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해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4시 27분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다고 발표한 이후 5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계엄 사태와 관련한 공식 입장 역시 없다. 비상계엄 해제 이후 알려진 윤 대통령의 행적은 전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등 당정 고위급 인사를 만난 것이 유일하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전날 오후 11시 또는 이날 오전 중 대국민 담화를 할 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담화 개최 여부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자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언론에 "오늘 담화는 없다"고 공지했다. 윤 대통령은 당초 이날 직접 대국민 담화에 나서 국민 불안을 초래한 데 대해 사과하고, 계엄선포의 배경과 정당성을 피력하려 했으나, 오는 7일 국회 탄핵안 표결 전에 자칫 여론의 역풍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대통령실 및 여당 내부의 만류로 담화는 보류된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이후 직접 입장을 밝히진 않고 있으나,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전언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야당의 폭주에 맞서기 위한 경고성 조치'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연이은 정부 관료 탄핵과 입법, 감액 예산안 강행 처리로 국정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으며, 무도한 야당에 경고하기 위한 장치로서 계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와 해제가 헌법의 틀 안에서 이뤄져 위헌•위법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점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회에 군을 투입했으나 경고성 조치였을 뿐, 실제로 계엄 해제 요구를 위한 국회의 의사 진행을 막을 의도는 없었음을 주변에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가 합법적으로 이뤄졌으며 실제 국회 논의를 막을 의도도 없었던 만큼,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법리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대국민 설명에 나설 경우 이 같은 내용을 피력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야당이 발의한 탄핵 소추안 표결을 두고 대국민 담화의 시기를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대통령 침묵 대통령실의 계엄 대통령실과 여권 윤석열 대통령
2024.12.05. 13:09
가정폭력 사건 담당 판사와 생존자들이 피해 사실을 숨기고 침묵하면 더 비극적인 화를 당하게 된다면서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도움을 받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달라스-포트워스 abc 뉴스가 지난 9일 보도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탈출은 쉽지 않다. 가정 폭력 생존자인 안드리아 론자는 “전 남자친구는 창문 블라인드, 막대기, 판자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폭행을 했다. 그는 처음에는 자제력이 있었다. 그러나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그에게서 떠나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그의 강압에 통제돼 용기를 내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달라스 카운티 형사 법원의 셰키타 켈리 판사는 “일반적으로 가정 폭력 피해자들은 최소한 7번 이상의 시도 끝에 가해자로부터 최종적으로 떠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가정폭력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남의 일로 치부해 관여하지 않으면 결국 가정 폭력 가해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된다”고 강조했다. 달라스 카운티내 2곳의 가정 폭력 전문 법원 중 1곳을 주재하는 켈리 판사는 가정폭력을 목격하고도 침묵한 경험이 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이웃에 사는 한 여성이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려 나갔더니 두 아이를 집안으로 밀쳐 들여보낸 후 도망을 갔다. 검은 색 눈을 가진 그 여성은 약 2시간 후에 우리 집을 다시 찾아 딸들을 데려갔다. 당시에 나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켈리 판사는 “나중에 같은 남성이 또 다른 여성을 학대하는 현장을 목격한 후에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함께 현장을 찾았을 때, 피해 여성은 의자에 묶여 있었고 가해 남성은 어린 아들이 보고 있는데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오래전인 1996년의 일이었지만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 피해 여성이 안전하길 희망한다”고 회상했다. 그 사건의 영향으로 켈리 판사는 가정폭력 사건 전담 판사가 됐다. 그녀는 1년에 2,000건 이상의 가정 폭력 사례를 목격한다. 