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나 ACT 같은 표준 시험을 입학 필수 조건에서 제외한 대학이 급증한 것이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됐다. 그 배경에는 표준 시험이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테스트 옵셔널 정책만으로 대학의 다양성이 자동으로 개선될까?
UC 데이비스와 노터데임대가 실시한 최신 연구는 이런 단순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연구진이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6년간 미국 내 1,500여 개 4년제 대학을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이 기간 200개 이상의 대학이 표준 시험 의무화를 폐지했지만, 그 효과는 대학마다 천차만별이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여전히 시험 점수나 학업 성적을 중요하게 반영한 대학들의 경우 소수계 학생 입학률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시험 점수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긴 대학들은 소수계 등록률이 평균 2%포인트 증가했다. 더욱 흥미로운 발견은 대학이 처한 구조적 상황이 정책 효과를 크게 좌우한다는 점이다. 재정난이나 등록률 하락 등 내부적 압박을 겪고 있는 대학의 경우 시험 폐지 정책의 다양성 확대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됐다. 이는 대학도 결국 하나의 조직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상적인 교육 철학과 현실적인 필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면 아무래도 경제력 있는 학생들에게 더 관대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표준 시험 의무화 폐지는 무의미한 제스처에 불과할까? 그렇지는 않다.
연구 기간 전체 대학생 중 백인 비율이 68%에서 53%로 감소하고, 소수계 학생 비율이 19%에서 28%로 증가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핵심은 정책 자체보다 그 정책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실행 의지에 있다는 점이다. 표준 시험이 1950년대 이후 대학 입학의 중요한 잣대로 자리 잡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이 시험이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이 지속돼 왔다. 실제로 시험 준비 과정 자체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결국 이 연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진정한 다양성 확대를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선 근본적인 가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AT 의무화를 폐지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포용적인’ 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느냐 하는 점이다.
변화의 시작은 제도가 아닌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인식의 변화가 제도로, 제도의 변화가 다시 현실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연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