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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두 개의 ‘난민’

 2011년 ‘아랍의 봄’은 시리아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바람이었다. 튀니지, 이집트 등의 정권이 무너지자 시리아 국민들도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치 개혁과 자유,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정권은 권위적이었다.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고, 고문과 살인이 이어졌다.   정부군, 반군, 극단주의 세력 간의 내전이 시작됐다. 수백만 명이 튀르키예, 레바논 등 다른 나라로 피했다. 국제사회는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난민’은 국제법의 보호 대상이 돼 강제 송환 금지와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는다. 법률 용어로 ‘난민’은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다. 인종·종교·정치적 이유 때문에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외국인을 가리킨다. 내전 때문에 나라를 떠난 시리아인들도 여기에 해당됐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해발 5m쯤 된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수위가 올라가면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꼽힌다. 섬 9개 가운데 2개는 거의 사라졌다. 투발루인들은 ‘기후 난민’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국제법상 ‘난민’이 아니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 난민’에 대해 ‘기후변화로 인한 강제 실향민’이란 표현을 쓴다.   호주는 매년 투발루인 280명을 ‘기후 난민’으로 인정해 특별 비자를 발급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2020년 기후변화로 피난한 사람들을 강제로 본국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기후 난민’이란 용어가 익숙해져 간다. 우리말 바루기 난민 기후 난민 섬나라 투발루 시리아 국민들

2026.06.29. 18:13

[우리말 바루기] 튕길까, 튀길까, 퉁길까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며 ‘똘똘한 한 채’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언제 어느 곳의 어떤 아파트를 매수해야 할지 주판알을 튕겨 보고 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집 두 채를 정리해 한 채로 갈아타려고 주판알을 튀기고 있다” 등과 같이 말하는 이가 많다.   ‘어떤 일에 대해 이해득실을 계산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처럼 ‘주판알을 튕기다’ ‘주판알을 튀기다’라고 표현한다. 혹은 “주판알을 퉁겨 보니 지금이 매수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등에서와 같이 ‘주판알을 퉁기다’라고 쓰는 이도 많다.   주판을 놓는 걸 나타낼 땐 ‘튕기다’와 ‘튀기다’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퉁기다’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 주판을 놓는다는 뜻으로는 쓸 수 없다.   ‘주판알을 퉁기다’라고 잘못 쓰는 이유는 ‘튕기다’와 ‘퉁기다’가 비슷한 의미로 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 좀 튕기고/퉁기고 제발 만나 줘”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요구나 의견을 거절할 때나, “가야금을 튕기는/퉁기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등에서와 같이 현악기의 현을 당겼다 놓아 소리가 나게 하다는 의미를 나타낼 땐 ‘튕기다’와 ‘퉁기다’가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콘크리트 벽에 박으려던 못이 튕겨 나왔다” “지게를 받쳐 놓은 작대기를 퉁기자 지게가 넘어졌다”에서처럼 ‘튕기다’는 다른 물체에 의해 힘을 받아 움직이게 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퉁기다’는 동작을 하는 주체의 의지가 담겨 있을 때 쓴다.우리말 바루기 부동산 가격

2026.06.28. 18:40

[우리말 바루기] ‘챗지피티에게’

인공지능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다. 입력된 자료만 보여 주는 수준이 아니다. 시와 소설, 논문도 쓴다. 번역과 통역을 해 주고, 행사 일정도 짜 준다.   각종 매체엔 챗지피티 등과 관련한 소식이 넘쳐난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들이다. 그런데 사물이고 물건이어서 챗지피티에 ‘출시’라는 말을 붙이지만, 돌·기계 같은 무정물을 대하듯 하지는 않는다. 사람이나 동물 등 유정물에 오는 조사 ‘에게’를 붙이고, ‘물었다’는 서술어를 사용한다.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챗지피티가 답했다”는 문장이 흔히 오간다. 일상에선 ‘챗지피티한테’라고도 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챗지피티를 인간처럼 대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에게’ 대신 무정물에 오는 ‘에’를 붙였을 것이고, ‘물었다’ 대신 ‘입력했다’ 같은 표현을 썼을 것이다. ‘답했다’는 말은 챗지피티가 사람처럼 판단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컴퓨터가 답했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컴퓨터는 감각이 없는 무정물로, 챗지피티는 감정이나 의지가 있는 유정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챗지피티에 물었다”는 표현이 없는 건 아니다.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는 ‘챗지피티에’도 있다. 무정물이란 의식의 확실한 표시다. 인격을 부여한 건 아니지만, 더 쓰이는 건 ‘챗지피티에게’다. 그렇다고 ‘에게’가 더 적절하다고 답하긴 어렵다.우리말 바루기 대신 무정물 번역과 통역 행사 일정

2026.06.25. 18:41

[우리말 바루기] ‘넓데데한’ 얼굴?

