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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 "우리 목소리 내려면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는 올해, 한인사회는 이민 123주년을 맞이한다. 새로운 한 세기를 바라보는 한인 사회의 관점에서, 한 사람의 개척자적인 삶이 한인 이민 역사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깊은 의미가 있다.   지난해 4월 재외동포청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된 고 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은 한인 공동체의 앞길을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연구자이자 기업가, 그리고 자선사업가였던  그의 삶은 한인 이민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미래를 보여준다.   1934년 서울 태생인 그는 한국전쟁 직후의 어수선한 시기였던 1954년, 꿈꿔왔던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콜로라도 주립대 화학과에 입학했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유학생활은 곧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로 바뀌었다. 그는 목장에서 우유를 짜고 허드렛일로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를 이어갔다.   이후 LA로 옮겨 UCLA 화학과에 편입한 뒤에도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됐지만, 학업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 당시 등록금이 부족해 수강신청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영어 교수가 “이건 당신을 위한 선물”이라며 조건 없이 건넨 200달러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환원의 정신’을 심어준 순간이 됐다. 훗날 그는 이 경험을 “내가 공동체를 돕는 이유”라고 설명하곤 했다.   1959년 한인 최초로 UCLA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페인트 업계에 뛰어들어 연구원으로 일했다. 항공기·자동차 마감재, 철강 코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당시 주류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은 그의 승진을 번번이 가로막았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기회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는 그의 회고는 이민 1세대가 마주했던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다.   결국 그는 쉰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독립을 결심했다. 이때 그를 밀어준 사람은 평생 동반자였던 아내 고 홍영옥(영어명 로리) 여사였다. 1986년 자본금 2만 달러, 폰타나의 한 화학회사 구석의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듀라코트(Dura Coat)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시작은 작았지만, 그의 도전은 거대했다. 원료 시장이 대기업에 장악된 상황에서 그는 남들이 쓰지 않는 원료로 새로운 조성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잠을 줄이며 개발과 영업을 병행한 끝에, 창업 6개월 만에 150만 달러 규모 계약을 따냈고, 5년 만에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친환경·특수 기능 도료를 개발하며 회사는 건축자재, 상용 차량, 전자제품 외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듀라코트는 세계 곳곳으로 제품과 기술을 수출하며 매출 3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듀라코트는 2016년 글로벌 코팅 기업 엑솔타에 매각되며 한인 성공 신화의 전설이 됐다. 이 시점부터 그는 자신이 일군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더욱 집중했다.   그의 인생에서 1992년 발생한 LA폭동은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폭동 이후 상처만 남은 도시에서 그는 한인 사회가 정치·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이때 그는 “한인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품었다. 그는 한인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정치력 신장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한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주류사회에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1년 1000만 달러를 출연해 밝은미래재단(이후 M&L 홍 재단으로 이름 변경)을 설립하며 한인 차세대 교육과 권익 향상에 나섰다. 특히 남가주한국학원이 폐교 위기에 놓였을 때 그는 이사장을 맡아 밤낮없는 모금 활동을 펼쳤고, 본인 기부금 20만 달러를 포함 300만 달러를 마련해 학교 정상화를 이뤘다.      그리고 UCLA에 200만 달러, 라시에라 대학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며 화학·생명과학 분야 후학을 키우는 데도 헌신했다. 탈북민·다문화 가정 청소년 장학 지원, 글로벌한상드림 기부 등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한 지원도 이어졌다.     차세대 한인 정치인 육성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치권에 도전하는 한인 후보들의 ‘숨은 조력자’로 꾸준히 활동했다. 한인 최초로 어바인 시장에 오른 강석희 전 시장을 시작으로, 가주 연방 하원의원 미셸 박 스틸과 영 김, 그리고 LA시 역사상 최초의 한인 시의원인 데이비드 류 전 LA시의원에 이르기까지 홍 이사장은 당적을 가리지 않고 한인 정치인들에게 후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사의 보존 또한 그의 생전 사명을 형성한 중요한 동기였다. UCLA 재학 시절부터 흥사단 활동을 통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접한 그는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국 사람이 존중받는다”는 도산의 정신을 마음에 새겼다.   도산으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신념은 이후 수많은 역사 보존 활동으로 이어졌다. 2001년 그는 60만 달러를 모아 리버사이드 시청 앞에 도산 동상을 건립했고 2002년에는 LA 10번·110번 프리웨이 교차로를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IC’로 명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1909년 미주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대한인국민회관이 철거 위기에 놓였을 때 사재를 먼저 내놓고 복원 기금 70만 달러를 모아 건물을 한국 이민사의 교육 현장으로 되살려냈다.   UC리버사이드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지원, 세계한상대회 리더십, 재외동포교육문화센터 기부 등 그의 발자취는 이민사회 연구와 글로벌 한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한인 사회 기부금은 알려진 것만도 2000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의 공로는 한미 양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2002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1년 국민훈장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가주 의회는 2022년 6월 20일을 ‘홍명기 기념의 날’로 제정하며 한인사회를 위한 그의 기여를 공식적으로 기렸다.   2020년 부인 로리 여사의 타계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줄였던 그는 이후 다시금 한인 사회를 위해 강연과 행사에 나서며 끝까지 헌신을 이어갔다. 그는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광복절 기념행사, 리버사이드 도산 동상 제막 20주년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도산의 정신이 한인 차세대에게 이어지길 바랐다. 2021년 8월 18일, 그는 향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홍명기 이사장은 개척자의 용기, 공동체를 위한 책임, 역사를 잇는 사명감,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한인 이민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의 삶은 미래 한인 사회의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   ☞홍명기 이사장은...     서울 출생, 1954년 미국 유학   1959년 UCLA 화학과 졸업   1986년 ‘듀라코트’ 창업   1000만 달러 출연 밝은미래재단(나중에 M&L 홍 재단으로 변경) 설립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우훈식 기자정치력 목소리 한인 이민사 올해 한인사회 한인 사회

2025.12.3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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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국 250년, 한인 이민 123년…역사를 만든 한인 선구자들

2026년은 미국 건국 250주년이자 미주 한인 이민 123주년이다.   1776년 7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미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룬 끝에 세계의 일극 초강대국이 됐다. 미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의 기록이다. 미국을 구성한 세계 여러 나라 이민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과 후손의 미래를 개척해왔다.   한인 이민사는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가 되기 위해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250년 역사 중 약 절반엔 한인의 지분이 있는 셈이다. 오늘날 한인 이민자들은 당당한 '코리안 아메리칸'이자 미국의 일원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인 개척자들은 과거 미국의 개척자들과는 다른 형태로 미국에 기여하고 있다. 과거 개척 과정에서 비주류가 중심에서 밀려났다면 오늘날의 개척 중 많은 부분은 비주류가 주류로 진출하고 통합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는 병오년이다. 진취적이고 도전 정신이 넘치는 불의 기운을 상징하는 ‘붉은 말의 해’를 맞아 한인 사회를 넘어 미국 역사에 빛나는 한 획을 그은 한인 개척자 11인의 삶을 조명해봤다. 그들의 성취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전인미답의 고지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 결과다. 그들이 보여준 개척 정신은 오늘날, 보다 나은 삶과 미국을 꿈꾸는 한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관련기사 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 "우리 목소리 내려면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김창준 전 하원의원 "경제적 성공 안주 대신 사회 변화의 꿈 실천"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도전과 개척, 앞으로도 계속 될 여정입니다" 새미 리 박사 "한인 정치인 많아져야 한인 사회가 발전" 정원훈 초대 한미은행장 “은행도 사회적 책무, 고객에 돌려줄 줄 알아야” 권일연 H마트 회장 “한국의 맛으로 한인 이민사의 지평 넓힐 것” 김영옥 대령 "나는 100% 한국인이자 동시에 100% 미국인" 도산 안창호 선생 "오렌지 하나를 정성스럽게 따는 것도 애국" 박희민 목사 "교회가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면 안 됩니다" 민병수 변호사 "권리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 이경원 기자 "한인 사회 주장 확실하게 전할 창구 갖춰야" 임상환 기자미국 한인 한인 이민사 한인 개척자들 한인 선구자들

