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해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일이 벌써 다 된 것처럼 행동한다고 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답변 속 ‘들이켰다’를 ‘마셨다’로 대체해도 뜻이 통한다. 문제는 시점을 현재형으로 바꿨을 때다.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있는 거 아니냐” “김칫국부터 들이키면 안 돼요”와 같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들이키고’는 ‘들이켜고’로, ‘들이키면’은 ‘들이켜면’으로 바루어야 한다. 물이나 술 따위의 액체를 단숨에 마구 마시다는 의미의 동사는 ‘들이키다’가 아니라 ‘들이켜다’이다. 몹시·마구·갑자기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들이-’와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기다는 의미의 동사 ‘켜다’가 결합한 말이다. ‘들이켜고, 들이켜니, 들이켜면, 들이켜, 들이켰다’ 등으로 활용하는 게 바르다. ‘들이켜다’에는 공기나 숨 따위를 몹시 세차게 들이쉬다는 뜻도 있다. “숲속의 맑은 공기를 들이켜니 찬물로 씻은 듯 코가 상쾌하다”와 같이 쓰인다. ‘들이키다’는 안쪽으로 가까이 옮기다는 의미의 동사다. ‘들이키고, 들이키니, 들이키면, 들이키어(들이켜), 들이켰다’처럼 활용된다. “전철에선 서 있는 사람을 배려해 발을 들이키는 게 좋다”와 같이 사용한다.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화분을 들이켜라”의 경우 ‘들이키어라’가 ‘들이켜라’로 준 형태다. ‘들이켜다’가 기본형이어서가 아니다. ‘들이키었다’도 마찬가지다. ‘들이켰다’로 줄어든 것이다. ‘들이켜다’와 ‘들이키다’ 모두 과거형일 때 ‘들이켰다’로 활용 형태가 같다 보니 기본형을 혼동하는 일이 잦지만 구별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함정 활용 형태 사발 들이하기
2025.11.06. 20:20
“다리를 펴고 누우실게요” “허리를 드실게요”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실게요”-. 며칠 전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 직원들은 몹시 친절했다. 하지만 과공비례(過恭非禮)라고 했던가. 지나친 공손에서 오는 기형적 표현이 오히려 거부감이 들게 했다. 검사를 받고 치료하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러한 높임말을 들어야 했다. ‘-ㄹ게요’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ㄹ게’에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요’가 붙은 것이다. 즉 ‘-ㄹ게요’는 내가 상대에게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공손하게 약속하는 말이다. “다시 연락할게요”는 내가 상대에게 연락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또 올게요” 역시 내가 다시 오겠다고 상대에게 공손히 약속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우실게요”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선 “누울게요”는 내가 눕겠다고 상대에게 공손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시’가 첨가된 “누우실게요”는 어법상 성립하지도 않는다. “누우실게요”는 내가 눕겠다는 의지와 상대를 높이는 말이 결합한 희한한 표현이다. “다리를 펴고 누우실게요”는 “다리를 펴고 누우세요”, “허리를 드실게요”는 “허리를 드세요”, “이쪽으로 돌리실게요”는 “이쪽으로 돌리세요”라고 해야 한다. 무턱대고 ‘시’를 붙인다고 상대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말은 병원뿐 아니라 매장 등 요즘 손님을 대하는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공손한 표현이라 생각하고 직원들을 교육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잘못된 높임말엔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누우실게요”→“누우세요” 처럼 ‘-실게요’를 ‘-세요’로 바꾸면 대부분 해결된다.우리말 바루기 존칭 병원 직원들 기형적 표현
2025.11.04. 19:27
휴대전화를 통해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사용하게 되면서 빠르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축약된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를 ‘감사’로 줄이는 것을 넘어 ‘ㄱㅅ’으로 표현하기도 할 정도로 속도가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문장부호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처럼 써야 할 말줄임표를 ‘…’도 아닌 ‘..’처럼 쓰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문장부호에도 맞춤법이 존재한다. 말줄임표는 여섯 개의 중점으로 이뤄진 문장부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실제 언어생활에서 세 개의 중점(…)이 많이 쓰이고 있음을 인정해 맞춤법을 개정했다. 