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한국전쟁 충혼비를 건립하는 것이 남은 삶의 과업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평균 연령 95세의 한인 노병들은 25일 이같이 밝혔다. 청춘을 바친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으로 남지 않고 한인사회는 물론 주류사회에서도 계속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직접 충혼비 건립에 나선 것이다. 이재학(91) LA한국전기념재단 이사장은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재단 출범 사실을 알리고 한국전쟁 충혼비 건립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처음에는 충혼비 건립을 위한 준비위원회 형태로 시작하려 했다”며 “하지만 한국전쟁이 후세에도 계속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재단을 설립하고, 충혼비 건립뿐 아니라 차세대 역사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6·25참전유공자회 미서부지회 회원 7명과 사무총장을 맡은 최만규 한국육군협회 미국지회장을 주축으로 출범했다. 참전용사 7명은 각각 1500달러씩 출연했다. 이 이사장은 “풀러턴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는 미군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가 세우려는 충혼비는 한미 양국 참전용사의 희생을 함께 추모하고 한미동맹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주 최대 한인사회가 있는 LA에 충혼비를 세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재단은 현재 샌피드로의 포트 맥아더 박물관 인근을 유력한 건립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 최만규 사무총장은 “한국전쟁 당시 미 육군 7사단이 포트 맥아더에 집결한 뒤 한국으로 향했다”며 “한국전쟁과 인연이 깊은 역사적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오는 2028년 재향군인의 날인 11월 11일에 맞춰 충혼비 건립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상 사업비는 약 25만 달러다. 재단은 필요한 부지를 좋은 조건으로 제공받기 위해 LA시정부와도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혼비는 한국군과 미군 참전용사가 함께 서서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할 예정이다. 하단에는 한국전쟁의 의미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문구를 한국어와 영어로 새기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으로 불리지 않도록 전쟁의 상흔을 충혼비를 통해 기억할 수 있게 한인사회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김경준 기자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쟁 충혼비 한국전 참전용사 la한국전기념재단 이사장
2026.08.25. 21:58
“1953년 7월 27일은 단순히 적대행위가 끝난 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 희생을 바탕으로 굳건한 (한·미)동맹이 탄생한 날이었습니다.” 마이클 디솜브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7일 워싱턴DC 한국전쟁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정전협정 73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전쟁과 함께 시작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디솜브리 차관보는 연설에서 “우리 양국은 함께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고 한반도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했다”며 “그 결과 우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이자 활기찬 경제 대국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기반은 한국전쟁에서 흘린 희생과 헌신 덕분이었음을 강조한 발언이다. 그는 또 “한국전쟁 전사자와 실종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모든 가족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감당한 슬픔과 희생에 대해 우리는 결코 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면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꺼내다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배우자가 한국계인 그는 “제 아내의 가족은 원래 인천 출신이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지켜낸 공동의 희생이 없었다면 저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던 도중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연설을 멈추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내 감정을 추스른 그는 “이것이야말로 전쟁이 남긴 진정한 유산”이라며 “목숨을 바친 미군 장병 3만6643명과 한국 카투사 장병 7174명의 이름은 자유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준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향인 위스콘신주 출신 한국전 참전 용사인 해병 스탠리 크리스천슨 일병의 영웅적 서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크리스천슨 일병은 1950년 9월 서울 외곽 132고지에서 부대원들이 방어 태세를 갖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적의 공격을 홀로 막아내며 싸우다 전사했고, 사후 명예훈장을 받았다. 