조선 시대에는 쌍꺼풀이 있는 눈보다 외꺼풀 눈을, 얄쌍한 얼굴형보다 둥그런 얼굴형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미의 기준이 바뀌어 온라인상에는 ‘넓데데한 얼굴을 얄쌍하게 만드는 방법’ 등과 같은 게시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얼굴이 둥글고 평면적일 때 ‘넓데데하다’고 표기하곤 한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넓데데하다’를 찾아보면 ‘너부데데하다’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설명돼 있다. ‘너부데데하다’는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너부죽하다’란 뜻을 지닌 단어로, 이를 줄이면 ‘넙데데하다’라고 쓸 수 있다.   ‘넓적한 얼굴’에서와 같이 ‘펀펀하고 얇으면서 꽤 넓다’는 의미로 쓰는 ‘넓적하다’를 떠올려서인지, ‘넓데데하다’를 바른 표현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넙데데하다’ ‘너부데데하다’가 올바른 표기다.   두께가 얇거나 날렵해 보이는 모습을 표현할 때도 위에서와 같이 ‘얄쌍하다’라고 쓰곤 하지만 이 역시 바른 표현이 아니다. ‘얄쌍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얄팍하다’의 잘못이라고 나온다.   ‘조금 얇은 듯하다’라는 의미의 ‘얄브스름하다’, ‘조금 얄브스름하다’라는 뜻의 ‘얇실하다’가 표준어인 반면, 많은 이가 사용하는 ‘얄쌍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의아하기도 하다. ‘얄쌍한 얼굴’을 사전에 나온 것처럼 ‘얄팍한 얼굴’이라고 바꾸면 뭔가 말맛이 살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지 않기도 하다. 언중(言衆)의 잦은 사용을 고려해 ‘얄쌍하다’의 표준어 등재를 생각해 볼 만하다.우리말 바루기 얼굴 표준어 등재 조선 시대

2026.06.24. 18:05

[우리말 바루기] ‘본인은’ ‘본교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제69조에 있는 대통령 취임 선서문이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 선서를 반드시 해야 한다.     ‘나는’은 선서의 주체를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낸다. 문장 전체를 투명하고 진솔해 보이게 한다. 그래서 더욱 선서문에 ‘나는’을 넣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은 사적인 자리에선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권위적이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나는’ 대신 ‘본인은’이라고 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공적인 자리에서 주로 쓰이는 ‘본인’은 지나치게 격식을 갖춘 느낌을 준다.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권위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국회의원도 국회법에 따라 다음처럼 ‘나는’으로 시작하는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회의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국회의원 가운데는 국회에서 자신을 가리킬 때 ‘본 의원’이라고 하는 사람도 꽤 있다. 공적인 공간에서 보다 격식을 갖추려는 뜻이겠다.   학생들은 언제나 ‘우리 학교’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교는’이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다. 괜한 엄격함이 느껴진다. 논문에선 ‘본고는’ ‘본 연구는’이 대세다.  ‘이 글은’ ‘이 연구는’이 더 친절해 보인다.우리말 바루기 본인 본교 대통령 취임 국회의원 가운데 헌법 제69조

2026.06.23. 19:03

[우리말 바루기] ‘맥아리’가 없다고요?