이뿐 아니라 가운데 찍었던 것을 ‘......’처럼 아래에 찍는 것도 바른 표기로 허용했다. 따라서 지금은 ‘……’ ‘…’ ‘......’ ‘...’ 모두 바른 표현이므로, 이 중 아무거나 써도 된다. 하지만 ‘..’처럼 마침표 두 개만 쓰는 것은 바른 표현이 아니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낫표(「 」)와 화살괄호(〈 〉)도 지금은 잘 쓰이지 않아 따옴표(‘ ’)로 대체해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므로 「노벨상 수상집」은 ‘노벨상 수상집’,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국어대사전’ 등과 같이 쓰면 된다. 공통 성분을 하나로 묶을 때 쓰는 가운뎃점도 ‘한·미·일’ 대신 ‘한, 미, 일’처럼 쉼표를 찍어도 된다. ‘10·9 한글날’처럼 특정한 날을 표시할 땐 숫자 사이에 중점을 찍어야 했으나 ‘10.9 한글날’과 같이 마침표를 찍어도 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우리말 바루기 문장부호 노벨상 수상집 공통 성분 숫자 사이
2025.11.02. 17:30
가로수 수난 시대다.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에 가지를 싹둑 자르고, 거리를 정비한다며 함부로 베어 버리기 일쑤다. 가로수 수난사 못지않게 ‘싹둑’이란 단어도 멋대로 표기될 때가 많다. “아파트 공사장 주변 아름드리 가로수 수백 그루가 하루아침에 싹뚝 베어져 밑동만 남았다”와 같은 사례를 자주 접한다. ‘싹뚝’이란 말은 없다. 발음은 [싹뚝]이지만 ‘싹둑’으로 써야 한다. ‘싹둑’처럼 한 단어 안에서 된소리로 발음될 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도 되는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답은 한글맞춤법 제5항에 나온다. 한 단어 안에서 뚜렷한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다음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고 규정돼 있다. ‘가끔, 거꾸로’처럼 앞말에 받침이 없는 두 모음 사이에서 나는 된소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ㄴ, ㄹ, ㅁ, ㅇ’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도 마찬가지다. ‘잔뜩, 털썩 듬뿍, 몽땅’ 등과 같이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외도 있다. ‘ㄱ, ㅂ’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는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경우가 아니면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 깍두기[깍뚜기], 시끌벅적[시끌벅쩍], 덥석[덥썩], 법석[법썩]이 올바른 표기와 발음이다. 5항에서 ‘한 단어’란 한 형태소로 이뤄진 단어를 뜻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복합어 눈곱[눈꼽]과 같은 표기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눈’과 ‘곱’이란 각 형태소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탯줄이 떨어지며 생긴 자리인 ‘배꼽’과 다르다. ‘배+곱’으로 분석되는 말이 아니므로 5항에 따라 소리대로 적는다.우리말 바루기 규정 가로수 수난사 아름드리 가로수 아파트 공사장
2025.10.30. 18:44
한국에서 단풍이 절정이다. 지난 주말 전국 유명 산에는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 하나.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와 “단풍이 곱게 들었다” 어느 것이 나은 표현일까? 아마도 앞쪽을 선택한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단풍이 들었다’고 하는 것보다 ‘단풍이 물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욱 구체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풍이 곱게 들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는 ‘단풍’의 의미 때문이다. ‘단풍(丹楓)’은 기후 변화로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즉 잎이 붉은 색깔로 물든 것이 ‘단풍’이다. 따라서 ‘단풍’은 ‘물들다’보다 ‘들다’와 결합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단풍이 한창 들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등처럼 표현하는 것이 좋다. 굳이 ‘물들었다’를 사용하고 싶으면 “잎이 곱게 물들었다”고 하면 된다. 이처럼 단어도 사람과 같이 저마다 타고난 속성이 있어 서로 잘 어울리는 짝이 있다. 앞말의 특성 때문에 뒷말의 선택에 제약이 온다고 해서 이런 것을 ‘의미상 선택 제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 하나. 지금은 단풍이 한창이지만 곧 있으면 단풍 든 잎이 떨어지게 된다. 이럴 땐 “낙엽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낙엽이 진다”고 해야 할까? 정답은 ‘진다’이다. ‘낙엽(落葉)’은 한자어로 나뭇잎이 떨어짐 또는 떨어진 나뭇잎을 뜻한다. 단어 자체에 ‘떨어지다(落)’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낙엽이 떨어진다’고 하면 앞뒤로 의미가 중복된다. 따라서 “낙엽이 진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금수강산 단풍 의미상 선택 기후 변화 문제 하나