2025.12.3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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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연 H마트 회장 “한국의 맛으로 한인 이민사의 지평 넓힐 것”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출발했던 한인 이민사는 이제 한인 기업이 미국 유통·서비스 업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단계로 성장했다. 그 변화의 선두에는 미주 최대 아시안 수퍼마켓 체인 H마트를 일궈낸 권일연 회장이 있다.     지난해 11월 LA다운타운 빌트모어 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안 명예의 전당(AHF)’ 헌액식에서 권 회장은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으로 소개됐다. AHF는 “1982년 뉴욕 퀸즈 우드사이드의 작은 한인 식료품점에서 출발해 전국 100여 개 매장을 가진 체인으로 키운 개척자”라고 권 회장을 평가했다.     당시 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 영광은 새벽마다 문을 여는 직원들, H마트를 지켜준 고객 모두의 몫”이라며 “5000년 한국 식문화를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겠다는 초심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밝혔다.     40여 년 전, 외로운 한인 이민자들에게 고향의 맛을 전하겠다며 문을 연 한아름마트 1호점은 이제 ‘아시아 식문화의 허브’로 진화했다.     미국 건국 250주년과 미주 한인 이민 123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 권일연 회장의 발자취는 한 기업인의 성공담을 넘어 이민 1세대 개척 정신의 집약체로 상징된다.     권 회장은 “개척 정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낯선 땅에서 하루를 버티고, 하나의 가게를 지키고, 한 명의 직원을 더 채용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며 “앞으로도 H마트는 더 많은 도시에서 ‘한국의 맛’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1982년 퀸즈 ‘한아름 1호점’   H마트는 1982년 뉴욕 퀸즈 우드사이드에서 시작됐다. 당시 간판에 적힌 이름은 ‘한아름’.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던 시절 권 회장은 한인 동포들에게 우리 음식 문화의 권리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1호점을 열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던 80년대, 한인은 물론 아시안 이민자도 드문 시기였다. 뉴욕타임스는 2021년 ‘H마트의 유혹’이라는 기사에서 “H마트 같은 대형 아시안 마켓이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쇼핑과 식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권 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한아름 1호점은 단순한 수퍼마켓이 아니었다. 말이 통하고, 김치와 쌀냄새가 나는 장소로 외로운 이민자에게 내 편이 있는 곳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한아름은 뉴욕·뉴저지·펜실베이니아·메릴랜드 등 동부 지역으로 점차 확대돼 10여 개 매장으로 늘어났다. 한인 고객 위주의 동네 마켓이었지만 이미 이때부터 권 회장은 전국 체인과 주류시장 진출을 구상하고 있었다.   ▶다문화 유통 플랫폼 선언   전환점은 2005년에 찾아왔다. 한아름은 이 해부터 상호를 ‘H마트’로 바꾸며 본격적으로 다국적 고객을 겨냥한 브랜드 전략에 나섰다. 더 이상 아시아계만을 위한 마켓이 아니라 모든 인종이 찾을 수 있는 글로벌 마켓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와 동시에 자체 상표 전략도 강화했다. '해오름' 브랜드로 만두·장류·국수·곡류·양념류 등 30여 종의 제품을 내놓고 반찬 브랜드 ‘진가’, 김치 브랜드 ‘토바기’, 유기농 식품 브랜드 ‘유기농장’ 등을 선보이며 공급망을 안정화했다. 자체 브랜드 확대는 원가 절감과 품질 관리, 브랜드 충성도 제고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수단이 됐다. 또한 몇 년 전부터 홍콩반점0410, 무봉리순대국, 죠스떡볶이, 공차, 뚜레쥬르 등이 입점한 대형 푸드홀 조성으로 식재료 구매를 넘어 한류·K푸드를 즐기는 문화 공간을 조성했다.     ▶물류·에너지 효율로 비용 절감   H마트의 확장은 ‘감과 의지’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권 회장은 초창기부터 체인이 되려면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본사 중심의 통합 운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각 지역과 점포의 발주, 재고, 프로모션, 물류 동선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재고를 줄이고 신선도를 끌어올렸다. 한 에너지 프로젝트에서는 연간 약 30만 달러에 달하는 전력 비용을 절감하기도 했다. 매장 냉장·냉동 시스템에 고효율 설비를 도입하고, 물류센터의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적용한 결과다. 이런 비용 절감은 곧 가격 경쟁력과 고용 유지, 신규 투자 여력으로 연결됐다.     “대형 체인일수록 적은 마진으로 승부해야 한다. 한 푼 아껴서 고객 가격에, 직원 복지에, 다음 투자에 돌리는 것이 기업을 키우는 길”이라는 게 권 회장의 지론이다.   ▶서·남부까지 ‘아시안 푸드 벨트’     H마트의 지리적 확장은 곧 아시안 커뮤니티의 경제 지도를 다시 그리는 과정이었다.     2000년대 들어 동부에서 입지를 굳힌 H마트는 2006년 시카고·댈러스 진출을 선언하며 중서부·남부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07년에는 남가주 다이아몬드바에 첫 매장을 열며 서부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어바인, 샌디에이고, 노워크, 가든그로브, 부에나파크, LA한인타운 마당몰 등으로 남가주 거점을 넓혔다. 2022년에는 어바인 웨스트파크점, 지난해 2월에는 치노점, 4월에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1호점을 오픈했다.     지난해 8월에는 오렌지카운티 웨스트민스터에 가주 최대 규모인 약 7만2900 스퀘어피트 매장을 열었다. 이 매장은 H마트 85번째 매장이자 가주 19번째 지점으로 한인·베트남·중국·인도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프리미엄 아시안 마켓’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점의 개장은 권 회장의 장남 브라이언 권 총괄사장이 직접 지휘했다.     플로리다에서는 지난해 9월 올랜도에 첫 매장을 열었다. 올랜도점은 축구장 1.3배에 해당하는 약 10만 스퀘어피트 규모로 폐점한 타깃 자리에 들어선 초대형 매장이다. 개장 첫날 수백 명의 고객이 길게 줄을 서며 ‘플로리다 K푸드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텍사스에서도 휴스턴 차이나타운·블라락·케이티 아시안타운 등 3개 매장을 운영 중인 가운데 슈가랜드에 6만4145스퀘어피트 규모의 4호점이 2026년 완공 목표로 공사 중이다.     업계는 H마트가 네바다·유타·플로리다·텍사스 북부 등 신규 시장에 깃발을 꽂으면서‘아시안 푸드 벨트’를 구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 공헌 통한 ‘나눔 경영’   H마트의 성장 이면에는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이 있다. 2006년 설립된 새생명재단은 난치병 환자와 의료비 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돕고 서재필기념재단 장학금, 경로 문화 후원, 한인 유권자센터 지원 등 커뮤니티 기반 사업을 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뉴욕 한인들을 위해 뉴욕한인회에 50만 달러를 쾌척하고, 매칭 기부를 통해 총 73만 달러가 넘는 성금을 모았다. 뉴욕한인회는 이 공로를 인정해 2021년과 2022년 연속으로 권 회장을 ‘올해의 한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같은 해 메릴랜드 엘리컷시티 코리아타운 조성사업에도 5만 달러를 기부하며 “코리아타운은 차세대가 정체성을 확인하는 공간이자,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이민 1세대는 미국 사회로부터 기회를 받았고 이제는 우리가 되돌려줄 차례”라며 “H마트의 나눔 경영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 꿈을 키우는 2세들을 향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       ☞권일연 회장은...   경북 예천 출신, 1980년 미국 이민     1982년 뉴욕 퀸즈에 한아름마트 1호점   2005년 H마트 변경, 다문화 시장 공략     전국 100여개 매장 최대 아시안 마켓   2025년 아시안 명예 전당 헌액 이은영 기자권일연 이민사 한인 이민사 한아름마트 1호점 권일연 회장

2025.12.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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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나’를 지키는 것…올바른 역사 인식이 출발”

