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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일상과 다르다는 말 ‘채’

의존명사 ‘채’는 주로 ‘-은 채(로)’ 형태로 쓰인다. 어떤 동작이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나타낸다.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노루를 산 채로 잡았다.”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 때나 ‘채’가 오지는 않는다. 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건 일상적이지 않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옷을 입은 상태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노루도 살아 있는 상태로 잡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잠은 누구나 누워서 잔다.   ‘채’는 이처럼 일상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나 상태를 나타낼 때 자연스럽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같은 문장에서도 역시 알 수 있다. 고개를 숙이는 건 잘못을 저질렀다든가 뭔가 사정이 있을 때다. 그런 상태에서 말할 때 ‘채’를 가져온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는 상황에 따라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숙이고’에서는 일상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방에 들어갈 때 구두를 신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평범하지 않으니까 ‘구두를 신은 채’라고 하는 거다.   이런 기준이나 쓰임새에 기대면 다음 같은 문장은 어색해 보인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인사했다.” 이 문장은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니까. ‘인사’ 대신 ‘거수경례’를 넣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거수경례했다.” 거수경례는 모자를 쓰고 하는 게 더 일상적이다. 우리말 바루기 입고 물속 기대면 다음

2026.05.07. 19:54

[우리말 바루기] ‘채신’과 ‘체신’

말이나 행동이 경솔해 위엄이나 신망이 없는 사람을 힐난할 때 “체신없게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거나 지위·위치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체신머리없다”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잘못된 것으로, ‘채신없다’ ‘채신머리없다’고 표현해야 올바르다.   ‘채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처신’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를 ‘몸 체(體)’와 ‘몸 신(身)’ 자로 이뤄진 ‘체신’으로 잘못 이해하고 쓰는 사람이 많다.   ‘체신(體身)’은 한자 뜻 그대로 ‘사람의 몸뚱이’를 의미하며, “체신이 작은 그는 평소에도 공깃밥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했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체신없다’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로, 의미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   ‘채신’은 주로 ‘채신없다’ ‘채신머리없다’ 등처럼 쓰여 부정적 의미를 나타낸다. “다 큰 어른이 채신사납게 아이의 과자를 빼앗아 먹다니!”처럼 쓰이는 ‘채신사납다, 채신머리사납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는 몸가짐을 잘못해 꼴이 몹시 언짢다는 말로, 역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 ‘체신사납다’ ‘체신머리사납다’라고 쓰는 경우도 꽤 있으나 이 또한 ‘채신’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체신’이라고 쓰면 안 된다.   스스로도 나이와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해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채신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길 소망해 본다.우리말 바루기 체신 부정적 의미

2026.05.06. 18:17

[우리말 바루기] 낮추는 말 ‘~하는 자’

의존명사는 말 그대로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인다. ‘좋은 것, 감사할 따름, 웃을 뿐’에서 ‘것, 따름, 뿐’처럼 앞말에 기댄다.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에 “제 뜻을 시러(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많다)”의 ‘놈’도 앞말 ‘못할’에 의지한다. ‘놈’이라고 해서 지금처럼 대상을 낮추는 말은 아니었고, 단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훈민정음 한문본에는 ‘못할 놈’이 ‘불가자(不可者)’로 돼 있다. 여기서 ‘자’는 ‘못할 놈’의 ‘놈’과 뜻은 같지만 쓰임새가 다르다.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의 ‘자’처럼 쓰였다. 의존명사가 아니라 낱말 끝에 붙어서 새로운 말을 만드는 접미사로 쓰인 거다. 이때 ‘자’는 ‘못할 놈’의 ‘놈’처럼 ‘사람’을 뜻한다. 이전에도, 지금도 낱말 끝에 붙는 ‘자’는 ‘사람’이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낯선 자”에서처럼 ‘자’가 의존명사로도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어의 영향으로 보인다. 의존명사로 쓰이는 ‘자’는 의미도 달라져 ‘사람’과 ‘놈’ 사이쯤에 있다. 맥락에 따라 더 낮추고 덜 낮추는 차이는 있다. “미친 자, 저 자를 잡아라”에서 ‘자’는 홀대의 정도가 커 보인다. “미친 사람, 저 사람을 잡아라”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부역자’를 더 얕잡고 싶으면 ‘부역하는 자’라고 하면 된다. ‘동조자’는 ‘동조하는 자’라고 하면 된다.   법조문이나 공문서에는 의존명사로 쓰이는 ‘자’가 더 흔하다. 특별하지 않다면 ‘노력하는 자’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더 좋겠다.우리말 바루기 훈민정음 언해본 과학자 기술자

2026.05.05. 20:20

[우리말 바루기] ‘예부터’ ? ‘옛부터’ ?

