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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광복절에 걷는 노먼디 애비뉴

Los Angeles

2025.08.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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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 월드쉐어USA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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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되면 으레 8.15 광복절 기념행사가 이어진다. 1945년 8월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일이지만, 연합군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이끈 날은 1944년 6월 6일이었다.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이다. 흥미롭게도 LA 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인 ‘노먼디(Normandie) 애비뉴’가 바로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고 있다.
 
1884년 건설된 이 도로는 원래 ‘로즈데일 애비뉴’로 불렸다가 1898년 ‘노먼디’로 개명되었다. LA에서 토런스에 이르는 22.5마일(약 36.2km)의 긴 도로는 여러 도시를 관통하며 발전했다. 도로명 표기는 영어식 ‘Normandy’가 아닌 프랑스어 ‘Normandie’를 사용하는데, 이는 연합군이 나치 독일로부터 프랑스를 해방시킨 역사적 맥락을 상징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6월 6일,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연합군이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감행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이다. 전문가들은 상륙작전이 어려운 지형과 불안정한 날씨 때문에 이 작전을 반대했다. 실제로 작전은 여러 차례 연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고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 상륙작전은 북서 유럽 해방의 서막이자 서부전선 승리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이 있었기에 1945년 8월의 종전이 가능했다.
 
이 작전은 훗날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토대가 되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상륙이 어려운 인천의 지형 때문에 많은 군사 전문가들이 작전을 반대했으나, 맥아더 사령관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 사례를 들어 이들을 설득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영화로도 여러편이 만들어졌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지상 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 등 20여 편이 넘는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미국내 8개의 노르망디 시(City)가 있다. 미국에 노먼디 공원이나 노먼디 도로도 많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지명들이다. 이렇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사랑받고 화두가 되는 이유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전이자 세계 역사를 바꾼 전쟁이어서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과학과 합리성을 믿었던 현대주의를 몰락시키고 포스트모더니즘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상식, 지성 그리고 과학을 믿고 인간의 합리성을 믿었던 현대주의는 두 전쟁을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처절한 불신을 갖게 된다. 모두가 죽는 전쟁을 일으켜 멀쩡한 이웃을 죽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인류가 절망함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출현했다.  
 
노르망디 작전은 단순히 군사적 성공을 넘어, 기도로 승리한 작전으로도 기억된다. 영국은 6년간의 전쟁 기간 중 7번의 ‘국가 기도의 날’을 선포했는데, 그 마지막 일곱 번째 기도의 날이 바로 노르망디 작전을 위한 것이었다.  
 
작전을 앞두고 장병들 앞에서 행한 아이젠하워 장군의 마지막 연설은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장병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그리고 이 위대하고 고귀한 작전을 수행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아이젠하워는 참모들과 함께 작전 지역을 마지막으로 순시하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신념과 기도가 함께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강태광 / 월드쉐어USA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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