 날씨가 더워지니 기운이 쭉 빠진다는 이가 많다. “요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지 주변에서 영 맥아리가 없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날씨가 너무 덥고 꿉꿉해 기분이 처지고 매가리가 없다” 등과 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이처럼 기운이 빠지고 힘이 없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맥아리가 없다’ 또는 ‘매가리가 없다’고 표현하곤 한다. 우리말은 원형을 밝혀 적는 단어가 많기 때문에 ‘매가리’가 틀린 표현이고, ‘맥아리’가 바른 표현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른 표현은 ‘매가리’다.   ‘매가리’는 ‘맥’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맥’은 기운이나 힘을 의미하는 말이므로 ‘매가리가 없다’는 기운이나 힘이 없다는 뜻이 된다. “시험을 보고 나니 온몸에 매가리가 풀리고 잠이 왔다” “무거운 학원 가방을 어깨에 멘 어린이들 모두 매가리가 없어 보였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간혹 “어디선가 메가리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에서와 같이 ‘메가리’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매가리’가 ‘맥’으로부터 시작된 단어라는 사실을 알면 이 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매가리’의 어원은 ‘맥(脈)+-아리’이다. 원래는 ‘맥아리’라는 말로 쓰였으나 언중(言衆)이 ‘매가리’를 더 많이 사용해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매가리’만 올라 있다.   정리하자면, ‘맥’을 낮잡아 이르는 말은 ‘매가리’이므로 ‘맥아리’ ‘메가리’로 쓰지 않도록 하자.우리말 바루기 맥아리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학원 가방 요즘 컨디션

2026.06.22. 18:32

[우리말 바루기] ‘그러지’와 ‘그렇지’

 “그가 울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울려고 하던 참이었다.” 이 문장의 ‘그렇지 않아도’는 적절할까? 아니면 ‘그러지 않아도’여야 할까? ‘그렇다’도, ‘그러다’도 앞의 말을 대신한다. ‘그렇다’는 ‘상태(어떠함)’를 가리키고, ‘그러다’는 ‘행동(움직임)’을 대신 나타낸다. 울라고 한 것은 ‘움직임’이다. ‘그러지’로 받는 게 더 적절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도’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는 그가 울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울려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린다. 움직임이 아니라 어떤 상태였다는 것을 대신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도’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나는 울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울어 버렸다.” 이 문장에서는 ‘그렇지’라고 하면 어색하다. 여기서는 ‘울었다’는 행동을 대신하는 말 ‘그러지’가 와야 어울린다. ‘그러다’는 다음처럼 분명하게 행동을 대신한다. “네가 그러니까 나도 그러지.” “갈래? 그래, 가자.”   “배가 고팠다. 그렇지 않아도 밥을 먹었을 것이다.” 이 문장에서는 ‘그러지’가 어색하다. 배가 고픈 상태를 받는 말 ‘그렇지’가 와야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아도’는 문장을 시작할 때도 자주 보인다. 말로 할 때는 ‘그렇잖아도’로 흔히 줄여 쓴다. 앞의 동작을 대신할 때는 ‘그러지 않아도’, 상태나 성질, 모양 등을 대신하거나 어떤 상황을 염두에 뒀을 때는 ‘그렇지 않아도’가 어울린다.우리말 바루기 성질 모양

2026.06.21. 20:00

[우리말 바루기] ‘주책이다’에 대해

‘주책’이 본래 지닌 뜻은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다. ‘주착(主着)’이 변해서 ‘주책’이 됐다. 부정적인 말과 주로 어울려 쓰인다. “주책도 없이 웃고 말았다.” “어쩜 그리 주책이 없는지.” “그는 정말 주책이 없는 사람이다.” 이 문장들에서 보이는 ‘주책’은 분명히 ‘판단력’이나 ‘생각’ 정도쯤 된다. ‘주책’ 대신 ‘생각’으로 바꿔도 다음처럼 비슷한 말이 된다. “생각도 없이 웃고 말았다.” 그런데 습관처럼 뒤에 오던 ‘없다’의 부정적인 의미가 ‘주책’에 붙기 시작했다.   ‘주책’은 다음 문장들에서처럼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이라는 말로도 의미가 확장됐다. “주책을 떨었다.” “조용한 카페에서 주책을 부렸다.” “어디서나 주책이 심했다.”   ‘주책’과 ‘없다’는 아예 한 단어처럼 붙어 쓰이기 시작했다. ‘주책없다’는 “일정한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몹시 실없다”는 뜻을 지닌 말이 됐다. “나는 주책없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주책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책이다’도 ‘주책없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없다’의 뜻이 완전히 ‘주책’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참 주책이네.” “그러면 주책이지, 뭐야.” “보고 싶다고? 주책이다.” 너도나도 ‘주책이다’를 ‘주책없다’와 같은 말로 썼고, ‘주책이다’도 표준어가 됐다. ‘주책맞다’나 ‘주책스럽다’도 비슷한 말로 국어사전에 올랐다. 공적인 글에서는 ‘주책이다’가 ‘주책없다’로 여지없이 수정됐다. 그렇더라도 대중은 ‘주책이다’를 썼다. 우리말 바루기 주책 다음 문장들

