린다. “관광객은 1000만 명을 돌파했고, 공항 이용객은 1억1800만 명이다.” 여기서 ‘돌파했고’는 ‘동작’을, ‘1억1800만 명이다’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래서 어색한 문장이 됐다. “관광객은 1000만 명이고, 공항 이용객은 1억1800만 명이다” 혹은 “관광객은 1000만 명을 돌파했고, 공항 이용객은 1억1800만 명을 기록했다”처럼 바꾸는 게 좋겠다. 우리말 바루기 앞뒤 형태 공항 이용객
2026.03.17. 19:57
친구가 말했다. “진천은 말이야 생거진천이라고 하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여. 그런데 나는 ‘진천에 산다’고 하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는 ‘서울에서 산다’고도 자주 그러데.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서 산다’고 그러는 겨? 서울하고 말이 달라서 그런 겨, 아니면 둘 중 누가 틀린 겨?” 나는 “둘 다 맞는 겨”라고 했다. ‘살다’는 말 앞에는 그 장소 뒤에 ‘에’도, ‘에서’도 붙는다. ‘진천에 산다’고도, ‘진천에서 산다’고도 할 수 있다. 둘 다 자연스럽게 오간다. 다만 이때 어감은 조금 다르다. ‘진천에 산다’고 하면 단순히 거주하거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달된다. 정적이어서 ‘움직임’이 잘 안 느껴진다. 그렇지만 ‘진천에서 산다’고 말하면 ‘움직임’ 같은 게 다가온다. 존재 여부를 나타내는 말 ‘있다’와 ‘없다’가 쓰인 문장에서는 ‘에’가 자연스럽고, ‘에서’는 아주 부자연스럽다. 누구나 ‘공원에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공원에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색해한다. ‘공원에서’ 뒤에 어떤 동작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사람이 없다’고도 하지 않는다. ‘산책한다’는 움직임이 뚜렷한 말이다. 그래서 ‘공원에서 산책한다’고 한다. ‘살다’가 ‘에’와 같이 쓰일 때는 움직임이 그 상태로 계속된다는 거다. ‘에서’는 동작이 있음을 알리고. 진천 친구의 ‘진천에 산다’와 서울 사는 친구의 ‘서울에서 산다’에는 이런 속뜻이 반영돼 있는 것이다.우리말 바루기 진천 진천 친구 서울 사람들 존재 여부
2026.03.15. 7:00
나른한 오후, 잠이 솔솔 몰려오고 피곤이 쌓여 몸이 찌뿌드드한 것같이 느껴지면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기지개’다. 손을 머리 위로 하고 몸을 쭉 펴 주면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정신이 들기도 한다. “지치고 피곤할 땐 기지개를 한번 켜 보라”고 권유하면, 어떤 이들은 ‘기지개를 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듯하다. ‘기지개를 켜다’ 못지않게 ‘기지개를 펴다’라는 표현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펴다’는 굽은 것을 곧게 하는 행위, 움츠리거나 오므라든 것을 벌리는 행위를 나타낼 때 쓰는 단어다. 그렇기에 팔다리를 펴는 행위인 ‘기지개’에도 ‘펴다’를 결합시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법하다. 그러나 ‘기지개’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피곤할 때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는 일’이라고 풀이돼 있다. 다시 말해 ‘기지개’에는 이미 ‘펴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의미가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펴다’가 아닌 ‘켜다’와 함께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간혹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키는 것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에서와 같이 ‘기지개를 키다’로 쓰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 역시 바르지 못한 표현으로, ‘기지개를 켜다’라고 고쳐 써야 한다. ‘기지개를 켜다’는 팔다리를 쭉 펴는 행위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 “경기가 바닥을 찍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에서처럼 ‘서서히 활동하는 상태에 들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말 바루기 기지개 머리 위로
2026.03.12. 20:20
“이 집은 나무로 지었다.” “나는 집으로 간다.” 이 문장들에서 ‘나무로’ ‘집으로’는 부사어다. 이 말들은 ‘지었다’ ‘간다’ 같은 서술어들을 꾸미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는 1982년생으로 서울 출신이다’ 같은 문장도 흔히 보인다. 어문기자 몇이 웅성거렸다. “이런 형태의 문장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해?” “‘1982년생으로’가 ‘출신이다’를 꾸민다고 보기는 어렵지. ‘1982년생인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로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전달하려는 의도가 조금 달라지는 듯해. 