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방미 첫 일정으로 워싱턴 DC에서 한인들을 만나 한인사회 오랜 숙원인 복수국적 허용 연령 하향과 재외선거 문제점 개선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동포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면서 “오랜 과제인 복수 국적, 연령 하향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도 힘을 쏟겠다”고 했다. 아울러 “주권자로서 권한 행사를 하고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투표할 수 있는 장소나 장치·제도도 잘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동포 간담회마다 으레 나온 이 약속이 이번엔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제도적 결실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 대통령의 말 대로 미주 한인들은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위대한 역량”을 보여온 소중한 자산이다. 미주뿐만 아니라 전세계 한인 모두가 그렇다.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에 진출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고, 모국에 대한 투자와 교류를 희망하는 잠재적 성장 동력이다.
하지만 구시대적 제도가 한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11년 개정된 현행 국적법상 복수국적은 만 65세 이상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할 30~50대 한인들의 한국 투자와 활동에는 큰 제약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 3세 청년들에게 족쇄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만 18세 이전 국적이탈 시기를 놓치면 병역 의무에 묶여 만 38세가 되는 해 1월1일까지 20년간 한국 내 병역의무 대상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 공직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이른바 ‘홍준표 법’이라고 불리는 이 족쇄는 제 2, 제3의 앤디 김이 탄생할 수 있는 길을 막고 모국에 대한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있다.
재외선거의 불편함도 묵은 숙제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겨우 투표할 수 있는 현재의 재외선거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무색하게 한다. 공관 중심의 투표소 운영은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이는 저조한 투표율로 증명되고 있다. 우편투표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물론 국적법 개정과 우편투표제 도입에 대한 한국내 우려도 충분히 이해된다. 병역 의무의 형평성 문제, 건강보험 등 복지 제도의 혜택만 누리려는 ‘체리피킹’ 논란, 그리고 우편투표 과정의 공정성 시비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작년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65% 이상이 복수국적 연령 하향에 반대한다는 결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 여론은 ‘무조건 불가’가 아닌,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대통령의 약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정교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복수국적 취득 조건으로 일정 기간 국내 거주 의무를 부과하거나, 충분한 자산 및 소득 증명, 그리고 성실한 납세 의무를 부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병역 문제에 대해서도 국적 회복자의 병역 의무 이행 방안을 보다 현실적으로 다듬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우편투표 역시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투·개표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등 선진 사례를 참고하여 한국 실정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면 된다.
이 대통령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기에 단박에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회적 합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실질적 노력 없이 무작정 시간이 해결해주기만 기다려선 안 된다. 그 결과가 현재 한인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 아닌가.
한국 정부와 국회는 막연한 우려와 반대를 넘어, 재외동포를 끌어안는 것이 대한민국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책무가 있다. “미주 한인들은 소중한 자산”이라는 말뿐인 격려사는 한인들에게 희망고문이나 다름없다. 부디 이 대통령의 표현대로 “한미 동맹의 새역사를 만드는 여정에 한인들이 함께하고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화답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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