2026.06.18. 19:14

[우리말 바루기] ‘택’도 없는 일은 없다

금이나 집, 물건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자산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실체도 막연한 자산이 있다. 누군가 미래에는 그 가치가 크게 오를 거라며 이에 투자하라고 권유한다면 많은 이가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화폐를 사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대꾸할 때 많은 사람이 위에서와 같이 “택도 없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맞춤법상 잘못된 표현으로, “턱도 없다”라고 해야 올바르다.   ‘턱’은 마땅히 그리해야 할 까닭이나 이치를 뜻하는 말로, 흔히 “도대체 영문을 알 턱이 없다”에서와 같이 어미를 ‘-을’ 뒤에서 ‘없다’와 함께 쓰이거나, “사랑을 고백한 그가 나를 속일 턱이 있겠니?”에서처럼 ‘있다’와 함께 반어형으로 쓰인다.   또한 ‘턱’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늘 그 턱이다”에서와 같이 그만한 정도나 처지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턱’이 단독으로 쓰일 경우 “택도 없다”에서처럼 ‘택’으로 더 많이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그런 턱없는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에서와 같이 ‘터무니없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턱없다’의 경우엔 ‘택없다’라고는 잘 쓰지 않는다.   ‘턱없다’와 ‘턱도 없다’가 동일한 의미를 지닌 표현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앞으로 ‘택도 없다’와 같이 틀리게 쓰는 실수는 범하진 않을 것이다.우리말 바루기

2026.06.17. 19:23

[우리말 바루기] ‘짓’과 ‘질’의 구별

‘물총 들고 은행 강도짓’ ‘물총 들고 은행 강도질’.   누구는 ‘강도짓’이라고 했고, 누구는 ‘강도질’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강도짓’이 어색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틀렸다고까지 말한다. 반대로 자연스럽다는 사람도 있다. 국어사전들도 그렇다. 어떤 사전은 ‘강도짓’이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강도짓’을 표제어로 올리지 않았다. ‘강도질’만 표제어로 올렸다. 어떤 사전은 ‘강도질’ ‘강도짓’을 둘 다 실었다. ‘강도짓’도 꽤 쓰이는 현실을 반영했다.   ‘짓’이 붙은 말들은 대개 동작이 한 번이어도 된다. 반드시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동작을 여러 번 해야 완료되는 게 아니다. 눈짓, 날갯짓, 몸짓, 어깻짓 같은 동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손을 대서 잘 매만지는 일”인 ‘손질’은 반복적이다. 어느 정도 반복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손질’이 된다.   ‘바느질’ ‘다림질’ ‘부채질’ ‘양치질’ ‘되새김질’ ‘뜀박질’ 같은 말들에도 반복성이 있다. ‘싸움질’이나 ‘자랑질’ 같은 말들도 일회적인 동작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이런 흐름에서 ‘도둑질’도 ‘도둑짓’이라고 하지 않는다. ‘강도짓’보다 ‘강도질’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되겠다.   그런데 딴짓, 망나니짓, 여우짓, 허튼짓 같은 말들도 보인다. 일회적인 동작이 아닌 말들이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반드시는 아니다. 그래도 일회적이냐, 반복적이냐로 ‘짓’과 ‘질’을 어느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구별 은행 강도짓 은행 강도질 망나니짓 여우짓

