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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참전 용사 박세준 추방이 남긴 과제

Los Angeles

2025.07.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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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사회부 기자

김경준 사회부 기자

최근 ‘자진 추방’한 참전 용사 박세준(55)씨 사연을 두고 많은 이들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육군으로 복무한 그는 지난 1989년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국방군 총사령관 축출 작전에 투입됐다. 박씨는 당시 작전 중 총상을 입었다. 그 공로로 퍼플 하트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23일, 모친과 자녀들을 미국에 남겨둔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씨는 영주권자다. 복무 기간이 12개월에 미치지 못해 군 복무에 따른 자동 귀화 혜택을 받지 못했고, 과거 마약 소지 및 법정 불출석 혐의로 3년 형을 복역한 전력이 있다. 그가 마약에 손을 댄 이유는 환락이 아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이었다. 박씨는 군사 작전에서 생과 사를 오간 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결국 약물에 의존하는 선택을 했다. 만약 그에게 적절한 재활센터나 정신 건강 치료 안내가 제때 제공됐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씨는 복역 후 과거를 반성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왔다. 하와이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성실히 살았다. 출소 직후 이민세관단속국(ICE)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은 바 있지만, 우선 추방 대상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기 출석 보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문제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단속 정책 강화로 추방이 현실화됐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필요한 정책이다. 법의 원칙은 분명 존재해야 한다. 또 사회를 위협하는 조직 범죄자나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 대해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속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 과거 실수를 뉘우치고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마저 추방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은 타당한가.
 
단속 목적이 실적을 올리기 위함이 되어선 안 된다. 미국은 이제 ‘합리적이고 정교한 단속 체계’를 갖춰야 한다.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실행 기준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전과 이력자에 대한 개별적 위험도 평가 체계’ 도입이다. 범죄 성격과 동기, 복역 이후 삶의 궤적, 재범 여부,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재범 우려가 낮고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들은 추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면적 성격을 가진 체류권 재심사 제도 역시 고려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이상 무범죄 이력과 정착 상태가 입증되면, 심사위원회를 통해 ‘재추방 면제 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일회성 구제책이 아니라, 이민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보완하는 장치다.
 
아울러 정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내 많은 산업 현장에서 필수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신분이 불안정한 이들이다. 건설 현장, 식당 주방, 농장, 정비소 등에서 일하는 이름 없는 이들이 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다. 이들을 한순간에 몰아내는 것이 정말 국가 경제에 이득이 될까.
 
결국 이 문제는 단지 이민 정책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존중하며,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박세준씨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는 대가를 치렀고, 이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국가의 ‘무관용 원칙’에 의해 삶을 송두리째 잃었다면, 그것은 단속이 아니라 희생양 만들기다.
 
앞으로 또 다른 박세준씨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숫자만 남는 단속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 합리성과 정교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살아 있는 이민 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미국의 가치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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