민간요법에는 잘못 알려진 것들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옛부터 시골에서는 벌에 쏘이면 민간요법으로 쏘인 부분에 된장을 바르기도 한다” “예부터 화상을 입었을 때는 소주를 부어 열을 빼곤 했다” 등이 잘못 알려진 대표적 민간요법이다.   지나간 과거를 가리킬 때 ‘예’와 ‘옛’ 중 어떤 걸 써야 할지 헷갈린다는 이가 많다. ‘예로부터’를 ‘옛로부터’라고 쓰진 않지만, ‘~부터’가 바로 뒤에 올 경우 ‘예부터’라고 써야 할지, ‘옛부터’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예’와 ‘옛’은 지나간 과거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품사가 다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예’는 아주 먼 과거를 뜻하는 명사이므로 조사나 접사와 결합할 수 있다. ‘옛’은 ‘지나간 때의’를 의미하는 관형사로, 뒤에 오는 체언(명사·대명사·수사)의 내용을 꾸며 주는 역할을 한다.   ‘~부터’는 어떤 일이나 상태 등에 관련된 범위의 시작임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므로 명사 뒤에 붙일 수 있다. 따라서 관형사인 ‘옛’이 아닌 명사 ‘예’와 결합해 ‘예부터’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예스러운’과 ‘옛스러운’ 중 올바른 표현은 무엇일까. ‘~스러운’은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스럽다’를 활용한 표현이므로, 이 역시 명사와 결합할 수 있다. 따라서 ‘옛스러운’이 아닌 ‘예스러운’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옛’은 ‘옛 추억’ ‘옛 친구’ 등과 같이 뒤에 체언이 올 때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2026.05.04. 19:01

[우리말 바루기]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

‘길이’는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의 거리다.  ‘낮과 밤의 길이’에서처럼 ‘시간’을 나타낼 때도 있고, ‘글의 길이’에서처럼 ‘분량’을 가리킬 때도 있다. ‘강폭’은 “강을 가로질러 잰 길이”인데, 이때 ‘길이’는 ‘면적’도 아우른다.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는 이런 ‘길이’와 연관돼 있다. ‘느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다. 단순히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걸 뜻한다. ‘늘이다’ ‘늘리다’와 명백하고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이 말들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렇지만 ‘늘이다’와 ‘늘리다’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경계가 선명해 보이지만, 이 기준을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사전은 표면적인 ‘길이’와 관련된 상황에선 무조건 ‘늘이다’를 쓰라고 안내한다. 그래서 “바지 길이를 늘이다”가 된다.   ‘늘리다’는 ‘넓이’ ‘부피’ ‘분량’ 등과 관계될 때만 쓰라고 한다. ‘늘리다’는 ‘길이’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규모를 늘리다” “학생 수를 늘리다” 같은 때만 ‘늘리다’가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길이’는 단순하지 않다. ‘길이’는 면적이나 분량 같은 것들도 수반한다. ‘늘리다’도 ‘길이’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바지 길이를 늘이다”는 면적이 늘어나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바지 길이를 늘리다”가 더 적절하다. ‘훈민정음 국어사전’도 그렇다고 설명한다.우리말 바루기 바지 길이 훈민정음 국어사전 사전적 의미

2026.05.03. 19:03

[우리말 바루기] ‘밥심’