2026.06.16. 19:08

[우리말 바루기] ‘덧붙였다’의 문제

“그는 ‘결과가 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혜택은 오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 문장에서 ‘덧붙였다’는 쓰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는 ‘덧붙였다’ 대신 ‘했다’나 ‘밝혔다’를 쓰는 게 적절하다. ‘하다’와 ‘밝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만, ‘덧붙이다’는 그렇지 않다. ‘덧붙이다’는 앞에 한 말에 더 보탠다는 뜻이다. 추가로 붙이는 것이어서 중요성이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의미가 담긴다.   그럼에도 ‘덧붙였다’가 흔히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앞 문장의 서술어 ‘말했다’를 피하려고 한 거다. 같은 표현이 반복되면 지루해진다는 걸 의식했다. ‘했다’를 버린 건 밋밋하거나 흔해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 ‘덧붙였다’는 좀 더 선명하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덧붙였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잊은 건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 언어의 정확성과 가치중립이다. ‘혜택은 오래갈 것’이 덧붙인 말인지를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덧붙이다’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난다. ‘부연하다’인데, 이 말 역시 정확하지도 가치중립적이지도 않다. “이어 ‘안전관리 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지나쳐 보인다. ‘부연하다’는 “설명을 덧붙여 자세히 말하다”는 뜻이다. 서술어의 다양화가 유행한다는 의심이 든다.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강조했다’고 하고, 설명이 아닌데도 ‘설명했다’고 쓴다. 사실 전달 기사의 서술어는 다양해질 필요가 없다. 가치중립이 더 중요한 가치다.  우리말 바루기 문제 뉴스 문장 안전관리 체계 언론 언어

2026.06.15. 18:30

[우리말 바루기] ‘지향’,‘지양’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집단 이기주의를 지향해야 할까, 지양해야 할까.   단어의 형태가 비슷한 낱말을 보면 의미가 비슷한 단어이거나 둘 중 하나는 틀린 표현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향, 지양’과 같이 어형이 비슷해도 뜻은 전혀 다른 단어가 있으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지향(志向)’은 ‘뜻 지(志)’와 ‘향할 향(向)’ 자가 만나 이뤄진 단어다.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어 향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평화통일 지향”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등과 같이 쓰인다.   ‘지양(止揚)’은 ‘그칠 지(止)’와 ‘오를 양(揚)’ 자로 구성된 단어로,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해 어떠한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무의미한 싸움은 지양해야 한다” “편향적 시각은 지양돼야 한다” 등처럼 쓸 수 있다.   그래도 ‘지향’과 ‘지양’이 헷갈린다면 ‘향(向)’에 주목해 보자. ‘지향’의 ‘향’은 ‘향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향’은 어떤 방향성을 갖는다. 즉, 무언가를 목표로 해 향하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면 ‘지향’을 써야 한다. ‘지양’은 ‘하지 않거나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건 ‘지향’,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지양’을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집단 이기주의를 지향해야 할까, 지양해야 할까. 집단 이기주의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해야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지향 지양 지향 지양 평화통일 지향 집단 이기주의

2026.06.14. 20:00

[우리말 바루기] ‘채일’ 수 없는 이유

외로운 솔로들이 짝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간의 합숙을 통해 서로를 알아 가며 최종 커플에 이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과 관련된 온라인 게시판에는 “미래를 점치는 점술가들이라도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채이는’ 건 예측할 수 없나 보다” “옥순에게 ‘채인’ 영수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등과 같은 시청 소감이 자주 올라온다.   남녀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관계가 끊기게 되는 경우 위에서와 같이 ‘상대에게 채이다’고 표현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어떤 사람과 사귀다가 연인 관계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면 ‘상대를 차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상대가 나에게 먼저 이별을 언급했다면 ‘차다’에 피동의 표현을 만들어 주는 접사 ‘이’를 붙여 ‘상대에게 차이다’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채이다’는 ‘차이다’에 불필요하게 ‘ㅣ’가 덧붙은 형태이므로 잘못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차이다’를 줄여 ‘채다’라고 쓸 수도 있다. “애인에게 챈 직후라 마음이 울적하다” “남자친구에게 채고 난 뒤 한동안 입맛이 없었다” 등과 같이 쓰면 된다. ‘차이다’와 ‘채다’를 과거형으로 만들 땐 어미 ‘-었-’을 넣어 ‘차이었다(차였다)’ 혹은 ‘채었다’로 쓰면 된다. 그러나 이 역시 “그에게 채였다”에서처럼 불필요하게 ‘ㅣ’를 넣어 쓰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자.우리말 바루기 연인 관계 남녀 관계 온라인 게시판