켈리 판사는 “피해 여성들을 가해자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했을 때 그들을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면서, “탈출을 위한 암호어나 안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 기해자는 이미 피해자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안드리아 론자도 안나의 집 쉼터(Anna’s House Shelter) 설립자인 에바 마일스를 만나기 전까지 13년 동안 가해자로부터 수없이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말을 들어왔다. 마일스는 “늦은 밤에 피해자로부터 긴급한 상황이라는 전화가 오면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는 호텔 방을 제공한다. 그 후 론자와 같은 처지를 겪은 생존자와 연결해주는 등 다양한 도움을 준다”고 전했다. 론자는 “나는 많은 불행한 일을 겪었지만 여전히 웃을 수 있다. 더 이상 구속되지 않고 마침내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거꾸로 가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대다수도 내 편이 돼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 나갈 시점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고마울 뿐이다. 새로운 인생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켈리 판사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급증했던 가정 폭력 사건 중 아직도 진행중인 케이스가 적지 않다. 또한 매년 연말연시에는 가정폭력 사건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침묵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손혜성 기자침묵 가정폭력 가정폭력 문제 가정폭력 사건 켈리 판사
2024.11.13. 7:26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인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은 항상 기쁘고 즐겁다. 그러나 성경에서 밝히는 예수님의 탄생 전 상황은 매우 급박하고 위험했으며 잔인했다. 마리아가 잉태하기 여섯 달 전에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는 요한을 낳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게 된다. 노년의 사가랴는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소식을 믿지 못했다. 그리하여 사가랴는 이 때부터 요한이 탄생할 때까지 벙어리로 지내게 된다.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와 조용히 파혼하려고 하였지만 주님의 천사가 말한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만삭의 마리아는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까지 약 144km를 여행하고 나서 한 여관의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출산하고 아기를 말구유에 뉘어 놓았다.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에게 그리스도가 태어난 장소를 알려주지 않고 돌아가자 헤롯 왕은 베들레헴 주변의 두 살 짜리로부터 그 아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예수님의 탄생 전에 벌어진 사건 속에는 긍정적인 침묵이 담겨있다. 사가랴는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정하기 전까지 10개월을 벙어리로 지내며 침묵한다. 사가랴는 침묵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예언의 말씀을 노래하며 메시아인 예수를 통하여 이루실 구원을 예비하는 선지자로서 요한을 축복한다.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침묵하고 같이 살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한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가 탄생한 장소에 대해 침묵하고 돌아갔다. 성서에서 침묵은 부정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를 모두 갖는다. 성서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창조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침묵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말씀이 생명을 의미하는 반면 침묵은 혼란과 어둠, 우상과 죽음으로 묘사된다. 구약에 나오는 스올(sheol)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들이 머무는 침묵의 장소이다. 생명과 말씀이 끊어진 부정적인 침묵의 상태이다. 우상들은 침묵하는 벙어리이다. 우상은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지 못해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불통의 허수아비이다. 평안의 축복을 말하지 못하는 침묵,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지 못하는 침묵, 미움과 증오의 침묵은 자신과 타자를 죽이는 살인의 침묵이 된다. 부정적 침묵은 긍정적 침묵의 전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돈의 무에서 존재의 유를 창조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하는 침묵의 기술이 필요하다.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자신이 생명을 보존하지만 입을 함부로 여는 사람은 자신을 파멸시킨다 (잠 13:3). 현대의 성탄절은 소란스럽고 화려하다. 