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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원에 장갑차가 웬 말인가

Los Angeles

2025.07.0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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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도 난 듯했다. 지난 7일 오전, LA한인타운 인근의 맥아더 공원은 무장 병력 90여 명과 17대의 장갑차에 의해 점령당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요원과 군인들이 공원을 가로지르고, 헬리콥터가 상공을 위협적으로 맴돌았다. 연방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은 영화 속 테러리스트 소탕작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물론 맥아더 공원은 노숙자, 마약, 장물 거래 등 고질적인 불법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범 지역이다. 그래서 LA시정부가 치안 유지에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단적인 예로 거론되는 장소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쿠데타처럼 무장 군인과 장갑차를 동원할 일인가. 시정부의 무능이 연방정부의 대낮 도심 군사작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연방정부가 진정으로 돕고자 했다면 주택 문제 해결을 지원하거나, 마약 단속 및 치료 프로그램을 강화하기 위해 시정부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했다.
 
만약 이날 단속이 노숙자, 마약 문제를 뿌리뽑기 위한 것이었다면 불편함과 두려움은 감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군병력이 떠난 뒤 공원은 다시 노숙자들의 세상이 됐다. 배스 시장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서 체포된 이들도 없었다고 했다. 도대체 뭘 단속하려 했던 건가.
 
시민들은 또 공포에 떨었다. 현장에서 언론이 만난 8세 소녀는 “ICE(연방이민세관단속국)가 무섭다”고 울먹였다. 공원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하던 비영리단체 자원봉사자들도 요원들에게 총으로 위협당했다.  
 
이날 단속에 지역 정치인들의 반발은 예상대로 거셌지만 예상대로 공허했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자 공동체를 “잔인하게 박해하고 있다”고 했다. 알렉스 파디야 연방 상원의원도 “이날 단속은 치안 유지가 아닌 지역사회를 향한 위협”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경순찰대의 그레고리 보비노 요원은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게 좋을 것”이라며 조롱 섞인 경고를 했다. 총 든 이들의 무서운 오만이었다.  
 
이날 소동의 속사정은 결국 정치적 권력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피난처 도시’ 정책을 고수하는 LA를 본보기로 삼아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또 무능한 시정부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연방정부의 독선적인 공포 정치만을 비난하고 있다.
 
이 악순환의 굴레에서 시민들의 삶은 메말라가고 있다. 단속이 있기 6시간 전인 새벽 3시 25분쯤, 맥아더 공원에서 불과 몇 마일 거리의 한 상가에 100여 명의 떼강도가 들이닥쳤다. 이들은 여러 상점의 유리창을 부수고 물건을 마구잡이로 훔쳐 달아났지만, 체포된 용의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정작 치안을 위협하는 눈앞의 범죄에 공권력은 무얼했나. 연방정부는 불체자들에게 경고를 하겠답시고 공원에 군대를 투입하고, 시경찰은 떼강도 100명이 업소 여러 곳을 강탈하는 사이 한 명도 붙잡지 못했다.  
 
제 할 일 제대로 못하는 공권력에 들어간 예산은 막대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LA 지역 불법체류자 단속 군병력 배치에 1억3400만 달러를 썼다. LAPD의 지난해 예산은 21억 달러다.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양쪽 모두 세금이 아까운 존재다.
 
정치는 ‘사회 구성원 간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치를 업으로 삼은 이들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며 진짜 위협은 외면한 채 공포만 양산하고 있다.
 
CBS 방송은 맥아더 공원 인근의 한인 상인 스캇 서씨의 인터뷰로 현재 일반 시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서씨는 “불법체류자 인력 없이 미국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면서 “불법을 묵인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제발 싸움을 멈춰달라. 서로를 향한 비난도 멈춰달라.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7일 업소는 도둑들에게 약탈당하고, 공원은 군대에 점령당했다. 시민을 ‘위한’ 정부는 대체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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