한국인은 밥을 중요시한다. 의례적 인사말로 “밥 한번 먹자”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또 한국인이라면 ‘밥심으로 산다’는 관용적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이 많은 한국인들은 위로를 건넬 때 “밥심이 최고다. 밥 굶지 말고 다녀라”와 같이 말하곤 한다.   밥을 먹고 생기는 힘을 가리켜 이처럼 ‘밥심’이라고 쓰는데, 혹자는 ‘밥힘’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법도 하다. ‘밥’과 ‘힘’이 만나 이뤄진 합성어이니 발음은 [밥심]이지만, 표기할 때는 ‘밥힘’으로 적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른 표기법은 ‘밥심’이며, 발음은 [밥씸]으로 난다.   ‘힘’은 ‘심’의 본딧말로, ‘심’은 ‘힘’의 사투리 표현이다. 따라서 ‘밥심’을 ‘밥힘’의 사투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심’이 사투리라면 ‘심’이 붙은 낱말은 모두 사투리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힘’이 다른 낱말과 결합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다른 낱말과 짝을 이룰 때 발음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뒷힘, 뚝힘, 뱃힘, 입힘, 헛힘’ 등을 발음해 보면 자연스럽게 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힘’이 붙어 새로운 낱말이 만들어졌겠으나 세월이 흐르며 ‘뚝심, 뱃심, 입심, 헛심’ 등의 경우 발음하기 편한 ‘심’이 붙은 형태가 표준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뒷심’ 역시 ‘뒷힘’으로 발음하기 힘들어 많은 이가 ‘뒷심’으로 쓰다 보니 ‘뒷심’이 결국 표준어로 등재된 경우라 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밥심 모두 사투리 관용적 표현 의례적 인사말

2026.04.30. 18:52

[우리말 바루기] ‘-에요’

‘아니다’는 독립적으로 쓰인다. “사람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반대말 같은 ‘이다’는 홀로 쓰이지 않는다. 조사여서 앞말에 붙인다. “사람이다.”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아니다’와 그리 관계가 없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다’는 어떤 사실을 긍정할 때, ‘아니다’는 부정할 때 짝이 되는 말처럼 온다. 국어학자 가운데는 ‘이다’도 ‘아니다’처럼 형용사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동사와 형용사는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는 형태로만 쓰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가다’가 그대로 쓰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가고, 가는, 갔다’처럼 변하면서 쓰인다.     ‘아니다’도 ‘아니고, 아니었다, 아니어요, 아니에요’처럼 변하면서 쓰인다. 그런데 ‘이다’는 조사라고 하지만 특이하게도 형용사 ‘아니다’처럼 활용한다. ‘이고, 이었다, 이어요, 이에요’처럼 변한다.   ‘이다’와 ‘아니다’는 특별하게 어미 ‘-에요’도 공유한다. ‘-에요’는 다른 말에는 붙지 않고 ‘이다’와 ‘아니다’에만 붙는다. 잘 기억해 두면 ‘아니에요’인지, ‘아니예요’인지 헷갈리지 않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요’는 없고, ‘-에요’라는 어미만 있다고 기억해 두면 되니까. ‘이다’는 ‘이에요’, ‘아니다’는 ‘아니에요’로 활용한다. “사실이에요.”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 거예요”의 ‘-예요’는 ‘-이에요’가 줄어든 형태다. 본래 ‘거이에요’인데, 줄여서 ‘거예요’가 된 거다. ‘사과예요’도 ‘사과이에요’를 줄인 표기다. 우리말 바루기 국어학자 가운데

2026.04.29. 20:07

[우리말 바루기] 김치 ‘담궈’ 드신다고요?

요즘엔 직접 김치를 해 먹는 집이 많이 줄어든 듯하다. 주변을 보면 젊은 세대는 주로 사 먹거나 부모님께서 김치를 ‘담궈’ 보내 주는 경우가 많았고, 나이가 지긋한 분도 힘에 부쳐 김치를 직접 ‘담궈’ 먹은 지 오래됐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치·술·장·젓갈 등을 만드는 재료를 버무리거나 물을 부어서 익거나 삭도록 그릇에 넣어 두는 행위를 일컫는 낱말은 ‘담그다’이다. “매실주를 담그다” “된장을 담그다” 등처럼 쓰인다. 그런데 ‘담그다’를 활용하는 경우 “매실주를 담궈 두었다” “된장을 담궜다” 등과 같이 잘못 쓰는 이가 많다.   ‘담궈/ 담궜다’는 ‘담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담구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잘못된 표현으로, ‘담그다’를 활용해 ‘담가/ 담갔다’라고 써야 바르다. ‘담그다’를 ‘담그고, 담그니, 담그면’ 등으로 활용할 때는 별문제가 없다. 문제는 ‘아’를 붙여 활용할 때다. 용언의 어간 ‘으’가 ‘아’나 ‘어’ 앞에서 탈락하는 용언을 ‘으불규칙용언’이라 하는데, ‘담그다’가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담그+아’는 ‘담가’, ‘담그+았+다’는 ‘담갔다’가 되는 것이다.   간혹 “1년 전 담은 김치”처럼 표현하는 걸 볼 때도 있다. 그러나 ‘담은’은 물건을 그릇 등에 넣는다는 의미를 지닌 ‘담다’를 활용한 것으로, 문맥상 ‘담다’가 아닌 ‘담그다’를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따라서 ‘담그다’를 활용한 ‘담근’으로 바꿔 써야 한다. 우리말 바루기 김치