2025.10.28. 20:32
신문 기사를 보면 대기업·공기업 등 상위 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 소식이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산업재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면서 늘 드는 생각이 ‘하청업체’라는 용어 좀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청업체’란 이름 자체에서 갑을 관계가 느껴지고 이는 실제 힘의 논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청업체’는 공식 명칭은 아니다. ‘하청’이란 옛 민법상의 규정인데 이것이 일상용어로 아직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론 갑과 을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을의 입장에 있는 회사를 ‘하청업체’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포괄적으로 갑을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하청(下請)’은 일본식 한자어로 알려져 있다. 국립국어원은 ‘하청’의 순화어로 ‘하도급’을 선정한 바 있다. 법제처도 ‘하청’을 일본식 용어 일괄정비 대상에 포함해 ‘하도급’으로 고치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하도급’이란 용어 역시 상하 위치가 느껴지는 한자어라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청업체’ 대신 ‘협력업체’가 좋은 대안이 아닐까 싶다. ‘협력업체’는 법률적으론 대기업 일을 위탁받아 하는 회사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협력업체’란 말에는 공생 관계, 즉 상호 윈윈하는 뜻이 포함돼 있다. 갑을 관계에 있는 회사를 포괄적으로 ‘협력업체’라 부르면 좋을 듯하다. 용어를 바꾼다고 해서 바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말은 곧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 했듯이 용어는 인식을 바꾸어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하청업체 협력업체 하청업체 근로자들 갑을 관계 용어 일괄정비
2025.10.23. 19:25
긴 명절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여유롭게 방문해 일가친척들의 얼굴을 두루두루 만나고 왔다는 이가 많다. “연휴가 길어 고향에서 부모님뿐 아니라 오랫동안 만나뵙지 못했던 친척 어르신들을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여쭙고 왔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해 부모님과 함께 친척 어르신 댁을 돌며 인사를 여쭈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데 웃어른에게 말씀을 올리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처럼 ‘여쭙다’라고 하기도 하고, ‘여쭈다’라고 하는 이도 있다. 어떻게 써야 바른 표현일까. 둘 중 하나는 틀린 표현 같지만 둘 다 바른 표현이므로 고민하지 말고 아무거나 써도 된다. ‘여쭙다’와 ‘여쭈다’는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 복수 표준어로, 이는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표준어 사정 원칙 제26항)에 따른 것이다. ‘여쭙다’와 ‘여쭈다’는 상대를 높이는 존댓말이므로 높임법에 주의해 써야 한다. “나는 매일 부모님께 아침 문안을 여쭙는다”고 쓸 수는 있어도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매일 아침 문안을 여쭙는다”고 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사용할 수는 있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여쭈다’는 ‘여쭈고·여쭈어·여쭈니·여쭈는·여쭈었다’로 규칙 활용을 하지만, ‘여쭙다’는 ‘여쭙고·여쭈워·여쭈우니·여쭙는·여쭈웠다’로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표기에도 유의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표준어 규정 표준어 사정 복수 표준어
2025.10.21. 18:40