축하 파티와 공연 및 판촉 행사로 길거리는 인파로 가득차고 가로수는 조명으로 장식되고 가는 곳마다 캐롤이 울려 퍼진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 공간도 빨간 산타 복을 입은 캐릭터와 선물을 가득실은 썰매를 끄는 루돌프 사슴으로 채워진다. 몇몇 교회는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마구간을 형상화 하여 요셉과 마리아, 경배하는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을 꾸며 놓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성탄전야에 있었던 긴박한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부정적인 침묵이다. 현대교회는 이제 심판자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 심판의 때가 언제 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고 하나님은 이에 대해 침묵하신다. 오직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 예수님은 알려주셨다. 자칭 그리스도라 칭하는 여러 이단 교주들은 임의대로 마지막 날을 정하고 사람들을 속여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기도 한다. 반대로 물질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은 마지막이 없는 것처럼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재물을 모은다. 하나님의 침묵은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계시이다. 성탄절 전야를 기다리면서 스스로 침묵의 시간을 갖고 하나님의 침묵에 동참하여 침묵 속에서 공명되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깨닫고 자아를 성찰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면 좋겠다. [email protected] 조철수 / 목사·맥알렌세계선교교회기독교와 사회물리학 성탄 침묵 부정적 침묵 침묵 자신 침묵 밉
2023.12.18. 20:24
웨애앵~ 로봇 청소기가 동그란 몸에 달린 빗자루를 마구 흔들며 내 책상 쪽으로 오고 있다. 에구. 방문을 안 닫았구나. 안방에서 탈출했나보다. 온몸을 신나게 나부대며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다. 요~ 귀여운 것. 톡톡 등을 두드려주며 덥석 안아 들고 도로 안방에 갖다 넣는다. 나랑 교감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알 텐데. 얘도 나를 무척 따르겠지. 아니, 어쩌면 얘는 나를 미워할지도 몰라. 안방에만 가둬놓고 하루도 안 거르고 부려먹는다고. 그래도 말없이 순종만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좌회전하세요”라고 안내를 해 줘도 이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하며 직진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턴하세요. 유턴하세요.” 또 애타게 운전대에 매달리는 목소리. 기다려.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해도 돼. 내 고집에 그 야들한 목소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잠깐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할 수 없다 포기한 듯, “조금만 더 직진하다가 좌회전하세요” 한다. 열 번을 무시해도 스무 번을 무시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얘가 만일 사람이라면 “나, 안 해” 하며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며 웃은 적이 있다. 앙탈을 부릴 만도 하건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Her’가 생각난다.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로봇인 사만다는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못했고 생각도 없다. 아내를 잃고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에 우울하던 테오도르는 그의 질문에 변함없는 톤으로 대답하는 목소리와 그가 조용할 때면 함께 침묵해 주는 그녀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사랑하게 된다. 말이란 것이. 표현을 안 할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누구든지 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친구 중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정 표현을 안 하니 무미건조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십의 대상이 되는 적도 없다. 간혹 어중간한 상황일 때는 어부지리로 좋은 역할이 맡겨지기도 한다. 팬(fan)은 없는 반면 안티(anti)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한국서 온 문학평론가가 세미나를 마친 후 “이상하게 성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더군요. 왜 그렇죠?”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존재감 없이 지내잖아요. 갈등을 만들 계기가 없었어요. 몇 년이 지나 나름대로 문단 활동을 한 지금은 내게도 많은 안티가 생겼다.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말, 말, 말을 할 기회가 많아진 탓이다. 고대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말했다.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말없이 다시 안방에 갇히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서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침묵 미덕 감정 표현 도로 안방 빅데이터 기반