2026.04.28. 20:19

[우리말 바루기] 대한해협

해협은 육지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바다를 말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규슈 사이에도 해협이 있는데, 대한해협이다. 대한해협은 황해와 남해, 동중국해, 동해와 연결된다. 길이는 약 200㎞. 우리는 대한해협이라 부르지만 일본은 쓰시마해협이라고 한다.   일부에선 대한해협 대신 현해탄(玄海灘)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때 현해탄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현해탄은 규슈 북쪽 끝에 있는 일부 바다를 가리킨다. 일본에선 이곳을 ‘겐카이나다(玄海灘)’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전에서 ‘겐카이나다’를 치면 ‘대한해협 남쪽 일본 후쿠오카현 서북쪽에 있는 바다. 방어·정어리 따위의 난류성 어류가 많이 잡힌다. =현해탄’이라고 돼 있다. 대한해협과 현해탄은 동일한 바다가 아님이 확인된다. 대한해협은 현해탄보다 더 큰 바다다. 쓰시마섬을 지나 규슈 앞쪽까지가 대한해협이다. 일본에선 대한해협을 쓰시마해협이라 부르지만 국제적으로도 대한해협이 공식적인 용어다.   현해탄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아니다. 일본의 작은 바다 이름이 왜 대한해협 대신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현해탄 오가는 항공기’ ‘현해탄 넘은 야구 사랑’ ‘현해탄을 건넜다’ 등 현해탄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인 것처럼 표현한다. 말맛은 다르겠지만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서’ ‘대한해협을 가로질러’ ‘대한해협 건너 길을 찾다’처럼 쓰는 게 정확하다.우리말 바루기 대한해협 대한해협 남쪽 대한해협 대신 대한해협 건너

2026.04.27. 21:11

[우리말 바루기] ‘으’가 아니라 ‘이’

가요 ‘황포돛대’는 이렇게 시작한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미자는 ‘마지막’이 아니라 [마즈막]이라고 소리를 낸다.     한글학회가 펴낸 ‘큰사전’(1947~57)에는 ‘마즈막’도 표제어로 실려 있다. 뜻풀이는 ‘=마지막’이다. 그렇다고 ‘마즈막’을 표준어로 인정한 건 아니었다. 저때도 ‘마지막’이 표준어였다. 다만 한쪽에서 ‘마즈막’이 쓰이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옛날 신문들에도 ‘마즈막’이라고 쓴 기사들이 제법 보인다. 근래 들어 나온 국어사전들에는 ‘마즈막’이 경기·충청·평안·함경 방언이라고 돼 있다. 방언에는 우리말의 옛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근대국어 시기에는 ‘ㅅ, ㅈ, ㅊ’ 아래에서 ‘ㅡ’가 ‘ㅣ’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마즈막’도 ‘마지막’으로 바뀌었다. ‘오징어’도 ‘오증어’였다. 국어사전에서 ‘오증어’를 찾아보면 ‘오징어’의 방언이라고 돼 있다. 이전 시기 ‘아침’은 ‘아츰’, ‘거칠다’는 ‘거츨다’, ‘짐승’은 ‘즘승’이었다. ‘가지런하다’ ‘느지막하다’ ‘이지러지다’ 같은 말들의 ‘지’도 ‘즈’였다.   조금 헷갈리는 ‘나즈막하다/ 나지막하다’도 마찬가지로 ‘나지막하다’가 표준어다. 여기서 나온 말 ‘나지막히/ 나지막이’는 ‘나지막이’가 표준어다. [이]로 소리가 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부시시’ ‘으시대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부스스’ ‘으스대다’가 여전히 표준어다.우리말 바루기 근대국어 시기 가수 이미자 옛날 신문들