한인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화두는 ‘세대 교체’다. 과거 미주 독립운동의 역사와 이민사의 뿌리를 지키는 일, 그리고 차세대가 주류 사회로 진출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일이 동시에 요구된다. 클라라 원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은 ‘역사를 잊으면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강조하고, 로버트 안 LA 한인회 회장은 ‘세대 교체 없이는 단체가 존속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초점은 달라도 두 사람의 메시지는 같다. 바로 “한인 사회의 명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인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   클라라 원 이사장의 당부    정체성은 '나'를 지키는 것…올바른 역사 인식이 출발 이민사 잊혀져 안타까움   교육·소통 프로그램 확대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이 가진 의미는.   “재단은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와 한인 이민사를 발굴·보존하는 기관이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으로 약 8000명이 건너왔고, 일제 강점기에 많은 한인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그중 434명만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나머지는 아직 인정받지 못했지만, 뿌리 없는 삶 속에서 발휘된 애국심은 미주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재단은 이 정신을 계승하며 오늘날 민족 교육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민사와 정체성은 왜 중요한가.   “한인 정체성의 뿌리는 이민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알지 못하면 세대 간 결속이 약해지고 정체성이 흔들린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들은 한국을 멀리 있는 나라로 생각하기 쉽지만, 1세대는 조국을 잃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민을 온 구체적 기억을 갖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세대 간 갈등, 소통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뿌리를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뿌리 교육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뿌리 교육은 가정에서 출발해야 하며, 한국어 교육이 핵심이다. 3세 전후 언어 습득기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동요나 애니메이션 같은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미국 공교육은 한인 정체성을 다루지 않기에, 우리가 직접 이어가야 한다.”   -기념재단에서는 어떻게 교육하나.   “한인 청소년 대상 체험형 교육에 주력한다. ‘도산 스쿨’을 통해 한 달간 독립사와 이민사를 가르치고, 기념재단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또 그림 공모전 등 문화 활동을 통해 참여 기회를 넓힌다. 많은 학생이 이러한 교육을 통해 처음으로 선조의 역사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명맥은 왜 이어져야 하나.   “대한인국민회를 기념하는 곳은 전 세계에 우리 재단 한 곳뿐이다. 대한인국민회는 과거 임시정부 역할을 했던 역사적 공간이자, 한국보훈부가 직접 지원하는 유일한 해외 독립운동 기념 기관이다. 한국 정부 지원금과 이사들의 기금, 수익사업으로 운영되지만,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주인’이라는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다.”   -차세대 리더십 부족 문제는.   “이민사와 독립운동사를 아는 이가 드물어 현재는 올드타이머 세대가 중심이다. 이들은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소중한 존재지만 영어 소통이 약해 차세대와 연결이 끊어지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중 언어 소통이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이 왕성한 40~50대의 참여가 절실하다. 이들의 꾸준한 관여가 있어야 재단이 세대 간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재단은 내년 중 별도 사무국을 마련해 40~50대 한인, 나아가 차세대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기반을 만들 계획이다.”   -차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류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만 한인 정체성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중심을 굳게 지켜야 한다. 동시에 1세대 역시 명예나 직함에 집착하지 말고 공동체 책임자로서 차세대와 연결돼야 한다.”       ━   로버트 안 LA한인회장의 바람   세대교체는 필연적 상황…하지만 함께 달려가는 것   리더십 업그레이드 필요   1세들의 지원·관심 필수   -세대 교체 성공했다고 보나.   “지금은 세대 교체 시작 단계다.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1세대 중심의 깊은 역사와 리더십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현재는 세대 교체의 기초를 닦는 단계이며, 조직 운영 방식, 인프라, 구조를 정비해 앞으로 세대 교체가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세대 교체를 이끌어 가나.   “취임 후 첫 6개월은 한인회에 대해 배우는 데 집중했다. 과거 운영 방식과 역사를 배우고, 개선할 부분을 찾았다. 내부적으로는 운영을 효율화하고, 외부적으로는 한인회가 ‘1세대만의 단체’라는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1세대부터 2세대, 청소년까지 모든 한인을 아우르는 한인회가 되어야 한다.”   -1세대와 차세대가 어떻게 공존하나.   “한인회는 원래부터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단체다. 지금도 이사회 절반이 1세대이고, 나머지가 2세대다. 갑자기 전부 차세대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1세대를 향한 존중의 태도도 아니다. 여전히 기부와 후원 역시 대부분 1세대가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공존은 필수다. 세대 교체는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뛰는 것이다.”   -한인회 유산을 이어갈 계획은.   “리더십 기준을 높여야 한다. 앞으로 회장이 될 사람은 최소한 이중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고, 한인회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심으로 봉사하려는 마음이다. 명예나 인기 때문에 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하고자 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세대 교체는 왜 필요한가.   “1세대는 언젠가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나신다. 다음 세대가 준비되지 않으면 단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차세대 한인의 한인 단체 참여는 부족하다. 많은 인재가 있지만, 한인 사회 활동에는 관심이 적다. 그렇기에 후속 세대를 발굴하고 참여시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차세대의 정체성 문제는.   “일본계 미국인 사례를 보면 세대가 갈수록 단순히 ‘미국인’으로만 정체화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가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하다. 나도 딸에게 한국어를 쓰게 하고, 광복절 등 한국 역사 교육을 하고 있다. 한인회 차원에서는 청소년·청년 한국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미래의 한인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차세대는 영어 소통 능력과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주류 사회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전에는 시장이나 고위 인사와 대화조차 힘들었지만, 이제는 직접 만나 협력할 수 있다. 이런 스킬들을 가지고 차세대는 이전 세대가 닦은 토대를 이어받아 더 발전시켜야 한다.” 김경준 기자정체성 역사 한인 정체성 한인 이민사 la 한인회

2025.09.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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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보며 배우는 LA 한인 이민사…USC 한국학 ‘K-트레일’ 행사

LA에 있는 한인 이민사 관련 유적지들을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선보여 관심을 모은다.     USC 한국학도서관과 한국어 프로그램 교수진(나은주, 김보현, 박서진)은 대학 인근에 있는 한인 이민 유적지를 탐구하는 ‘USC K-트레일: 둘레길 걷기’를 지난 11일 개최했다.     코스는 USC 한국학도서관에서 시작해 ▶안창호 패밀리 하우스 ▶새미 리 박사 다이빙 타워 ▶LA 흥사단 옛 본부 건물(단소) ▶대한인국민회 기념관 ▶도산 안창호 광장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LA 연합 감리교회 옛 터 ▶대한인 동지회 건물 ▶엑스포지션 공원 순으로 진행됐다.     단순히 도보로 이동하며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장소에 담긴 역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특히, 안창호 패밀리 하우스에서는 박선영 USC 한국학연구소장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업적을 비롯해 안필립, 안수산 등 그의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 하우스를 USC 캠퍼스 내로 옮기게 된 계기 등에 대해 설명했다.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에서는 클라라 원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이사장이 대한인국민회의 탄생 배경과 일제강점기 때의 활약상 등을 알렸다.     행사를 기획한 홍정은 한국학도서관 사서는 “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사료와 한인 이민사의 중심지에 위치한 USC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구성한 첫 역사 워킹 투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이 우리의 역사가 담긴 유적지를 알고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에 한국어 프로그램 교수진과 함께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학부생과 석·박사 과정의 USC 학생 20여명이 참여했다. 한인 학생뿐 아니라 타인종 학교 관계자와 학생들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행사에 참석한 안젤라 라오 USC 중국어 프로그램 디렉터는 “워킹 투어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우고 싶었다”며 “LA에는 대규모 한인 사회가 있는 만큼 한인 이민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들 또한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를 넘어 한인 이민 역사를 배우게 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졸업을 앞둔 클라라 우 학생은 “캠퍼스 주변에 한인 이민사 관련 유적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특히 안창호 패밀리 하우스를 지나칠 때마다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알게 됐다”고 말했다.     1학년인 베키 수마퀴알 학생도 한인 이민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됐으며 “정말 흥미로운 행사였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걷기 행사가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한편, 주최 측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 행사를 정례화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준 기자이민사 한인 한인 이민사 대한인국민회 기념관 김경준 미국 캘리포니아 가주 엘에이 로스앤젤레스 LA뉴스 한인 뉴스 미주 한인 LA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2025.04.1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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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앤디 김이 가야할 길

