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꺼리는 공동의 일을 대표로 맡는 경우 관용적으로 ‘총대를 메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자주 쓰는 말이지만 막상 적으려고 하면 총대를 ‘메다’고 해야 할지, ‘매다’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 ‘메다’와 ‘매다’는 발음으로는 철자와 의미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적을 때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메다’는 어깨에 걸치거나 올려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총열을 장치한 전체의 나무를 의미하는 ‘총대’는 어깨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므로 “총대를 메다”라고 해야 바르다. ‘매다’는 끈이나 줄 등의 두 끝을 엇걸고 잡아당겨 풀어지지 않게 묶거나 마디를 만드는 행동을 뜻한다. 따라서 “신발끈을 매다” “안전띠를 매다” “옷고름을 매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둘이 헷갈릴 때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 ‘매다’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듭을 짓거나 묶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매다’의 어간 ‘매-’에 사용된 모음 ‘ㅐ’를 살펴보면 그 모양이 꼭 매듭지은 모습처럼 보인다. 모음 ‘ㅐ’가 매듭을 묶은 모양이라고 기억해 두면 무언가 묶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 뒤에는 ‘매다’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넥타이는 ‘메야’ 할까, ‘매야’ 할까. 넥타이는 어깨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매듭을 지어 묶어야 하는 것이므로 ‘매다’와 짝지어야 바르다. 배낭은 어떨까? 배낭은 매듭을 짓거나 묶는 일과는 관계가 없고 어깨에 걸쳐야 하는 것이므로 “배낭을 메다”고 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총대
2026.11.05. 18:42
다음 중 ‘모두 발언’이 뜻하는 것은?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는 발언 ㉡회의를 할 때 첫머리에 하는 발언 일반적으로 ‘모두’라고 하면 언뜻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일상에서 우리가 ‘모두’라고 했을 때는 전체 또는 ‘빠짐없이 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발언’이라고 하면 한글만 가지고 봤을 때는 회의 등을 하는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나서서 순서대로 모두가 발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모두 발언’의 ‘모두’는 한자가 ‘冒頭’로 말이나 글의 첫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간혹 논문 등에서 “결론은 모두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결론을 이미 첫머리에서 얘기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모두’가 어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모두’와 ‘발언’이 합쳐진 ‘모두 발언’은 회의나 연설 등을 할 때 맨 앞에 나서서 하는 사람의 발언을 의미한다. 이렇게 어려운 말은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쓸 필요가 있다. 고유어인 ‘첫머리’가 있으므로 ‘첫머리 발언’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머리 발언’이 더 간결하지 않으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머리’보다 더욱 구체적인 ‘첫머리 발언’이 나아 보인다. 따라서 위 문제의 정답은 ‘㉡회의를 할 때 첫머리에 하는 발언’이다. 줄여서 ‘첫머리 발언’이라고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우리말 바루기 발언 첫머리 발언 모두 발언
2026.11.04. 20:46