2026.04.26. 20:00

[우리말 바루기] 유명세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의 ‘아파트’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진 적이 있었다.     유명해졌다는 것을 나타낼 때 이처럼 ‘유명세를 떨치다’ ‘유명세를 타다’와 같은 표현을 흔히 쓰곤 한다. 그런데 ‘유명세’는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탓에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긍정적 표현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유명세(有名稅)’는 ‘세금 세(稅)’ 자를 써, 유명하기 때문에 치르는 불편을 ‘세금’에 비유한 단어다. 세금이 납세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떠올려 보면 ‘유명세’가 부정적 표현에 어울린다는 걸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유명세’를 인기와 명성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흔히 쓰고 있다. 심지어 신문과 방송 같은 언론 매체에서도 이 같은 오용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그 이유는 ‘유명세’를 ‘확장세(擴張勢)’ ‘증가세(增加勢)’ 등과 같이 기세를 나타내는 ‘勢(기세 세)’ 자를 쓴 ‘有名勢’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유명세’가 부정적 의미라는 걸 생각하면, 이와 호응하는 서술어도 ‘떨치다’ ‘타다’ 등보다는 ‘치르다’ ‘따르다’ 등을 쓰는 게 적합하다.     긍정적 의미를 나타내고 싶다면 “로제의 ‘아파트’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등처럼 ‘명성을 날리다’ ‘이름을 떨치다’ ‘인기를 얻다’ 등으로 표현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유명세 부정적 표현 긍정적 표현 걸그룹 블랙핑크

2026.04.23. 18:35

[우리말 바루기] ‘뚝배기’

‘뚝배기’는 [뚝빼기]로 소리 난다. 그렇지만 ‘뚝배기’로 적어야 한다.  더 헷갈리게 하는 건 ‘곱빼기, 악착빼기, 얼룩빼기, 이마빼기, 코빼기’처럼 ‘빼기’가 붙은 말도 많기 때문이다. 이 말들은 소리 나는 대로 [빼기]라고 적는다.   한편으로는 ‘배기’가 붙은 말들도 있다. 나이배기, 대짜배기, 생짜배기, 알짜배기, 육자배기…. 이 말들도 소리 나는 그대로다. ‘뚝배기’는 유별나 보인다. 그런데 유별난 건 아니다. ‘늑대’도 [늑때]로 소리 나지만 ‘늑대’라고 적는다. ‘낙지’는 [낙찌], ‘접시’는 [접씨], ‘갑자기’는 [갑짜기]로 된소리가 난다. 그렇지만 적을 때는 ‘뚝배기’처럼 된소리를 반영하지 않는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된소리가 나는데 그대로 적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ㄱ’과 ‘ㅂ’ 받침 뒤여서다. 우리말에서는 ‘ㄱ’ ‘ㅂ’ 받침 다음에 반드시 된소리가 난다. 이때는 된소리 표기를 하지 않는 게 한글맞춤법의 원칙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추가된다.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단위인 형태소 한 개로 이뤄진 말이어야 한다. ‘뚝배기’는 ‘뚝’과 ‘배기’로 나눌 수 없다. ‘늑대, 낙지, 접시’처럼 한 개의 형태소로 이뤄져 있다. ‘ㄱ’ 받침 뒤, 한 형태소 안이어서 ‘뚝배기’로 적는다.   그런데 ‘얼룩빼기’도, ‘곱빼기’도 ‘ㄱ’과 ‘ㅂ’ 받침 뒤이지만 된소리로 적는다. 짐작하듯이 이 말들은 각각 ‘얼룩’과 ‘곱’에 ‘빼기’가 붙어 만들어졌다. 그래서 ‘뚝배기’처럼 적지 않는다.우리말 바루기 뚝배기 된소리 표기 곱빼기 악착빼기 이마빼기 코빼기