디솜브리 차관보는 “미국 장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150만 명이 넘는 한국군과 22개 참전국의 장병들이었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이끈 가장 큰 규모의 연합군으로, 이는 자유라는 공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 이사장인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 기간인 73년 동안 지속된 이 전쟁은 종종 ‘잊힌 전쟁’으로 잘못 불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당시 희생을 치르신 분들의 헌신을 기리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주미대사관에서는 국방무관으로 있는 윤형진 육군 준장이 참석했다. 그는 “전투의 시련 속에 단련된 양국 간 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며 “이는 단순히 전략적 파트너십이 아니라 피와 공유된 가치로 맺어진 깨뜨릴 수 없는 형제애의 연대”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한국전 국무부 한국전쟁 전사자 한국전 정전협정 공동 희생
2026.07.28. 23:35
데이비드 이비 BC주 수상은 27일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을 맞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캐나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와 추모의 뜻을 전했다. 이비 수상은 성명에서 가평 전투와 355고지 전투 등에서 활약한 캐나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며,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2만6천 명 참전 및 516명 전사 1950년부터 1953년까지 2만6천 명 이상의 캐나다 육·해·공군 장병들이 유엔군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들은 가혹한 기후와 치열한 전투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선에 나섰다. 이비 수상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516명의 캐나다 군인을 기억하고 추모한다"며 "해외에서 복무하며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이들과 집에서 이들을 기다리며 아픔을 견뎌낸 가족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전쟁에서 싸운 이들에게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있다"며 "전쟁의 진정한 참상은 살아남은 이들만이 알 수 있으며, 이들의 소명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정전 이후 평화 유지와 양국 우호의 기틀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7천 여명의 캐나다 군인이 평화유지군으로 남아 대한민국에 상주했다. 이들의 활동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캐나다와 대한민국 간의 유대와 우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기틀이 됐다. 이비 수상은 "우리는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억한다"며 "이들이 남긴 유산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대한민국이며, BC주와 캐나다가 한국과 강력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토대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도 그들의 용기와 헌신을 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이주현 기자 [email protected]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 참전용사 캐나다 참전용사들 대한민국 국민
2026.07.27. 21:11
빅토리 선교골프클럽(회장 정석봉) 회원들은 지난 11일 풀러턴 힐크레스트 공원 내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 기념비를 찾아 참배했다. 회원들은 이날 풀러턴에서 클럽 설립 34주년 골프 모임을 마친 직후 기념비를 방문,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군 장병에게 감사를 표하고 추모했다. 정석봉 회장은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3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청춘을 바친 미군의 희생 덕분이다”라고 말했다.골프 한국전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한국전쟁 정전협정
2026.07.16. 20:00
한국전쟁을 겪은 피란민 출신 한인 의사이자 시인인 포샤 최(Portia Choi) 박사가 컨카운티 명예 계관시인(Poet Laureate)에 선정됐다. 컨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는 최근 최 박사를 2026년 6월부터 2027년 5월까지 활동하는 명예 계관시인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최 박사는 35년 넘게 시를 써왔으며, 지역 문학단체 ‘컨 포에트리(Kern Poetry)’를 공동 설립했다. 10여 년 동안 베이커스필드 다운타운 대그니스 커피(Dagny’s Coffee)에서 매달 열리는 공개 시 낭독회를 진행하며 지역 문학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는 “예술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수퍼바이저위원회가 계관시인 임명을 승인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계관시인은 지역사회의 문학과 시를 알리는 문화대사 역할을 맡는다. 