다음 중 주어 또는 목적어와 서술어가 가장 잘 호응하는 것을 고르시오. ㉠낙엽이 떨어진다 ㉡돈을 송금했다 ㉢전기가 누전된다 ㉣피해를 보았다 우리 속담에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어울리는 짝이 있다는 얘기다. 단어도 그렇다.어떤 단어는 특정한 부류의 어휘하고만 결합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에 알맞은 낱말을 골라 써야 한다. 이를 ‘의미상 선택 제약’이라 한다. 쉽게 얘기하면 단어도 저마다 잘 어울리는 짝이 있으므로 그 둘을 결합시킬 때 가장 조화롭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낙엽이 떨어진다’는 어떨까? 낙엽(落葉)은 한자어 구성상 나뭇잎이 떨어짐 또는 말라서 떨어진 나뭇잎을 뜻한다. 단어 자체에 떨어진다(落)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낙엽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중복되는 겹말로, 둘은 어울리는 짝이 될 수 없다. ‘낙엽이 진다’고 하는 것이 좋다. ‘㉡돈을 송금했다’ 역시 송금(送金)이 돈을 부쳐 보내는 것을 뜻하므로 목적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못한다. ‘돈을 보냈다’고 하든가 그냥 ‘송금했다’고 해야 한다. ‘㉢전기가 누전된다’도 마찬가지다. 누전(漏電)이 전기가 새는 것이므로 ‘전기가 샌다’ 또는 그냥 ‘누전된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해를 보았다’가 정답이다.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으나 피해(被害) 자체가 손해를 입는 것이므로 ‘피해’와 ‘입었다’는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 것이 좋다.우리말 바루기 낙엽 의미상 선택 단어 자체 한자어 구성상
2026.11.03. 18:29
“밤부터 비가 오겠습니다.” 미래는 이처럼 ‘-겠-’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다음처럼 ‘-(으)ㄹ’로 표현하는 일도 흔하다. ㉠ 내일 떠날 사람이다. ㉡ 1년 뒤 돌아올 예정이다. ㉢ 내일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은 “내일 떠나는 사람이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현재를 나타내는 ‘-는(-ㄴ-)’도 미래를 뜻할 때 쓰인다. ㉡은 “1년 뒤 돌아온다”처럼 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겠-’ ‘-(으)ㄹ’ ‘-는(-ㄴ-)’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으)ㄹ’이 단지 미래를 나타낸다면 ‘-겠-’은 ‘추측’을 바탕에 둔다. ‘-는(-ㄴ-)’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확실성’을 기준으로 하면 ‘-는(-ㄴ-)’ ‘-(으)ㄹ’ ‘-겠-’ 순이겠다. 다음 문장을 더 살펴보자. ㉣ 우리는 내일 출발한다. ㉣은 ‘내일 출발’에 변화가 없다는 게 전제된다. ㉣을 “우리는 내일 출발할 예정이다”로 바꾸면 출발이 ‘확정’은 아닐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그런데 다음처럼 ‘-(으)ㄹ’이 ‘남용’된다. 미래를 ‘-(으)ㄹ’로만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 내년 한국에서 열릴 세계대회. ㉤은 확정된 사실이다. 이때는 ‘열릴’보다 ‘열리는’이 더 자연스럽다. “여름방학 때 개최되는 숲체험학교에 참가할 학생을 모집한다”에서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숲체험학교’는 확정이라 ‘개최되는’이, 참가 학생은 확정이 아니라 ‘참가할’이 잘 어울린다. 미래의 일이더라도 확정된 사실일 때는 현재형으로 표현해야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참가 학생 단지 미래 내년 한국
2026.11.02. 17:59
“너가 이걸 할 수 있겠니?” “이번에는 너가 한번 해볼래?” 상대와 말을 주고받을 때 ‘너가’라고 하는 사람이 꽤 있다. ‘너가’는 문제가 없는 표현일까? 2인칭 대명사인 ‘너’는 뒤에 ‘가’(주격조사·보격조사)가 올 때는 ‘네’가 되는 것이 우리말 어법이다. 즉 “너는 조용히 있어라”처럼 ‘는’이 붙을 경우에는 ‘너’가 되지만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처럼 ‘가’가 붙을 때는 ‘네’가 된다. 따라서 ‘너가’는 ‘네가’의 잘못이다. ‘네가’를 ‘너가’라고 하는 것은 ‘내가’와 ‘네가’가 발음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내가 가는 거냐?” “네가 가는 거냐?”라고 말한다면 발음이 비슷해 어느 경우인지 헷갈린다. 이래서 ‘네가’를 ‘너가’라고 분명히 알아듣게끔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네가’를 ‘니가’로 발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니가 가는 거냐?”라고 대부분 얘기한다. 이때의 ‘니가’ 역시 ‘네가’가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네가’를 발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네가’를 ‘니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사전은 ‘니가’를 사투리로 취급하고 있지만 두루 쓰이고 있다. ‘너가’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지적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네가’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네가’를 ‘니가’라고 발음하고 적을 때는 ‘네가’라고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생각된다.우리말 바루기 점도 영향 현실적 대안