2026.04.22. 18:47

[우리말 바루기] 전철을 밟다

“전철을 밟다”는 이전 사람의 잘못을 되풀이한다는 말이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이 말에서 ‘전철(前轍)’은 탈것을 가리키는 ‘전철(電鐵)’이 아니다. 이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탈것이 지나간 흔적이다. 더 구분해 말하면 ‘전철(前轍)’에서 ‘철’은 바퀴 자국을 뜻한다. ‘전철’은 그러니 앞의 바퀴 자국이다. 그렇다고 ‘전철’이 이런 뜻으로 쓰이는 건 아니다. ‘전철을 밟다’에서 알 수 있듯 ‘전철’은 이전 사람의 그릇된 일이나 행동의 자취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국어사전들은 친절하게 ‘전철’이 본래 가진 뜻도 알려 준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식이다. “앞에 지나간 수레바퀴의 자국”이라는 뜻으로. 어딘가 어색하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수레바퀴가 지나간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앞에 지나간 수레바퀴’가 아니라 ‘앞에 지나간 수레의 바퀴’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이전 시대 어떤 사전 편찬자가 ‘앞에 지나간 수레바퀴’라고 했는데, 그의 전철을 밟은 것은 아닌지.   “전철을 밟다”의 ‘전철’은 그리 쉬운 낱말은 아니다. ‘밟다’와 떨어지면 추측하기도 어렵다. 흔하게 뜻을 뭉개고 가는 말이 돼 간다. “선배들이 우승한 전철을 밟으려고 한다”는 식이다. 우승한 게 그릇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우승한 선배들을 본받으려고 한다”여야 했다. “언니는 먼저 전철을 밟아 간 선배다”에서는 ‘전철’을 ‘앞길’ ‘정해진 길’ 정도의 의미로 알고 쓴 것 같다. ‘전철’은 앞서간 사람의 그릇된 행동이다.우리말 바루기 전철 바퀴 자국 사전 편찬자

2026.04.21. 20:49

[우리말 바루기] ‘운명’을 달리하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엄숙하다. 죽은 사람이 누구든 죽음에 관해선 간접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종교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일상의 말들이 아니어서 어려워 보인다. 불교계에선 승려가 죽었을 때 ‘입적(入寂)’이라 한다. ‘고요한 상태로 들어간다’는 뜻. ‘번뇌나 고뇌가 없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열반(涅槃)’이라고도 한다. 개신교에선 ‘하늘의 부름을 받아 돌아간다’는 뜻으로 ‘소천(召天)’이란 표현을 쓴다. 가톨릭에선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이란 의미로 ‘선종(善終)’이라 한다. 천도교에선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환원(還元)’이라 부른다. 종교들이 추구하는 바가 담겼다.      언론 매체의 부음 기사에서는 ‘사망’ 외에 ‘별세(別世)’ ‘타계(他界)’ ‘서거(逝去)’ 같은 말들이 흔히 보인다. 이 가운데 ‘사망’을 빼면 다 죽음을 높인다. 뜻도 쉽지 않다. ‘별세’의 사전적 의미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이다. ‘타계’는 “인간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서거’는 “죽어서 세상을 떠남”이란 말이지만, 대통령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만 쓴다.     일상에서도 죽음은 높이거나 에둘러진다. ‘숨지다’ ‘돌아가시다’ ‘작고(作故)하다’ ‘영면(永眠)하다’라고 한다. ‘운명(殞命)하다’도 ‘목숨이 끊어지다’라는 말이다. 그러니 ‘운명을 달리하다’는 어색하다. ‘달리하다’는 ‘유명(幽明)’과 어울린다.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유명’은 저승과 이승을 가리킨다.우리말 바루기 운명 사전적 의미 언론 매체 부음 기사

2026.04.20. 20:03

[우리말 바루기] 불필요한 ‘그’

‘그’는 편리하다. 가까운 식탁에 있는 사과를 달라고 할 때 ‘그’가 있어서 “그 사과 좀 줘”라고 말할 수 있다. “식탁에 있는 사과 좀 줘”라고 하는 것보다 짧고 효율적이다. 앞에서 말한 대상을 가리킬 때도 ‘그’는 유용하다. “얼마 전 봐 둔 옷이 있어. 그 옷 사려고”라고 하면 된다. ‘그’는 또 다음처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알고 있는 대상을 가리킬 때 쓰인다. “아까 크게 웃던 그 사람이 대표야.” 이 문장에서 ‘그’는 ‘사람’을 더 선명하게 한다.   여기까지는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다음의 ‘그’는 대상이 확실하지 않다. ‘그’는 이럴 때와 어떤 일을 명확하게 밝히고 싶지 않을 때도 쓰인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대상이 확실치 않으니 ‘그’라고 해야 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보이는 ‘그’는 분명하게 대상을 밝히고 싶지 않았서였겠다. 이렇게 막연한 ‘그’는 말에서보다는 글에서 주로 보인다. 그런데 문학적 ‘막연함’은 상상력을 북돋우지만, 실용적이어야 하는 글에서는 ‘그’가 거추장스럽다.   “최종 점검하는 부서에서 그 이행 성과를 부풀렸다.” “대통령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장 구조가 다르다. 그 의미 또한 다르다.” ‘그 이행 성과’ ‘그 결과’ ‘그 의미’라고 표현했다. ‘그’가 필요했을까. 없는 게 간결하고 낫다. 우리말 바루기 불필요 이행 성과 문장 구조 대통령 선거