깔끔해 보이지도 않아. ‘그는 1982년생으로 서울 출신이다’가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는걸.” “맞아. 따지고 들면 조금 어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해. 나는 수정하지 않고 대부분 그냥 놔두는 편이야. 이 문장은 ‘그는 1982년생이다’와 ‘그는 서울 출신이다’를 한 문장으로 줄인 것 같아.” “나도 그대로 받아들이긴 해. 그런데 ‘그는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가 더 자연스럽거든.” “그러네.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가 더 편하게 읽혀. 하지만 ‘그는 1982년생으로 서울 출신이다’는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게 있어. 이 문장에선 ‘1982년생’도, ‘서울 출신’도 강조되는 느낌을 주거든.” “‘1982년생으로…’에선 ‘으로’가 조금 다른 기능을 하는 것 같아. ‘-ㄴ데’와 비슷한 정도로? 어미조사사전엔 이렇게도 쓰인다는 풀이가 보여.”우리말 바루기 서울 출신
2026.03.11. 19:45
“너 거짓말시키지 마!” “왜 나한테 거짓말시켰어?” 어린아이들끼리 싸움이 났을 때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했다며 이같이 말하곤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시키다’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다’는 말이 된다. 위 표현은 모두 남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너 거짓말하지 마!”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와 같이 고쳐야 바른 표현이 된다. 이처럼 ‘-시키다’를 쓰지 말아야 할 곳에 불필요하게 ‘-시키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당신에게 제 친구를 소개시켜 드릴게요” “사무실 리모델링을 통해 근무 환경을 개선시켰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왔다” 등이 모두 그러한 사례다. 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어떤 동작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을 사동 표현이라고 하는데, ‘-시키다’를 붙이면 사동 표현이 된다. 위 예문은 모두 사동의 의미가 없는데도 사동 표현이 남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남을 시킨 것이 아니라 문장의 주체가 스스로 행한 행위이므로, “다음에 당신에게 제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 “사무실 리모델링을 통해 근무 환경을 개선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왔다” 등처럼 ‘-시키다’를 ‘-하다’ 형태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남용 사동 표현 사무실 리모델링 모두 사동
2026.03.10. 20:11
아는 사람이 책을 냈다. 그는 책에서 ‘것이다’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것이다’는 문장에서 몇 가지 기능을 한다. “담배는 해로운 것이다.” ‘담배는 해롭다’를 이렇게 쓰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것이다’는 강조하면서 설명한다. 다음 같은 문장에서 더 확연히 드러난다.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것이다.” ‘것이다’가 있어 왜 울었는지가 선명하다. 그렇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울었다”처럼 썼다. 뭐가 더 나을까. 그런 건 없다.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다. 선택은 자유다. “아픔은 다 잊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짐작이고 예상이다. ‘것이다’는 ‘추측’을 나타낼 때도 흔하게 쓰인다. ‘것이다’가 들어간 이런 문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아픔은 다 잊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한다.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할 것이다.” 이는 지시하는 것처럼 읽힌다. ‘것이다’는 지시나 명령, 훈계의 뜻을 전하기도 한다. 그럴 의도가 없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권유’하면 된다. ‘것이다’가 지나친 문장이 곳곳에 있다. ‘타당하다’는 걸 밝히는 상황에서 “다수결로 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면 늘어진다. “다수결로 정하는 게 타당하다”로 하면 된다.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를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로 늘리면 문장의 힘이 떨어진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의 ‘것이다’도 군더더기다.우리말 바루기 사용 명령 훈계
2026.03.09. 20:25