최 박사는 이미 2010년부터 지역 시인들과 함께 매년 4월 ’전국 시의 달(National Poetry Month)‘ 행사를 개최하며 문학 저변 확대에 힘써왔다. 의사 출신인 그는 자신의 삶을 담은 시를 통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최 박사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두 살이었다. 2013년 출간한 시집에 실린 대표작 ‘아이의 얼굴(Face of a Child)’에서는 전쟁 속 어린 시절의 공포와 상실을 그려냈다. 시의 마지막에는 흑인 미군 병사가 고아가 된 한국 어린이들을 구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그는 아이들을 구했다. 그 소녀는 평생 그를 기억한다”는 구절로 끝난다. 최 박사는 여덟 살 때 미국으로 이민한 뒤 학업에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UCLA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됐다. 그는 의대 시절 수많은 죽음과 질병을 접한 경험이 어린 시절 전쟁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된 뒤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행복하지 않은 슬픔이 있었다”며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전쟁 당시의 상처를 마주하게 됐고, 그것이 치유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최 박사는 “시는 재미있는 이야기만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상처를 표현하는 치유의 과정”이라며 “의사로 사람을 치료했던 것처럼 이제는 시를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계관시인으로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치유받을 수 있도록 돕고,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함께 발견하게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온라인 속보팀계관시인 한국전 명예 계관시인 계관시인 임명 지역 문학단체
2026.07.15. 15:05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당신들이 흘린 피와 헌신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처럼 들린다.” 데이비드 피켓(62.사진) 회장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 1989년부터 1년간 주한미군으로 복무했으며, 현재는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 회장을 맡고 있다. 고령의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 그리고 한국에서 근무한 주한미군 세대의 기억을 하나로 잇는 가교 역할이다. 현재 KWVA는 전국에 110개 지부, 50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실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는 약 1500명이다. 다수는 정전 이후 한국에서 복무한 주한미군 출신들이다. 피켓 회장은 “만약 협회가 한국전 참전용사만을 회원으로 고집했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단체 자체가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복무하며 현장을 지킨 이들이 함께 기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문호를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젊은 미래 세대에게 끊임없이 전해지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피켓 회장은 “오늘날 학교에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낀 ‘각주’처럼 미미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한·미 양국이 함께 이뤄낸 성과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KWVA는 현재 ‘텔 아메리카(Tell America)’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전 참전용사와 주한미군 복무자들이 직접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한국전쟁의 의미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피켓 회장은 “교과서로 읽는 전쟁과 직접 그 땅을 밟았던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게감부터 다르다”며 “학생들은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와 전쟁의 참상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깊이 이해하게 된다”고 전했다. 피켓 회장은 1989년 오산 공군기지를 거쳐 캠프 험프리스에 배치돼 CH-47 치누크 헬리콥터 정비병으로 근무했다. 당시 남북 간의 일촉즉발 정전 상태는 그의 복무 기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안겼다. 그는 “언제든 전쟁이 다시 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1년 내내 높은 수준의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피켓 회장은 한국에서 체득한 군인으로서의 원칙이 이후 32년간 이어진 군 경력에 가장 큰 자산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복무했다. 