2026.11.01. 19:00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의 개인기 중에서 ‘성대묘사’는 단골손님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나 새, 짐승 등의 소리를 흉내 내는 일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성대묘사’라고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묘사’는 잘못된 표현이므로 ‘성대모사’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모사(模寫)’는 ‘법 모(模)’ 자에 ‘베낄 사(寫)’ 자를 결합한 단어로,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거나 원본을 베끼어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초상화를 모사에 불과하다며 한사코 그리지 않았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묘사(描寫)’는 ‘그릴 묘(描)’ 자와 ‘베낄 사(寫)’ 자로 이루어진 낱말로, “그 소설은 주인공의 성격 묘사가 뛰어나다” 등처럼 쓰인다. 한자만 놓고 보면 ‘모사’와 ‘묘사’를 구분하기 힘들지만, ‘묘사’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 등을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사’는 복사기로 복사하듯 똑같이 모방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지만, ‘묘사’는 어떤 대상을 구체적으로 생생히 재현해 내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나 다른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내는 일은 ‘성대묘사’가 아닌 ‘성대모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심리 묘사, 인물 묘사, 상황 묘사 등처럼 어떤 대상을 언어로 눈에 보이는 것처럼 베낀 듯 표현하는 일에는 ‘묘사’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묘사 모사 심리 묘사 성격 묘사 묘사 상황
2026.10.29. 19:18
‘반면’은 앞과 상반되는 내용을 이어 준다. 국어사전은 대부분 ‘-은’과 ‘-는’ 뒤에서 ‘반면에’ 꼴로 쓰인다고 알려 준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그는 공부는 못하는 반면에 운동은 잘한다” “그는 말은 빠른 반면에 동작은 무척 느리다” 같은 예문이 제시돼 있다. 그렇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이 제품은 가격이 저렴하다. 반면 내구성은 다소 떨어진다”처럼 문장의 맨 앞에 오는 예가 흔하다. ‘그러나’가 그렇듯 앞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접속부사같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을 사용할 땐 어색한 예가 적잖이 보인다. “㉠은 비용이 적게 든다. 반면 ㉡은 시간이 적게 든다.” 여기서는 두 내용이 반대가 아니라 다른 관계다. ㉠은 비용에서, ㉡은 시간에서 유리하다는 뜻이다. ‘반면’이 없어야 앞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은 비용이 적게 든다. ㉡은 시간이 적게 든다.” 다음 문장의 ‘는’이 그렇듯이 앞뒤가 대비된다는 사실은 조사 ‘은’이 해결해 준다. “철수는 사과를 좋아한다. 영희는 딸기를 좋아한다.” 문장 사이에 연결어를 넣으면 글이 논리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습관적으로 ‘반면’을 넣는 경향이 있다. “A회장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조직 문화 혁신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B그룹은 신년 하례식을 생략하기로 했다.” 여기서도 ‘반면’은 부자연스럽다. ‘반면’이 기대하는 내용이 안 나온다. 굳이 넣는다면 ‘한편’이 낫겠다. ‘반면’은 앞뒤의 내용이 상반되는 관계일 때 써야 어울린다.우리말 바루기 신년 하례식 문장 사이 다음 문장