‘실시’란 낱말은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다. 공문서나 그것에 가까운 글에서 흔히 보인다. 아무래도 습관 같아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시’란 단어는 대부분 불필요해 보인다. ① 지난주에 방제훈련을 실시했다. ② 검진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③ 다음 달까지 평가를 실시한다. ④ 불우 이웃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⑤ 시험 감독은 시험 실시 직전에 알 수 있다. 흔하게 보이는 문장의 풍경들이지만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①은 ‘방제훈련을 했다’고 하는 게 더 좋다. 굳이 ‘실시’를 넣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②, ③의 문장에서도 ‘실시’를 빼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④는 ‘실시하고’ 대신 ‘펼치고’라고 하면 어떨까. 그게 더 낫겠다. ⑤의 ‘실시’는 ‘시작’이 더 어울린다. ‘실시’보다 일상적인 말들이 더 좋은 문장을 만든다. ‘같은 기간’을 뜻하는 ‘동기’는 조금 어려워 보인다. 역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자주 사용한다. 일상의 독자들에게는 그리 낯익은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동기’를 자주 사용하는 건 ‘동기’를 사용하는 집단의 전통 같다. ‘전년 동기보다 많이 올랐다’ ‘작년 동기 대비’의 ‘동기’는 ‘같은 기간’이라고 하는 게 훨씬 낫다. ‘개소’도 일상의 말이 아니다. 그래서 거리감을 준다. ‘관광지 10개소’보다는 ‘관광지 10군데’나 ‘관광지 10곳’이 친절하다. ‘상수원보호구역 12개소’ ‘열악한 20개소’의 ‘개소’도 ‘곳’이나 ‘군데’가 더 좋다.우리말 바루기 전년 동기 작년 동기 관광지 10곳
2026.03.08. 17:12
깨끗하고 상쾌한 날씨가 더욱 간절해진다. “오늘은 공기가 쾌청하고 산뜻하다” “모처럼 바람이 산듯해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분이나 느낌이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처럼 ‘산뜻하다’라고 쓰곤 한다. 그런데 ‘산듯하다’라고 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산뜻하다’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이다 보니 ‘산듯하다’는 ‘산뜻하다’를 잘못 표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산듯하다’ 역시 표준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산뜻하다’는 ‘산듯하다’보다 센 느낌을 주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산뜻하다’보다 더 큰 느낌을 주는 단어도 있는데, 바로 ‘선뜻하다’이다. “선뜻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가을이 머지않았다” 등과 같이 쓰이는 낱말이다. 그렇다면 ‘산뜻하다’와 ‘산듯하다’가 모두 표준어이듯 ‘선뜻하다’와 ‘선듯하다’도 둘 다 바른 표현일까.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선듯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간혹 “선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등에서처럼 ‘선듯하다’라고 쓰인 문장을 볼 수 있지만 ‘선듯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므로 ‘선뜻하다’로 고쳐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산듯하다/산뜻하다’ 외에 ‘따듯하다/따뜻하다’ ‘뜨듯하다/뜨뜻하다’ ‘반듯하다/반뜻하다’ ‘번듯하다/번뜻하다’ 등도 둘 중 하나를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두 표준어로 등재된 바른 표현들이니 고민하지 말고 둘 다 사용해도 된다.우리말 바루기 모두 표준어
2026.03.05. 20:12
“서울, 부산, 대전 등을 찾는다.” 두리뭉실하다. 서울·부산·대전 외에 다른 도시도 찾는다는 건지, 서울·부산·대전만 찾는다는 건지 모호하다. 쓴 사람만 알 수 있다. 다른 도시도 찾는 것이었다면 쓴 사람은 나머지 도시를 다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다. 나열된 세 도시만 찾는 것인데도 ‘등’을 붙였다면 습관이다. ‘등’은 이처럼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열거한 대상 외에 더 있거나, 열거한 그것만이거나. 1970년대 후반 발행됐던 월간지 ‘뿌리깊은나무’는 그래서 ‘등’을 사용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기도 했다. 뜻이 분명하지 않은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잡지처럼 ‘등’을 안 쓰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대상을 몇만 열거하는 게 나은 상황도 얼마든지 있다. 그 밖에는 덜 쓰는 게 문장의 모호함을 줄여 준다. 서울, 부산, 대전 세 도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서울, 부산, 대전을 찾는다’가 좋겠다. 흐름상 ‘등’을 넣는 게 부드럽다면 ‘서울, 부산, 대전 등 세 곳을 찾는다’고 하면 정확해진다. ‘등’은 또 “춤을 추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에서처럼 ‘는’ 뒤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렇다고 모든 ‘는’ 뒤에 ‘등’이 오는 건 아니다. ‘춤을 추다’의 ‘추다’처럼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 뒤에서만 ‘등’이 와야 자연스럽다. “담당자가 6명에 불과하는 등”에서 ‘불과하는 등’은 어색하다. ‘불과하다’는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는다. ‘지나지 않는 등’이라고 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서울 부산 나머지 도시