‘양해각서 체결’이란 표현에 대해 두 가지 유감이 있다. 하나는 ‘양해각서’, 즉 ‘문서’를 ‘체결’한다는 표현이 주는 어색함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양해각서’를 줄여 ‘MOU’라고 적는 데 대한 것이다. 어느 날 경제부 선배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표현을 ‘교환했다’로 수정해 달라고 했다. ‘체결하다’는 계약이나 조약을 공식적으로 맺는다는 말이다. “항공협정을 체결했다”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매매계약을 체결했다”처럼 약속을 뜻하는 말과 어울린다. ‘양해각서’는 국가 간에 합의한 내용을 확인해 기록하는 문서일 때도, 민간 기업 사이에 본계약 체결 전에 서로 양해된 사항을 기록하는 문서일 때도 있다. ‘각서를 썼다’ ‘각서에 서명했다’고 하듯 ‘양해각서’ 뒤에도 ‘쓰다’ ‘서명하다’가 와야 자연스럽다. 서명한 뒤 주고받는 행사를 했다면 ‘교환했다’고 해야 자연스럽게 통한다. 하지만 ‘양해각서’를 ‘협약’ 정도로 넘기고 ‘체결하다’로 받는 문장이 흔하다. 지난달 22일 한국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인공지능산업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때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 언론 매체가 대부분이었다. ‘교환했다’는 극히 일부였다. 지난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왔을 때도 거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였다. 이어지는 문장들에서 ‘양해각서’는 다른 문자, 다른 말로 나타난다. 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의 약칭이다. 한 글자 줄였는데, 어떤 경제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어려울 수 있다. ‘양해각서’로 이어 가는 게 독자들은 더 낫다.우리말 바루기 양해각서 체결 양해각서 체결 표현 유감 본계약 체결
2025.10.19. 18:49
생선회를 가리켜 ‘사시미’라 부르는 사람이 꽤 있다. ‘사시미(さしみ, 刺身)’는 생선회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횟집에 가면 이왕이면 밑반찬이 많이 나오는 집이 좋다. 이때 밑반찬을 ‘쓰키다시’라 부르는 사람도 많다. ‘쓰키다시(つきだし)’는 일본 요리에서 본요리 전에 나오는 일종의 전채를 가리키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곁들이 안주’로 바꿔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횟집에는 ‘스시’도 있다. ‘스시(すし)’는 소금·식초 등으로 간을 한 밥 위에 얇게 저민 생선·김·달걀 등을 얹거나 말아 만드는 일본 요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상황에 따라 ‘초밥’이나 ‘생선초밥’ 등으로 부르면 된다. 생선회를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게 ‘와사비’다. ‘와사비(わさび)’는 매운맛을 내는 일본의 대표적 향신료다. 국어원은 우리말 대체어로 ‘고추냉이’를 선정했다. 생선회를 먹은 다음에는 탕으로 마무리하는 게 깔끔하다. 이럴 때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지리탕’을 시킨다. 여기에서 ‘지리(ちり)’는 생선·두부·채소 등을 냄비에 넣어 맑게 끓인 국을 지칭하는 일본어다. 국어원이 제시한 순화어는 ‘맑은탕’ ‘싱건탕’이다. 이 외에도 음식과 관련해 쓰이는 일본어나 일본식 표현이 적지 않다. 사라다(→샐러드), 락교(→염교), 아나고(→붕장어), 마구로(→다랑어), 소바(→메밀국수), 샤브샤브(→전골), 다시(→맛국물), 사라(→접시), 다대기(→다진 양념), 다마네기(→양파), 오뎅(→어묵), 와리바시(→나무젓가락) 등이 있다.우리말 바루기 일본 음식 우리말 대체어 곁들이 안주 이때 밑반찬
2025.10.16. 18:47
동물의 눈에 비친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은 암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탐색한다. 소설의 화자처럼 고양이의 암컷은 ‘암고양이’라고 부른다. ‘암-’은 성의 구별이 있는 동식물을 나타내는 명사 앞에 붙어 ‘새끼를 배거나 열매를 맺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새끼를 배지 않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의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로는 ‘수-’를 붙인다. 고양이의 수컷은 ‘수고양이’라고 한다. 암고양이, 수고양이를 ‘암코양이, 수코양이’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암캐, 수캐’로 인한 혼란이다. 표준어 규정 7항엔 ‘암-’과 ‘수-’가 기본 표준말임을 밝히고 있으나 9개 단어는 예외로 뒀다. ‘수캉아지, 수캐, 수컷, 수키와, 수탉, 수탕나귀, 수톨쩌귀, 수퇘지, 수평아리’는 ‘수-’ 다음의 첫소리를 거센소리로 적고 읽는다. ‘암-’과 결합할 때도 마찬가지다. 본래 ‘암-’과 ‘수-’는 ㅎ을 맨 마지막 음으로 지닌 말(암ㅎ, 수ㅎ)이었다. 오늘날엔 ㅎ 소리가 떨어진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으나 이들 단어에만 예전 흔적인 ㅎ 소리가 덧나는 것을 인정했다. 접두사 ‘수-’에 ㅅ 받침을 붙일 때도 있다. 예외적으로 ‘양, 염소, 쥐’와 결합할 때는 발음상 ㄴ 첨가가 일어나거나 뒤의 예사소리가 된소리가 되며 사이시옷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보고 ‘숫-’으로 적는다. 발음이 [순냥], [순념소], [숟쮜]로 나므로 수양, 수염소, 수쥐는 버리고 ‘숫양, 숫염소, 숫쥐’를 표준말로 삼았다. 우리말 바루기 수고양이 수캐 암고양이 수고양이 수캉아지 수캐 암캐 수캐