2026.10.28. 18:33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덥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날씨가 하루이틀 사이에 확 달라졌다. 이렇게 일교차가 커서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시기, 이러한 시기를 가리켜 ‘간절기’라고 한다. “간절기엔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니 웃옷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일교차가 큰 간절기에는 감기에 걸리기 쉬우니 옷차림에 유의해야 한다” 등과 같이 쓰곤 한다. ‘간절기’는 우리말 바루기를 통해 잘못 쓰이고 있는 표현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철이 바뀌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는 ‘환절기’라는 단어가 이미 있는데, 사람들이 ‘간절기’로 틀리게 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025년 ‘간절기’가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준어로 새롭게 등재됐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간절기’를 찾아보면 ‘한 계절과 다음 계절의 사이’라는 뜻풀이와 함께 비슷한 말로 ‘환절기’와 ‘환후기’가 올라 있다. 사실 ‘간절기’는 2000년 이미 국립국어원이 펴낸 ‘신어 자료집’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신문이나 잡지 등 미디어에 등장한 새로운 단어를 모은 것일 뿐, 여기에는 유행어나 비속어를 포함해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도 다수 들어가 있다. 따라서 ‘간절기’는 새롭게 나온 단어일 뿐 표준어가 아니라는 취지의 글이 게재됐었다. 그런데 ‘간절기’는 이후 여러 매체와 일상생활 등에서 폭발적으로 사용 빈도가 증가했다. 이를 국립국어원에서도 인정해 비소로 ‘간절기’가 표준어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우리말 바루기 간절기 표준어 표준어 자격 신어 자료집
2026.10.27. 18:14
‘과자전: 대추 한 말 3냥, 밤 한 말 2냥 8전(菓子廛 棗 1斗 3兩 栗 1斗 2兩 8錢).’ 1883년 12월 20일자 한성순보. ‘과자전’ 품목으로 대추와 밤이 제시돼 있다. 과자가 과실의 뜻으로도 쓰인 기록이다. 과자도 본래는 과실을 뜻하던 말이었다. 제사상엔 으레 과일이 올라갔는데, 항상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대용품이 필요했다. 그래서 쌀이나 밀가루로 과일 모양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후 모양은 변해 갔지만, 이름은 ‘과자’ 그대로 남았다. 의미는 확연히 갈라져 과자와 과일은 전혀 다른 말이 됐다. ‘과실’과 ‘과일’ 사이는 조금 애매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일’은 ‘과실’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생긴 말이기 때문이다. ‘과실’은 ‘열매’를 뜻하는 글자들이 결합했는데, ‘과’도 ‘열매’고, ‘실’도 열매다. 표준국어대사전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 대개 수분이 많고 단맛 또는 신맛이 난다”고 풀이돼 있다. ‘과일’과 동의어로 처리해 놓았지만, 뜻이 겹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전의 예문 “과일로 화채를 만들다”에서 ‘과일’을 ‘과실’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쓰이는 맥락이 달라진 것이다. 일상의 언어에서 은행, 잣, 호두 같은 견과는 과일로도, 과실로도 안 불리지만 농업 분야에선 ‘과일’이 아니라 ‘과실’로 분류한다. 수박, 참외, 딸기, 토마토는 ‘과일’이다. ‘과실’로 부르는 일이 없다. 사과, 배, 포도, 감처럼 나무에서 나는 건 ‘과실’이면서 ‘과일’이다.우리말 바루기 과실 과일 과실 과일 과일 모양 과자도 본래
2026.10.26. 18:22
“품질에 대한 만족도는 높게 나타났고, 가격에 대한 만족도는 낮았다.” 이 문장은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이유는 앞 절과 뒤 절의 서술어 성격이 달라서다. ‘나타났다’는 동사와 ‘낮았다’는 형용사가 대응하는 구조다. ‘철수는 나타났고, 영희는 낮았다’와 같은 구조인 것이다. 앞의 예문은 “품질에 대한 만족도는 높게 나타났다”와 “가격에 대한 만족도는 가장 낮았다”를 이은 문장이다. 높고 낮은 것을 대비시켜 의미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겠다. 그래도 맥락상 잇는 게 나았다면 ‘품질에 대한 만족도는 높고, 가격에 대한 만족도는 낮았다’처럼 서술어의 품사를 같게 해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타났다’로 마무리할 경우엔 ‘품질에 대한 만족도는 높고, 가격에 대한 만족도는 낮게 나타났다’로 바꾸면 된다. 연결어미 ‘-고’의 첫 번째 기능은 이처럼 앞뒤를 대등하게 연결하는 것이다. 만약 두 개의 절이 대등하게 연결되는 구조라면 앞 절과 뒤 절이 서로 어울리는 문법적·의미적 성격을 지녀야 자연스럽다. 다음 문장도 보자. “노년층이 복잡한 절차를 이해하지 못할 우려가 있고, 서비스 이용을 가로막는다.” 이 문장에선 있어야 할 뒤 절의 주어가 드러나지 않았다. 서술어들의 성격도 다르다. 그렇다 보니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복잡한 절차는 노년층의 이해를 방해하고, 서비스 이용을 가로막는다”처럼 고쳐야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연결어미 서술어 성격 서비스 이용 의미적 성격