2026.04.19. 18:52

[우리말 바루기] ‘회자(膾炙)’의 뜻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걸 이를 때 자주 쓰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회자되다’라는 낱말이다. “그 노래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명곡이다”와 같이 쓰인다.   ‘회자되다’는 언론 매체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보도할 때도 “그의 악행은 여전히 많은 이에게 회자되고 있다” 등처럼 종종 등장한다. 앞 문장에 잘못된 표현이 숨어 있다고 하면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듯하다.   ‘회자되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면 안 되는 단어다. ‘회자되다’를 이렇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회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자(膾炙)’는 ‘회 회(膾)’ 자와 ‘구울 자(炙)’ 자로 이뤄진 낱말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음식인 ‘회’와 ‘구운 고기’를 뜻한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맛있는 음식처럼 칭찬받을 일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뜻으로 ‘회자되다’의 의미가 변화해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노래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명곡이다”와 같이 긍정적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는 ‘회자되다’를 쓸 수 있지만, “그의 악행은 여전히 많은 이에게 회자되고 있다” 등처럼 부정적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부정적 의미를 나타낼 때는 ‘회자’ 대신 ‘구설’을 쓰면 된다. ‘구설’은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로, 긍정적 의미에는 쓸 수 없다. 우리말 바루기 회자 부정적 의미 긍정적 의미 언론 매체

2026.04.16. 18:57

[우리말 바루기] ~하기 위해? ~하려고?

한 후배는 번역투에 민감하다. 그는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았다”를 “해외여행을 가려고 돈을 모았다”로 수정한다. ‘~기 위해’가 영어(for, in behalf of, in the interest of)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문투여서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해외여행을 가려고 돈을 모았다”가 일상에서 쓰는 방식이니까.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유턴했다”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 갔다” “너를 만나려고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에서처럼 ‘~려고’는 낯이 익고 편하다. 여기서 ‘사려고’를 ‘사기 위해’, ‘먹으려고’를 ‘먹기 위해’, ‘만나려고’를 ‘만나기 위해’라고 하면 일상에서 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공적인 곳에서 내놓는 문장이었다면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유턴했다”고 했을 확률이 더 높다. ‘사기 위해’라고 표현하면 행동의 목적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려고’라는 일상의 평범한 말투와 구분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는 듯하다.   물론 ‘~기 위해’가 더 나을 때도 있다. “구체적인 성과를 마련하기 위해 실천 방안을 매주 점검한다”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10만여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에서는 ‘마련하기 위해’ ‘안정시키기 위해’가 불편하지 않다. ‘마련하려고’ ‘안정시키려고’가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그렇지만 “돌고래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에서는 ‘살리려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에서는 ‘제공하려면’이 자연스럽고 간결하다.우리말 바루기 전세 시장 10만여 가구 in behalf

2026.04.15. 19:09

[우리말 바루기] ‘나 자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내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등과 같은 자기 고백적 글이 많이 게재된다. 이같이 많은 이가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 ‘내 자신’ ‘제 자신’과 같이 쓰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나 자신’ ‘저 자신’이라고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내 자신’과 ‘제 자신’을 풀어 써 보면 왜 틀렸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내’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나’에 조사 ‘의’가 결합한 ‘나의’가 줄어든 말이다.   따라서 이를 문장에 대입해 풀어 써 보면 “내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결국 “나의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와 같이 어색한 문장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굳이 불필요한 조사 ‘의’를 넣어서 생긴 잘못된 표현이므로, ‘의’를 빼고 ‘나 자신’이라고 쓰면 된다.   ‘제 자신’도 마찬가지다. ‘제’는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저’에 조사 ‘의’가 합쳐진 ‘저의’가 줄어든 말이다. “그때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역시 풀어 써 보면 “그때는 저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가 돼 영 이상하다. 이 또한 불필요한 ‘의’를 빼고 ‘저 자신’이라 고쳐 쓰면 된다.   “네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문장도 “너의 자신을 알라”와 같이 풀어 써 보면 ‘의’가 쓸데없이 첨가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이 된다.우리말 바루기 일인칭 대명사 자기 고백적