앤디 김(42) 연방 상원의원이 지난 9일 취임했다. 한인 최초의 상원의원 선서식은 120여년 한인 이민사에 큰 획을 긋는 감격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전례없는 첫걸음에 한인들 역시 전례없는 기대를 걸고 있다. 처음이라는 상징성을 업고 시작한 과거 한인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이 그 기대에 녹아있다.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오를 덮어주기는 어렵다는 씁쓸한 경험을 한인사회는 종종 겪어왔다.   그의 마음가짐이 궁금하던 차에 지난 6일 NBC 방송이 그와 인터뷰로 묻고 싶은 질문과 듣고 싶은 답을 보도했다. 14분 분량의 방송에서 난처한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그는 단호했고, 막힘없었다.   무엇보다 돋보인 점은 현실에 대한 공감 능력과 균형잡힌 시각이다.   공화당과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서 “치솟는 집값, 의료 문제 등이 주요 현안이라는 건 공화당도 공감하고 있지 않나. 서로의 의견에 다 동의하진 않겠지만, 상원이 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비상계엄에 대한 그의 시각은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한인 2세임에도 정확했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처음엔 번역이 잘못됐나 싶었다”면서 “여당조차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했고, 한 시간여 만에 국회가 계엄을 뒤집었다. 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이다. 미국 정부가 기대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스러운 상황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이고 정상이 아니다(crazy).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친지들로부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역대 최저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을 묻자 그는 친정 눈치를 보지 않았다.     “정치에 실망한 국민의 불신 때문이다.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그래서 주요 현안들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우리 모두 유권자들이 화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바꿔야 한다.”   패거리 정치가 아닌 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신념을 확인한 것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사면이 국민 신뢰를 깨지 않을까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된 사면 남발을 국민은 많이 봐왔다. 유권자들의 불신이 높아질 것이다. 선을 넘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면이 계속된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나. 우린 예측 불가능한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숨쉬기도 어렵다는 유권자들이 있다. 이보다 나아야 한다. 정부도 의원들도.”   부디 그가 지금의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걷는다면 270만 한인 모두가 그의 편이다.사설 한인 이민사 국민 신뢰 패거리 정치가

2024.12.11. 19:23

한인 이민사 다큐 공립학교서 본다

미주 한인 이민사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과 ‘하와이 연가’가 교육용 콘텐츠로 제작돼 미주 공립학교와 주말 한글학교에 배포된다.   두 다큐 영화를 제작한 나우프로덕션필름(대표 이진영)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최한 ‘2024 한국 바로 알리기 교육 콘텐츠 개발 및 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됐다고 6일 밝혔다.   이에 따라 나우프로덕션필름은 초중고 공립학교와 전 세계 한글학교 수업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춤형 웹사이트 및 전자책 개발에 착수한다.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영화 편집본을 비롯해 토론 주제와 퀴즈 등도 제공한다. 또 학생들이 직접 자기 가족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 ‘무지개 나라의 유산 템플릿’도 만든다.   웹사이트와 전자책은 한국어, 영어로 각각 제작되며 내년 상반기에 공개한다.   교육 콘텐츠 제작에는 다니엘 수에히사 하와이 카이 초등학교 교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최태성 역사 전문가, 이진영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 다이애나 김 조지타운대 아시아학과 교수 등이 공동 연구진으로 참여한다.   다큐를 제작한 감독이기도 한 이진영 대표는 “자랑스러운 우리 이민 역사를 전 세계 학생들과 더 많이, 더 재미있게 나눌 수 있게 돼 기쁘다”며 “K-콘텐츠의 세계화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 콘텐츠 제작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우프로덕션필름은 이번 공모를 기회로 꾸준히 이민사 자료를 취합하고 기록하여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 남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편, 미주 한인 이민 120년 역사를 담은 음악 단편 영화 ‘하와이 연가’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바이올리니스트 이기장·장지연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제43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처음 관객을 만났다. 오는 5월 미국, 6월 한국에서 개봉 예정이며 PBS-TV 하와이를 통해서도 방송된다.   ▶문의: www.theRainbowWords.com공립학교 게시판 한인 이민사 미주 공립학교 초중고 공립학교

2024.03.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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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우리도 자부심 느낄 이민사 있다

한인 초기 이민자의 묘소를 취재하러 지난달 하와이를 다녀왔다. 단지 한인 이민 120주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사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실제 그곳에서 본 이민사의 흔적은 세월에 의해 닳고 닳아 희미해지고 있었다. 한인 선조들의 묘비는 부서지거나 방치된 채 잡초와 수풀 속에 가려져 있다.   한인 이민사는 오늘날 완전히 양상이 변했다. 102명으로 시작됐던 한인 이민 역사는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숫자적으로만 봐도 200만 명을 넘어섰다. 곳곳에 한인 사회가 형성돼 있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한인도 많다. 어디를 가나 한국 제품, 음식, 콘텐트 등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이민 생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단, 이민 역사의 뿌리를 알고 보존하려는 의식이 부족한 건 아쉬움이다.   하와이에 앞서 중국계 이민자들의 지워질 뻔한 묫자리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갔었다. 〈본지 10월30일자 A-1·3면〉 당시 취재 중 만난 중국계 대부분은 이민 3세, 혹은 4세들이었다. 겉모습만 아시안일 뿐이지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완전히 미국화된 이들이다.   그들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중국어를 잃은 지는 오래됐지만, 뿌리(정체성)와 이민 선조의 역사를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였다. 오리건 주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첫발을 내디딘 땅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철도를 부설하고 도로와 강둑을 건설했다. 중국계 후손들은 이민 선조들의 노동력, 전문성, 추진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이 곧 이민 역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다.   그 때문에 중국계 커뮤니티는 콘도 단지로 개발될 뻔했던 선조들의 묘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 커뮤니티처럼 체계적인 뿌리 교육을 받아 이미 미국화된 후손이라 해도 ‘차이니스-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이는 모두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인 사회는 어떤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민 역사가 있다. 1900년대 초였다. 오늘날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모든 게 열악한 시기였다. 당시 유교문화권에서는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떠난다는 건 뿌리를 들추어내는 일로 생각했다. 그 뿌리를 이역만리 땅에 옮겨 심으려고 종일 땡볕에서 고된 농장 노동을 감내했던 이들이 한인 초기 이민자들이다.    당시 사회적 하층민들이 농장 노동자로 온 것 같지만, 행적을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선각자였다. 당시 노동자 월급은 약 16달러에 불과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때 돈으로 무려 2000달러를 마련했다. 그들은 당시 300명 이상의 한 달 치 봉급과 맞먹는 액수를 모아 학교부터 세웠다. 또 광복 전까지 독립운동 자금의 2/3를 조달했다.   한인 초기 이민자들은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 노력했다. 훗날 그들의 자녀는 미군으로도 복무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했다.         한인 이민 역사가 한 세기를 지났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차세대는 한국어를 잃어가고 있다. 언어뿐 아니라 뿌리 의식을 심어주려는 노력 역시 약화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 기사를 한글판뿐 아니라 영문판으로도 제작했던 이유다.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기사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인 2세 자녀를 둔 부모라면 본지의 아시안 역사 기획 시리즈 기사를 자녀들과 꼭 공유했으면 한다. 이민 역사, 이민자의 미국 사회 발전에 대한 기여, 한인의 정체성 등에 대한 내용이 2세들의 뿌리 찾기 과정에 첫 단추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뿌리를 안다는 것, 곧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자부심이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자부심 이민사 한인 이민사 이민 선조들 한인 사회

2024.0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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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 기록 지켜야 한인 존재 미국사에 선다