그는 한·미 양국이 아직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실종 장병들의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작업에 더욱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켓 회장은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 장병이 아직도 8000명 이상에 달한다”며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만큼, 이들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피켓 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묵직하면서도 분명했다.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일은 결코 과거에만 머무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명확히 알고, 다음 세대가 그 숭고한 가치를 온전히 지켜가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관련기사 우리가 흘린 땀과 피 기억해야 자유 지켜낸 희생 계승해야 정치 싸움에 피로 지킨 나라가 흔들려서야 김경준 기자 [email protected]노병들은 자유의 수호자 5 (끝) 한국전 미군 한국전쟁 참전용사 한국전 참전용사들 주한미군 복무자들
2026.06.25. 22:38
사진작가 혜월 김영임의 ‘평화 한국전쟁 76주년 사진전’이 26~27일 맨해튼 본스타트레이닝센터 뉴욕캠퍼스 K-Pop스쿨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6·25참전유공자회 뉴욕지회 회원들의 활동과 전쟁영웅 복장 퍼레이드 장면 등 감동적인 기록 사진이 전시된다. 일반인 관람은 27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며,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서만교 기자 [email protected]사진전 한국전 사진전 개최 평화 한국전쟁 25참전유공자회 뉴욕지회
2026.06.25. 22:00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많은 미군이 희생됐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노리오 우에마쓰(95·왼쪽 사진)씨는 한국전쟁의 희생과 역사가 더 폭넓게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인사회가 참전용사 추모와 기념행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에마쓰씨는 “한국전 참전용사 모자를 쓰고 다니면 미국인들은 ‘복무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인타운에서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뿐이었다”며 “한인들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기념행사 현장에 직접 나와 참전용사들을 기억해주는 참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31년 북가주 쿠퍼티노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27년 일본의 쇼와 금융공황 속에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살리나스와 서니베일 일대 농장에서 일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진주만 공습으로 뒤바뀌었다. 1941년 이후 서부 지역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이 수용소로 강제 이주됐고, 당시 11세였던 우에마쓰씨도 가족과 함께 와이오밍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후 그의 가족은 1945년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유타주 브리검시티에 정착했다. 그가 군에 입대한 것은 17세가 되던 해인 1949년이었다. 우에마쓰씨는 “당시는 징집되던 때라 기다리기보다 자원입대를 택했다”며 “아버지는 입대 동의서에 곧바로 서명해 줬지만, 어머니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텍사스주에서 대공포병 훈련을 받았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우에마쓰씨는 일본에서 추가 훈련을 받은 뒤 배를 타고 1951년 7월 인천에 도착했다. 그가 처음 마주한 한국의 모습은 참담했다. 우에마쓰씨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성과 노인, 아이들의 피란 행렬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초 대공포병 임무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일본어 회화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제521군사정보소대에 배치됐다. 그는 “당시 상관에게 일본어를 읽거나 쓰지는 못하지만 말은 할 줄 안다고 하자 나를 통역병으로 차출했다”고 전했다. 주된 임무는 북한군 포로 심문 통역이었다. 그는 전쟁 기간 약 100명의 포로를 심문했다며 “포로들이 모두 일본어를 할 줄 알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우에마쓰씨는 포로 취조의 순간을 “슬펐다”고 돌아봤다. 그는 “많은 이들이 자원해서 전쟁에 온 것이 아니었다”며 “특히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군 병사들과 함께한 순간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당시 한국군 중에서도 일본어를 구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우에마쓰씨는 “한국군 덕분에 쌀밥도 먹을 수 있었고, 부대의 한국인 하우스보이도 나와 동료들을 많이 도와줬다”고 밝혔다. 우에마쓰씨는 1952년 7월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LA에 정착해 대학을 졸업한 뒤 링 일렉트로닉스 등 남가주 지역 전력 및 제조업체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은퇴 후에는 한국전쟁의 기억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1995년에는 일본계 미국인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도 창립했다. 특히 2022년에는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행사에 참석해 전쟁의 기억을 전하기도 했다. 우에마쓰씨는 “한국전쟁은 단순히 과거의 전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라며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후세도 이 전쟁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한국전 전쟁 한국전쟁 참전용사 한국전 참전용사 전쟁 기간