2023.08.22. 21:01
웨애앵~ 로봇 청소기가 동그란 몸에 달린 빗자루를 마구 흔들며 내 책상 쪽으로 오고 있다. 에구. 방문을 안 닫았구나. 안방에서 탈출했나보다. 온몸을 신나게 나부대며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다. 요~ 귀여운 것. 톡톡 등을 두드려주며 덥석 안아 들고 도로 안방에 갖다 넣는다. 나랑 교감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알 텐데. 얘도 나를 무척 따르겠지. 아니, 어쩌면 얘는 나를 미워할지도 몰라. 안방에만 가둬놓고 하루도 안 거르고 부려먹는다고. 그래도 말없이 순종만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좌회전하세요”라고 안내를 해 줘도 이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하며 직진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턴하세요. 유턴하세요.” 또 애타게 운전대에 매달리는 목소리. 기다려.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해도 돼. 내 고집에 그 야들한 목소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잠깐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할 수 없다 포기한 듯, “조금만 더 직진하다가 좌회전하세요” 한다. 열 번을 무시해도 스무 번을 무시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얘가 만일 사람이라면 “나, 안 해” 하며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며 웃은 적이 있다. 앙탈을 부릴 만도 하건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Her’가 생각난다.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로봇인 사만다는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못했고 생각도 없다. 아내를 잃고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에 우울하던 테오도르는 그의 질문에 변함없는 톤으로 대답하는 목소리와 그가 조용할 때면 함께 침묵해 주는 그녀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사랑하게 된다. 말이란 것이. 표현을 안 할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누구든지 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친구 중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정 표현을 안 하니 무미건조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십의 대상이 되는 적도 없다. 간혹 어중간한 상황일 때는 어부지리로 좋은 역할이 맡겨지기도 한다. 팬(fan)은 없는 반면 안티(anti)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한국서 온 문학평론가가 세미나를 마친 후 “이상하게 성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더군요. 왜 그렇죠?”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존재감 없이 지내잖아요. 갈등을 만들 계기가 없었어요. 몇 년이 지나 나름대로 문단 활동을 한 지금은 내게도 많은 안티가 생겼다.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말, 말, 말을 할 기회가 많아진 탓이다. 고대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말했다.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말없이 다시 안방에 갇히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서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침묵 미덕 감정 표현 도로 안방 빅데이터 기반
2023.08.20. 18:00
유난히도 파랗고 밝던 그때의 하늘의 눈과 땅의 눈은 보았을까 흐르는 곳을 숨긴 채 피어오르는 흰 구름은 알고 있었을까 안경 밑으로 눈물 젖은 손수건도 말이 없었다 애써 외면하시던 딸과의 이별 귀여운 외손녀 딸을 앞세운 작별에 당신은 아드님들에 둘러싸여 내게 한마디 말씀도 없었다 그것이 외동딸과의 마지막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계신 듯 아버지가 가신지 강산이 변해도 여러 번 아버지의 사진은 책꽂이에 앉아 날마다 나를 굽어보신다 돌아가시기 직전 편찮으셨던 어머니는 나에게 “나는 딸을 보고 왔지요” 저승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첫마디로 하신다는 말씀 이제사 원망도 그리움으로 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이 지녀야 할 참된 가치를 깨닫기 시작 함인가 세계가 침묵으로 나를 대한다면 나 또한 침묵을 지킬 것이다 백발 아버지의 눈물을 정숙자 / 시인·아스토리아글마당 침묵 눈물 백발 아버지 한마디 말씀 마지막 시간
2023.06.09. 17:47
한 번 꽃을 피워 내고는 침묵에 들었던 호접란 잎사귀만 팔을 벌리고 있더니 꽃망울 벌어진다. 동안거에 든 비구니처럼 좀체 입이 열릴 것 같지 않아 가끔씩 옆구리를 건드리며 너의 봄은 언제냐 묻곤 했었는데 생의 분진을 받아먹으며 내부를 장전했을 꽃대 식솔들처럼 매달린 봉오리들 공손하다. 눈물로 먹는 밥처럼 쓰고도 떫은 시간이 치대며 물러져 저절로 그려낸 지도 꽃이 핀다는 것은 꽃의 내부가 확장되었다는, 침묵이 음을 얻어 춤사위가 되었다는 증거 표류 중이던 한 세계가 일어서려고 부드러운 혀로 깊어진다. 조성자 / 시인·뉴저지글마당 침묵
2023.01.20. 17:59