당시 초기 이민자들은 묘비로라도 뿌리를 기록했다.   그 어렵던 시절에도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의 부평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명(碑銘)을 찾아다닌 이유다.   당시 지역 신문도 첫 한인 이민단을 태운 갤릭호가 호놀룰루에 도착한 날의 기록을 남겼다.   1903년 1월 13일 자 ‘더 하와이안 스타(The Hawaiian Star)’ 1면 기사다. 큰 제목(Koreans Arriving) 밑에 이런 부제가 달렸다.   ‘One hundred and Two Subjects of the Hermit Kingdom Reach Here to Try Their Luck at Plantation Labor(은둔의 왕국에서 온 102명이 농장 노동에 도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120년 전만 해도 그들은 은둔의 나라에서 온 이방인으로 여겨졌다.     하와이 민주평통 하와이협의회 박봉룡 회장은 “한인들이 초기 이민사에 무관심해서 안타깝다”고 운을 뗐다.   박 회장은 “내가 1970년대에 100불 들고 이민을 왔을 때도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가 많았는데 지금은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며 “흑인, 아메리칸 인디언 등의 역사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도 엄연히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미주 한인 인구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존재감은 과거와 달라졌다. 단, 뿌리를 알아야 ‘우리’를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한의준 목사는 “70~80년대 김포공항에서 이민 가던 광경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한 목사는 “그때만 해도 공항에서 울고불고했는데 하물며 아무것도 없던 1900년대 초반 그 시절 이민자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라며 “그들이 이역만리 땅에서 개척자 정신으로 살며 한인 이민사의 초석을 다졌기 때문에 오늘의 한인 사회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은 단순히 추모를 넘어 한인사회의 위상을 미국 사회에 각인시키는 일이다. 역사를 계승한다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해외 최초의 한인 교회인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이를 위해 역사 편찬 사역부(담당 신찬재 권사)까지 두고 있다. 초기 이민사를 정리한 책(알로하 하와이 120년을 걷다)은 인쇄 과정에 있다. 하와이 곳곳의 초기 이민자의 자취를 코스로 개발해 내년부터는 역사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진영 감독은 지난 2005년부터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 한인 이민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과 ‘하와이 연가’ 등을 제작했다.   이 감독은 “초기 이민자의 후손 중에는 문대양 하와이주 대법원장, 해리 김 전 하와이 시장 등 각 분야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미국 사회에 공헌한 한인이 너무나 많다”며 “뿌리를 안다는 건 이민자로서 자부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경계인(境界人)과 같은 삶을 사는 게 이민자다. 한인 2~3세들이 언어를 잊어도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이유다. 초기 이민자가 살았던 상황에서는 어려움이 더 많았을 터다.   그런 시대적 배경 가운데 한인 초기 이민자들은 모국까지 가슴에 품고 살았다. 이역만리 땅에서 월 20달러도 안 되는 봉급을 쪼개고 또 쪼개서 한국의 독립운동 자금까지 모았다.   호놀룰루총영사관 이서영 총영사는 “하와이 초기 이민자들은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자금의 2/3 정도를 조달했는데 그들이 아니었다면 독립운동의 역사도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와이의 한인 이민사는 곧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 건국 역사, 전 세계 재외 동포의 이민 역사로까지 연결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역사의 흔적은 의식하지 못해도 늘 주변에 있다. 일례로 초기 이민자들의 유산 중 하나가 교회다. 이민 교회는 그동안 종교 기관 이상의 역할을 했다.   힐로연합감리교회 이말용 은퇴 목사는 “심지어 힐로 지역에는 미국 교회 통틀어서 감리교회 자체가 없었는데 한인들이 와서 감리교회를 처음 세운 것”이라며 “우리가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이민 교회가 미국에 미친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잊히지 않으려면 더 선명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남은 자들의 몫이다. 뿌리가 있다는 건 곧 자부심이다. 관련기사 세월 견딘 비석엔 절절한 한글 "아부지" 묻힐 땅도 없던 그들, 묘비는 삶의 기록이었다 오아후=장열 기자ㆍ사진=김상진 기자 [email protected]미국 온라인용 한인 이민사 이민사 기록 초기 이민사

2023.12.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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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하임 통합교육구 한인 인종학 수업, 정체성·다문화 이해 높여

“꿈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여러분의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고등학교 최초로 애너하임 통합교육구에서 시작한 ‘한인 인종학(Korean American Studies)’ 수업이 한인 청소년의 정체성 함양에 효과를 내고 있다.     13일 온라인매체 LA이스트는 애너하임 통합교육구 한인 인종학 수업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한인 등 여러 고등학생이 그동안 몰랐던 한인 이민사 배우기에 한창이라고 전했다. 한인 인종학 수업이 한인 차세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정신적 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매체에 따르면 현재 한인 인종학 수업을 이끄는 제프 김 교사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은 애너하임 통학교육구 7개 고등학교 학생 약 40명이 듣고 있다. 학생 중 상당수는 한인이다.   제프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인 이민사 120년 역사를 1년(2023~2024학년도) 과정으로 가르친다. 어바인통합교육구 교육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교사는 지난해 최초로 만들어진 K-12용 한인 인종학 커리큘럼 교재를 활용한다.     매체는 지난 8월 9일 미국 고등학교 최초로 개설된 한인 인종학 수업이 학생들을 120년 전 과거로 인도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1903년 1월 13일 최초 한인 이민선 갤릭(Gaelic)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이민선조 102명 이야기부터 일제강점기 조국독립과 한인 2세 자녀교육에 헌신한 한인 이야기를 배운다.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김영옥 대령,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 등 미국을 빛낸 한인 2세 활약상도 빠지지 않았다. 최근 전 세계를 휩쓰는 K팝 등 한국 문화 열풍은 자부심도 심어준다. 학생들은 한인 이민사의 아픔으로 기록된 1992년 4.29 폭동 역사도 배우고 있다.   수업을 이끄는 김 교사는 한인 이민사를 가르치며 “뿌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한인 인종학 커리큘럼 교재 내용과 함께 “이민자 후손인 여러분 가족의 ‘이야기’도 찾아보라”고 말한다. 학생들의 부모, 조부모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면서 겪은 과정과 도전 자체가 곧 한인의 역사여서다.   9학년인 시온 이는 “한인 인종학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졌다”며 변화된 모습을 전했다.     한인 인종학 수업은 다민족·다문화 구성원 간 이해를 높이는 효과도 내고 있다. 현재 수업을 듣는 학생 4명 중 1명은 비한인으로 이들은 한인 이민사와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10학년인 길레모 카스트로는 “한인 이민사는 한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위대한 미국 역사”라며 “이 수업을 통해 여러 문화가 미국의 역사를 일궈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미국 다문화 한인 인종학 한인 이민사 한인 이야기

2023.12.13. 20:14

한인 이민 120주년 콘퍼런스…LA총영사관·UC어바인 개최

한인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는 콘퍼런스가 열린다.   LA총영사관과 UC어바인 한국학연구소는 12월 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15분까지 UC어바인 휴머니티 게이트웨이 1030호(611 Humanities Quad, Irvine)에서 '한인 이주 120주년 기념 콘퍼런스'를 공동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주최 측은 한인 이민 120년 의미를 되짚고 한인 정체성과 미국사회와 한인사회 관계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콘퍼런스는 ▶1부 미주 한인들의 스토리 ▶2부 연극.영화 속 미주 한인 ▶3부 미주 한인 이민역사 순으로 진행된다. 기조 발언은 줄리아 조 작가와 줄리아 이 UCI 아시안아메리칸연구소 교수가 맡는다.   패널 참가자는 초기 미주 한인 이민, 1992년 LA폭동 등 한인 이민사 주요 사건도 짚어볼 예정이다. 또한 한인 문학을 조명하고 연극과 영화 속에 비친 한인의 모습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콘퍼런스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은 웹사이트(bit.ly/120th)로 예약만 하면 된다. 주최 측은 점심도 제공한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미국 컨퍼런스 한인 이민사 컨퍼런스 개최 한인사회 관계