2025.10.15. 18:56
박스오피스(box office)가 무슨 뜻일까? ‘박스’와 ‘오피스’를 각각 해석하면 박스와 사무실이 된다. 그래서 골판지 침대나 골판지 칸막이처럼 골판지 박스로 꾸민 사무실이 아닐까 짐작해 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박스오피스’는 원래 극장의 매표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 산업 초창기엔 박스처럼 생긴 매표소에서 표를 팔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박스오피스’는 차츰 의미가 확대돼 영화별 입장 관객 수나 매표액 또는 영화 한 편이 벌어들이는 흥행 수입 등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등처럼 사용된다. 연극이나 공연 등에서도 이 용어가 쓰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라면 몰라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에서 굳이 ‘박스오피스’란 말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제화 시대에 외래어 사용을 무턱대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말로 표현이 가능한 것이므로 가급적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립국어원은 ‘흥행수입’으로 바꿔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관객수’ ‘입장객수’ 등으로 불러도 괜찮을 듯하다. 영화와 관련해서는 이 외에도 외래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스크린쿼터(screen quota)’가 있다. 자국 영화를 보호·육성하기 위해 일정 기준 이상 자국 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국어원은 대체어로 ‘상영 시간 할당제’를 제시하고 있다. ‘로드무비(road movie)’와 ‘컬트무비(cult movie)’도 종종 듣는 말이다. 각각 ‘여정영화’ ‘소수취향 영화’로 바꾸어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박스오피스 주말 박스오피스 골판지 박스 영화별 입장
2025.10.14. 20:23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일회용 플라스틱이나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 커피 전문점에 보온병을 들고 오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보온병에는 냉커피를 담기도 하는 등 찬 것을 담아 보관하는 용도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보냉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냉병’ 대신 ‘보랭병’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냉’이냐 ‘랭’이냐의 차이인데 여기에서 두음법칙을 떠올렸다면 우리말 바루기의 애독자라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 한글 맞춤법에는 본음이 ‘라, 래, 로, 뢰, 루, 르’인 한자가 단어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법칙에 따라 ‘나, 내, 노, 뇌, 누, 느’로 적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단어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는 본음을 살려 적어야 한다. ‘保冷’은 ‘보호할 보(保)’ 자와 ‘찰 랭(冷)’ 자로 이뤄진 낱말이다. ‘冷’이 단어 첫머리가 아니라 ‘保’ 다음에 오기 때문에 본음을 살려 ‘랭’으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보냉병’이 아닌 ‘보랭병’이 바른 표현이다. 저위도에 위치하며 표고가 600m 이상으로 높고 차가운 곳을 의미하는 ‘高冷地’를 읽어 보자. 이 역시 단어 첫머리가 아닌 중간에 ‘冷’이 오므로 ‘고냉지’가 아니라 ‘고랭지’라 표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冷冷하다’는 어떻게 써야 할까. 단어 첫머리에 오는 ‘冷’은 두음법칙을 적용해 ‘냉’으로, 이어서 오는 ‘冷’은 본음을 살려 ‘랭’으로 적으면 된다. 즉 ‘냉냉하다’나 ‘랭랭하다’가 아닌 ‘냉랭하다’로 표기해야 한다. 보온·보랭병의 일종이라 볼 수 있는 소위 ‘텀블러’도 많이 사용하는데 국립국어원은 대체어로 ‘통컵’을 선정한 바 있다.우리말 바루기 보냉병 단어 첫머리가 일회용 플라스틱
2025.10.12. 19:10