가끔 영사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글귀는 혼자 서있는 그녀를 더욱 외롭고 안쓰럽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세월이 지나도 선명해지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방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양심을 건드렸던 기억은 대학 1학년 때 여름방학이었다. “시급 5000원이 지급되는 우유 판촉 일인데 하겠냐”는 학과 사무실의 연락을 받았다.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맘 편히 쉴 수 없었던 터라 마다하지 않았다. 옥수동 달동네가 내게 할당된 구역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동네는 개미집처럼 대문 하나인데 문을 열면 방이 희한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그때 만났던 우유 대리점 그 남자, 몸이 성치 않아 보였다. 얼핏 누군가 그에 대해 말해주었다. 데모하다 고문을 받아서 그렇게 됐노라고. 중학교 때 체육 시간이었다. 갑자기 체육선생이 우리 반 아이의 뺨을 갈기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으나 체육선생의 손찌검은 한 두 대로 끝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왜 그렇게 구타를 당해야 했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그 친구가 맞는 동안 나도, 다른 친구도 아무도 체육선생의 폭행을 말리지 못했다. 가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고문을 받아 몸이 망가진 우유 대리점 그 남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체육 시간에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했던 그 친구는 잘살고 있는지. 독재에 저항하던 한 젊은이의 겉모습만 보고 슬금슬금 피했던 내 모습에 그 남자는 얼마나 서글펐을까. 친구가 맞는 걸 보고도 숨을 죽였던 나는 그때 선생의 팔을 붙잡지 못했던 소심함이 지금도 화가 난다. 만약에 또 그런 불의를 보면 용기를 낼 것인가? 쉽지 않은 물음이다. 영사관 앞 그녀의 몸짓은 지난날의 비겁했던 나의 젊은 시절과 함께 독일의 루터교회의 목사였던 마르틴 뉘뮐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를 읊조리게 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가톨릭교도들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가톨릭교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권소희 / 소설가열린 광장 침묵 우유 대리점 옥수동 달동네 체육 시간
2022.12.13. 18:50
“의원 수 확대는 기준과 여론을 더 자세히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존 이 LA시의원(12지구)은 대부분의 시의회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지역구 재조정 기구 창설’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주와 카운티 지역구 재조정처럼 정치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커뮤니티 리더들이 독립적으로 시의 지역구 조정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최근 시의회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원 수 확대’에 대해서는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현재의 15개 지역구는 최근 수십 년 동안 변동이 없이 운영됐으며 ‘이제 늘어난 인구만큼 시민들의 대표 수도 더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상태다. 〈본지 11월 4일 A-1면〉 이 의원은 “연계될 수 있는 많은 조건과 상황을 자세히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의원 수 증가가 가져올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결과에 대해 분석을 거쳐 판단할 사안으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지역구 분할과 시의원 확장에 반대 의사를 밝힌 인사는 캐런 배스 시장 후보가 유일하다. 그는 더 작은 지역구를 추구하는 것이 맞지만 충분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한편 이 의원의 지역구는 그라나다 힐스, 노스리지, 리시다 등을 포함한 LA 북부 지역이다. 그는 2019년 특별 선거를 통해 시의회 입성했으며 2024년 재선 도전을 앞두고 있다. 최인성 기자조정기구 침묵 의원 조정기구 지역구 재조정 카운티 지역구
2022.11.04. 19:03
지금 기독교계에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예수의 죽음을 묵상하는 고난주간(4월10~16일)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이 시간 침묵을 통해 예수가 겪은 고난을 묵상한다. 묵상은 경건을 수반한다. 기독교인들은 고난주간을 통해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 되새긴다. 고난주간은 암울하지 않다. 고난 뒤에 찾아올 소망을 가슴에 품는다. 예수에게는 고난의 종착이 죽음이 아닌 부활이었다. 기독교에서 고난과 죽음은 부활의 기쁨으로 귀결된다. 교계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고난주간이 끝나면 부활 주일(4월10일)을 맞이한다. 고난주간을 보내는 교계의 풍경을 알아봤다. 십자가 묵상하는 고난주간 일주일 간 금욕, 경건의 시간 각 교회 특별새벽기도회 개최 성금요일엔 이마에 재 바르기도 소셜미디어, TV 시청도 자제 지역사회 위한 봉사활동 참여 기독교의 고난주간은 모순적으로 여겨진다. 십자가는 형벌과 고통이었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십자가를 통해 짊어졌다. 예수는 대속의 운명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피 흘림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했다. 