2026.06.24. 21:10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 남서부지회(회장 박굉정, 이하 남서부지회) 임원들은 제71회 현충일이었던 지난 6일, 글렌도라의 오크데일 추모 공원 내 한국전·베트남전 참전 미 동맹국 용사 기념비를 찾아가 헌화하고 참전유공자들을 기렸다. 박굉정 회장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도록 한 참전용사 기념비가 이곳에 있으니 당연히 현충일날 이곳을 찾아 감사의 헌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헌화식엔 박 회장과 김현석 부회장, 이승해 6·25참전유공자회 미 남서부지회장, 남서부지회 여성회의 오미애 회장, 공영옥 부회장, 정명숙 고문 등이 참가했다. 여성회 임원들은 이날 간호장교로 참전한 유공자인 정 고문의 부군 고 김영배 예비역소령(육사 3기, 화랑무공훈장 수훈)의 묘를 다듬고 헌화했다.참전유공자 한국전 한국전 참전유공자 한국전 베트남전 남서부지회장 남서부지회
2026.06.16. 20:00
국제축구연맹(FIFA)이 한국과 체코의 월드컵 경기에서 빈 좌석이 다수 보였음에도 발표된 관중 수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 공식 반박했다. 논란은 12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한국-체코 조별리그 경기 이후 불거졌다. 경기장 곳곳에 빈 좌석이 눈에 띄었지만 FIFA는 이날 관중 수를 4만4985명으로 발표했다. 이는 경기장 수용 인원에 거의 근접한 수준으로, 일부 팬들과 언론은 실제 관중 규모와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FIFA는 공식 성명을 통해 “관중 수는 특정 시점에 보이는 좌석 점유율이 아니라 입장권을 스캔하고 경기장 구역(stadium footprint)에 실제로 입장한 인원을 기준으로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FIFA 대변인은 “공식 관중 수는 육안으로 확인한 좌석 점유율이 아니라 티켓 스캔 기록과 경기장 내 입장객 수를 토대로 집계된다”며 “모든 수치는 경기장 운영진 및 티켓 담당 부서와 협력해 검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된다”고 밝혔다. 또 “과달라하라 경기에서는 일부 관중이 경기 내내 지정 좌석에 앉지 않고 통로(concourse) 등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FIFA는 설명과 함께 경기장 내부 사진도 공개하며 상당수 관중이 좌석 외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가 공동 개최하는 2026 FIFA 월드컵 초반 일부 경기에서 빈 좌석이 눈에 띄면서 제기된 관중 동원 문제와 맞물려 관심을 끌고 있다. 온라인 속보팀한국전 관중 공식 관중 상당수 관중 경기장 운영진
2026.06.12. 16:34
LA총영사관이 제76주년 한국전쟁 기념식을 개최한다. LA총영사관은 오는 25일 오전 10시 오렌지카운티 풀러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에서 한국전쟁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이번 기념식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유엔 참전국 외교단, 정치인, 향군단체 관계자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행사는 LA총영사관이 주관하며, 재향군인회 미서부지회(회장 신효섭), 미남서부지회(회장 박굉정), 6·25참전유공자회(회장 이재학), OC 한국전 참전기념비 위원회(회장 박윤숙)가 공동 주최한다. 올해 기념식에서는 미군 참전용사와 가족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전수해 한국전 참전과 희생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또 미 육군 300군악대가 행사 지원에 나서며, OC 한국전 참전기념비 위원회가 마련한 한국전 참전용사 및 후손 장학금 수여식도 함께 진행된다. 총영사관 측은 “이번 기념식은 열린 공간에서 개최되는 만큼 지역 주민과 한인 단체 관계자 등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경준 기자la총영사관 한국전 한국전쟁 기념식 한국전 기념식 한국전 참전기념비
2026.06.10. 18:54
한국전쟁 당시 소련 전투기와의 단독 공중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뒀으나 뒤늦게 명예훈장을 받은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100세)이 샌디에이고 지역사회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지난 21일 USS 미드웨이 항공모함 박물관 갑판에서는 윌리엄스 대령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약 200여 명의 참전용사와 군 관계자, 지역인사들이 참석했으며, T-34 훈련기 편대가 상공을 비행하며 그의 공적을 기렸다. 행사에는 대럴 이사 연방하원의원과 토드 글로리아 샌디에이고 시장, 등 주요 인사와 참전용사들이 참석했고 샌디에이고 한인사회에서는 백황기 SD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과 장영길 이사가 참석했다. 윌리엄스는 1952년 11월 한국전쟁 중 항공모함 USS 오리스카니에서 출격해 더 빠르고 기동성이 뛰어난 소련 미그기 7대와 약 35분간 교전을 벌였다. 그는 4대를 격추시키고, 263발의 탄흔을 입은 전투기를 이끌고 무사 귀환하는 기적 같은 생환을 이뤄냈다. 해당 작전은 당시 미.