2023.11.28. 20:10

시민참여센터 인턴들, 미주 한인 이민사 주역들 조사발표

 시민참여센터 조사발표 시민참여센터 인턴들 한인 이민사

2023.07.0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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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고 민병수 변호사의 미완성 프로젝트

고 민병수 변호사에 대한 첫 기억은 묘지가 시작이다. LA한인타운 인근 워싱턴 불러바드에 있는 ‘안젤루스 로즈데일 묘지’가 기억의 장소다.   민 변호사는 매주 토요일이면 몇몇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한인 이민 선조들이 묻혀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주한인재단이라는 이름의 비영리재단을 세우고 ‘미주 한인의 날’ 제정에 성공한 민 변호사가 생각해 낸 또 다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민 변호사와 함께 한 일행들은 그가 늘 ‘친구’라고 부르던 한인 1.5세와 2세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LA통합교육구에서 커뮤니티 담당관으로 일하던 홍연아씨와 알렉스·마가렛 차 변호사 부부, 베렌도중학교 수학교사였던 존 공, 윌튼플레이스 초등학교 교사였던 린지 이, 그 외에 애나 정, 안드레아 나, 토니 등이다.     토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달려오는 ‘친구’들의 빈 속을 위해 민 변호사는 늘 삶은 달걀과 구운 고구마 등을 챙겨왔다. 그리고 정오가 될 때까지 함께 쭈그려 앉아 묘비명을 확인하고 한인 이름을 찾으면 위치를 기록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들은 그렇게 일제 강점기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동지회의 이순기씨와 김영옥 대령 부모의 묘지 등을 찾아냈다. 이순기씨는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인 새미 리 박사와 한인 첫 여성 교육자인 메리 손 여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또 그동안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한인 독립유공자들의 묘비를 발견해 그들의 유해가 한국 현충원으로 옮겨지는 길을 마련했다.   민 변호사가 로즈데일 묘지에 그렇게 공을 들인 건 그곳에 묻혀 있는 한인 선조들 때문이다. 민 변호사는 늘 이민 초창기 인종차별로 인해 죽어서도 갈 곳이 없던 한인들을 유일하게 받아주던 로즈데일에 있는 한인 선조들을 후손들이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곤 했다.   대한인국민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곳에는 280여 명의 한인 선조들이 잠들어있다. 앞에 언급된 인물들 외에 재미한인사약 상·중의 저자 노재연, 강익두, 김관유, 김중수 목사, 마춘봉, 박리근, 윌리 송, 멕시코에 이민을 갔다가 미국으로 온 후 100세 장수를 누린 선우 로사, 임준기 목사 등이 있다.   민 변호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민 선조들의 이야기를 가능한 자세히 남기려 애를 썼다. 그는 종종 “이야기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인 선조들의 이야기가 곧 한인 이민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20년을 맞은 한인 이민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곧 한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걸 누가 상상했겠는가. 1세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 한인 후손도 반드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날을 보지 못하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인 선조들이 묻힌 위치를 기록한 묘지 지도를 남기는 이 프로젝트는 간단한 것 같았지만 끝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 넓은 곳에 묻혀 있는 한인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었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주말마다 묘지에 가서 말 그대로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해야 하는 탓에 1세들의 참여는 미미했다. 그런데도 민 변호사는 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 꾸준히 혼자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민 변호사가 고인이 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지난 1일 별세한 민 변호사의 추모예배가 남가주새누리교회에서 지난 10일 진행됐다. 유족과 친지를 제외하면 한인 조문객은 100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항상 앞장서 봉사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의 업적과 공로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큰 이별이었다.     그의 희망과 비전이 실현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민 변호사는 떠났지만 그의 바람대로 한인 사회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 속에서 잊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프로젝트 민병수 한인 이민사 민병수 변호사 변호사 부부

2023.06.1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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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차파 전시’에 멜론재단 85만불 지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리버사이드에 일군 초창기 한인 공동체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와 미주 한인 120년사를 미전역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UC리버사이드(UCR)는 13일 산하의 김영옥연구소(소장 장태한 박사)가 멜론 재단에서 85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파차파 캠프와 지역 한인사를 알리는 순회 전시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리버사이드에는 현재 미주도산기념관 설립도 추진 중이다.관계기사 3면   지난 2021년 10월부터 3개월 동안 ‘파차파 캠프: 미국의 첫 한인타운’이라는 주제로 남가주에서 미니 순회 전시회를 진행했던 김영옥연구소는 이번에 받은 멜론 재단의 지원금으로 내년 하반기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뉴저지, 워싱턴DC, 시카고를 차례로 방문해 당시 파차파 캠프와 각 지역에서 살던 한인들의 이민사를 사진 전시와 물품 등을 통해 주류사회에 보여주게 된다.   또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전시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파차파 캠프는 1904년 리버사이드 이스트사이드, 14가와 커머셜가 인근에 오렌지 농장에서 일한 한인 이주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공동체 이름이다.   오프라인 순회 전시회는 각 지역의 한인 커뮤니티 단체와 함께 진행하며, 세이브 아워 차이나타운 위원회, 하라다 하우스 재단, 미주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남가주 민권연구소 등 리버사이드 소재 아시아계 미국인 및 민권단체 컨소시엄과도 협업한다.   김영옥연구소는 또 멜론 기금 중 20만 달러를 전시회가 열리는 한인 커뮤니티 단체에 각 5만 달러씩 기부할 예정이다.   멜론 재단은 예술, 인문학, 고등교육, 문화 등 사회·과학·인문학 분야를 지원하는 개인 자선 단체로 1969년 설립됐다. 주로 박물관 및 도서관 프로그램과 사회 정의 이슈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 문화유산의 보존 및 디지털화 프로그램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멜론 재단이 한인 이민사 보존과 홍보를 위해 지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장태한 소장은 “파차파 캠프와 지역 한인 이민사를 순회 전시회를 통해 주류 사회에 처음으로 또 정식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UC리버사이드와 김영옥 연구소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에 큰 경사다. 파차파 캠프와 한인 이민사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이민 역사가 오래됐지만, 아시안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증가하면서 주류사회도 아시안에 대한 인식을 재점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더 많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인사를 주류사회에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럴 윌리엄스 UCR 인문·예술·사회과학대학 학장은 “장태한 박사의 한인사회 연구는 역사적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다. 순회 전시회를 통해 지역 사회를 연결하고 성장시키며 배울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한인사 미주 미주 한인 순회 전시회 한인 이민사

2023.02.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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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 위해 '같이 갑시다'"

1903년 오늘(1월 13일)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민 선조들의 노고 덕분에 정확히 120년이 지난 오늘, 한인사회는 연방의회의 뜨거운 축하를 받게 됐다.     전국 각급 정부 기관과 의회에서 ‘미주 한인의 날’을 맞아 일제히 한인들의 이민사를 기리고 더 많은 발전을 기원하는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하루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2일 성명을 통해 “120년 전 오늘 102명의 한국인이 하와이에 도착해 새로운 날을 시작했다”며 “나라와 민권을 지키며 새로운 과학, 스포츠, 의료와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한인들의 기여는 국가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같이 갑시다(Katchi Kapshida)’”라고 축하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같이 갑시다'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했다.     연방하원에서는 영 김 의원(가주 39지구)이 11일 자유 발언을 통해 이민 120주년과 한인의 날에 경의를 표시했다.     김 의원은 “한인들은 1903년 노동자로서 미국 땅을 처음 밟아 지금 이곳 연방 의회까지 영향력을 넓혀왔다”며 “특히 더 나은 기회를 위해 한국전쟁을 겪었던 많은 한인이 새로운 삶을 위해 미국에 와 고생한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고 전했다. 다음 날인 12일에는 미셸 박 스틸 의원(가주 45지구)이 한복을 입고 하원 회의장에서 한인의 날을 기념해 눈길을 끌었다.     스틸 의원은 “주민을 대표하는 한인 하원의원으로서 한인사회가 일궈온 성공적인 이민 역사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미국의 성공을 위해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LA한인타운이 지역구인 지미 고메즈 하원의원(가주 34지구)은 “한인 이민사의 역사적인 날인 한인의 날을 축하하며, 동료 의원들과 함께 세대에 걸친 한인들의 열정과 노력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연방의회 인근에서는 12일 앤디 김 의원(뉴저지), 매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 주디 추(가주) 등 의원들이 참석한 한인의 날 축하 리셉션이 열렸다.     앤디 김 의원은 연설에서 “부모와 조부모님들의 용기와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며 “앞으로의 120년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고 우리 모두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동시에 브라이언 샤츠 연방 상원의원(하와이), 댄 설리번 연방 상원의원(알래스카) 등 한국연구모임 소속 의원들이 일제히 한인의 날과 이민 120주년을 축하 메시지를 냈다. 김치의 날 선포로 한인들에게 익숙한 캐롤린 멀로니(뉴욕) 연방 하원의원도 한인들의 노고를 위로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메시지에서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한인을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한미 우방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고 덕담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오늘 오전 LA 시의회에서는 존 이 시의원 주최로 제임스 안 LA한인회장, 이병만 미주한인재단 LA회장, 김영완 총영사 등 주요 한인사회 인사들이 초대된 가운데 축하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최인성 기자미국 아메리칸 아메리칸 드림 한인 이민사 한인 하원의원