2026.03.04. 19:15
매일같이 비스듬히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이가 주위에 있다면 어떤 조언을 건네야 할까. “자세를 반드시 하고 똑바로 앉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자세를 반듯이 하고 똑바로 앉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반드시’와 ‘반듯이’는 발음이 모두 [반드시]로 나기 때문에 헷갈려 쓰기 쉽다. 또 ‘반드시’가 ‘반듯이’를 소리 나는 대로 쓴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와 ‘반듯이’는 각각의 독립된 의미를 지닌 단어이므로, 문맥에 따라 알맞은 낱말을 골라 써야 한다. ‘반드시’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반드시 허리가 쑤신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등에서와 같이 ‘틀림없이 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다. ‘반듯이’는 “고개를 반듯이 들어라” “허리를 반듯이 하고 앉아라” 등에서처럼 ‘비뚤지 않고 바르게’의 의미로 쓰이는 낱말이다. ‘반듯이’는 ‘반듯하다’의 어간 ‘반듯-’에 ‘-이’가 붙은 형태이므로, ‘반듯하다’에서 온 단어라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듯하게’로 바꾸어 보아 말이 통하면 ‘반듯이’를 쓴다고 기억하면 된다. 따라서 위 예문은 ‘반듯이’를 써서 “자세를 반듯이 하고 똑바로 앉아야 한다”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정리하자면 ‘틀림없이 꼭’ ‘기필코’ ‘필위’로 바꿔 쓸 수 있다면 ‘반드시’, ‘반듯하게’로 바꿔 쓸 수 있다면 ‘반듯이’라고 표기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2026.03.03. 20:20
친구와 새 옷을 사러 갔다. “이 옷 어때?”라는 물음에 “그닥 별로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일상적인 대화에서 많은 이가 이처럼 ‘그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워낙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보니 ‘그닥’이 표준어이며, ‘그다지’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닥’은 말을 줄여 쓰기 좋아하는 누리꾼들에 의해 생겨난 말로, 표준어가 아니다. 입말에서는 ‘그다지’보다 ‘그닥’이 더 많이 쓰인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용 빈도가 높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언론 매체에서도 ‘그닥’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기업의 외형은 커 가고 있지만 내실은 그닥” 등과 같은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닥’을 ‘그다지’의 평안도 방언인 ‘그닥지’의 준말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겨난 뒤 쓰임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아 통신 언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온라인상에서는 언어의 경제성이 큰 힘을 발휘하기에, 줄여 쓰는 말들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래서 ‘그닥’이 틀린 표현인지도 모르고 표준어인 ‘그다지’보다 빈번하게 쓰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생명력을 인정받아 ‘그닥’이 표준어로 등극할지도 모르지만, ‘그닥’은 아직 표준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닥’은 ‘그다지’로 고쳐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우리말 바루기 통신 언어 평안도 방언인 언론 매체
2026.02.26. 20:00
많이 쓰면서도 늘 헷갈리는 말이 ‘가르치다/가리키다’이다. 헷갈리는 우리말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사안이다. 각각의 의미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막상 사용할 때는 혼동하기 일쑤다. 우선 ‘가르치다’는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는 그녀에게 운전을 가르쳤다” “저는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등처럼 사용된다. ‘가르치다’는 그릇된 버릇 등을 고쳐 바로잡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아이의 버릇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저런 놈에게는 버르장머리를 톡톡히 가르쳐 놓아야 한다”처럼 쓰인다. ‘가르치다’는 상대편이 아직 모르는 일을 알도록 일러 준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너에게만 비밀을 가르쳐 줄게”가 이렇게 쓰인 경우다. 