2026.10.25. 18:00
바람이 분다. 여기에 더해 비까지 온다. 이런 장면을 한 문장으로 만들면 다음처럼 된다. “바람이 부는 데다 비까지 온다.” 두 장면을 하나로 묶는 건 ‘-는 데다’이다. ‘-는 데다’는 ‘그 위에 더해’란 뜻으로 쓰인다. 앞은 물론 뒤의 것까지란 뜻이다. 그런데 가치가 나란한 것은 아니다. 앞보다 뒤쪽 것에 무게가 놓인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는 데다’의 앞 절과 뒤 절에 비슷한 성질의 것이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문장들처럼 자연스럽다. “음식이 맛있는 데다 값도 싸다.” “눈치도 없는 데다 염치도 없다.” “연기도 잘하는 데다 노래도 잘한다.” 그럼 다음 문장은 어떨까? “지역 대표 음식인 데다 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꽃게를 선택했다.” 어딘가 조금 어색하다. ‘-ㄴ 데다’의 앞과 뒤, 즉 앞 절과 뒤 절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 절의 서술어는 ‘음식이다’, 뒤 절의 서술어는 ‘중요하다’와 ‘생각했다’이다. ‘음식이다’와 대응하는 서술어가 없다. ‘음식이다’와 대응하는 서술어가 와야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러려면 ‘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를 ‘중요한 건 맛이어서’처럼 ‘맛’을 서술어로 놓아야 한다. “지역 대표 음식인 데다 중요한 건 맛이어서 꽃게를 선택했다”로 수정하면 자연스러워진다. “나는 팔랑귀인 데다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 이 문장은 애초 ‘ㄴ 데다’를 쓰지 않는 게 좋았다. “나는 팔랑귀여서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라고 해야 했다. 우리말 바루기 지역 대표 다음 문장들
2026.10.22. 19:39
“걔 밖에 없어”와 “걔밖에 없어”라는 예문을 보면 둘 중 하나는 잘못 띄어쓰기를 한 문장 같지만, 둘 다 가능한 표현이다. 두 예문은 한 글자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다만 띄어쓰기가 조금 다를 뿐이다. 하지만 띄어쓰기 한 칸으로 인한 차이가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걔 밖에 없어”에서의 ‘밖에’는 명사 ‘밖(外)’과 조사 ‘에’가 결합한 형태로, ‘그 아이는 바깥에 없다’라는 의미다. “걔밖에 없어”에서의 ‘밖에’는 ‘그것 말고는’ ‘그것 이외에는’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로, ‘걔 말고는 없다’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명사(밖)와 조사(에)가 결합한 ‘밖에’(‘바깥에’라는 의미)와 조사 ‘밖에’(‘오로지’라는 의미)는 각각 독립된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다.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쓰고, 명사는 앞말과 띄어 쓰기 때문에 의미에 따라 띄어쓰기도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은 내가 할 수밖에 없다”에서는 ‘밖에’가 ‘바깥에’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있으므로 조사라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수’는 어미 ‘-은’ ‘-는’ ‘-을’ 뒤에 주로 ‘있다’ ‘없다’ 등과 함께 쓰여 ‘어떤 일을 할 만한 능력이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나타내는 의존명사다. 조사는 명사 뒤에 붙여 쓰므로 의존명사인 ‘수’와 뒤에 오는 조사 ‘밖에’는 항상 붙여 쓴다. 따라서 ‘수밖에’는 언제나 하나의 단어처럼 붙여 쓴다고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띄어쓰기
2026.10.21. 18:37