소 간 긴장 고조를 우려해 수십 년간 비밀에 부쳐졌으나, 2000년대 기밀 해제 이후 그의 공로가 재조명됐다. 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졌고 대럴 이사 연방하원의원 등이 앞장서 명예훈장 수여를 추진해 왔다. 그 결과 그는 지난 2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명예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날 글로리아 시장은 "20대 청년이 조국을 위해 내린 결단은 상상을 초월 한다"며 '로이스 윌리엄스의 날'을 선포했고 이사 의원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운 진정한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윌리엄스는 "모든 공은 당시 함께 했던 승조원들에게 있다"며 끝까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김영민 기자윌리엄스 한국전 로이스 윌리엄스 윌리엄스 대령 한국전쟁 당시
2026.03.24. 20:59
보수 논객 고든 창(왼쪽에서 두번째) 변호사가 지난 7일 뉴저지주 코치 하우스 디너에서 한국전참전용사협회(KWVA) 소속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창 변호사는 이날 KWVA에 2000달러의 기부금도 전달하고 어려운 형편의 참전용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KWVA 제공]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 참전용사
2026.03.11. 9:47
주한미군 전우회 가주 지부(지부장 행크 김)가 지난 7일 캘리포니아 로스알라미토스에 있는 미 제40보병사단 영내 피들러스 그린 회관에서 정기 모임을 열고 한미동맹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주한미군 근무 경험이 있는 전우들이 참석해 과거의 기억과 전우애를 나누며 한미동맹의 가치를 공유했다. [주한미군 전우회 가주 지부 제공]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쟁 참전용사 한국전 참전용사들 주한미군 전우회
2026.03.09. 19:10
한국전쟁 참전영웅과 한인회장의 인연이 국경을 넘어 깊은 우정으로 이어지며 지역사회에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야기는 2023년 1월 LA 주재 한국 보훈부 영사가 당시 샌디에이고 한인회장이던 백황기 전 회장에게 한 부탁을 하면서 시작됐다. 샌디에이고에 거주 중인 6·25 참전용사 로이스 윌리엄스를 찾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미 해군에서는 2022년 12월 21일 윌리엄스 대령에게 한국전 참전 공로를 인정해 '해군십자성훈장(Navy Cross)'을 수여했는데 LA총영사관에서 이를 차후 인지했던 것이다. 오랜 군사기밀 속에 있었던 인물인 만큼 그의 존재는 지역사회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백 전 회장은 수소문 끝에 윌리엄스를 만나 전쟁 당시 경험담을 직접 들었고 그의 공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후 관련 자료를 정리해 LA 총영사관을 통해 한국 보훈부에 전달하며 재조명의 계기를 마련했다. 윌리엄스는 한국전쟁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F9F 팬서 전투기를 몰고 극비 공중전에 투입됐다. 그는 소련 MiG 전투기 편대와 교전해 단독으로 4대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지만 냉전 시기 정치적 이유로 약 50년간 군사기밀로 묶여 공적이 늦게 알려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 공식 행사로 이어졌다. 2023년 4월 백 전회장은 윌리엄스와 함께 워싱턴 DC를 방문해 한국정부가 수여하는 태극무공훈장을 한국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했다. 작년 6월에는 백 전회장이 주최한 '오션사이드 엘리트 태권도 대회'에서 당시 100세였던 윌리엄스가 송판 격파시범을 선보여 2000여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작년 12월에는 그의 전투공적이 재평가되며 미국 최고 군사훈장인 명예훈장 수훈이 결정됐다. 윌리엄스는 백 전회장에게 동행을 요청했고 두 사람은 지난 2월 2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행사 도중 대통령에게 직접 명예훈장을 받았다. 우연한 요청으로 시작된 만남은 3년간 이어진 동행이 됐다. 백 전 회장은 "한국을 위해 싸운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영웅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은 큰 영광" 이라고 말했다. 케빈 정 기자한인회장 한국전 한국전쟁 참전영웅 한국전쟁 당시 한국전 참전
2026.03.03. 20:37
밝은사회운동(GCS) LA는 베터런스데이를 맞아 한국전 참전용사 위문에 나선다. 회원 및 자원봉사자들은 10일 오전 11시30분 웨스트LA 베터런스병원(11301 Wilshire Blvd) 215동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날 수 있다. 이날 주최 측은 향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한국전 참전용사 병문안, 선물증정, 점심식사 대접을 진행할 예정이다. 밝은사회운동 LA는 2008년부터 매년 2회 이상 한국전 참전용사 위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종남 이사장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미군 약 3만7000여 명의 전사자, 9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면서 “부상당한 참전용사는 지금도 전국 향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인사회가 이들을 잊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밝은사회운동 LA는 향군병원 위문을 위한 자원봉사자도 모집한다. ▶문의: (714)552-5681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게시판 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 참전용사 데이 한국전 이상 한국전
