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마켓의 발전사는 LA 한인 사회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민 1세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찾을 수 있는 위안의 공간이었고, 새로운 이민자들에게는 정착에 필요한 정보와 일자리를 얻는 교류의 장이었다.
초기 한인타운의 상권은 올림픽 길을 따라 형성됐다. 현재 서독안경점 자리에 1969년 문을 연 ‘올림픽 식품점’이 그 중심이었으며, 그 주위로 한식당, 중식당, 떡집, 선물센터 등이 속속 들어서며 한인타운의 태동을 알렸다.
올림픽 마켓을 중심으로 한인 업소들이 자연스럽게 군락을 이룬 것이 상권 형성의 1세대였다면, 8가와 아이롤로 길(현재 99센트 스토어 및 히스패닉 쇼핑센터 위치)에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2세대 상권이 조성됐다. 1980년대 초반 이곳에 프리미엄을 표방한 ‘동서마켓’과 2층 규모의 동서 쇼핑센터가 들어서며 한인타운 상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시간이 흘러 한인타운의 중심 상권이 8가를 넘어 웨스턴 길로 이동하면서, 동서마켓의 주축들은 1988년 3월 웨스턴 길에 신축된 코리아타운 플라자로 이전했다. 이들이 건물주 직영체제로 운영한 마켓이 바로 ‘플라자마켓’의 전신이다.
당시 버몬트 길과 6가 인근에 자리했던 ‘칼스마켓’은 올림픽 마켓, 동서마켓과 함께 ‘빅3’ 구도를 형성했다. 훗날 칼스마켓 경영진은 홀세일 비즈니스를 거쳐 7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린 히스패닉계 유통 강자 ‘수피리어 마켓’의 오너로 성장했다.
그 무렵 ‘웨스턴 마켓’이 웨스턴 본점과 함께 올림픽 마켓 건너편에 올림픽 분점을 개점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오렌지카운티의 ‘도레미 마켓’ 역시 3가와 웨스턴 길에 진출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이후 웨스턴 마켓의 고 김 회장과 오 회장이 웨스턴 길의 폐업한 본스(Vons) 마켓 건물을 인수해 ‘HK한국수퍼마켓’을 열면서, 한인 마켓의 ‘수퍼마켓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코리아타운 플라자몰이 문을 연 1988년, 하기환 회장과 김진수 회장은 올림픽 길의 알파베타(Alpha Beta) 마켓 리스권을 확보해 ‘한남체인’을 열었고, 고 이만성 사장은 웨스턴 길의 메이페어(Mayfair) 마켓 건물을 인수해 ‘가주마켓’을 개점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올림픽 마켓은 HK한국마켓 건너편에 2호점을 열었으나, 경쟁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폐업했다.
가주마켓은 베벌리 길, 가든그로브, 세리토스 등으로 지점을 확장했으나, 이만성 사장 사후 웨스턴 본점만을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반면 한남체인은 토런스, 부에나파크, 다이아몬드바를 넘어 동부 뉴저지까지 진출하며 사업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HK한국마켓은 투자그룹과 합작하여 갤러리아 올림픽점, 버몬트점, 밸리점을 잇달아 개점하며 멀티 지점 체제를 구축했다. HK한국마켓의 파트너 중 한 명은 독립하여 ‘그린랜드마켓’을 설립, 현재 밸리와 라스베이거스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시작된 ‘시온마켓’은 2009년 시티센터에서 개점한 뒤 버몬트 길로, 다시 8가 아씨마켓 자리에 신축된 건물로 두 차례 이전하며 입지를 다졌다. 시온마켓은 하와이안가든점을 폐점하는 대신, 부에나파크, 어바인, 조지아, 텍사스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후발주자였던 ‘프레시아’는 가든그로브와 토런스에 매장을 열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업했고, 토런스 지점은 한남체인이 인수하여 운영 중이다. 리틀도쿄 갤러리아몰에는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동명의 ‘리틀도쿄 갤러리아 한국마켓’이 성업 중이다.
동부의 대형 식품회사 리브라더스의 ‘아씨마켓’이 1998년 8가에 진출, 저렴한 자사 제품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으나 건물 재개발 후 매장 확보에 실패하며 2015년 서부 소매 시장에서 철수했다.
반면, 동부의 또 다른 강자 ‘H마트’는 서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후 텍사스 등 미 전역으로 지점을 확장했다. 현재 미주 94개, 캐나다와 영국까지 총 112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54개 매장을 보유한 중국계 ‘99랜치마켓’을 규모 면에서 크게 앞질러 세계적인 아시안 마켓으로 성장했다.
한인 마켓은 LA 한인들의 삶과 함께 호흡해온 역사적 공간이다. 작은 식품점에서 시작해 미 전역과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형 유통 체인으로 성장한 그 발자취는, 낯선 땅에 뿌리내려 공동체를 형성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뤄낸 한인 이민 사회의 위대한 여정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