2023.01.1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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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사, 감리교와 함께" 연합감리교단 '9분 영상' 공개

올해로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미주 한인의 날(1월 13일)'을 앞두고 미국 최대 감리 교단인 연합감리교단(UMC)이 한인 이민사를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UMC 공보부는 9일 "미주 한인 역사는 한인 연합감리교회와 함께 동시에 시작됐다. 이에 한인 이민사와 감리교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9분 길이로 제작된 영상(www.umnews.org/ko/news/january-13-korean-american-day-2023)은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 당시 영상 등으로 구성돼있다.   UMC 공보부 김응선 목사는 "1902년 12월 제물포항을 떠난 첫 이민단은 인천 내리교회를 포함한 여러 교회에서 모집된 감리교인들이었다"며 "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일하며 세운 교회가 하와이 그리스도 한인연합감리교회"라고 말했다.   한편, 호놀룰루 지역 그리스도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는 오는 15일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도 진행된다.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연합감리교단 게시판 연합감리교단 한인 한인 연합감리교회 한인 이민사

2023.01.11. 19:33

독립·계몽 운동에 헌신…정계 진출로 정치력 신장

120년이 넘은 한인 이민사는 도전과 인내, 굽히지 않은 신념과 세대를 거듭한 노력의 역사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한국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사탕수수밭 이민선조 7400여명부터, 1960~70년대 제2 이민물결로 LA와 전국 각지에 터를 잡은 현시대 이민 1세대 모두 오늘날 196만(2021 연방센서스 아메리칸커뮤니티서베이, 2022 한국 외교부는 255만 추산) 미주 한인사회를 가꾼 주인공들이다.     특히 소수계 커뮤니티에서 당당한 미국사회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노력은 1세기 동안 느리지만 단단하게 결실을 맺고 있다. 1950년 이전 이민선조와 자녀 세대는 한인이란 정체성과 조국사랑을 바탕으로 미국사회 일원을 강조했다. 현시대 한인 1세대와 자녀는 이민선조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아 정치력 신장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인 이민 120주년, 정치적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앞장선 이들을 알아봤다.   ▶서재필(필립 제이슨 서, 1864~1951)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자주, 자강을 주창했지만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천하에 그쳤다. 이후 서재필은 1885년 4월 미국으로 와 학업에 열중한다. 1889년부터 1892년 컬럼비아대 의학부를 졸업, 1892년 3월 한국인 최초 의사가 된다.     1895년 12월 조선 정부 초청으로 귀국 1989년 4월 7일 최초 민간신문이자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며 조선의 부국강병을 강조하지만, 민주주의 사상 전파로 추방된다.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당시 유학생과 한인들을 모아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개최하며 식민지가 된 조국의 고통을 알리고 일본제국주의를 규탄한다.     서재필은 1922년부터 광복이 될 때까지 ‘동아일보·조선일보, 미국 신한민보’에 끊임없이 글을 기고해 국내외 한인 단합, 실력양성을 통한 독립쟁취를 강조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안창호(1878~1938)   1900년 미국에 도착한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공립협회를 설립하고 이후 리버사이드, LA, 다뉴바와 리들리 지역을 돌며 한인사회 의식계몽과 생활향상에 앞장섰다. 1907년~1923년 사이 귀국해 민족 계몽운동에 힘썼고, 일제에 쫓기다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 기초를 다졌다.     1924년 미국에 다시 온 안창호는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조직을 강화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혐의로 체포, 1937년 6월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 등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3월 경성대학 부속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도산은 가주에서 한인사회 권익신장을 독려하고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공동체 화합과 단결, 정치력 신장을 위한 기틀을 다졌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이승만(1875~1965)   이승만은 1897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운동에 참여했다가 정치범으로 투옥된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와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귀국 후 일제강점기 105인 사건으로 1913년 하와이로 다시 왔다. 하와이에서 한인기독학원을 운영하며 민족 교육과 선교 활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 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워싱턴DC에 구미위원부를 설립하고 미국 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대한독립 필요성을 알렸다.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 대한민국 독립과 임시정부 승인을 위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해 미군정 승인 아래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김형순(1886~1977)·김호(1884~1968)   김형순(왼쪽사진)은 1903년 1월 13일 한인 첫 이민선의 통역 자격으로 미국에 왔다. 이후 본토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김호는 1912년 독립운동에 헌신하고자 망명, 1914년 미국에 와 대한인국민회 중심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1921년 가주 중부 리들리시에서 김형제(Kim Brothers)상회를 설립해 과수와 묘목 사업으로 성공했다. 미주 한인 최초 100만 장자로 불렸고 축적한 부를 조국의 독립운동과 캘리포니아 등 미주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지원했다. 연방농무부는 넥타린(Nectarine) 개발 보급을 인정해 김형순을 표창했다. 김호는1942년 LA시청에서 대한민국 독립 열망을 선포한 ’현기식‘에서 자주독립 열망을 세계에 알렸다. 2006년 LA한인타운에는 김호의 독립운동 및 사회공헌 기리기 위해 한인 최초로 찰스 호 김 초등학교(Charles H. Kim Elementary School)가 설립됐다. 김형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호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한인 이민선조의 자녀는 하와이와 본토 땅에서 태어나 한인 2세대로서 정체성을 확고히했다. 동시에 모국의 광복, 6·25 한국전쟁을 접하고 힘을 보탰다. 미국 사회에서는 공동체 발전을 위해 당당한 일원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영옥(1919~2005)   김영옥은 1919년 한인 이민선조인 하와이 사탕수수밭 한인 노동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에 입대, 혁혁한 공을 세워 훈장을 17개나 받았다. 참전 당시 부상을 당했지만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모국을 위해 재입대, 아시아계 중 최초로 연대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전쟁 참전 후 전우들과 500여명의 고아를 돌본 일화도 유명하다.  김영옥 대령은 전역 후 LA 등 남가주 한인사회 발전에 헌신했다. 그는 가정상담소, 한미연합회, 이웃케어클리닉(전신 한인건강정보센터), 아태여성연합회 등을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문대양(1940~2022)   1993년 하와이주 대법원장에 한인 3세인 문대양(당시 53세.영어명 로널드 문)씨가 지명됐다. 한인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주 대법원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문대양 대법원장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첫 이민 온 문정헌(할아버지)씨와 이만기(외할아버지)씨의 손자다. 하와이 첫 이민자의 손자가 주 대법원장이 된 사실 자체가 한인 이민사에 획을 그은 역사였다. 문대양 대법관은 생전 “할아버지로부터 내려 온 한국의 가족, 노동 등에 대한 가치를 배웠기에 한인 중 최초로 미국의 주 대법원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며 깊은 동포애를 나타냈다. 그는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년을 맞아 다이빙 영웅 새미 리, 야구선수 박찬호 등과 함께 ‘미주 이민 100년의 영웅 7인’에 뽑히기도 했다.   ▶송호연(1919~2004)   하와이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송호연(영어명 알프레드 송)은 1962년 아시아계 최초로 가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하원의원으로 4년 동안 활동한 알프레드 송은 1966년에는 28지구 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4선의 경력 등 총 16년 동안 의정활동을 했다. 알프레드 송은 주 입법부 역사에 ‘경전’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증거법(California Evidence Code)’을 비롯해 소비자 보호와 소수계 권리 향상을 위한 법 등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200여 개의 법을 제정했다. 2013년 LA카운티 메트로폴리탄 교통국(MTA) 이사회는 한인 이민사 110년 만에 처음으로 LA한인타운 중심부의 윌셔·웨스턴 전철역을 한인 이름을 딴 ‘윌셔-웨스턴 알프레드 호윤 송’ 역으로 변경했다.   ▶김창준(1939~)   남가주 다이아몬드바시 의원과 시장을 역임한 김창준은 1992년 연방 하원의원(가주 41지구)에 당선됐다. 이후 1998년까지 3선을 지냈다. 한국 출생인 김 의원은 이민 후 한인 최초로 연방 하원에 진출한 역사를 썼다.   2015년 UCLA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소가 발간한 ‘전국 아시아태평양계 정치인 및 공직자 연감’에 따르면 당시 지방 및 연방 정부 주요 선출직 및 임명직에 170명 이상(연방 정부기관 및 단체 26명, 연방 및 주정부 판사 27명, 주 의회 의원 및 지방정부 선출직 공직자 25명 이상)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선출직 공직자는 데이비드 류 LA시의원, 미셸 박 스틸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영 김 가주 하원의원, 제인 김 샌프란시스코 수퍼바이저, 최석호 어바인 시장, 론 김 뉴욕주 하원의원, 마크 장 메밀랜드 주 하원의원, 하와이주 도나 마카도 김 상원의원이었다.   2022년 현재 한인 선출직 정치인과 공직자는 지방 및 연방 정부에서 더 활약하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8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는 앤디 김 하원의원(민주·뉴저지 3지구, 재선), 메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민주·워싱턴주 10지구, 초선), 미셸 박 스틸 하원의원(공화·가주 45지구, 초선), 영 김 하원의원(공화·가주 40지구, 초선)이 모두 연임에 성공했다.   참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세계한민족문화대전 -한인역사박물관·LA카운티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신년 8면 정치인 김형재 미주 한인사회 한인 이민사 사탕수수밭 이민선조