예수는 인간을 위해 왜 십자가를 지었나. 고난주간은 그 지점에서 깊은 묵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예수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부활의 신비로 죽음을 이겼다. 그건 기독교 신앙을 소유한 이들에게는 부활이 소망의 근원이 된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모순의 개념을 통해 예수를 신앙의 본질로 삼는다. 때문에 기독교의 본질을 되새기고 자신의 신앙을 재정립하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고난주간을 동참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우선 대부분의 한인교회는 고난주간을 특별 새벽기도 기간으로 정하고 교인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이 기간 교인들은 경건의 삶을 살며 새벽마다 교회로 나와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한 예로 풀러턴 지역 은혜한인교회의 경우 15일까지 '고난의 유익'이라는 주제로 새벽 부흥회를 진행한다. 이 밖에도 남가주사랑의교회 나성영락교회 ANC온누리교회 에브리데이교회 등도 고난주간을 맞아 특별 새벽기도회를 진행한다. 어바인 지역 베델교회의 경우는 특별하게 고난주간 동안 저녁 집회를 연다. 심지어 '사순절(부활절 40일 전 기간)'부터 전교인을 상대로 금식기도 및 새벽기도를 실시하는 교회들도 있다. 그만큼 예수가 겪은 고난의 시간을 온 마음으로 되새겨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교인들도 가능하면 이 기간을 경건하게 보낸다. 기독교인 최영준(42.LA)씨는 "고난주간에는 퇴근 후 약속을 잡지 않는다. 최대한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새벽기도를 간다"며 "1년 내내 새벽기도를 할 수는 없지만 고난주간만큼은 성경을 묵상하고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겨보려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고난주간 가운데 맞는 금요일(4월15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이한 날이다. 이날 교회들은 '성금요일(Good Friday)' 특별 예배도 진행한다. 이때는 예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거행하는가 하면 회개의 의미를 담아 이마에 십자가 모양의 재를 바르는 의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간 교회들은 예배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나 행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부활절 특별 음악회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 양로원 방문 등을 통해 이웃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시간도 갖는다. 고난주간이 끝나면 부활절(4월17일)이다. 이날 한인 교계에서는 부활절 연합 예배도 열린다.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와 남가주목사회 등은 오는 17일 오전 6시 LA지역 주님의영광교회(담임목사 신승훈)에서 부활절 연합 새벽 예배를 개최한다. 요즘 젊은 세대 기독교인들은 미디어 금식 등을 통해 고난주간을 보내기도 한다. 인터넷 사용을 줄이거나 TV 시청은 물론이고 심지어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사용도 금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끼 금식을 하며 금욕 생활을 한다. 기독교계 유명 문화 선교회인 팻머스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고난주간마다 미디어 회복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팻머스는 '미디어 가려먹기'라는 주제로 젊은 기독교인들의 고난주간 동참을 장려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와 고난에 집중하되 고난주간 기간 동안 비기독교적 문화를 멀리하고 신앙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접하자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 팻머스는 캠페인 웹사이트(http://media.ipatmos.com)를 통해 고난주간 동안 신앙에 도움이 될만한 다양한 기독교적 콘텐츠를 추천해주고 있다. 고난주간은 절기인가, 전통인가 교단마다 신학적으로 견해 달라 모든 교회가 고난주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아니다. 사순절 고난주간 등은 교단 또는 신학자마다 다소 견해가 다르다. 쉽게 말하면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비롯한 크리스마스 등은 단순히 '교회 절기' 정도로 여겨야 한다는 주장과 기독교의 소중한 전통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우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표상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난주간 부활절 등은 신앙의 의미를 묵상하는 기회나 계기로 삼아야지 의무적으로 특정하게 보내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신학적으로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합동신학대학원 이승구 교수는 "사람들은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낸 후 그것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 이를 지켜나가는 방식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며 "종교개혁 시기의 개혁교회와 칼뱅 청교도들은 특별한 절기를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존 최 목사(라이트하우스교회)는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왜곡된 절기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기독교에 가장 본질인 예수의 십자가와 그 의미가 특별한 절기를 통해 행위적인 참여나 교회의 독려가 아니면 그 의미가 부각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 내 최대 교단으로서 미주 지역 한인 목회자들도 다수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는 이미 수년 전부터 '사순절 절기의 비성경적 이유(84회 총회 신학전문 위원회)'를 결의한 바 있다. 