추석에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여름내 무성해진 잡초를 베고 성묘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이를 따르기란 쉽지 않다. “선산에 계신 아버님 묘자리를 정리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벌초하지 못한 묫자리를 생각하면 돌아가신 부모님께 죄를 짓는 것 같다” 등과 같은 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와 있다. 여기에 나오는 ‘묘자리’와 ‘묫자리’는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어느 게 맞는 표현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글맞춤법 가운데 사이시옷 규정을 알아야 한다. 맞춤법에 따르면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 또는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된소리로 나는 경우 사이시옷을 넣어야 한다. ‘묫자리’는 한자어 ‘묘(墓)’와 순우리말 ‘자리’가 만나 이루어진 합성어로 [묘짜리]로 발음된다. 즉 앞말인 ‘묘’가 모음 ‘ㅛ’로 끝나면서 뒷말이 된소리인 [짜]로 발음되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붙여 ‘묫자리’로 표기해야 한다. ‘묫자리’가 아닌 ‘묏자리’로 쓰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의 무덤을 가리키는 ‘묘(墓)’의 순우리말은 ‘뫼’이다. 이 ‘뫼’와 ‘자리’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가 ‘묏자리’다. 과거에는 ‘묏자리’만 표준어로 인정했기 때문에 ‘묫자리’는 틀린 말로 간주됐다. 그러나 2011년 맞춤법이 개정되면서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묫자리’도 복수표준어로 인정받았다. 따라서 지금은 ‘묫자리’와 ‘묏자리’ 모두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묘자리 아버님 묘자리 한글맞춤법 가운데
2025.10.07. 18:30
손가락에 가벼운 상처를 입어 연고를 발랐다. 겉에 적힌 설명서를 보니 “1일 1~2회 적당량 환부에 도포”라고 돼 있다. ‘환부’는 알겠는데 ‘도포’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의약품에는 “경구 투여 금지”라는 표기가 있는 것도 있다. ‘경구’가 무슨 뜻인지 전혀 와닿지 않는다. 진통제 등 알약에는 ‘서방정’이라 표기된 것도 볼 수 있다.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다. ‘도포(塗布)’는 약 등을 겉에 바르는 것을 뜻하는 한자어다. ‘경구(經口)’는 약이나 세균 등이 입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서방정(徐放錠)’은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는 알약이란 뜻이다. 영어의 ER(extended release)에 해당하는 내용을 번역하면서 일본에서 만든 말이 ‘서방정’이라고 한다. 약품에는 ‘성상’이란 표기도 보인다. ‘성상(性狀)’이란 사물의 성질과 형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성상은 흰색 장방형’이라고 돼 있는 것은 모양이 흰색 직사각형이란 의미다. 연고제엔 ‘소양증’이라 표기된 것도 있다. 가려운 증상을 뜻하는 한자어다. 어느 나라나 의학용어는 어렵다. 우리 의학계와 국립국어원이 어려운 용어를 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의학용어의 특성상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용어들은 의학이나 의약 전문가들만이 사용하는 낱말이 아니다. 일반인이 약품을 사용할 때 종종 접하는 용어이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 우리말 바루기 도포 경구 투여 흰색 장방형 적당량 환부
2025.10.02. 18:45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은 그 시절 얘기를 자주 한다. 특히 남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선 더욱 그렇다. 그중엔 고생담이 대부분인데 그때마다 등장하는 이가 바로 ‘고참’이다. 군의 특성상 하늘 같은 고참으로 인해 겪은 고생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고참’은 사회에서도 두루 쓰이는 말이지만 일본식 한자어(古參, こさん)란 것이 일반적 견해다. ‘선임자’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이다. 군대에 갔을 때 훈련소에서 주말에 ‘미싱하우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한 적이 있다. ‘미싱하우스’는 ‘물청소’를 뜻하는 일본어 ‘미즈나오시(みずなおし, 水直し)’에서 왔다는 것이 대체적 의견이다. 이처럼 군대 용어에는 일본식 한자어가 적지 않다. ‘총기 수입’이란 용어도 있다.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외국에서 총기를 들여오는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총기 분해 청소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서 ‘수입(手入)’은 ‘고치다, 손질하다’를 뜻하는 일본어 ‘데이레(手入れ, ていれ)’의 한자 표기를 우리식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요즘은 ‘총기 손질’이란 말로 바꿔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기합(→벌주기), 구보(→달리기), 내무반(→생활관), 도수체조(→맨손체조), 사역(→잡무), 반합(→도시락), 단까(→들것), 관물대(→사물함), 불침번(→야간경계병), 모포(→담요), 화이바 (→헬멧), 불출(→지급) 등도 일본식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군대 내 일본식 용어는 일제 강점기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식 표현으로 바꿔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일본 군대 군대 용어 군대 경험 총기 수입