“나는 밥을 먹지 않고 잠이 들었다.” 이 문장에서 ‘먹다’와 ‘않다’를 연결하는 건 ‘-지’다. ‘-지’의 문법적 용어는 보조적 연결어미. “그는 울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지’는 이렇게 ‘않다’ ‘못하다’ ‘말다’를 이어 주는데, ‘얼토당토않다’는 ‘-지 않다’와 관련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얼토당토않다’의 어원은 ‘옳도 당하도 아니하다’이다. ‘듣도 보도 못하다.’ ‘오도 가도 못하다.’ ‘빼도 박도 못하다.’ ‘되도 않는 소리.’ 일반적인 형태로 바꾸면 ‘옳지도 당하지도 아니하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다’가 된다. 그런데 ‘듣도 보도’ ‘오도 가도’ 등에선 ‘-지’가 빠지고 바로 보조사 ‘도’가 붙은 것이다. ‘옳도’가 ‘얼토’가 되고, ‘당하도’가 ‘당토’가 된 건 변하는 과정에서 발음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겠다. ‘옳도’는 ‘옳다’가 [올타]로 소리 나듯 ‘ㅎ’과 ‘ㄷ’이 만나 [올토]로 발음된다. ‘올’은 ‘얼’로 바뀌었다. ‘당하도’의 ‘당’은 마땅하다는 뜻인데, ‘당하지’가 ‘당치’가 됐듯이 ‘당하도’도 ‘당토’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얼토’ ‘당토’에 ‘아니하다’가 결합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다,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 ‘얼토당토않다’가 만들어졌다. ‘옳도’가 ‘옳지도’, ‘당하도’가 ‘당하지도’이니 ‘얼토당토하지 않은’에서처럼 ‘얼토당토’에 ‘하지’를 붙이는 건 적절치 않다.우리말 바루기 보조적 연결어미 오도 가도 문법적 용어
2026.10.20. 18:24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다”에서 ‘-는데’는 붙이고, “이 책을 다 읽는 데 사흘이 걸렸다”에서 ‘-는 데’는 띄워야 한다. ‘-는데’는 연결어미이고 ‘-는 데’의 ‘-는’은 관형사형 어미, ‘데’는 의존명사여서 그렇다. 그런데 “책을 읽는데 전기가 나갔다”에서의 ‘-는데’는 연결어미다. 연결어미 ‘-는데’는 앞의 상황이나 배경을 제시한다. 대조되는 사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다”에선 앞 상황을 밝히며 이어 준다. “나는 가는데 동생은 안 간다”에선 대조를 나타낸다. 의존명사 ‘데’는 ‘일, 곳, 경우’ 등의 의미로 쓰인다. “책을 다 읽는 데 사흘이 걸렸다”에선 ‘일’, “갈 데가 없다”에선 ‘곳’, “그건 머리 아픈 데 먹는 약이다”에선 ‘경우’다. ‘-는데’와 ‘-는 데’의 구별이 쉽지 않을 땐 조사를 붙여 보면 된다. ‘-는데’ 뒤에 조사를 붙이긴 어렵다. “비가 오는데는 우산이 없다”처럼. “책을 다 읽는 데는 사흘이 걸렸다”는 자연스럽다. ‘-는바’도 ‘-는데’와 비슷한 구실을 한다. 앞의 상황을 제시하며 뒤를 이어 준다. “시간이 없는바 서둘러야 한다”에서 ‘-는바’는 연결어미이고 “나는 아는 바 없다”에서 ‘-는 바’의 ‘-는’은 관형사형 어미, ‘바’는 의존명사다. ‘바’는 ‘일이나 내용, 방법·방도’ 등의 의미로 쓰인다. ‘-는바’와 ‘-는 바’의 구별도 조사를 붙여 보면 된다. “나는 아는 바가 없다”는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관형사형 어미 내용 방법
2026.10.19. 18:05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묘사할 때 “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의뭉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등에서와 같이 ‘의뭉스럽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런데 사용 빈도가 점차 줄어들다 보니 ‘의뭉스럽다’라는 표현을 ‘의문스럽다’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의뭉스럽다’는 엄연히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는 표준어로, ‘보기에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의 정체가 의문스럽다” 등에서처럼 ‘보기에 의문 나는 데가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의문스럽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혼동해 쓰면 안 된다. 이처럼 시대가 변화하며 점점 쓰이지 않아 잊혀 가는 우리말이 꽤 많다. ‘미쁘다’는 ‘이쁘다’를 잘못 썼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믿음성이 있다’는 뜻을 지닌 낱말로,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도무지 미쁘게 보이지 않는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시망스럽다’ 역시 ‘실망스럽다’의 잘못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몹시 짓궂은 데가 있다’는 의미를 지닌 표준어다. “그는 말을 시망스럽게 해서 다른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등처럼 사용할 수 있다. ‘시뻐하다’도 ‘기뻐하다’를 틀리게 쓴 말 같지만 “상대편의 제안을 시뻐하다”에서와 같이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시들하게 생각하다’는 뜻이다. “그는 상황의 흐름을 시뻐한 나머지 때를 놓쳤다”처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란 의미로 쓰이는 낱말이다.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사용 빈도 여기저기 눈치
