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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 정부 폭력에 한국은 뭘 했나

Los Angeles

2025.09.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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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길 건축가

송병길 건축가

지난해 10월, 조지아주 현대-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에서 벌어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합동 단속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 내 투자를 유치하며 경제적 파트너십을 다지던 한국 기업의 생산 현장에서, 우리 국민들이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지는 끔찍한 영상은 마치 노예 해방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자국 내 제조업 부흥을 외치던 미국 정부가 정작 그 정책의 주체인 한국 기업과 국민에게 보여준 무자비한 행태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의도, 인권도, 외교적 예의와 절차도 무시한 이 폭력적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한국 기업이 근로자들의 합법적 노동 신분 확보에 소홀했다는 실책과, 2026년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자 존재 이유다. 자국 이익이 외교의 기본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주권 국가로서의 한국 정부가 보여준 무능력함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한 병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감수했던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중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 통상 외교에서 보여준 대통령과 협상단의 모습은 과연 적절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수천억 불의 자발적 헌납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가.
 
기업 총수들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보여주기식 외교로 일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전에 ESTA(무비자 협정) 활용 방안이나, 이미 전례를 남긴 도요타의 대처 방안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한국의 이익을 위한 '배수진'을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회담 내내 보여준 한국 대통령의 모습은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교감 앞에 벌받는 문제 학생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란'에서 지적했듯, 한국의 정치 현실은 원칙과 근본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개인의 이익과 당리당략으로 치닫고 있다. 팬데믹이 낳은 무절제한 포퓰리즘의 그늘 아래에 숨어있는 '대중'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대중은 단순히 수적 다수가 아니라, 자기 성찰 없이 주어진 것에 안주하며 이미 만들어진 사회적 성과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집단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대중과 엘리트의 균형, 즉 자유와 질서가 함께 유지될 때 가능하다. 작금의 사회는 오히려 이러한 대중을 교묘히 이용하며 국민의 고통만 가중시키고 있는 이기적인 정치 세력과 노조 간부들이 만연해 있다는 슬픈 현실에 직면해 있다.
 
왜곡된 정보는 사람의 기억까지 통제한다. 과연 우리는 '깨어 있는 민중'인가? 현재의 사회 현실이 다음 세대에게 여과 없이 전달된다면, 우리는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빚더미에 앉아 절망에 허덕일지도 모를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송병길 /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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