2026.06.11. 19:53

[우리말 바루기] ‘의’가 없으면 어색

‘의’는 명사와 명사를 연결해 준다. 그러면서 앞말이 뒷말에 대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앞말과 뒷말이 어떤 관계인지 등을 보여 준다. ‘예술의 아름다움’에선 ‘예술’이 ‘아름다움’의 주체라는 사실을, ‘도로의 일부’에선 ‘도로’와 ‘일부’가 전체와 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런데 ‘도로의 일부’에선 ‘의’를 생략할 수 있지만, ‘예술의 아름다움’에선 ‘의’를 생략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 ‘의’를 빼도 되는지를 설명하기는 아주 어렵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예술이 아름답다’는 말인데, 이런 형태에선 ‘의’를 생략하면 앞말과 뒷말이 연결되지 않는다.     ‘성격의 강인함’은 ‘성격이 강인하다’는 말이니 역시 ‘의’를 붙여야 자연스럽다. 이처럼 ‘의’의 앞뒤가 주어와 서술어의 구조일 때는 ‘의’를 생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의’가 ‘을’을 뜻할 때는 ‘의’가 쉽게 생략된다. 예를 들어 ‘학문의 연구’에서 ‘의’는 ‘을’을 뜻한다. 이때는 ‘의’가 없는 ‘학문 연구’도 어색하지 않다. ‘목적의 달성’ ‘문제의 해결’에서도 ‘의’를 뺄 수 있다. ‘철수의 의자’처럼 ‘의’가 ‘소유’ 관계, ‘도로의 일부’처럼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나타낼 때도 ‘의’는 생략된다.   이 밖에는 ‘의’를 생략할 때 조심해야 한다.  “그는 공문서 위조, 허위 보고 등 혐의로 기소됐다.” 이 문장은 ‘의’를 빼버려서 ‘등’과 ‘혐의’가 따로 논다. 여기서는 ‘의’가 있어야 꾸미는 관계가 명확해진다. 우리말 바루기 어색 학문 연구 공문서 위조

2026.06.10. 18:58

[우리말 바루기] ‘뿌셔뿌셔’의 바른 표현

‘뿌셔뿌셔’라는 이름의 과자가 있다. 과자 이름으로 등장하는 ‘뿌셔’는 ‘뿌시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그런데 ‘뿌시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부수다’와 ‘부시다’의 비표준어라고 풀이돼 있다.   ‘소주’를 ‘쏘주’라고 하면 보다 강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부수다’를 ‘뿌시다’라고 하면 좀 더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뿌시다’라는 표현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귀여운 것을 보고 “지구 뿌셔, 우주 뿌셔”와 같이 표현한 글이 넘쳐났다. 재미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바른 표현이 무엇인지는 알고 넘어가야 한다.   ‘단단한 물체를 여러 조각이 나게 두드려 깨뜨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표현은 ‘뿌시다’가 아닌 ‘부수다’이다. ‘부수다’를 활용하면 ‘부셔’가 아닌 ‘부수어’, 줄이면 ‘부숴’가 된다. ‘부셔’는 ‘부시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부시다’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에서와 같이 ‘빛이나 색채가 강렬해 마주 보기가 어려운 상태에 있다’, “그릇을 물로 부시다”에서처럼 ‘그릇 등을 씻어 깨끗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낱말이다.   ‘뿌셔뿌셔’는  ‘부숴 부숴’가 바른 표현이지만 과자 이름으로 쓰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과자의 명칭은 ‘부숴 먹는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구매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맞춤법을 파괴한 예외적 사용으로 봐야 하겠다.우리말 바루기 뿌셔뿌셔 표현 과자 이름 예외적 사용