2026.04.14. 20:17

[우리말 바루기] ‘-아, -어, -여’ 등이 이어지는 문장

“그가 새로 참여해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무대를 꾸민다.” ‘참여해’에 ‘-여’가 있는데, 뒤쪽 ‘가르쳐’에도 ‘-여’가 나온다. 이러면 읽기가 편치 않다. 뜻도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참여하다’ ‘가르치다’ ‘꾸미다’ 등 여러 정보가 한 문장에 무리하게 들어가 있다. 다음처럼 두 문장으로 나누는 게 낫다. “그가 새로 참여해 무대를 꾸민다. 그는 이 무대를 위해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상대 팀의 초반 공세에 밀려 더 나은 전력인데도 잇따라 실점해 쉽게 무너졌다” 역시 읽기가 부담스럽다. ‘밀려’ ‘실점해’의 ‘-여’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실점하다’를 ‘실점해’ 형태로 가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었다. ‘실점해’ 대신 ‘실점하는 등’이라고 하면 자연스러워진다. 문장을 두 개로 나누면 더 간결하다. “더 나은 전력인데도 상대 팀의 초반 공세에 밀렸다. 경기 초반에 잇따라 실점해 쉽게 무너졌다.”   “귀찮아서 소파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에서는 ‘-아서’가 이어졌다. 앞쪽과 뒤쪽이 긴밀히 연결되지 않고 끊기는 느낌이다. 같은 형태의 반복이 흐름을 꺾어버리고 만 것이다. 다음처럼 변화를 주는 게 좋겠다. “귀찮았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글맛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소파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도 괜찮겠다. “종을 울려 주변에 알려 경계를 하도록 했다”에선 ‘주변에 알려’가 없어도 된다. “종을 울려 경계를 하도록 했다.”우리말 바루기 문장 초반 공세 경기 초반 앞쪽과 뒤쪽

2026.04.13. 20:20

[우리말 바루기] ‘춘향이가’ ‘춘향이는’

“춘향이가 간다”와 “춘향이는 간다”는 다르다. 느낌만 다른 게 아니다. ‘가’냐, ‘는’이냐에 따라 문장의 초점이 달라진다. ‘춘향이가’는 ‘춘향이’에 정보의 초점이 맞춰진다. 다음 대화에서 더 드러난다. “누가 가는 거야?” “춘향이가 간다.” 여기선 ‘춘향이’가 정보의 중심이란 걸 알 수 있다. ‘가’는 이럴 때 붙는다.   ‘춘향이는’은 ‘간다’에 초점이 있다. 다음에서 확인된다. “춘향이는 어떻게 할 거 같아?” “춘향이는 간다.” 이땐 ‘춘향이’보다 ‘간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인다. ‘는’은 이처럼 서술어에 초점이 놓일 때 온다. 다음 문장도 그렇다. “춘향이는 그네를 잘 탄다.” 이 문장의 초점도 춘향이에 있지 않고 ‘잘 탄다’에 있다.   “옛날에 몽룡이와 춘향이가 살았다.” 여기서 ‘춘향이가’ 대신 ‘춘향이는’이라고 한다면 어색하다. ‘춘향이’가 처음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앞말이 첫 정보일 때는 ‘가’를 붙여야 자연스럽다. ‘춘향이는’은 ‘춘향이’가 재등장할 때 써야 어울린다. “춘향이가 살았다. 춘향이는 그네를 잘 탔다.” 둘째로 나오는 ‘춘향이’는 이미 알려진 정보가 된다. ‘는’은 이럴 때 쓰인다.   “춘향이가 그네를 잘 탄다는 걸 몽룡이는 모른다.” 여기서도 ‘춘향이가’라야 자연스럽다. 이처럼 뒤에 오는 절에 안긴 앞의 절에도 ‘가’가 와야 어울린다. “너는 지는 해라면 그는 뜨는 해다”는 부자연스럽다. ‘너는’은 ‘네가’여야 한다. 우리말 바루기 다음 문장 다음 대화

2026.04.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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