2025.09.30. 18:45
미국에 온 손흥민이 펄펄 난다. 지난 7일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더니 10일 열린 멕시코전에서도 골을 이어 갔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로 복귀한 14일에는 경기 시작 1분도 안 돼 골을 넣었다. 18일 경기에선 3골,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불꽃 같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유니폼 판매량은 상상을 넘어섰고, 경기의 티켓 가격은 크게 치솟았다. 언론 매체들은 ‘손흥민 열풍’을 ‘급등, 급증, 폭등, 폭증’ 같은 말들로 뜨겁게 전한다. 뜨겁게 전해지는 말들이 오락가락이다. ‘등’이어야 하는데 ‘증’이 되고, ‘증’이어야 하는데 ‘등’이 된다. ‘급등’은 ‘오르다’는 뜻이다. 갑자기 물가나 시세가 오른다는 말이다. “주가 급등” “아파트값 급등”처럼 ‘가격’ ‘값’ 같은 말과 이어져야 어색하지 않고 뜻이 잘 통한다. “유니폼 판매량이 급등했다” “티켓 수요가 급등했다”에서 ‘급등’은 ‘급증’이어야 했다. ‘판매량’도, ‘수요’도 많아지는 것이지 오르는 게 아니니까. ‘급증’은 ‘늘어나다’는 뜻이다. 갑작스럽게 수량이 늘어나는 걸 말한다. “수출 급증” “재산 급증”과 같이 ‘양’을 뜻하는 말과 어울린다. 시청률은 오르는 것이니 “시청률이 손흥민 효과로 급증하고 있다”에서 ‘급증’은 ‘급등’이어야 했다. “티켓 가격 급증”도 ‘급등’이라야 한다. ‘폭등’은 갑자기 크게 물건 값이 오르는 것을, ‘폭증’은 갑자기 큰 폭으로 양이나 수치가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우리말 바루기 급등 급증 급등 급증 아파트값 급등 주가 급등
2025.09.28. 18:00
규제와 관련해 자주 듣는 말이 ‘포지티브 규제’와 ‘네거티브 규제’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영어로 포지티브(positive)는 긍정적, 네거티브(negative)는 부정적이란 뜻이다. 따라서 언뜻 봐서는 ‘포지티브 규제’가 더 나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률 등에서 최소한으로 허용하는 것 외엔 모두 금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네거티브 규제’는 이와 반대로 안 되는 것만 최소로 정하고 그 외엔 모두 허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기업으로선 ‘네거티브 규제’가 훨씬 좋은 것이다. 이처럼 두 용어는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거나 헷갈릴 염려가 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최근 ‘포지티브 규제’를 대체할 우리말로 ‘최소 허용 규제’를 선정했다. ‘네거티브 규제’에 대해선 ‘최소 규제’로 대체어를 정한 바 있다. 규제와 관련해선 ‘규제 샌드박스’란 용어도 많이 쓰인다. 여기에서 ‘샌드박스(sandbox)’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래 놀이터 같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즉 ‘규제 샌드박스’는 모래 놀이터처럼 규제가 없는 환경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신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사업이나 서비스가 나오면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립국어원은 이에 대한 대체어로 ‘규제 유예(제도)’를 선정했다. 공공용어는 쉬울수록 정책 효과가 올라가게 마련이다.우리말 바루기 포지티브 규제 포지티브 규제 네거티브 규제 규제 샌드박스
2025.09.25. 18:28
고등학교 가운데는 남자 또는 여자만 다니는 학교가 있다. 물론 남녀공학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만 다니는 학교에 '○○남자고등학교'처럼 '남자'나 '남'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거의 없다. 간혹 '남'이 붙은 곳이 있긴 하나 이는 남자를 뜻하는 '남(男)'이 아니라 남쪽을 뜻하는 '남(南)'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여자고등학교'는 많다.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는 대부분 이렇게 '여자'라는 이름을 붙여 여성만 다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다. 줄여 '○○여고'라 부르기도 한다. 학교 이름만 이런 것이 아니다. 여의사.여배우.여교사.여직원.여대생 등 직업을 나타내는 말 앞에도 '여'자를 넣어 여성임을 밝히는 경우가 흔하다. 여성과학자.여성산악인.여성대변인.여성운전자 등 '여성'이 들어간 말도 적지 않다.