2025.11.06. 20:26
한미연합회(AKUS)는 지난 2일 뉴저지의 포트리 커뮤니티 센터에서 한국전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고 생존 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엔 보수 논객 고든 창 박사가 참석해 “참전용사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AKUS의 한국전 참전용사 지원 사업을 주도해온 이응철 한국담당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행사엔 하세종, 앨버트 곤살레스, 알렉스 애시라스 등 고령의 참전용사와 현지 한인 단체 간부들이 참석했다. 가운데 오른 주먹을 들어 올린 이가 고든 창. [한미연합회 제공]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 참전용사들 이응철 한국담당 앨버트 곤살레스
2025.10.07. 18:22
한국 전쟁,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현대사의 산증인 대니얼 올데웨지(사진)가 최근 100세 생일을 맞았다. ABC방송은 오렌지 시의 오크몬트 시니어리빙 커뮤니티에 거주하는 올데웨지가 지난달 28일 가족과 함께 생일 파티를 즐겼다고 보도했다. 한국전 당시 공군으로 참전한 올데웨지는 포로로 붙잡혀 북한에서 2년 넘게 수용소에 억류된 바 있다. 방송에 따르면 올데웨지는 매주 화요일마다 코스타메사의 ‘더티 넬리스 아이리시 펍’에서 점심과 십자 낱말풀이를 즐긴다. 또 샌타애나의 리온 항공기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올데웨지는 공군 출신 베테런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포로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자신의 건강한 생활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올데웨지의 자손들은 올데웨지가 오크몬트 시니어리빙 커뮤니티 스태프와 나누는 우정이 그를 늘 행복하게 만든다고 전했다.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 참전용사 한국전 당시 시니어리빙 커뮤니티
2025.09.03. 20:00
비영리단체 글로벌힐링아트세러피(대표 김은미, 이하 GHAT)는 지난달 30일 풀러턴 힐크레스트 공원 내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 기념비 앞에서 제1회 청소년 에세이 대회 시상식을 열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란 주제로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20일까지 9~12학년 학생 대상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한국전에서 희생한 3만6591명의 미군에게 헌정하는 글을 쓰며, 자유와 희생의 의미를 되새겼다. 웨스트랜치고 12학년 우신정 학생은 1등상을 받았다. 2등과 3등은 리어 장, 케이트 김(이하 서니힐스고 12학년) 학생이 차지했다. 케일럽 송(벡맨고 11학년), 유니스 장(서니힐스고 9학년) 학생은 각각 장려상을 받았다. 섀런 쿼크-실바 가주하원의원은 박동우 수석 보좌관을 통해 참가자 전원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GHAT 관련 문의는 전화(714-909-8414)로 하면 된다.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 참전용사 에세이 대회 청소년 에세이
2025.09.02. 20:00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여했던 노먼 보드 한국전참전용사회 레이 데이비스챕터 회장의 장례식이 6일 라즈웰연합감리교회에서 엄수됐다. 이날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의 조전을 유족에게 전달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보드 회장은 1932년 버지니아주 로어노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재학 중 미 해병대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투입됐다. 그는 18세 나이로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웠다. 보드 회장은 지난달 29일 향년 93세 나이로 소천했으며, 5일 추모 뷰잉과 6일 고인이 생전 다니던 교회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두 행사 모두 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원들뿐 아니라 한인사회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보드 회장은 6개월 전 직접 장례식 일정을 계획하고 추모 예배를 집례할 목사를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에서 스탠 피셔 참전용사회 부회장과 고인의 두 아들이 추모사를 전했다. 차남 커트 보드 씨는 보드 회장이 생전 가장 아끼던 모자라며 “한국전 참전용사”라고 쓰인 유품을 소개했다. 그는 “아버지는 이 모자를 쓰고 가면 사람들이 밥을 사주곤 한다며 농담하곤 하셨다”며 “지역 한인 커뮤니티와 가깝게 지내셨다. 참전용사회는 그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조전을 통해 “고인께서는 전후에도 한국전 참전용사회 레이 데이비스챕터 회장을 맡으며, 한미 우호 증진과 6·25전쟁 관련 기념사업을 활발히 이어오며 양국의 동맹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며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고인이 보여준 열정과 숭고한 헌신을 기리고 미래세대까지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윤지아 기자참전용사 한국전 한국전 참전용사회 보드 회장 피셔 참전용사회
2025.08.06. 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