반면 기독교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성공회 등은 사순절 등을 특별하게 보낸다. 기본적으로 가톨릭 교회력을 기독교의 전통으로 보기 때문이다. 장열 기자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기독교계 침묵 고난주간 동안 고난주간 가운데 특별 새벽기도회
2022.04.11. 18:58
옛 성현들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들이 태어나 세상사를 습득할 때 그냥 건성으로 듣고 배우지 말고 무엇이든 귀 기울여 집중해서 들어야 깨우친다고 했다. 영어로 말하면 ‘hear’하지 말고 ‘listen’하라는 얘기다. hear와 listen은 우리말로 하면 둘 다 ‘듣는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러나 그 쓰임은 다르다. ‘hear’는 들려오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듣는 걸 의미하지만 ‘listen’은 귀 기울여 집중해서 듣는 걸 의미한다. 즉 경청(傾聽)을 의미한다. 동서양의 고전 설화라 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나 ‘탈무드’ 또는 공맹의 어록에서도 ‘듣는 마음’을 곧 경청이라 했다. 이는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일 뿐만 아니라 사람 됨됨을 상대에게 보이고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의 반대말은 ‘딴청’이라고 하는데 이는 동문서답을 말한다. 즉. 딴청을 부린다는 말이다. 나는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래서는 대화가 안 된다. 물론 소통도 안 된다. 아니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 의미공유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이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한자 풀이로 ‘듣는다’는 의미의 청(聽)은 ‘왕의 귀(耳+王)로 듣고, 열개의 눈(十+目)으로 보고, 하나의 마음(一+心)으로 대하고 듣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왕의 귀로 듣고, 열개의 눈으로 보고, 하나의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미덕이 없어진 것 같다. 가끔 사람을 만나 세상 얘기를 하다 보면, 어떤 대화이건 간에 상대의 말을 전혀 들어보려는 생각도 없이 논리도 안 맞는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경우를 본다. 완전히 딴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 황당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늘 소통이 문제라고 한다. 경청에 대해서는 5가지의 여러 단계들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1단계 무시하기, 2단계 듣는 척하기, 3단계 선택적 듣기, 4단계 귀 기울여 듣기 5단계 자신을 중심에 두고 공감적 경청하기 등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남의 말 듣기는 어디에 속할까. 현인들은 경청을 제대로 하려면 하심(下心)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어찌 되겠는가.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어찌 되겠는가. 세상이 온통 물들어 보일 것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이러한 경청 5단계니 하는 ‘소리의 경청’보다는 우리 모두가 서로 간에 말하지 못하는 ‘침묵의 말’과 억눌러 놓았던 ‘내면의 소리’, 그리고 무심했던 이웃의 ‘신음소리’와 천리(天理)를 이르는 ‘하늘과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댜 한다. 진실을 듣고자 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손용상 / 소설가·한솔문학 대표기고 침묵 소리 경청 5단계 선택적 듣기 한자 풀이로
2021.11.29. 18:54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정구현 / LA 선임기자·부장
2021.10.18. 19:32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라지고, 퇴근길에 증발하고, 친구와 여행간뒤 소식이 끊어지고, 마켓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집에 돌아오지 않은 한인들이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SNS는 잊혀진 사람들을 찾는데 최고의 도구이지만 정작 그들의 사진보다는 무생물들로만 가득하다. 어제 구입한 명품, 방금 뽑은 고급차, 별 다섯 개 레스토랑의 음식, 럭셔리 호텔방, 비싼 휴양지의 절경, 마스크를 쓰네마네, 백신을 맞네안맞네 등 다들 ‘나’를 알리기에 바쁘다. 팔로워수가 많은 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실종자들의 사진을 한번이라도 공유해주길 바란다. 실종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
2021.10.13.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