2026.06.09. 18:55

[우리말 바루기] 반려동물과 애완동물

산책하다 보면 동물과 함께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약 15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예전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가리킬 때 ‘애완동물’ ‘애완견’이라고 쓰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반려동물’ ‘반려견’이라고 더 많이 지칭한다.   ‘애완(愛玩)’은 ‘사랑 애(愛)’와 ‘놀 완(玩)’ 자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로, 동물이나 물품 등을 좋아해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긴다는 의미를 뜻한다.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애완동물’은 사랑하고 즐기며 같이 놀아 주는 동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키워 본 사람들은 동물이 단지 즐거움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가족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반려(伴侶)’는 ‘짝 반(伴)’과 ‘짝 려(侶)’ 자로 구성된 낱말로, 말 그대로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요즘은 같이 살아가는 짝이라는 뜻에서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애완동물’보다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가족 구성원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반려동물’은 원래 표준국어대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되지 못했다. 그러나 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증가하고 ‘반려동물’ ‘반려견’ 등의 어휘를 쓰는 빈도가 증가하자 국립국어원에서는 2023년 이를 한 단어로 인정해 올렸다.   언어는 언중(言衆)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반려동물’ ‘반려견’의 표제어 등재는 그러한 사실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반려동물 애완동물 가족 구성원 표제어 등재

2026.06.08. 18:26

[우리말 바루기] ‘햇나물’과 ‘해쑥’

봄에는 ‘햇것’들이 가득하다.  개나리·진달래·벚꽃 등도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년 돌아오는 모습이지만 새롭게 자라나는 것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만들곤 한다.   “봄에는 햇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보자”에서 쓰인 ‘햇나물’과 같이 ‘해마다 나는 물건으로서 그해에 처음 나오는 것’을 가리킬 때 보통 접두사 ‘햇-’을 붙인다. ‘햇나물’ 외에도 ‘햇가지’ ‘햇과일’ ‘햇감자’ ‘햇곡식’ ‘햇솜’ 등 예로 들 수 있는 단어가 무척 많다.   그렇다면 그해에 새로 나온 쑥을 가리킬 땐 ‘햇쑥’이라고 하면 될까? ‘햇쑥’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해쑥’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나온다. 우리말에서 단어의 첫소리가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ㅊ, ㅋ, ㅌ, ㅍ)로 날 때에는 ‘햇-’이 아닌 ‘해-’를 쓰도록 하고 있다. ‘쑥’의 경우 단어의 첫머리가 된소리인 ‘ㅆ’으로 시작되므로 ‘햇-’이 아닌 ‘해-’가 붙어 ‘해쑥’이 되는 것이다.   ‘팥’과 ‘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단어의 첫머리가 거센소리인 ‘ㅍ’과 ‘ㅋ’으로 시작되므로 ‘햇팥’ ‘햇콩’이 아닌 ‘해팥’ ‘해콩’으로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햇것’ ‘햇나물’ ‘햇병아리’ 등은 단어의 첫머리가 ‘ㄱ’ ‘ㄴ’ ‘ㅂ’으로, 거센소리나 된소리가 아니므로 ‘햇-’을 붙이면 된다.   내일은 햇나물로 만든 비빔밥, 해쑥으로 만든 부침개로 봄을 물씬 느껴 보는 건 어떨까.우리말 바루기 햇나물 햇나물로 비빔밥 첫머리가 된소리인 보통 접두사

2026.06.07. 18:50

[우리말 바루기] 준말들의 맞춤법

‘금시에’는 줄어 ‘금세’가 된다. ‘금시에’는 “바로 지금”을 뜻하는 ‘금시(今時)’에 ‘낮에’ ‘밤에’의 ‘에’가 붙은 말이다. ‘밤사이’를 줄인 ‘밤새’, ‘요사이’를 줄인 ‘요새’, ‘그사이’를 줄인 ‘그새’의 ‘새’와 아무 상관이 없다. ‘새’와 달리 ‘금세’의 ‘세’는 어떤 뜻도 없다.   ‘오히려’는 줄어 ‘외려’가 되고, ‘도리어’는 ‘되레’가 된다. ‘외려’와 ‘되레’가 표준어다. 그런데 표준어로 쓰려고 하면 은근히 헷갈린다.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오히려’는 끝 글자가 변하지 않는다. ‘려’가 그대로다. 앞의 ‘오히’만 ‘외’로 줄어든다. 끝 글자가 그대로라는 게 포인트다. ‘도리어’에선 ‘도’가 뒷소리의 영향을 받아 ‘되’가 되고, ‘리어’는 ‘레’가 된다. 모습이 다 바뀐 ‘되레’는 기억하기가 조금 더 어렵다.   ‘어떻게 해’는 줄어서 ‘어떡해’가 된다. 간혹 “큰일 났다. 어떡해”라고 줄여 놓고 ‘어떡해’가 잘못인 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든”도 “어떡하면 좋을까?” “어떡하든”으로 줄여도 된다.   ‘푸념하지’는 줄이면 ‘푸념치’가 된다. 그런데 ‘생각하지’는 ‘생각치’가 아니라 ‘생각지’로 줄여야 한다. ‘하’ 앞의 받침 소리가 ‘ㄱ, ㄷ, ㅂ’이면 ‘하’가 통째로 줄어든다고 본다. ‘갑갑하지’는 ‘갑갑지’로, ‘깨끗하지’는 ‘깨끗지’로 준다. ‘생각하다 못해’는 ‘생각다 못해’, ‘생각하건대’는 ‘생각건대’로 줄어든다.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준말