2023.01.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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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이민 120주년] 이민의 역사…다시 한 세기를 꿈꾼다

한인 이민역사가 1세기를 넘어 20년을 더했다. 올해는 이민 120주년의 해다.     1903년 사탕수수 노동자를 실은 배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척박한 이민역사는 시작됐다. 1902년 고종황제는 노동 이민을 장려하기 위해 ‘하와이는 일자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해 살기가 편하며 자녀 교육을 잘 시킬 수 있다’는 공고를 발표했다. 미주 한인 이민의 출발이었다.     한 세기를 넘으며 하와이 노동자 후손들과 이후 이민자들은 ‘코리안 아메리칸’의 힘찬 역사를 미국에서 써내려 가고 있다.     초창기 이민자들은 먼 이국 땅에서 중노동을 하면서도 고국의 독립을 열망했고 후손이 바르게 뿌리 내리기를 염원했다. 그후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많은 한인들이 이민 길에 올랐다.     하지만 한인들이 정착한 미국은 결코 풍요와 안락의 땅만은 아니었다. LA폭동을 겪으면서 힘없는 소수민족의 슬픔을 삼켜야 했고 장기 불황의 경제위기도 넘어야 했다.     그럼에도 역경에 좌절하기 않고 일어섰다. 이민 연륜이 깊어지면서 한인들은 정치와 경제, 문화 각 분야에서 무한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위상이 높아진 조국도 우리에게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시련과 인내와 시간들은 한인커뮤니티의 빛나는 역사로 승화됐다.     중앙일보는 2023년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신년기획으로 한인 이민사를 조명하는 특집섹션을 발행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이민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취지다. 또한 다민족 사회에서 살아갈 후세들에게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게하려는 뜻도 있다     지난 시간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다. 다시 시작이고 도전은 계속된다. 자유와 축복의 땅에서 또 다른 한 세기를 꿈꾼다. 목차   ▶2면: 이민 120주년의 의미 ▶3면: 이민인구 변화 추이 ▶4면 한인 경제 성장사 ▶8면 한인 정치인들 ▶12면: 미주 한인 종교사 ▶15면: 실바아 장 루크 하와이 부지사 인터뷰 ▶18면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 인터뷰  한인이민 120주년 이민 역사 한인 이민역사 한인 이민사 초창기 이민자들

2023.01.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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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여성 감독 미주 한인 120년사 단편영화 완성

미주 한인 이민 120년 역사를 담은 음악 단편 영화 '하와이 연가-그들의 발자취'(Songs of Love from Hawaii-their Footsteps)가 관심을 끌고 있다. 13분 분량의 이 영화는 인천시립박물관(관장 유동현) 2층 기획전시실에서 상영되고 있다. 박물관은 한민족 공식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편도'의 일환으로 이 영화를 내년 2월 5일까지 선보인다. 이 작품은 현지 한인 이진영 감독이 만들었다. 그는 앞서 미주 한인 이민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나라의 유산'도 연출했다. 영화 속 음악 연주는 하와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프랑스 교포인 이기 장씨가 맡았다. 하와이 풍광 속 한인 이민 선조들의 땀이 서려 있는 장소에서 '희망가'와 '상록수' 등 우리 음악을 들려준다. 이진영 감독은 "'무지개나라의 유산'을 통해 한인 이민사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기록하려 했다면 '하와이 연가'에서는 음악이라는 감성의 언어를 활용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빛나는 발자취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최근 하와이에 도착한 한국 해군 함정에서 해군 생도들이 참가한 가운데 시사회도 열었다. 이 감독은 '그들의 발자취'(1부작)에 이어 '여성'(2부작), '몰로카이의 한센병 한국인'(3부작) 시리즈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그는 "남은 2편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하와이 이민사의 특별한 이야기를 그려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1편은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 출품한 상태고, 곧 하와이 국제영화제,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또 한인들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 날을 기리는 내년 1월 13일 하와이 힐튼 호텔에서 열리는 '미주 한인의 날' 행사 오프닝으로도 상영된다.게시판 이진영 한인 이민사 하와이 연가 이진영 감독

2022.12.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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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리부터 K팝까지' 한인 이민 전시관 개관

한인 이민사를 알리는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23일 LA한국교육원(원장 신주식)은 교육원 1층에서 한글학교 관계자를 초청해 '미주 한인 이민사 전시관' 개관 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 4월 한국교육원은 1층 왼쪽 대형 강의실을 한인 이민사 전시관으로 바꾸는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를 마친 뒤 이달 초부터 방문객을 받고 있다.   한인 이민사 전시관은 1945년 이후 한인 정착사를 소개한다. 한국 독립 이민법 개정 1992년 4.29 LA폭동 역사를 시대순으로 글과 사진으로 꾸몄다.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도산 안창호의 맏딸 수산 안 여사 LA통합교육구(LAUSD) 학교 이름으로 처음 명명된 김호 선생의 이야기와 연방 이민법의 변화에 따른 연대별 한인 이민자 규모 등도 전시됐다.   또한 이민사 전시관에는 한식 한옥 태권도 한복 K-팝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소개 코너도 마련했다.   한국교육원 측은 한국과 미국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해온 한인 역사를 알릴 방침이라고 전했다.     신주식 원장은 "한인 청소년들이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고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돕고자 전시관을 마련했다. 미국 발전에 기여해 온 한인들의 삶과 문화를 주류 사회에 알리는 데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전시관 새미 이민사 전시관 전시관 개관 한인 이민사

2022.06.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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