사람의 도리나 바른길을 일깨우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셨다” 등과 같은 예다. 이에 비해 ‘가리키다’는 손가락 등으로 어떤 방향·대상을 집어서 보이거나 말하거나 알릴 때 쓰인다. “그는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켰다” “시곗바늘이 벌써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가 이런 경우다. 어떤 대상을 특별히 집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낼 때도 쓰인다. “모두들 그 아이를 가리켜 신동이라고 했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가르치다’는 무엇을 익히게 하는 것, ‘가리키다’는 어떤 방향을 집어서 알려주는 것이라 단순화해 생각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순위 기능 이치 초등학교 아이들
2026.02.24. 18:44
‘몽땅’ ‘하나도 남김없이’ 등을 나타낼 때 “그 문제는 내가 싸그리 다 해결할게” 등에서와 같이 ‘싸그리’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이와 비슷하게 “어떻게 그걸 깡그리 다 잊어버릴 수가 있어?”에서처럼 ‘깡그리’라고 쓰기도 한다. 그런데 ‘싸그리’와 ‘깡그리’ 중 하나는 표준어이고 하나는 사투리라고 하면,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인지 골라내기 쉽지 않다. 둘 다 사투리 같기도 하고, 또 모두 표준어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 듯하다.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깡그리’가 표준어, ‘싸그리’는 사투리다. ‘싸그리’는 전남 지역에서 ‘깡그리’의 방언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싸그리’는 ‘깡그리’라고 고쳐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깡그리’와 비슷한 의미로 ‘송두리’가 있다. ‘송두리’는 ‘있는 것의 전부’를 의미하는 명사인데, 이를 ‘모조리’를 뜻하는 부사로 만들 때 ‘송두리째’라고 써야 할지, ‘송두리채’라고 써야 할지 헷갈린다는 이가 많다.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대로 또는 전부’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는 ‘-째’다. 그러므로 ‘송두리채’가 아닌 ‘송두리째’라고 써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나누지 않은 덩어리 전부’라는 뜻의 ‘통째’도 “통채로 잡아먹었다”에서처럼 ‘통채’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역시 ‘송두리째’와 마찬가지로 ‘통째’로 써야 바르다. ‘채’는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의존명사로,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갔다” “노루를 산 채로 잡았다”에서와 같이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사투리 같기 모두 표준어 전남 지역
2026.02.22. 19:07
번역투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 중에 ‘~를 가지다(갖다)’ 형태가 있다. 우리말에서 잘 어울리는 다른 서술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다’ ‘갖다’를 남용하는 것은 영어의 ‘have+명사’를 ‘가지다’ 또는 준말인 ‘갖다’로 단순 번역하는 데 익숙한 탓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즐거운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가 대표적인 예로 “Have a good time”을 직역한 것이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가 우리말에서 어울리는 표현이다. ‘가지다’는 소유의 개념 외에도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어 두루 쓸 수 있는 단어이긴 하다. 그러나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마구 사용함으로써 어색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기자회견을 갖다’ ‘회담을 갖다’ ‘집회를 갖다’ ‘간담회를 갖다’ 등은 ‘열다’ ‘하다’ ‘개최하다’ 등이 어울리는 자리에 ‘갖다’를 쓴 경우다. ‘가지다’를 남용하면 더욱 어색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나는 세 명의 가족을 가지고 있다”가 그런 예로 가족이 소유물인 듯한 표현이다. “나에게는 세 명의 가족이 있다” 또는 “우리 가족은 세 명이다” 등이 자연스런 표현이다. 이처럼 ‘가지다(갖다)’를 남용함으로써 정상적인 우리말 표현 방식이 무너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열다’ ‘있다’ ‘하다’ ‘보내다’ 등 다른 적절한 단어로 바꾸어 쓰거나 우리말답게 문장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표현 명의 가족 우리 가족
2026.02.19. 20:13