2026.10.18. 20:00
‘가엾다’와 ‘가엽다’는 동의어다. 둘 다 ‘불쌍하고 딱하다, 애틋하다’는 말이다. 둘 중 무엇이 표준어냐고 묻는다. 하지만 표준어가 아니라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표준어는 공적 의사소통을 위해 표준으로 정한 말일 뿐이다. ‘가엾다’와 ‘가엽다’는 복수 표준어다.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가엾다’는 ‘가이없다’가 변한 말이다. ‘이’와 ‘없’이 줄어 ‘가엾다’가 됐다. ‘가이없다’에서 ‘가’는 ‘강가, 냇가’의 ‘가’다. ‘이’는 ‘사람이’의 ‘이’와 같은 주격조사다. ‘가이없다’는 ‘끝이 없다’는 뜻이다. 노랫말에도 보인다.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없어라.” ‘가이없다’와 같은 구조로 된 낱말로는 ‘그지없다’ ‘바이없다’가 있다. ‘그지’는 ‘끝’의 옛말 ‘긎’을 연철한 것이고, ‘바’는 ‘방법’을 뜻하던 말이다. 이 중 ‘가이없다’만 비표준어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대신 ‘가없다’가 표준어란다. 글쎄다. ‘가이없다’는 ‘한’ ‘죄’ 등과 많이 쓰이면서 ‘불쌍하다’는 뜻도 갖게 됐다. ‘가엽다’는 ‘가엾다’가 변한 형태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가엾다’와 같이 쓰이게 됐다. ‘가엾다’가 ‘없다’란 뜻과 관계가 없어지면서부터다. ‘가볍다’ ‘무겁다’ 등의 ‘가벼워’ ‘무거워’ 등에 이끌려 활용에서 ‘가여워’가 나타나며 원형도 ‘가엽다’로 다시 보게 됐다.우리말 바루기 비표준어로 국어사전 표준어 규정 공적 의사소통
2026.10.15. 19:26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의 후기를 찾아보니 “영화를 보고 가슴 한켠이 시려 왔다” “특히 이 장면에서 가슴 한켠이 아리고 감정이 북받쳤다” 등과 같은 감상 평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아프다는 걸 표현할 때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한켠’이라고 쓰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켠’을 찾아보면 ‘편’의 잘못이라 풀이돼 있다. 따라서 ‘가슴 한켠’을 ‘가슴 한편’이라 고쳐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여기서 ‘한편’은 ‘어느 하나의 편이나 방향’을 나타내는 합성어이므로 ‘한’과 ‘편’을 붙여 ‘한편’이라고 적어야 한다. ‘한켠’은 특히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이나 노래 가사 등에 많이 등장하는데, ‘한켠’이 아닌 ‘한편’이라고 쓰면 말맛이나 글맛이 살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켠’이라는 발음이 주는 어감이 말하고자 하는 느낌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켠’은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못한 낱말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켠’ 대신에 쓸 수 있는 표현으로는 뭐가 있을까. 사전에 풀이돼 있는 대로 “영화를 보고 가슴 한편이 시려 왔다”와 같이 ‘한편’으로 고치면 된다. 또는 “특히 이 장면에서 가슴 한구석이 아리고 감정이 북받쳤다”에서처럼 ‘한구석’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이 영화는 이제 내 마음 한쪽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에서와 같이 ‘한쪽’이라고 표현해도 된다.우리말 바루기 가슴 한켠 가슴 한켠 가슴 한구석 가슴 한편
2026.10.14. 19:56
1998년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자 간담회에서 “상대가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할 때 그에 대해서 우리도 금도를 가지고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말했다. 여기 보이는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다. ‘금’은 “흉금을 터놓다”고 할 때의 ‘금’이다. 본래 ‘옷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비유적으로 ‘가슴, 마음, 생각’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흉금을 터놓다”고 하면 마음 깊이 품은 생각을 드러낸다는 말이 된다. ‘도’는 ‘도량(度量)’이다. ‘도량’의 본뜻은 길이와 양. 여기서 출발해 ‘사물의 양을 헤아림’ ‘너그럽게 용납해 처리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을 뜻하는 말이 됐다. ‘금도’는 한마디로 ‘도량’이라 할 수 있다. 