2026.06.04. 20:46

[우리말 바루기] ‘콧망울’? ‘콧방울’?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세먼지와 꽃가루 등으로 인해 이들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온라인상에는 재채기와 콧물 등이 계속될 때 다음과 같이 행동하라고 소개돼 있다. “콧물이 흐르거나 코막힘이 심할 땐 손가락으로 양쪽 콧망울 옆을 지그시 눌렀다 떼기를 반복하세요.”   코끝 양쪽으로 둥글게 방울처럼 나온 부분을 가리킬 때 많은 사람이 이처럼 ‘콧망울’이라고 쓰곤 한다. 눈알 앞쪽의 도톰한 곳이나 눈동자가 있는 곳을 ‘눈망울’이라고 하니, 코끝 부분을 표현할 때도 ‘콧망울’이라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콧망울’은 잘못된 표현으로, ‘콧방울’이라 해야 바르다. ‘콧방울’은 코끝 양쪽이 방울처럼 둥글게 생겼기 때문에 붙은 명칭으로 보인다. “코끝이 뭉툭하거나 콧방울이 넓으면 귀여운 인상을 준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콧볼이 너무 넓어 성형수술을 고민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넓은 콧볼을 선호했다”에서와 같이 ‘콧방울’을 다른 말로 ‘콧볼’이라고도 쓸 수 있다. 잘 쓰이진 않지만, 한자어로는 ‘비익(鼻翼)’이라고도 한다.   “매우 맛있는 걸 먹을 땐 나도 모르게 코평수가 넓어지곤 한다” 등과 같이 ‘코평수’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이는 비표준어다. 또 “그는 콧날개가 참 날렵하게 생겼다”에서처럼 ‘콧날개’라고 쓰는 이도 있지만 이 역시 표준어가 아니므로 ‘콧방울’이나 ‘콧볼’로 고쳐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콧망울 콧방울 양쪽 콧망울 코끝 양쪽 알레르기성 비염

2026.06.03. 18:57

[우리말 바루기] ‘이 자리를 빌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중해 보이는 표현이었지만, 두 가지가 조금 거슬린다. 먼저 ‘빌리다’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표준어지만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이 자리를 빌어’가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돈을 빌리다”처럼 물건이 오가는 상황이 아닐 때 ‘빌리다’를 사용하면 여전히 거부감이 든다.   ‘이 자리를 빌려’도 실제 자리를 빌리는 게 아니다. 맥락을 살피면 ‘이 자리를 통해’ 정도의 의미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때 ‘빌리다’의 뜻을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얼른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인다. 일상에서도 ‘빌리다’를 이 사전처럼 사용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현실을 보면 아직 많은 사람이 ‘빌리다’가 갈라져 나오기 이전 형태인 ‘빌다’를 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다. 규범은 ‘빌려’이지만 현실은 ‘빌어’가 더 우세해 보인다. 연세한국어사전도 ‘이 자리를 빌어’가 더 널리 쓰인다고 봤다. 이 사전은 “(무엇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 “누구의 말을 인용하다”는 뜻이 ‘빌리다’가 아니라 ‘빌다’에 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거슬렸던 건 ‘이 자리를 빌려’라는 말 자체였다. 의례적이고 상투적으로 보였다. 괜히 붙이는 군더더기 같기도 했다. 공식적인 자리에 서면 불필요하게 덧붙이려고 한다. 일부러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자리를 빌려’가 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가 더 깔끔하고 세련돼 보인다.우리말 바루기 군더더기 같기

2026.06.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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