글을 쓰면서 가장 헷갈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왠/웬’이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막상 사용하려면 어느 것이 맞는지 또 아리송해진다. 가장 헷갈리는 경우는 ‘왠지’ ‘웬지’다. 발음이 거의 같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답은 ‘왠지’다. ‘왠지’는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왜 그런지 모르게’ ‘무슨 까닭인지’라는 뜻이다. “올해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왠지 오늘은 달달한 것이 당긴다”처럼 쓰인다. ‘왠지’가 ‘왜인지’의 준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웬지’로 쓰지 않을 수 있다. ‘웬’은 ‘어찌 된’ ‘어떠한’을 뜻하는 관형사다. 관형사는 명사를 수식하는 말이다. 따라서 ‘웬’ 다음에는 반드시 명사가 온다. “이리 늦다니 웬 영문인지 모르겠다” “웬 걱정이 그렇게 많아” 등과 같이 사용된다. 그럼 ‘왠걸’은 어떻게 될까? ‘웬걸’이 맞는 말이다. ‘웬 것을’이 줄어 ‘웬걸’이 됐다. “웬걸 먹을 것을 이리도 많이 사왔냐?” “웬걸 사람이 이렇게 많이도 모였냐?” “안 먹던 술을 웬걸 그렇게 많이 먹었던지”처럼 쓰인다. ‘왠일’도 틀린 말이다. ‘어찌 된 일’이라는 뜻으로 원래 ‘웬 일’ 형태였겠지만 ‘의외’라는 의미의 한 단어로 취급해 ‘웬일’이 됐다. “웬일로 여기까지 다 왔니?” “이게 웬일이냐” “지각 한 번 없던 그가 결석을 하다니, 웬일일까?와 같이 사용된다. ‘웬 떡’ ‘웬 걱정’ ‘웬걸’ ‘웬일’ 등처럼 ‘왠지’ 외에는 모두 ‘웬’이라고 쉽게 생각해도 된다.우리말 바루기 웬일로 여기
2026.02.17. 19:42
차례 음식은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 만들기 쉽지 않지만, 명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차례 음식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이렇게 차례를 지내기 위해 차려놓는 제사 음식을 뭐라고 해야 할까. ‘젯밥’과 ‘잿밥’ 가운데 어떤 것이 바른 표기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젯밥’과 ‘잿밥’은 둘 중 하나가 맞고 나머지 하나는 틀린 표기일 것 같지만, 둘 다 바르다. ‘젯밥’은 제사에 쓰이는 제삿밥을 뜻하고, ‘잿밥’은 불공할 때 부처 앞에 놓는 밥을 일컫는다. 따라서 차례를 드릴 때 올라가는 음식은 ‘젯밥’이라고 써야 맞는다. 비유적 표현 중에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말이 있다. 맡은 일에는 정성을 쏟지 않고 잇속에만 마음을 쓸 때 이렇게 표현한다. ‘염불’은 불경을 외우는 일을 뜻하므로, 정황상 부처님께 올리는 ‘잿밥’이라 써야 이치에 맞는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표현에서는 제사에 올리는 밥을 가리키므로 ‘젯밥’을 쓰는 게 바르다. ‘재(齋)’는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거나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자 예불을 올리는 것으로, 일반적인 제사를 가리키는 ‘제(祭)’와는 구별해 써야 한다. ‘사십구재’ ‘천도재’를 ‘사십구제’ ‘천도제’로 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재’와 ‘제’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잘못이다. ‘사십구재’와 ‘천도재’는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이므로 ‘재’라고 써야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젯밥 잿밥 제사 음식 비유적 표현 정황상 부처님
2026.02.15. 18:20
한우는 ‘소고기’ ‘쇠고기’ 어느 것으로 불러야 할까? ‘소고기/쇠고기’ ‘소갈비/쇠갈비’ ‘소곱창/쇠곱창’ 등으로 언론 매체도 저마다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쇠고기’가 표준어이고 ‘소고기’는 잘못된 말이라 여기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쇠고기’만 표준어로 인정하고 ‘소고기’는 사투리로 취급해 ‘소고기’를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 맞춤법을 개정하면서 둘 다 표준어로 인정했다(복수표준어). 따라서 ‘쇠고기’ ‘소고기’ 모두 표준어로, 어느 것을 써도 문제가 없다. ‘쇠’는 ‘소의’의 준말이고, ‘소의 고기’가 ‘쇠고기’다. 고기는 소의 부속물이므로 ‘소의 고기’라 부르던 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쇠고기’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고기’라고도 많이 쓰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복수표준어로 인정했다. 그렇다고 ‘소’나 ‘쇠’를 아무 데나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의 부속물인 경우에는 ‘쇠’와 ‘소’를 함께 쓸 수 있으나 그 밖에는 ‘소’만 사용된다. 소의 부속물인 ‘소갈비·소가죽·소기름·소머리·소뼈’ 등은 ‘쇠갈비·쇠가죽·쇠기름·쇠머리·쇠뼈’ 등으로 함께 쓸 수 있으나 부속물이 아닌 ‘소달구지·소도둑’은 ‘쇠달구지·쇠도둑’으로 쓸 수 없다. ‘소의 달구지’ ‘소의 도둑’이 아니라 ‘소가 끄는 달구지’ ‘소를 훔치는 도둑’이란 뜻이므로 애당초 쇠달구지·쇠도둑은 성립하지 않는다.우리말 바루기 소고기 쇠고기 애당초 쇠달구지 모두 표준어 언론 매체
2026.02.12.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