아량이고 포용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 속의 ‘금도’가 대부분이다. “금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의 광기가 종교적 금도를 넘었다.” “금도를 지켜 주기 바란다.” 여기서 ‘금도’는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으면 금해야 하는 정도’ ‘지켜야 할 법도’쯤의 말이다. ‘금도(襟度)’가 아니라 ‘금지’의 금을 쓴 ‘금도(禁度)’인 것이다. ‘도량’을 뜻하는 ‘금도’가 아니라고,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라고 지적할 일은 아니다. 한때 국어사전엔 부정적 맥락의 ‘너무’는 없었다. 현실을 반영해 사전의 뜻이 바뀌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금도’도 사전에 실리는 게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국어사전 금도 한때 국어사전 가슴 마음 광기가 종교적
2026.10.13. 20:04
여름에는 샌들이나 슬리퍼를 주로 신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발뒤꿈치가 건조해지고, 굳은살까지 생겼다고 호소하는 이가 많다. 온라인상에는 “슬리퍼를 자주 신었더니 뒤꿈치에 굳은살이 박히고 갈라졌다” “노출된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도록 보습제를 듬뿍 바르고 잔다” “굳은살이 배기지 않게 평소 집 안에서도 양말을 신고 있는다” 등처럼 다양한 글들이 올라와 있다. 손바닥이나 발바닥의 어떤 부분이 두껍고 단단해질 때 이처럼 ‘굳은살이 박히다’라고 쓰기도 하고 ‘굳은살이 박이다’ ‘굳은살이 배기다’라고 적기도 한다. 이 중 바른 표현은 무엇일까. 정답은 ‘박이다’로, “굳은살이 박이다”라고 해야 한다. ‘박히다’는 ‘박다’의 피동사로, “벽에 박힌 못을 빼내다” 등에서와 같이 어딘가에 넣어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배기다’는 ‘바닥에 닿는 몸의 부분에 단단한 것이 받치는 힘을 느끼게 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의자가 딱딱해서 엉덩이가 배긴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여기서 문제 하나. 질리도록 자주 들었다는 뜻으로 흔히 “귀에 못이 박히다”고 하는데, 이는 바른 표현일까. 여기서 ‘못’은 나무에 박는 못이 아니라 굳은살과 동의어다. 너무 자주 들어서 귀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라는 의미이므로 원래 ‘귀에 굳은살이 박이다’, 즉 ‘귀에 못이 박이다’라고 써야 바르다. 그러나 많은 이가 “귀에 못이 박히다”라고 쓰는 걸 인정해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관용적 표현으로 허용했다.우리말 바루기 굳은살 관용적 표현 문제 하나
2026.10.12. 18:03
“강아지에게 물을 주었다.” 이 문장에서 ‘에게’는 두 가지 구실을 한다. 하나는 ‘강아지에게’라는 부사어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부사격 조사라고 부른다. 부사어는 문장에서 주로 서술어를 수식한다. 부사어가 된 ‘강아지에게’는 서술어 ‘주었다’를 꾸민다. 또 하나는 앞말이 사람이나 동물과 같은 유정명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유정명사인 ‘강아지’란 낱말에 ‘에’를 붙여 “강아지에 물을 주었다”고 하면 어색해진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도 ‘사람에게’라야 자연스럽다. “나무에 물을 주었다”에선 ‘에’가 ‘에게’와 같은 기능을 한다. ‘나무’가 무정명사여서 ‘에게’ 대신 ‘에’가 붙었다. 앞말이 식물이나 무생물을 가리키는 무정명사에는 ‘에’가 붙는 게 일반적이고 자연스럽다.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나무에게’는 문학적 맥락에서 나무를 의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우수한 팀에 상을 준다”의 ‘팀’도 무정명사여서 ‘에’가 붙는다. 국가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에게’가 아니라 “일본에 요구했다”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회사’도 무정명사. 그런데 “우리 회사에는 한 달도 길다”보다 “우리 회사에게는 한 달도 길다”가 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 문장은 ‘회사’를 의인화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팀에게 오늘 승리는 절실했다.” 여기서도 ‘팀’을 무정명사로 보고 ‘에’를 붙이면 어색하다. ‘팀’을 의인화해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말 바루기 우리 회사 문학적 맥락 오늘 승리
2026.10.11.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