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이처럼 여자에게만 굳이 '여'나 '여자' '여성' 등을 붙이는 것은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남의사' '남배우' '남과학자' 등의 말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것이 차별적 용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과거부터 쓰이고 있는 '여류소설가' '여류화가' '여류작가' 등 '여류(女流)'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국립국어원뿐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단체들도 이들 단어가 차별적 용어라 밝히고 있다. 요즘은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에도 '여자'라는 말을 빼고 그냥 '○○고등학교'라 이름 붙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굳이 성별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여'나 '여자' '여성' 등을 붙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녀 모두 '의사' '배우' '직원' 등으로 동일하게 부르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여자 여성 학교 이름 고등학교 가운데
2025.09.23. 18:16
비가 그친 뒤 잠시 눈부신 해가 비친다면 이를 ‘햇볕’이라 해야 할까, ‘햇빛’이라 해야 할까?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을 뜻한다. 태양의 열(熱)과 관련된 것으로, 살갗을 통해 뜨거움 또는 자극의 정도를 느낄 수 있다. 피부를 햇볕에 오래 노출하면 피부가 상하거나 벗겨지기도 한다. “낮에는 햇볕이 뜨거워 아직도 외출할 때 조심해야 한다” “햇볕에 피부를 그을렸다” 등처럼 쓸 수 있다. ‘햇빛’은 해에서 나오는 빛을 뜻한다. 태양의 광(光)선과 관련된 것으로, 시신경을 자극해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전자기파다. 이로 인해 ‘밝음’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한낮의 햇빛을 가리기 위해 집 안 곳곳에 커튼을 쳐 놓았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비가 그친 뒤 잠시 눈부신 해가 비친다면 이는 태양의 광선과 관련된 것이므로 ‘햇볕’이 아니라 ‘햇빛’이 적절한 표현이다. 즉 ‘눈부신 햇볕’이 아니라 ‘눈부신 햇빛’이 더욱 어울리는 표현이다. 문제 하나 더. “○○이 강하게 내리쬐는 바닷가에서는 선크림을 바르고 긴팔 옷을 입는 등 화상에 주의해야 한다”에서 ○○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햇볕’과 ‘햇빛’ 가운데 어느 것일까? 여기에서는 명암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뜨거움으로 인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이므로 ‘햇볕’을 써야 바르다. 눈이 부신 건 ‘햇빛’, 뜨거운 건 ‘햇볕’이라고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햇빛 햇볕 문제 하나
2025.09.18. 18:28
분명 화낼 사람은 따로 있는데 오히려 잘못한 당사자가 펄쩍 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닥친다면 “잘못은 네가 해 놓고 되레 나한테 화를 내면 어떡해!” “잘못한 놈이 외려 큰소리야!” 등과 같이 말하게 된다. 이처럼 예상·기대와는 다르게 되는 경우 ‘되레’나 ‘외려’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도와주려고 한 일이 되려 폐만 끼쳤다” “자기가 잘못하고선 외레 큰소리친다” 등처럼 ‘되레’ 대신 ‘되려’, ‘외려’ 대신 ‘외레’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각각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우선 ‘되레’는 ‘도리어’의 준말이다. ‘도리어’가 줄어들면 ‘되려’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되레’가 맞는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되려’보다 ‘되레’가 많이 쓰인다는 판단 아래 ‘되레’가 표준어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려’도 ‘외레’가 맞는 말일까? 이 경우에는 반대다. ‘오히려’의 준말로 ‘외레’가 쓰이기도 하지만 ‘외려’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비슷한 경우이지만 모양이 다른 ‘되레’와 ‘외려’가 각각 표준어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선 같은 구조의 ‘되레’와 ‘외레’, ‘되려’와 ‘외려’로 짝을 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헷갈릴 수밖에 없다. 즉 ‘되레’가 바른 표현이기 때문에 ‘외려’ 역시 ‘외레’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또 ‘외려’가 바른 표현이란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되려’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기 십상이다. ‘도리어’의 ‘어’와 ‘오히려’의 ‘려’가 준말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기억하면 ‘되레’와 ‘외려’로 바르게 쓰는 데 도움이 된다.우리말 바루기
2025.09.16. 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