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의 세월이 흘렀다. 본지는 한국전쟁 75주년을 맞아 특집 기사로 ‘잊혀진 영웅’ 시리즈를 게재했다. 참전 용사들의 현재, 보훈당국이 마땅히 해야할 일을 점검했다.
한국전쟁의 영웅들은 이제 현실에서 사라지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90대 중반의 고령이다. LA 지역만 해도 한인 참전용사 수가 5년 만에 1200여 명에서 150여 명으로 90% 가까이 줄어들었다. 매달 3~5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보상이나 지원이 아니라 기억이다. “나라를 지켜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타인종들에게서는 듣지만, 한인들로부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한 노병의 한탄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정작 조국과 동포에게 잊혀 가는 현실이 대한민국 참전용사들의 쓸쓸한 자화상이다.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은 실망을 넘어 비정하기까지 하다. 고령의 참전용사들은 초청받아야 할 기념행사를 스스로 자비를 털어 준비한다. 그마저도 빈자리가 더 많다.
유공자회는 올해 6.25 행사 참석을 위해 LA총영사관에 차량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참전 용사 15명 이상이 참석을 희망했던 행사에 결국 6명만 참석하는 현실은 총영사관의 무딘 행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기름값이 아까운가. 오가는 시간이 아까운가.
조국은 영웅의 마지막 길에 태극기 한 장 직접 가져다주는 최소한의 예우도 갖추지 않고 있다. 장례시 관포 태극기는 유족이 직접 영사관을 방문해 수령해야 한다. 육군협회측은 “영사관측에서 직접 찾아와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되물었다.
정부의 해외 참전용사 지원은 최소한의 행정에 그치고 있다. 해외에 산다는 이유로 각종 의료 및 생계 지원에서도 배제된다.
참전 용사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현장 이해도와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총영사관의 보훈 업무를 담당하는 영사는 보훈부 소속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파견 공무원들이 2~3년마다 교체된다. 장기적인 정책도, 진심 어린 관심도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해외 거주 참전용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보훈부 소속 인력을 충원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한인 사회 역시 단지 추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넘어, 참전용사들의 삶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영웅에 대한 예우는 국가의 품격이자 정체성이다.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우리가 서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외면한다면, 미래 세대는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